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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미남편 Jun 12. 2024

day29 트리아카스테야-사리아

산티아고 순례길 29일차 (트리아카스테야-사리아)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 걷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가면 순례길을 걸었다는 증명서를 발급해준다. 그리고 어디서부터 얼마나 걸었는지 하는 거리 증명서를 또 발급해 준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는 증명서를 발급받으려면 최소 100km 이상을 걸어야 증명서를 발급해준다. 


사리아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약 100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도시이다. 그래서 그 증명서를 받기 위해 사리아부터 순례길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고 들었다. 이때문에 성수기에는 사리아부터 산티아고까지 모든 알베르게를 예약을 하며 걸어야 할 정도로 사리아부터는 많은 순례객들이 까미노 길을 걷게 된다고 한다. 다만 사리아부터 걷는 사람들 대부분은 거리 증명서를 따로 받지는 않는다.


사리아는 그만큼 유명하고 중요한 지점인 만큼 도시의 규모는 상당히 크고 알베르게 역시 다른 지역 대비했을 때 상당히 많은 알베르게가 있는 곳이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늘 작은 마을보다 대도시에서 머물기를 좋아했던 우리는 오늘도 역시나 대도시인 사리아에서 머물기로 며칠 전부터 계획하고 있었다. 


다행인지 오늘은 발 저림도 별로 없고 발목 통증도 거의 없었다. 물론 걷다 보면 후반부에 정강이 통증이 다시 나타날 수도 있었지만 한동안 짧은 거리를 걷기도 했고, 오랜만에 숲 속 흙길을 걷게 되어 그런지 상당히 좋은 컨디션으로 길을 걷게 됐다. 게다가 오늘은 오랜만에 햇볕이 쨍쨍했다. 5일 만에 맞이하는 맑은 날씨에 기분이 좋았다. 


다만 오늘 걷는 길은 오르락 내리락 언덕이 계속해서 나타나서 아내가 조금 힘들어했다. 역시 내가 좋으면 아내가 힘들어하고 아내가 좋으면 내가 힘들어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항상 둘이 동시에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걸었던 대부분의 사람들과 언젠가부터는 소식도 모르고 헤어졌는데 그렇게 헤어지는 사람들이 생기면 또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 같았다. 길을 걷다 처음 보게 된 한국인 부부를 새로이 만났다. 우리는 반포동에 산다고 하셔서 반포 아줌마와 반포 아저씨라고 불렀다. 


반포아줌마 부부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생장부터 출발하기는 했지만 우리보다 약 10일 정도 늦게 출발했고 부르고스부터 레온까지는 버스를 타고 점프를 했다고 했다. 그리고 중간에 택시를 탄 구역도 많이 있었기에 우리보다 10일 늦게 출발 했음에도 길을걷다 마주칠 수 있었다. 아저씨와 아줌마는 그동안 너무 날라리 순례자 였다며 사리아부터는 다시 걸어볼까 하고 이전 마을부터 다시 걷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정말 유쾌하신 분들이었다. 


"안녕하세요 한국분이시죠?"

"안녕하세요 젊은 신혼부부가 있다더니 여기 있었네요?"

"이 길에서 저희가 그렇게나 유명한가요?"

"만나는 사람마다 얘기해요 우리 같은 늙다리들 은 원래 듣는 말도 많고 하는 말도 많아요"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은 한 달 이상 시간을 내야 하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 길을 걷는 사람들은 대부분 은퇴를 하신 50대 이상이 많이 있었고, 젊은 사람들은 대학을 갓 졸업했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우리보다는 더 어린 사람들이 많은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다. 30대의 한국인 순례자들은 우리도 주먹밥 커플 말고는 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당시 길을 걷는 사람들 에게는 아마도 우리의 존재가 꽤나 신기했던 모양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우리 부부는 우리도 알지 못한 채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잠시간의 만남을 뒤로하고 서로 인사만 하고 반포 아줌마 부부와는 걷는 속도가 달라서 금새 헤어졌다. 오랜만에 멀쩡한 다리에 걷는 속도가 조금 나오기도 했고 오늘도 짧은 거리만을 걸었기에 12시도 안된 시간에 사리아 알베르게에 들어왔다. 게다가 오늘은 사리아에 도착할 무렵인 후반부에도 정강이가 아프지 않았다. 그동안 짧은 거리를 걸었던 것이 나름 도움이 되었던 것인지 비가 오지 않는 맑게 게인 날씨 덕분인지 아프지 않음에 너무나 감사했다. 


사리아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주방이 있고 취사가 되는 걸 확인하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사리아를 조금 구경해볼 생각에 샤워를 하고 짐을 풀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사리아는 오랜만에 만나는 대도시 이다 보니 볼거리가 풍부한 마을 이었다.  


스페인에는 복숭아가 납작하게 눌려 있는 모양이어서 납작 복숭아라고 불리는 복숭아가 있는데  납작 복숭아가 그렇게 달고 맛있다고 들었다. 아쉽게도 우리는 복숭아 철이 아닌 봄에 길을 걸어 볼 수가 없었는데 오늘 간 마트에는 납작한 모양의 복숭아가 있었다. 저녁에 먹을 식재료들을 사면서 납작 복숭아를 냉큼 하나씩 집어 들고 아직 저녁시간까지 꽤나 많이 남았던 시간이라 간단하게 요기를 할 생각으로 과자를 한 봉지를 사고 맥주도 한 캔씩 사서 장을 보고 나왔다. 


