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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미남편 Jun 11. 2024

day28 오스피탈다콘데사-트리아카스테야

산티아고 순례길 28일차 (오스피탈다콘데사-트리아카스테야)


보통 나는 저녁에 잠이 들면 다음날 아침까지 잠에서 깨지 않는 편이다. 자다가 화장실도 가지 않고 물을 마시지도 않는다. 반면에 아내는 잠을 자다가도 꼭 한 두 번씩 화장실을 다녀온다. 아내는 깨지 않고 한 번에 푹 자는 나를 내심 부러워했다. 대신 나는 잠들기까지 시간이 꽤나 오래 걸리는 편이고 잠자리에도 매우 예민한 편이다. 보통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도 20~30분 정도 지난 뒤에 잠이들고 잠자리가 평소와 다르면 그시간은 1시간 이상 걸릴때도 있는것 같다. 반면에 아내는 어떤 잠자리던 구애 받지 않고 침대에 누운 지 3분도 되지 않아 잠에 빠져 든다. 나는 잠에 잘 드는 아내를 부러워했고 아내는 한 번에 쭉 자는 나를 부러워했다. 


어젯밤 웬일인지 평소의 나 답지 않게 잠을 자다 깨서 화장실을 다녀왔다. 새벽에 깨서 시계를 본 시간이 새벽 2시 즈음이었다. 그리고 화장실에 다녀오고 나서는 또다시 잠이 들기 위해 긴시간 사투를 버려야 했다. 모두가 잠든 알베르게는 다들 피곤한지 코 고는 소리가 꽤나 시끄러웠고, 우리가 자리 잡은 침대는 2층 침대 두 개를 나란히 붙여놔 아내와 내가 1층에 양옆으로 자고 있었고 2층에 외국인 2명이 자고 있었는데 2층에 있는 이들이 몸을 뒤척거릴 때마다 흔들림이 1층에 있는 나한테까지 느껴졌다. 덕분에 새벽시간에 한번 깬 뒤로는 꽤나 긴 시간을 잠을 못 자고 설쳐버리고 말았다.


제대로 잠을 못잤음에도 아침 6시가 되니 자연스레 눈이 떠졌지만 제대로 잠을 못잔 탓인지 온몸이 찌뿌둥 해서 침낭을 덮고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일어날 시간이 되어 뒤척 뒤척거리는 아내에게 10분만 더 누워있자고 말을 하고 조금 더 눈을 감고 침낭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조금 지나자 사람들이 하나둘 잠에서 깨어 몸을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계속 아내에게 10분만 더 10분만 더를 외쳐가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결국 8시가 다 되어서야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수 있었고 그렇게 늦게 까지 누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은 좀처럼 회복이 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얼리버드 답지 않게 9시가 된 늦은시간에야 준비를 마치고 길을 나설 수 있었다. 때로는 늦잠을 자서 늦게 출발한 적도 있었고, 비가 온다는 핑계로 일부로 늦게 출발한 적도 있었지만 이미 잠에서 깨서 정신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피로감을 느끼며 늦장을 부린 적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잠을 설쳐 늦장을 부리기도 했지만 사실 오늘 걷는 거리는 순례길을 걷기 시작한 이후로 가장 짧은 거리인 15km 정도만 걸으면 끝나는 일정 이기도 했다. 짧은 거리를 걷는다는 생각에 아마도 아침부터 더 밍기적 거리기도 한것 같다. 숫자로만 본다면 15km라는 거리가 부담이 되지는 않았지만 벌써 거의 한 달여를 쉬지 않고 걸은 탓인지 간밤에 제대로 잠을 못잔 탓인지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는 못했다. 요 며칠 20km 도 안 되는 거리를 걷다 보니 초반에 어떻게 30km를 걸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이제는 다시 25km 30km를 걸으라고 한다면 못걸을 것만 같았다.  


요며칠 한동안은 매일 같이 비가 왔는데 다행인지 오늘은 쏟아지는 비가 내리지는 않았다. 대신 안개비가 계속해서 오락가락하여 계속해서 우의를 입었다 벗었다 5번은 했던 것 같다. 일기예보상 으로는 오늘부터는 앞으로 해가 쨍쨍 나는 날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안개비가 계속 되는 날씨였다. 아무래도 고산 지대다 보니 일기예보가 정확히 맞지는 않는 것 같았다. 


잠시 길을 걷다 보니 소 때가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소고기를 주식으로 먹는 나라여서 그런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소를 참 많이도 보게 된다. 보통은 드넓은 초원에 자유롭게 방목을 하면서 키우는 소들을 봤는데 오늘은 아예 소들이 길을 막고 서있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수많은 소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순례길에서는 소만큼 개도 많이 볼 수 있는데 그 개가 영리하게도 소를 몰고 있었다.

