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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미남편 Jun 04. 2024

day26 비야프랑카-베가데발카르세

산티아고 순례길 26일차 (비야프랑카-베가데발카르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가 만나는 각각의 도시, 마을들은 모두 저마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부르고스, 레온, 팜플로나 같은 대도시는 대도시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까리온, 만시아, 생장, 수비리 등도 작은 마을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몇일 뒤 도착할 사리아라는 지역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100km 남겨둔 장소이다. 


우리가 일정을 마치고 산티아고에 도착하게 되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사람에게는 순례길을 걸었다는 증서를 발급해 주는 제도가 있다. 그 증서는 순례길을 걸었다는 인증서 1부와 몇km 를 걸어서 산티아고에 도착했는지 증명할 수 있는 거리 증명서 1부, 이렇게 총 2부가 있는데, 우리처럼 프랑스길을 모두 걸은 사람에게는 인증서 1부와 797km 거리 증명서를 발급해 준다. 만약 거리 증명서를 발급 받지 않고 단순히 인증서만 발급 받기 위해서는 최소 100km 이상의 거리를 걸어야 인증서를 발급해 주기 때문에 인증서를 받기 위해서는 산티아고에서 딱 100km 거리에 있는 사리아 부터 걸으면 인증서를 받을수가 있었다. 


때문에 꼭 프랑스길 800km 를 모두 걷지 않더라도 인증서를 받기 위해 사리아부터 5~6일 일정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약간은 라이트 하게 길을 걷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있었다. 그래서 사리아 부터는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많아 지는 곳 이기도 했다. 


저마다의 의미가 있는 마을들을 지나온 것처럼 사리아 역시 100km 떨어져 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모이는 곳이라 아내와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100km 정도 남은 사리아에서 1박을 하고 싶어 했고 때문에 오늘 걷는 비야프랑카부터는 사리아까지의 일정을 어떻게 걸을지 미리 생각해야 했다. 오늘의 출발지인 비야프랑카부터 사리아까지의 거리는 약 80km 정도로 3일에 가면 하루에 26~27km 정도로 평소 걷는 양만큼 걸으면 됐고 4일에 가면 하루에 20km 정도를 걸으면 됐다. 


원래 최초에 일정을 계획했을땐 오늘 28Km를 걸어 오세브레이로 라는 마을이 목적지인 날이다. 그런데 오 세브레이로 는 마을에 알베르게가 1곳 뿐 이었고 그 알베르게의 침대는 100개만 있기 때문에 100명 안에 못 들면 다음 마을까지 가야 하는 곳이었다. 얼리버드인 우리가 산티아고 순례길 초반이었다면 100명 안에 드는 건 문제도 아니었겠지만 최근 컨디션으로는 왠지 그러지 못할 것 같았다. 


아내와 어제 목적지를 정할 때 우리 몸이 많이 힘들어 진걸 받아 들이기로 했고 일정이 늘어남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내 정강이도 상태가 심각하기도 하니 여러 가지 이유로 오늘 만약 28km를 간다면 동키 서비스를 이용하자고 했고 혹시 4일에 나눠 가게 되면 그냥 배낭을 짊어지고 가기로 계획을 했다. 


만약 4일에 나눠 가게 된다면 20km 뒤에 위치한 마을이 없었기 때문에 알베르게가 있는 마을의 위치를 고려 해야 해서 오늘은 약 16km 정도만 걸어가면 됐었다. 그리고 우리가 얼마큼 걸을지는 순전히 하늘에 맡기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비가 많이 오면 16km 비가 안 오거나 적게 오면 28km를 걸어 보기로....


얼리버드 답게 언제나처럼 새벽 5시쯤 눈을 떴다. 한국에서는 7시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 하면서 산티아고 순례길 에서는 5시 언저리에 참 잘도 일어난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오늘은 얼마나 걸어야 할까 하고 창밖을 보니 비가 많이 오고 있었다. 걷는 여행을 하러 이곳에 와놓고는 비가 많이 오는 하늘을 보며 오늘은 조금만 걸어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기뻤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시작한 초반이었다면 아마 이 비를 맞으며 28km를 걸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산티아고까지 꼭 빨리 갈 필요는 없었기에 천천히 걷기로 하고 침대에 몸을 다시 뉘었다. 


아내는 아직 곤히 자고 있었다. 아니 사실은 곤히 잤다기보다는 곤히 자는 척을 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오늘은 16km 만 걸으면 된다는 생각에 나도 오랜만에 늦잠을 자볼까 하며 침대로 다시 몸을 뉘었지만 쉽게 잠이 들지는 못했다. 그저 여유로운 출발을 한다는 기분을 만끽하며 배게를 다리에 끼고 침대에서 뒹굴 뒹굴 거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행복한 아침 이었다. 

이제 남은 거리는 그동안 걸은 거리의 반도 안된다.

