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누군가 알베르게 어딘가의 창문을 열어놨는지 창밖으로 들려오는 비가 오는 소리에 아침 잠에서 깼다. 순례길 초반 어느 때인가는 매일 해만 뜬다며 비 오는 날씨를 반가워 하고 신나 했는데 또다시 하루가 멀다 하고 비가 오다보니 요즈음에는 비 오는 날씨가 싫어지는 것 같다. 비 오는 날씨는 습하고 우의를 입은 탓에 바람이 통하지 않아 땀이나 끈적끈적 거린다. 게다가 땅이 젖어 신발이 질척 거리기도 하기에 발이 무겁게 느껴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걷는데 있어 오히려 좋은 컨디션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레온을 지나면서 한동안 평지로만 이어져 있던 산티아고 순례길이 지속되었었는데 철의 십자가를 지나면서 부터 최근 며칠은 계속해서 고지대 지역이 이어졌다. 계속해서 오르락 내리락 높고낮은 언덕을 걸어야 했는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크고 작은 언덕과 산을 넘게 되는 그 높이를 모두 다 합치면 한라산을 3번 왕복한 높이와 똑같은 오르내림을 한다고 들었다. 아내와 나는 한라산을 3번 왕복하고 서울과 부산을 왕복하는 거리를 오늘도 두발로 걸어 나간다.
오늘도 평지가 아닌 산을 타야 하는 코스이고 최근 계속되는 정강이의 통증이 언제 시작될지 몰라 시작부터 조금 걱정을 하고 길을 나섰다. 길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갈림길이 나온다. 한쪽은 도보 순례자를 위한 도보길, 한쪽은 자전거 순례자를 위한 자전거 길. 자전거 길은 차가 다니는 아스팔트 길이었고 도보길을 보니 흙길인데 비가 많이 와서 진흙탕길이 되버렸다. 평소 같았으면 돌길보다는 흙길을 선택해서 올랐을테지만 진흙이 뒤엉킨 도보길을 걷기 싫어 자전거 길을 선택해서 올라갔다. 덕분에 도보길보다 거리는 조금 늘어났지만 질척해진 땅보다는 나은 듯했다.
고도가 높은 곳으로 계속해서 올라가다 보니 높아질수록 기온은 떨어졌고 비는 부슬비로 바뀌면서 안개가 자욱해져 한 치 앞을 내다볼 수가 없는 상황이 되버렸다. 가시거리가 1m 밖에 안되는 정말 아무것도 안 보이고 온통 하얀색 안개뿐이었다. 마치 구름 속을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구름속을 걸으면서 오랜만에 핸드폰으로 노래를 틀어 보았다. 마침 스트리밍 어플에 축가로 많이 불리는 노래가 올라왔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가장 상단에 있는 축가 재생목록을 틀었다. 안갯속에 둘만 있는데 축가를 틀으니 다시 결혼을 하고 버진로드를 걷는 것 같다며 아내는 참 행복해했다.
계속해서 오르막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오세브리오에 도착을 했다. 만약 어제 비가 오지 않았다면 이곳 까지 걸어 오려 했었는데 거리는 짧더라도 생각보다 고도가 높아 이곳까지 오는길이 꽤나 힘들었다. 사실 오세브리오에 원래 머무르려고 했던 이유는 오세브리오에 있는 성당에는 최후의 만찬 성배와 기적의 성채 접시가 보관되어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오세브리오에서 숙박을 하면서 성당을 둘러보는 순례자들이 많이 오는 지역이었다.
우리도 그 성당을 둘러볼 생각 으로 길을 걸었는데 안개가 너무 자욱해서 눈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탓에 땅만 보고 길을 걸었더니 성당을 지나쳤는지도 모르고 그냥 마을을 빠져나와 버리고 말았다. 나름 의미가 있는 곳이기에 다시 돌아가서 구경이라도 해볼까 생각했지만 종교적인 의미에 뜻이 없는 우리 인지라 늘 그래 왔듯이 왔던 길을 또다시 되돌아 가는 선택을 하지는 않았다. 아내와 나는 다음에 올때는 가서 구경해보지 하고는 그저 다시 길을따라 앞으로 걸어 나갔다.
