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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미남편 May 21. 2024

day23 아스토르가-라바날

산티아고 순례길 23일차 (아스토르가-라바날)


800km을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도 어느덧 후반부에 다가왔다. 레온에서 하루 쉬면서 충전을 하고 괜찮을 줄 알았던 우리의 몸은 어느새 많이 지쳤는지 나도 아내도 상태가 꽤나 안 좋아져 있었다. 정말이지 레온을 지나고부터는 하루하루가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둘이 동시에 몸이 안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제는 나의 발목이 그렇게 아프더니 오늘은 아내의 컨디션이 꽤나 안 좋았다. 아내는 처음 시작 때 사타구니가 아팠었던 적 외에는 대부분 그저 오래 걸어서 힘든 점 말고는 괜찮아 했었기에 특별한 이상이 없는 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내도 나도 서로가 아프더라도 정말 심하게 아프지 않은 이상은 상대방에게 아픔을 표현하는 것이 걱정을 시키는것 같은 느낌이 들어 왠만하면 아프다는 표현을 하지 않고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오늘은 서로가 각자 어느정도의 고통을 참으면서 걷고 있는지 모른채 그저 목적지를 향해 걷기만 했던 탓에 곪았던 것이 터지고 말았다.


개인적으로는 오늘의 시작이 너무나 좋은 기분이었다. 어제 발목이 너무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해 아스토르가 마을 구경을 하지도 못하고 알베르게에만 앉아 있었는데 오늘 이 마을을 빠져 나가면서 보니 아스토르가는 정말 너무도 예쁜 마을이었다. 해가 아직 뜨지 못한 이른 새벽이라 푸르스름한 하늘과 어우러지는 건축물들은 다시 생각해도 멋진 모습을 그려줬다. 


하지만 아름다운 마을을 감상하며 즐거움을 느낀 것도 잠시... 아스토르가를 빠져나가고 우리가 걷기 시작한 지 1시간도 채 안 됐을 무렵 아내가 잠시 쉬었다 가자고 말을 했다. 아직 이른 아침이고 초반과 다르게 어느정도 걷는게 익숙해져서 잘 걷고 있던 아내였는데 갑자기 쉬었다 가자는 말을 하는 아내의 상태를 이때 눈치 챘어야 했는데 내 컨디션이 어제 보다 좋았다는 이유로 어느정도의 상황인지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어제는 오랜만에 음악을 스트리밍 하면서 좋은 컨디션으로 8km을 쉬지 않고 뛰듯이 달려갔던 아내였는데 갑자기 4km도 걷지 못한 채 쉬었다 가자고 하니 나는 갸우뚱 하면서 그저 쉬어 갈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아내도 어제 빨리 걸었던 것이 나에게는 어제 무리가 왔었고 아내에게는 오늘 몸에서 신호를 보낸 것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오늘의 일정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당시에는 크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 할 수 밖에 없었다.   


훗날 아내가 고하기를 아스토르가에서 배낭을 어깨에 메는 순간 유난히 배낭이 무겁게 느껴졌고 그날 따라 아내도 나처럼 발과 발목이 아팠다고 했다. 걸어가다 보면 다시 컨디션이 괜찮아질 줄 알고 나에게는 말없이 그냥 걸었지만 사실은 발걸음 하나 하나가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그느낌을 이미 경험해본 나였기에 충분히 알 수 있었을텐데 어느정도인지 상황을 공유하지 않고 아프다는 말보다는 그냥 쉬었다 가자고 말을 해서 아내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 하지는 못했던 나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의 배려가 한없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의 목적지는 폰세바돈 이라는 작은 마을 이었다. 폰세바돈은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유명한 뷰포인트인 철의 십자가 를 지나기 바로 전에 순례자들을 위해 생긴 작은 마을로 밤하늘의 별과 아침의 일출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소문이 난 곳 이었다. 아내도 나도 폰세바돈에서 보는 밤하늘을과 일출을 눈에 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폰세바돈을 목적지로 정하고 길을 걸었다. 