아침 7시 반 아내와 나 둘 다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깼다기보다는 서로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침대에서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이제는 길을 걸어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해서 몸을 일으켰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으면서 레온에서 의 휴식을 제외하고는 가장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자고 일어난 날이다. 아내랑 어제 마트에서 장을 보며 샀던 시리얼을 아침으로 먹었다. 우리는 아침으로 시리얼을 참 자주도 먹었다. 간편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스페인산 시리얼이 한국 시리얼 과는 정말 달랐다. 말린 과일도 풍부하게 들었고 그레놀라 같은 것도 많이 들어 있으면서 맛도 너무 좋았다.


스페인 시리얼을 극찬하며 평소와 다르게 여유 있는 아침을 시작했고 아직 그치지 않은 비를 뚫고 길을 걷기 위해 우의를 챙겨 입고 배낭에 방수커버를 씌우곤 오늘의 일정을 시작하기 위한 길을 나섰다. 어제 정원이 꽉 차 들어가지 못했던 마을 끝에 위치한 알베르게를 지나면서 어제 우리를 차로 데려다 주었던 호스트를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을 다시한번 가져 보았다. 


비가 많이 내려 짧은 거리를 걷기로 했는데 앞으로 20km 뒤에 있는 마을이 녹록하지 않았기에 오늘의 목적지인 베가데발카르세 까지 의 거리는 16km밖에 안 되는 짧은 코스였다. 16km 의 거리는 우리가 지금까지 걸었던 거리중 가장 짧은 거리 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강이에 통증을 느끼고 난 뒤부터는 짧은 거리도 무언가 부담 스러웠다. 조금 있다가 다리가 아프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매우 컸고 무엇보다 혹시나 걷다가 길에서 퍼져버려서 아내에게 피해를 줄까봐 그리고 끝내 산티아고 까지 완주하지 못할까 봐 하는 걱정이 더 컸던 것 같다. 


정강이의 통증은 아침에 일어나서 얼마간은 통증이 없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언젠가부터 갑자기 통증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리고 통증은 몰리나세카에서 택시를 타기 직전 처음의 그때 처럼 참을 수 없이 아파왔다. 그래서 다리가 버틸 수 있는 곳까지 걷는 게 가장 좋았는데 그 시점이 언제 인지를 미리 알 수가 없었다. 가급적 짧은 거리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이때쯤 부터는 계속해서 생각 했던 것 같다. 사리아까지는 짧은 거리를 걸을 수 있을 테니 이 구간만 잘 넘어서면 나머지도 무리가 되지 않을 것 같다고 스스로 위안을 해보았다.


8시 반도 넘어서야 길을 나섰다. 다행히 새벽에 퍼붓던 비는 부슬비 정도로 변해있어서 걷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16km 도 안 되는 짧은 거리를 걷는 일정이다 보니 아침에 평소보다 늦게 출발했음에도 점심시간이 채 안돼서 오늘의 목적지인 베가데발카르세에 도착했다. 그런데 16km밖에 안 되는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도착하기 30분 전부터는 또다시 정강이가 다시 끊어질 듯이 아파왔다. 점점 다리가 장거리를 못 버텨 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베가데발카르세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아침부터 비가 계속해서 내리더니 목적지에 도착할 때가 되니 얄밉게도 비가 그쳤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내내 일정중 내리던 비는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치는것 같았다. 까리온을 가는 비바람을 맞고 갔던 날도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비가 그쳤고, 17km의 구간동안 bar 나 마을이 없어 쉬어갈 수 없는 거리를 갈 때도 비가 오더니 알베르게에 도착할 때는 비가 그쳤다. 비는 항상 우리가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그치는 것 같았다. 


짧은 거리 덕에 이른 시간에 도착한 알베르게 앞에서 레온 알베르게에서 처음 만나고 그 뒤로 계속해서 길에서 만나던 그리고 어제도 같은 곳에서 머물렀던 4인 한국인 가족을 또 만났다. 4인 가족은 오늘 오세브이로 까지 간다고 했고 우리는 오늘 이곳에서 멈추고 내일 넘어가려고 한다고 얘기를 하는데 뭔가 오늘 우리는 다 끝냈고 저들은 아직 남아 있다는 생각에 알 수 없는 우월감이 들었다. 사실 산티아고라는 목적지에는 아마 오늘 때문에 우리가 하루 더 늦게 도착할 텐데도 신기하게도 뿌듯함을 느껴 참 나 자신이 가소로웠다. 