오늘의 시작마을인 베가데발카르세 에서 중간에 들렀던 오세브리오를 지나 오늘의 목적지인 오스피탈 다 콘데사 까지의 거리는 15km 밖에 안되는 짧은 거리이다. 어제만큼이나 아주 짧은 거리를 걸었고 평소 같았다면 아주 무리가 없는 일정 이었다. 그런데 15km의 짧은 거리를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세브리오를 지나 목적지인 오스피탈 다 콘데사 까지 가는 길에는 또다시 정강이가 아파왔다. 다행히 어제 만큼은 아니었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통증에 강도가 조금씩 더 심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목적지인 오스피탈 다 콘데사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시계를 보니 비록 다리가 아파 걷는 속도가 느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워낙에 짧은 거리를 걸었기 때문에 시간은 12시가 채 안된 시간이었다. 정강이가 계속 아파 왔기 때문에 얼른 배낭을 내려놓고 샤워를 하고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는데 하필 알베르게의 오픈시간이 1시라고 하며 굳게 문이 닫혀 있었다.
핸드폰으로 구글맵을 확인해 보니 다음 마을까지의 거리가 5km가 채 안되었다. 어차피 알베르게가 문을 여는 1시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 조금 더 걸어가도 됐을 텐데 아내와 잠시 이야기를 하고는 정강이의 통증 때문에 무리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초반 몸상태가 좋았다면 아마도 무조건 다음 마을까지 걸어 갔을 텐데 순례길 후반부에 들어서자 아내도 나도 많이 지쳤었던 것 같다. 12시도 안된 시간이었지만 더이상 걷지 않고 1시에 문을열때까지 알베르게 앞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우리보다 먼저 알베르게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순례자가 지루했는지 우리에게 말을 걸어 왔다.
"올라 너희 얼리버드잖아 생장에서부터 쭉 봐왔어"
"아 정말?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나는 남들이 잘 머무르지 않는 마을 위주로 머물러서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
"남들이 머무르지 않는 마을에만 묵는다고?"
"응 난 오롯이 혼자서 이 길을 완주하고 싶은 마음이야"
"그래? 네 생각을 존중해 줄게"
우리에게 아는척을 했던 순례자는 먼저 말을 걸어왔으면서도 대화를 길게 하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저 기다림이 무료해서 잠시 시간을 때울 겸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던 순례자는 곧 입을 닫아 버렸고 그렇게 아내와 나 우리끼리 수다를 떤 지 얼마 지나지 않자 드디어 1시가 되었고 알베르게 문이 열렸다.
오스피탈 다 콘데사 마을은 마을 이라기보다는 순례객들의 편의를 위해 알베르게만 운영하고 있는 듯한 곳이었고 덕분에 편의시설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는 곳 이었다. 게다가 주방도 없었다. 갈리시아 지방에 들어서면 기본적인 가스레인지와 싱크대는 있지만 냄비 같은 조리도구가 없기 때문에 코펠을 싸들고 다니지 않는 이상은 음식을 만들어 먹기가 힘들다고 들었는데 오늘은 레온주에서 갈리시아주로 넘어온 날이었고, 실제로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 정말 가스레인지와 싱크대는 있지만 조리도구가 아예 없었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선 본인이 가지고 있는 조리가 필요 없는 식량을 이용하거나 그나마 근처에 있는 유일한 bar를 이용해야 하는데 비도 많이 오고 bar 가 생각보다 알베르게 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그냥 점심은 거르고 침대에 누워 낮잠을 자기로 했다.
