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나는 항상 자기 전에 다음날 갈 목적지를 정하고 어느 알베르게에서 묵을지 또 길은 얼마나 힘든 코스 인지 어느 정도는 미리 머릿속으로 구상을 해둔다. 오늘 가는 폰페라다는 어제 가지 못했던 폰세바돈을 지나 철의 십자가가 있는 언덕을 넘어가는 일정이고 해발고도가 1505m인 곳을 넘어가는 일정이다. 이 코스는 첫날 아주 힘들었던 기억이 있는 피레네산맥 보다 지대가 높은 지역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코스였다. 그리고 어제 폰세바돈 까지 가지 않고 라바날에 멈춘 이유로 우리가 오늘 가야 할 거리는 무려 37Km였다.
핸드폰으로 오늘 갈 코스를 확인해보니 도저히 지금의 몸상태로 30Km 이 넘는 구간을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사실 폰페라다에 도착하기전 마을인 몰리나세카 까지 걸었다면 28km 정도만 걸으면 되었다. 하지만 어제 못걸은 만큼 오늘 더 걸어야 전체일정에 차질이 없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만하면 산티아고에 빨리 도착해서 여유 있는 일정을 즐기고 싶었었기 때문에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날짜를 미리 정해두었는데 그안에 도착 하려면 하루간 걸어야할 거리가 어느정도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고민에 고민을 계속 했다.
아내와 나는 고민 끝에 원래의 목적지인 폰페라다 까지 37km를 걷는 대신에 오늘 처음으로 동키 서비스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동키 서비스는 생장에서 피레네를 넘어갈 때는 배낭 하나당 10유로나 하던 가격이었는데 산티아고 순례길 후반부로 갈수록 가격이 8유로 6유로 5유로로 점점 떨어 졌다. 마침 라바날에서 폰페라다까지 동키서비스를 이용한다면 배낭 하나당 3유로 까지 가격이 떨어져 있는것을 확인한 우리는 저렴해진 가격 탓에 동키서비스를 이용하고 대신 조금 긴 거리를 걸어가 보기로 나름은 쉽게 결정 할 수 있었다.
배낭이 없더라도 꽤 긴 거리를 걸어가야 했기에 오늘도 아침 일찍 눈을 뜨고 일어나 비닐봉지에 물한병만 넣어 길을 나섰다. 그리고 항상 내 배낭 속에 비상용으로 혹시나 쓸지도 모르는 보조가방을 늘 가방 속에 넣고 다니다가 오늘 처음으로 보조가방만 메고 걷기 시작했다. 핸드폰, 물, 보조배터리, 여권, 지갑 정도의 아주 간단한 것들만 몸에 지니고 길을 나섰다.
매일 생활에 필요한 물건과 침낭 옷가지들 까지 전부 배낭에 넣고 다니다 보니 그 배낭 무게가 10kg는 넘는데 그런 배낭을 벗어놓고 몸만 가니 길을 걷는 게 정말 수월했다. 아침엔 항상 저리던 발도 저리지 않았고 다행인지 아내도 어제보다 컨디션이 많이 올라온 상태였기에 몸은 상당히 편한 상태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왠지 모르게 우리 옆을 지나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가는 순례객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우리만 편하게 이 길을 걷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던 것 같다.
아내와 나는 이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기 전에 한국에서 순례길과 관련된 다큐나 영화 같은 것들을 몇 가지 찾아봤었다. 아마 우리뿐만 아니라 이 길을 준비하고 동경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봤겠지만 영상 후반부에는 언제나 철의 십자가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면 대부분 바로 산티아고에 도착하곤 했다. 그리고 오늘 폰세바돈을 지나면 곧 철의 십자가를 만날 수 있었다. 영화나 다큐 후반부에나 나오는 곳인데 벌써 이곳을 지나가려니 신기하기만 했다.