알베르게에서 짐을 풀고 샤워를 마치곤 아내와 나는 약국으로 향했다. 엊그제 폰페라다에서 자원봉사자가 파스 같은 크림을 발라 마사지를 해줄 때 사진으로 크림을 찍어놨었는데 하루 이틀 지나면 괜찮아 질거라 생각했던 다리가 조금씩 더 안 좋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폰페라다 자원 봉사자가 마사지를 해줬을때는 꽤 다리가 괜찮아 지는듯한 기분이 들었기에 약국에 가서 찍은 사진을 내밀어 보니 웃으며 똑같은 제품을 꺼내 준다. 오늘도 약발이 좀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약국 다음 코스는 마트였다. 저녁거리를 사러 마트에 갔는데 마침 씨에스타 시간에 걸렸다. 저녁을 만들어 먹으려면 시에스타가 끝날 시간에 다시 나왔어야 했기에 약국만 들르고 알베르게로 돌아갔더니 반가운 사람이 있었다. 얼마 전 주먹밥 커플과 저녁식사를 할 때 산티아고는 자유의 길이라며 나에게 흡연의 자유를 허락하라 했던 한국인 아저씨, 그리고 우리에게 미운털이 박혔던 일본인 미카 도 보였다. 미카는 오늘도 우리를 보고는 그냥 스쳐 지나가고 서양인들을 보며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 (내 아까운 압박붕대...ㅠ) 


짧은 거리를 걸은 만큼 오후 시간이 여유로웠다.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약국에서 산 크림으로 아내가 폰페라다의 자원봉사자 처럼 마사지를 해줬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다 베리굿 와이프 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 나도 아내에게 마사지를 해줬는데 내가 해주는 장면은 아무도 보지 못했고 아내가 해주는 것 만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보며 칭찬해 내심 억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좋은 아내를 뒀다는 주변 사람들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 


"와 정말 좋은 서비스 이군요?"

"당신도 아내에게 서비스를 받아봐요"

"난 혼자 왔어요 당신 아내를 잠시 빌려주실래요?"

"빌려줄 수 있어요 1분에 10유로입니다"


우리 바로 옆 침대에 배정받은 독일 아저씨가 자기도 받고 싶다길래 나는 공짜는 안된다고 했고 그럼 얼마냐고 그래서 1분 에 10유로씩 내라고 했다. 독일 아저씨는 돌아섰고 우리는 같이 저녁을 먹었다. 

산티아고에 올때 새신발을 사서 왔는데 이신발을 신고 너무 걸었떠니 신발이 그새 다 낡아버렸다.

저녁 메뉴는 레온에서부터 열심히 들고 왔던 라면을 먹기로 했다. 처음에는 부피가 큰 라면을 많이 사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계속 싸들고 다닌 것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산티아고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아저씨와 우리 침대 옆에 자리한 마사지를 받고 싶은 독일 아저씨와 같이 밥도 하고 라면도 끓이고 시에스타가 지나서 마트에서 사 온 고기도 구워 먹었다. 


모두 함께 라면을 먹는데 자유 아저씨는 오랜만에 먹는 라면에 너무나도 기뻐했고 옆자리 독일인은 라면을 처음 먹어 본다면서 한젓가락 입에 물더니 도저히 매워서 못먹겠다면서 손사례를 쳤다. 우리는 그모습이 웃겨서 신나게 웃었고 왁자 지껄한 소리에 주변사람들이 몰려와 모두가 한국 라면을 한젓가락씩 맛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외국인이 처음으로 라면 먹고 매운맛에 반응하는 장면은 각양 각색 이었다. 사실 이때 라면을 나눠 먹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무거운 배낭에 며칠간 싸들고 왔는데 나눠주기가 너무 아까웠지만 그래도 유쾌하게 웃으면서 모두가 함께하는 저녁자리가 꽤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여럿이 함께한 자리에서는 술이 빠질수가 없는것 같다. 마침 알베르게에서는 하우스 와인을 판매했고 알베르게 호스트는 자신의 집에서 직접 담근 와인 이라며 처음엔 맛보라고 한잔씩 건네 주었었는데 어느새 우리는 새로운 와인을 한병 주문했고 또 어느새 한 병 더 주문해서 라면으로 간단히 해결 하려 했던 저녁 시간이 다 같이 와인을 즐기는 시간이 되 버렸다. 


어쩔 수 없는 자리가 아니라면 스스로 술을 마시는 건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우리인데 이곳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큼은 이상하게도 와인을 잘도 마셨다. 알코올이 몸에 열을 내서 혈액순환을 도와준다는 생각에 정강이 통증이 좀 줄지 않을까 싶어서 거의 매일 마셨던 것 같다. 그렇다고 취할정도로 과하게 마시지는 않았다. 보통 하루에 한두잔 정도를 마셨다. 평소 술을 마시지 않는 이유는 술한잔에도 금방 취기가 올라왔기 때문이었는데 하루에 한두잔 정도의 와인은 적당한 취기를 만들어 주었고 덕분에 언제나 저녁에 깊은 잠에 들게 해 주었다. 


헌데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오랜만에 오늘은 조금 많이 마셔보았다. 자유 아저씨와 우리 부부 그리고 독일인과 알베르게 호스트와 몇몇의 인원들은 앉은 자리에서 와인을 다섯병을 비워버렸다. 자유 아저씨는 라면값이라며 모든 와인을 계산해 주었고 한국의 라면을 체험하게 해줬다며 독일인도 와인을 한병 계산했다. 덕분에 우리는 공짜술을 즐기게 되었다. 8시도 되지 않은 시간에 모두 취기가 올라서 일찍 잠을 청해 보았다. 요즈음은 매일 취한 상태로 침대에 눕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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