스페인에 있는 가장 부러운 문화인 씨에스타를 자체적으로 갖고 빨래도 하며 개인정비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저녁 시간이 되었을 땐 배가 너무 고파서 결국엔 bar 가서 저녁을 사 먹기로 했다. 오랜만에 먹는 순례자 메뉴였다. 그리고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된 스페인 음식 이기도 했고 어떤 걸 주문해야 우리 입맛에 맞는지 정도는 이제 잘 알고 있었기에 bar 에 도착하자 마자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들을 주문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음식이 나옴과 동시에 아내가 갑자기 화장실에 좀 다녀 와야 겠다고 말을 한다. 나오기 전에 다녀왔으면 좋으련만.. 아내는 신호가 내 맘대로 오는것도 아니고 라고 말하며 화장실로 갔다. 음식을 앞에두고 아내가 나오길 기다리는데 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화장실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결국 혹시나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화장실에 가서 괜찮냐고 물어보니 미안하다고 먼저 먹고 있으라고 말을 한다.
화장실에 간지 30분이 다 지나서야 아내는 화장실에서 나왔고 그동안 주문해놨던 음식은 차갑게 식어져 있었다. 사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와서도 나는 화장실을 1일 1 화장실로 순조로웠지만 아내는 그렇지 못했다. 때로는 장시간을 참아야 했기도 했고 음식이 바뀌기도 해서 아내의 장 문제는 원할하지는 못했던 상황이라 매일매일 과일과 요구르트를 챙겨 먹었는데 요 며칠 아내는 과일을 못 먹고 요구르트를 못 사 먹어서 변비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을 마치고 나서야 차갑게 식은 음식을 먹어야 했지만 점심을 굶어서 허기가 졌던 탓인지 저녁은 꽤나 맛있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게다가 우리가 차리고 우리가 치우지 않고 그저 먹기만 해도 되니 참 편하게 저녁을 해결 할 수 있었다.
저녁을 해결 하고 알베르게로 돌아와서 내일을 위해 배낭을 싸고 짐을 정리 하는데 아내 양말 한 짝이 없어졌다. 세탁기와 건조기만 돌렸을 뿐인데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양말을 애초에 두 켤레밖에 안 가져왔었는데 한쪽에 없어진 양말 덕에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양말을 매일 빨아 신어야 했다. 그나마도 마르지 않으면 큰일인데 비도 자주 오고 한편으로는 걱정이 됐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제 거의 후반부라는 거에 위로가 되기도 했다. 아내는 양말이 한 짝 없어져서 배낭이 가벼워졌다며 오히려 좋아했다.
순례길 초반 팜플로나에서 아내의 옷을 알베르게에 있는 빨래 건조대에 널어두고 그냥 오는 바람에 옷도 한벌 밖에 없어서 매일 빨아 입었어야 했는데 이제는 양말도 한켤래 밖에 없어서 아내는 완전한 단벌신사가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이상황에 불평 불만을 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웃음을 선사 해주는 아내에게 또다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처음 걷기 시작할 때 우리는 평균적으로 하루에 25km 정도의 거리를 걸었고 걸음에 익숙해질 무렵엔 30km 정도를 걸어왔다. 하지만 어느덧 후반부에 다와서 폰페라다에 갈 때 정강이에 통증이 왔을무렵 부터는 걷는 게 겁이 났다. 언제 갑자기 아파 올지 모르는 정강이는 통증이 시작 되면 생각보다 많이 아파서 도저히 걸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인건 아침에 출발할때는 상대적으로 아프지 않던 것이 늘 일정을 마무리할 때쯤부터 통증이 시작 된것이 다행이었다. 이틀동안 짧은 거리는 그래도 괜찮겠지 라는 생각으로 20km 가 채 안되는 거리를 걸어 보았는데 이제는 20km를 걷는 것도 무서웠고 내 몸이 말을 듣는 것 같지 않아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이제 산티아고 순례길 전체 일정을 놓고 보면 후반부에 왔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산티아고까지 완주는 꼭 하고 싶었다. 하루 하루 그저 조금만 더 버텨 달라고 기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오늘도 내일을 위해 기도 하며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