드디어 오늘 그 철의 십자가를 지나쳤고 그것은 곧 우리에게도 산티아고 순례길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우리는 한국에서부터 미리 준비해 간 작은 돌맹이 하나를 철의 십자가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며 산티아고 순례길의 무사 완주를 빌었다. 철의 십자가는 고향에서 부터 버리고 싶은 것을 가져와 이곳에 모두 버리고 간다는 의미로 가져온 자신 고향의 물건들을(대부분 돌과 함께 돌에 의미를 부여해서) 이곳에 놓고 가는데 우리도 한국에서 작은 돌멩이를 하나씩 가져왔었다. 무언가 또 다른 하나를 해낸 거 같은 기분이었다.
나름 의미가 있는 곳이 었기에 철의 십자가에 도착하자 마자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아침일출을 보기 위해 조금 일찍 출발 했는데 비가 올것 같은 꾸물 거리는 날씨 덕에 일출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기념하는데는 충분 했다.
가끔 길을 걷다 보면 순례객들을 위한 아무도 없는 무인 상점이 나타난다. 물, 음료수, 과일, 과자, 빵 등이 있고 순례자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이곳은 대부분 가격이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고 기부제로 운영이 된다. 그래서 항상 donation 또는 donativo라고 적혀 있었고 아내와 나는 우리 맘대로 이곳을 도네이션이라고 불렀다. 철의 십자가를 지나 조금더 걷자 도네이션이 나타났다.
"어? 저기 도네이션 있다"
"아 마침 물 다 떨어졌는데 잘됐다"
"아침도 대충 먹고 힘든데 잠깐 쉬었다 가자"
언덕을 오르느냐고 체력이 많이 소진된 상태에서 bar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은 곳에 도네이션이 마침 있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아마도 이 순간이 순례자들에겐 큰 기쁨이고 행복일 것이다. 누가 먹을지도 모르고 제대로 값을 치르지도 않을 수 있는데 이곳까지 와서 도네이션을 차려주는 까미노 에인절에게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바나나와 물한병을 집어 들고 소정의 금액을 내맘대로 정해진 가격 없이 지불 한다. 금전적 여유가 없었을때는 조금 적게 지불 한적도 있지만 대부분의 무인 판매점에서 일반 가격 보다 조금은 높게 지불을 하는 우리 였다.
철의 십자가를 지나고 도네이션을 지나면서부터 는 계속되는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 내리막길이 엄청난 급경사에다가 온통 자갈밭 이어서 발한번 잘못 디디면 자갈이 미끄러져서 심하게 다칠 것 같았다. 차라리 암릉 같은 것 이면 덜 미끄러웠을 텐데 내리막길에 마찰력이 안 좋은 모래와 자갈들만 잔뜩 있으니 다리가 후들 후들 떨렸다. 넘어지면 크게 다칠 것 같아서 다리에 힘을 주고 온신경을 집중하고 걷게 되었다.
배낭을 따로 보내고 온 걸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길을 내려가는데 아무래도 하중을 계속 받아서 그런지 점점 정강이가 아파왔다. 그동안 항상 발목이나 발등쪽이 아팠는데 정강이가 아픈적은 처음 이었다. 통증이 시작 되자 다시 걷는 속도가 매우 느려졌다. 내려가는 내내 엄청 신경 써서 조심스레 내려가는데 어제 만난 호주 아저씨가 우리 옆을 지나갔다. 그리고 곧 오늘 처음 본 한국인도 한 명 지나갔다. 아주 젊은 청년이었는데 와이프와 같은 간호사를 한다고 했고 레온부터 순례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내리막길을 어느 정도 내려가자 몰리나세카라는 예쁜 마을이 나왔다. 정강이가 점점 아파왔던 탓에 몰리나세카에서 그냥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약 30km의 거리를 걸어왔고 내리막 자갈길에 온 힘을 다해 길을 걸었기에 피로도가 극에 달한 상태였다.