하지만 아내의 몸상태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안 좋았던 탓인지 우리의 걸음걸이는 제 속도를 내지 못했다. 길을 걷는 와중에 아내는 쉬었다 가자고 하는 말을 평소 보다 꽤 자주 했다. 20일 을 넘게 걸으면서 보통 한 시간은 걷고 10분 정도 쉬는 어느 정도의 패턴이 생겼었는데 오늘은 그런 패턴도 없었다. 아내는 잠시 쉬었다가 걷기 시작한 지 10분도 안돼 다시 쉬었다 가자고 했고, 또 걷다가 30분 만에 다시 쉬었다 가자고 했다. 


그간의 우리는 보통 4~5km를 한 시간 정도에 걸어 왔었다. 컨디션이 좋았던 날은 그보다 빠르게 걷기도 했고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그보다 느리기도 했다. 하지만 일정한 속도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얼리버드 답게 항상 아침에 시작하는 시간이 조금 이른 편이라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20km 정도면 11시~12시 사이에 도착을 했었고 25km 정도를 걸으면 1시 정도가 되었다. 우리는 보통 하루에 25~30km 정도를 걷는 것이 체력적으로 그리고 다음날에 있을 여정을 준비하는 것으로도 괜찮다 라는 생각을 했고 왠만 하면 그 패턴을 맞춰갈 수 있도록 일정을 계획 했었다. 


아스토르가 에서 폰세바돈 까지는 27km 정도였기에 평소의 우리라면 큰 무리가 있는 계획은 아니었지만 쉬었다 가는 횟수가 많아져서 였는지 폰세바돈의 전 마을인 라바날에 도착했을때 이미 시간은 1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아스토르가에서 라바날까지의 거리는 20km가 채 안 되는 짧은 거리였으니 평소보다 2시간은 늦게 도착한 샘이었다. 아직도 폰세바돈 까지는 8km 정도를 더 걸어가야 하는데 이속도로 간다면 3시는 되어야 폰세바돈에 도착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오늘의 아내상태를 보아서는 어쩌면 3시가 훌쩍 넘을 수도 있었다. 


사실 라바날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내가 평소보다 많이 힘들어 하는구나라고 생각만 했을 뿐 얼마나 힘이 드는지 어디가 아픈지 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는 힘들지만 괜찮다 라고만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이미 오후 1시가 지나가고 있을 때이기도 했고 목적지인 폰세바돈 까지는 아직 8km 정도가 남았기에 나는 발걸음을 서둘렀는데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았던 아내는 당연스럽게도 이번 마을인 라바날에서 또 조금 쉬었다 가자고 했다. 


"오빠 오늘은 유난히 힘드네 여기서 점심 먹고 조금만 더 쉬었다 가자"

"오늘 좀 많이 쉬었던 거 같은데 폰세바돈 까지 8km 남았으니깐 조금만 더 힘내자"

"응 그래도 나 조금 쉬었다 갔으면 좋겠는데"

"그럼 오늘 점심은 조금 늦게 먹더라도 폰세바돈 가서 먹도록 하고 조금만 쉬었다 갈까?"

"알겠어"


생각해보면 이때라도 아내 상태를 고려해서 그냥 오늘은 그럼 폰세바돈 까지 가지 말고 여기서 일찍 쉬었으면 됐는데 아직까지는 길을 걸을 때 목적지를 정해두고 목적지까지 않았던 적이 없었기에 폰세바돈 까지 빨리 갈 생각만 하고 있었다.


잠시 쉬고 폰세바돈 까지 다시 걷기 위해 몸을 일으켜 걷기 시작한 지 5분도 되지 않았는데 아내가 또 쉬었다 가자고 말을 했다가 이내 말을 바꿨다. 


"오빠 오늘은 그냥 폰세바돈 가지말고 여기서 쉬면 안되?"