사리아를 구경할 요량으로 장을 본채 돌아다니다 보니 도시 한가운데 천이 흐르고 천 옆으로 벤치가 몇 개 있어 벤치에 앉아 과자 한 봉지와 맥주를 마시며 여유롭게 앉아 있는데 지상낙원이 따로 없는 기분이 들었다. 사리아에서 머무르려고 3 일간 이동해야할 거리를 4일에 나눠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례객들이 많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원래 그런 건지 거리 자체가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우리가 앉은 벤치 뒤로는 식당들이 즐비하게 있었고 우리 옆 벤치에서 많은 사람들이 현재를 즐기고 있었다.  


흐르는 강물을 보며 맥주를 한캔씩 마시면서 거리에 나와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니 시간 가는줄 모르고 한참을 벤치에 앉아 있었다. 이런것이 산티아고 순례길의 낭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적당한 시간을 보내고 다시 마을을 돌아보기 위해 벤치에서 엉덩이를 떼고 이번엔 마을 위쪽으로 가봤다. 돌아다니다 보니 반갑게도 여러 나라 국기들을 테마로 하여 '환영합니다' 하는 간판을 내세운 가게가 있는데 개중에 태극기도 보인다. 타국에서 보는 한국의 모습이 참 반갑기도 하다. 그만큼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 길을 걸어왔고 또 걷고 있는 것 같았다. 


맥주도 한잔 마셨고 과자와 납작 복숭아도 먹었지만 점심을 대체하기엔 조금 부족했기에 조금 돌아다니다가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먹을 요량으로 작은 가게에 들어갔더니 가게 주인이 우리에게 스페인 말로 뭐라 뭐라 하더니 스트레이트 잔에 음료수 같은걸 한잔 건내왔다. 손짓 발짓으로 우린 이걸 먹으려 온 게 아니라 아이스크림을 사러 왔다고 했더니 '프레전트 아미고'라고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한다. 


두 잔을 따라서 우리 앞에 놔줬는데 냄새를 맡아보니 커피 향이 나면서 알코올 향도 같이 났다. 내가 먼저 먹어보니 커피 향이 나는 술이었는데 도수가 아주 높은 것 같았다. 아내는 어떨지 몰라 조금 마셔보더니 도수가 높아 그런지 나한테 넘겨주었다. 나는 준사람의 호의를 생각해 두 잔을 원샷해버렸다. 나의 잘 먹는 모습을 본 가게 주인은 기분 좋은 호탕한 웃음을 지었고 나도 맛있다고 맞장구를 쳐줬다. 아직 해도 안 졌는데 맥주 한 캔과 양주 두 잔을 마셨다.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다가 얼굴이 벌게져 나와 사리아를 돌아다니곤 내일을 위해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갔다. 


알베르게에서 누가 아는 척을 해서 보니 아침에 길을 걷다 잠깐 만났던 반포 아줌마 부부가 있었다. 아침에 잠깐 만나고 걷는 속도가 많이 달라 금방 헤어졌지만 인연이 될 사람들은 계속해서 다시 만나는 것 같았다. 이때부터 반포 아줌마 부부와 우리는 서로 각자 목적지를 공유하지도 않았고 출발하는 시간도 달랐는데 산티아고에 도착할 때까지 늘 같은 알베르게에 머물게 되었다. 유쾌하신 두 분이었기에 늘 만날 때마다 반가운 분들이었다. 한편으로는 처음에 우리가 만났던 다른 사람들은 어디쯤 걷고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 것이 참 안타깝기도 궁금하기도 했다. 


반포 아줌마 부부도 우리처럼 저녁을 만들어 먹기 위해 이런저런 것들을 많이 구매 하신 상태였다. 우리도 늘 그렇듯이 어마어마한 양의 소고기와 스파게티까지 구매하여 넘치는 식재료를 갖고 저녁을 준비해 먹으려고 했는데 준비만 같이 하시면서 식재료만 조금 나눠 주고는 아직까지 친해지지 않았던 탓인지 우리를 위한 배려였는지 반포 아줌마 부부는 저녁 자리는 함께 하지 않았다. 반포 아줌마가 주신 야채 한아름과 한근도 넘게 산 소고기와 스파게티까지 오늘도 아주 배부른 저녁을 먹었다.


사리아부터는 순례객들이 갑자기 늘어나는 지역이라 알베르게 구하기 전쟁이 시작된다고 들었기에 내일 혹시나 알베르게가 없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벌써부터 긴장감이 들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언어를 원활하게 잘했다면 예약이라도 했겠지만 예약을 하기엔 우리의 언어 실력이 좋지 못했다. 그저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었다. 


내일 사리아에서 출발해 길을 걸으면 100km가 깨지는 날이고 그 말은 곧 우리가 800km의 순례길 중 700km를 걸어왔다는 뜻이었다. 100km가 깨지면 무슨 기분이 들 것인지 벌써부터 왠지 모르게 설렘이 생기는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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