하지만 우리의 배낭은 동키서비스를 이용했기 때문에 몰리나세카 다음 마을인 폰페라다 까지 배달이 돼있는 상태였다. 오늘 필요한 생필품들을 확보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폰페라다 까지는 가야만 했다. 호주 아저씨는 몰리나세카에서 머무르기로 하면서 우리에게 걷는 모습이 힘들어 보이니 여기서 쉬었다 내일 걸으라 이야기 했지만 배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폰페라다 까지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우선 몰리나세카에서 점심을 먹고 마을을 가로지르는 개울가에 발을 담그고 휴식을 취한 뒤 폰페라다로 향하기로 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나서 우리는 폰페라다로 가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헌데 이때부터 내 몸이 심상치가 않았다.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정강이 쪽으로 전해졌고 급기야는 5분을 채 못 걷고 가만히 서있었다. 정강이 뼈를 누가 칼로 자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 폰페라다 까지 가려면 7km를 더 가야만 했었고 우리는 오늘 배낭을 보내 둔 탓에 무슨 수를 써서든 목적지까지 도착해야 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지금까지 한 번도 배낭을 따로 보낸 적이 없던 우리였는데 하필 오늘 동키서비스를 이용해서 난감한 상황이 되버렸다. 한걸음 한걸음 걸을때 마다 정강이 통증이 너무 심해서 발을 내딛을 수가 없었다. 통증 때문에 걷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휴식을 취하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했고 아내는 그런 나를 보고 택시를 타고 폰페라다에 가자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오늘 배낭을 보낸 것만으로도 무언가 죄를 지은 기분이었는데 택시까지 타고 간다면 나 자신한테 실망할 것 같아서 그냥 걸어가자고 했다. 고통을 참아가며 걸어가는데 지금까지 이런 적이 없었어서 참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아픈 다리를 부여잡고 가다 서다를 반복했고 덕분에 다리 상태는 점점 안 좋아졌다. 아내는 택시를 타고 가자며 계속해서 나를 설득했고 나는 계속해서 완강하게 거절했다.
"오빠 지금 걷지도 못하잖아 그냥 택시 타고 가자"
"아니야 괜찮아 걸을 수 있어 배낭도 보냈는데 택시까지 타면 맘이 너무 안 좋아"
"안돼 너무 힘든 게 눈에 보여 그냥 택시 타자"
"그럼 bar에서 택시 부르는 거 말고 길가에 택시가 있으면 탈께"
"정말 가다가 택시 나오면 타는 거다"
"응! 그리고 택시비가 10유로가 넘으면 안 타고 걸어갈 거야"
산티아고 순례길은 순례객들이 걷기 편한 길들로만 이루어져 큰 도로가 없고 마을들이 크지 않아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마을들이 아주 작은 규모의 마을들로만 이루어져 있어 버스도 잘 다니지 않고 택시 역시나 마찬가지인 마을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급히 이동수단이 필요한 경우에는 인근에 있는 bar 등에서 콜택시를 불러야만 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어느 곳에서 나 택시를 잡아 탈 수 있는 곳이 절대 아니다. 아내의 설득에 못 이겨 그리고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던 나는 만약에 내 눈앞에 택시가 지나가면 그걸 잡아서 타고 가겠지만 콜택시를 부르는 건 절대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혹시나 택시비가 10유로를 넘는다면 절대 타지 않겠다고 하며 조금씩 걸어 나갔다. 그리고 평소 같으면 5분이면 걸어 나올 거리를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한 시간이 걸려 몰리나세카를 빠져나올 때 정말 거짓말 같이 우리 눈앞에 택시가 서 있었다.
택시를 타지 않으려고 콜택시를 부르지 않겠다고 했는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지금까지 20일을 넘게 길을 걷는 동안 피레네를 넘을 때와 부르고스 레온 같은 대도시 에서 본것을 제외하고는 그러니까 딱 3일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날에서 택시 라는것을 본적이 없었는데, 이작은 마을에 아무런 교통수단이 없을것만 같은 이곳에서 택시 라는 것이 처음으로 눈앞에 서있었다. 아내는 득달같이 달려들어 택시 탈 수 있느냐고 물어봤다.
"올라! 택시 지금 탈 수 있어요?"
"물론이죠 폰페라다에 가요?"
"네"
"폰페라다 공립 알베르게에 가죠?"
"네 얼마예요?"