 

수백 마리의 소 때가 우리 앞을 지나는 동안 우리는 혹시나 소 뒷발에 차일까 봐 바로 앞에 지나가는 소를 보며 멍하니 서있었고 그런 우리 옆에는 다른 순례객들도 같이 멍하니 소를 쳐다보고 있었다. 


갈리시아 지방에 들어선 오늘부터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날까지는 오늘같은 소때를 계속 해서 길에서 만나게 되었다. 게다가 축사가 군데 군데 많이 있었는지 길을 걷다 보면 지독한 소똥 냄새가 나는 곳이 꽤 자주 있었다. 처음 맡았던 소똥 냄새는 우리네 시골길의 냄새 여서 정겨운 기분이 들었는데 언젠가는 정말 코가 마비될 정도의 어마 어마한 소똥 냄새를 하루 종일 맡아야 했던 기억도 있다. 


오늘의 코스는 계속되는 내리막 길이 지속 되는 코스였다. 하중이 아래로 쏠려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정강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다행히 오늘 걷는 거리가 많이 짧았기에 정강이가 많이 아파지는 시점이 되자 알베르게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오늘도 12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알베르게에 도착을 했다. 시작한 시점이 평소와 다르게 매우 늦은 시간 이었기 때문에 너무 짧게 걸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몸은 짧게 걸어달라고 이야기하고 있는것 같았다. 


알베르게에 도착해보니 오늘 묵는 알베르게는 호텔급으로 시설이 좋았다. 그동안 사람 한 명이 들어가서 간신히 서있을 수 있는 비좁은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고, 또 뒷사람을 생각해서 급하게 씻고 나와야 했었는데 오늘은 우선 일찍 도착한 덕에 사람이 없기도 했었고, 샤워실은 내가 누워도 될 만큼 공간이 충분했다. 새로 지은 알베르게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뜨거운 물도 콸콸 잘 나왔다. 화장실도 마찬가지로 깨끗하고 넓은 화장실이었다. 모든 면에서 너무나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는 알베르게 여서 내심 마음이 편안해졌다. 


게다가 오늘 역시나 any bed 였다. 보통 대부분의 알베르게에서는 알베르게 주인이 우리가 묵을 침대를 정해준다. 젊으니까 2층으로 배정받는 일이 허다한데 사립 알베르게에서는 우리 보고 직접 원하는 침대에 자라고 한다. any bed라고 얘기할 때마다 아내와 나는 신나 했다. 알베르게에 도착 해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은 any bed 였고 오늘 역시 우리가 원하는 침대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좋은 시설, 좋은 위치의 침대까지 정하고 짧은 거리를 걸었던 만큼 일찍 도착해서 여유 있는 오후 시간이라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점심과 저녁을 모두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슈퍼마켓이 알베르게 바로 앞에 있어서 아내의 장운동을 위한 과일, 요구르트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가장 간단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인 스파게티와 고기도 샀다. 


아내와 함께 주방에서 밥을 만들어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생각해보니 레온 이후로 한동안 오롯이 우리 둘이서만 이 길을 걸어왔다. 순례길 초반에 만났던 리사와 마빈은 완전히 잊혀졌고 한동안 꽤 많은 길을 같이 걸으며 저녁을 함께했던 흰머리 아저씨와 아만다, 밸로리 일행도 헤어진 지 오래됐다. 그나마 레온을 갈무렵 만났던 주먹밥 커플은 연락처를 서로 교환 했었기에 주먹밥 커플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해봤더니 레온에서 허리가 아파 일주일 정도 병원신세를 지어 더 걷지 못하고 있다고 소식을 전해 왔다. 


만나고 헤어짐 속에 오롯이 우리 둘만 남게 되어 우리는 헤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함께 길을 걷는 것이 감사했다. 


이제 내일이면 사리아에 도착할 수 있었고, 지금 같은 속도로 걷는다면 산티아고까지는 일주일 정도만 더 걸어가면 도착할 수 있는 그리 멀지 않은 길이 남아 있었다. 이때 즈음 들었던 감정은 정강이가 너무 아파서 빨리 다 걸어버리고 끝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반이었고, 또 이맘때 부터는 우리가 함께했던 산티아고 순례길의 끝이 벌써 다가왔나 벌써 이 길이 끝나나 하는 아쉬움이 같이 공존했던 것 같다. 


길을 걷다 보면 간혹 우리가 가는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걷고 있는 순례객들을 만난다. 대부분의 그들은 이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완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더 얻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 걸어가는 사람들이었다. 처음에 그렇게 역주행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왜 역주행을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후반부에 오니 사람들이 왜 역주행을 하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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