"10유로"
택시기사는 우리가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듯이 우리의 목적지를 얘기했고 영화같이 10유로의 가격 이라며 얘기하는데 아내는 나에게 하늘이 우리를 도왔다며 이제 약속했으니 택시를 타자고 했다. 사실 정강이가 너무 아파서 도저히 걸어서 폰페라다 까지갈 자신이 없었다. 7km를 지금 상태로 걷는다면 족히 5시간은 걸릴 것만 같은 상황이었기에 방금 전까지 택시에 타지 않겠다고 고집부리던 나는 어느새 택시에 앉아 있었고 정상의 컨디션이었어도 한 시간은 족히 걸렸을 거리를 단 5분 만에 돌파하며 폰페라다 알베르게 앞에 내려줬다.
차 안에서 밖을 보니 길을 걷는 순례자들이 눈앞에 보이는데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길을 걸을 수 없는 나의 몸상태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존심 때문인지 내일 다시 몰리나세카로 돌아와서 길을 걷겠다고 아내에게 말을 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말든지 아내는 택시를 탔다는 안도감에 내 얘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래도 내일을 위해 일보 후퇴는 참 잘한 일인 것 같다. 괜한 고집으로 1시간을 넘게 걷다가는 오늘을 마지막으로 순례길을 더 걷지 못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택시를 타라는 하늘의 뜻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신기한 날이기도 했다.
폰페라다 알베르게에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보낸 배낭이 잘 도착했는지 확인했고, 다행스럽게 아무 문제없이 배낭을 찾을 수 있었다. 짐을 풀고 샤워를 마치고 세탁기까지 돌려놓고 드디어 하루를 끝낼 수 있었지만 배고픔은 또 참지 못했다. 오늘은 동키서비스도 이용했고 택시도 탔으니 저녁은 만들어 먹기로 했다. 다행히도 폰페라다는 마을이 커서 대형 마트가 있었고, 오늘 산을 넘다 만난 젊은 간호사 청년과 오늘 폰페라다에 처음 와서 내일은 일찍 사리아 까지 가서 사리아부터 걷는다고 한 젊은 청년과 우리 둘이서 저녁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가기 전 1층 정원에서 누군가 나를 불러 세웠는데 알베르게 자원봉사자였다. 자원봉사자는 나보고 다리가 많이 아파 보인다며 잠시 앉아보라고 한다. 어디서 파스를 가져와서는 다리에 파스를 발라주고 마사지를 해줬다. 한참을 마사지를 해준 다리에 아내는 붕대를 감아줬다. 그걸로 다리가 완전히 괜찮아지지는 않았겠지만 또 걸을 만 해졌는지 절뚝절뚝 거리며 간호사 청년과 사리아 청년과 함께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마트에서 오늘 저녁 메뉴로 정한 스파게티, 스테이크, 양상추 샐러드, 콜라, 와인 같은 저녁거리를 챙기고 내일 먹을 간식들도 조금 준비해서 마트를 나올 무렵.. 맙소사 방금 전까지 멀쩡했던 하늘에서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마트 처마 밑에서 우리는 언제 비가 그칠까 하늘만 무심하게 쳐다봤다. 이내 비가 조금 줄어들어 빠른 걸음으로 알베르게 까지 돌아가는데 발을 땅에 디딜 때마다 정강이가 끊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비가와서 빠른걸음으로 길을 걸어야 하는데 도저히 빠른 걸음을 걸을수가 없었고 이내 그냥 내리는 비를 다 맞기로 생각하고 천천히 길을 걸었다. 그런 나를 뒤로 하고 아내와 젊은 친구 두명은 먼저 뛰어가고 있었다. 나는 정강이의 통증 때문에 앞서가는 그들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다함께 맛있는 저녁을 차려 먹었다.
오늘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날 중에 가장 이벤트가 많은 날인 것 같다. 동키 서비스도 이용하고, 택시도 타고, 새로운 사람과도 만나고. 그런데 이런 것 하나하나가 이 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이벤트인 것 같다. 무언가 산티아고 순례길의 순례자가 하면 안 되는 금기를 어긴 것 같은 느낌은 들지만 이 또한 이길을 걷는 것의 일부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