아내는 목적지 까지 가지 못하는 상황이 본인 때문이라는 생각에 무척이나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했다. 헌데 나는 목적지에 못 가면 무언가 못한 느낌이 들어 폰세바돈 까지 가고 싶었다. 게다가 말로만 들었던 폰세바돈에서의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과 일출이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결국 아내에 대한 배려 보다는 지금의 상황이 내맘대로 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신경이 매우 날카로워져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내 입장만 내세울 수는 없었기에 우선 그럼 라바날에서 머물자고 하고 함께 알베르게를 찾아 보았다. 원래 일정을 잡을때 목적지를 정하면 그 지역에 알베르게가 얼마나 있는지 몇명이나 수용할 수 있는지 어느정도 정보를 습득 하고 길을 걸었는데 라바날은 원래의 목적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발품을 팔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우리가 찾아 갔던 알베르게가 문이 닫혀 있었다. 그리고 또다른 알베르게를 찾아 갔는데 하필 그곳은 정말 닭장 같은 난민수용소 같은 알베르게였다. 


평소 잠자리에 예민한 나는 이런 수용소 같은 알베르게에서는 자고 싶지 않았다. 지난번 나헤라 에서도 알베르게 때문에 한 시간을 고생하고 호텔에 머물렀는데 그때 피했던 수용소 같은 알베르게를 원래 오늘의 목적지도 아니었던 이곳에서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다. 


목적지인 폰세바돈 에도 못 가고 알베르게까지 마음에 들지 않아 나는 아픈 아내는 생각지도 않고 참 철없게도 불만을 표시 하고 말았다. 결국 아내는 폰세바돈 까지 가고 싶으면 그냥 가자며 또다시 나를 배려했고 나는 또 이기적 이게도 그럼 더 가보자고 한 시간만 더 고생해보자고 설득 아닌 설득을 하고 말았다. 


그렇게 다시 마을을 벗어날때즘 아내는 다시 쉬었다 가자고 나에게 얘기했다. 알베르게를 둘러보고 다시 걷기 시작한지 10분도 채 안 지난 시간이었다. 다시 걸어보자 라고 얘기한 지 10분이 채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쉬자고 하니 한편으로는 답답하고 한편으로는 속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픈 아내에게 뭐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앉아 5분을 쉬고 10분을 쉬고 15분을 쉬었다. 그사이 우리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폰세바돈을 향해 우리 앞을 지나갔고 그렇게 지나쳐 가는 사람들을 나는 그저 쳐다보기만 하고 있었다. 


무언가 계획대로 되지 않아 처음 피레네 산맥을 넘으면서 생각했던 아내를 위한다는 마음은 온 데 간데없고 그저 불만이 가득한 시간을 보내면서 아내와 나는 고작 한 시간을 오늘 더 가느냐 마느냐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했다. 그리고 결국 오늘의 목적지인 폰세바돈에 가지 않고 라바날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 닭장 같은 알베르게가 아닌 다른 알베르게를 한번 찾아보자 라고 합의 아닌 합의를 하고 일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라바날로 다시 내려왔다.  


가뜩이나 체력도 떨어지고 덥고 힘들고 짜증이 몽글몽글 솟아 오른 상황에서 우리 둘은 서로의 눈치 아닌 눈치를 보여 행동하게 되었다. 이것 또한 서로에게 배려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마을 앞에 있는 성당에서 라바날에 알베르게는 또 어떤 곳이 있는지 휴대폰을 통해 알아보고 있는데 누군가 우리에게 한국말로 말을 걸어 왔다. 한국말이 반가워 뒤를 돌아봤던 우리는 당황했었다. 우리에게 말을 붙인 사람은 신부님이었고 무려 한국에서 온 신부님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모든 성당에서 유일한 한국인 신부님이라고 하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라바날에 상주하고 있는 신부님이기에 당연히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우리는 알베르게에 대해서 물어봤는데 이 마을에 지금 운영하는 알베르게는 그 닭장 같은 곳 한 곳 뿐 이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난민 수용소 같은 알베르게에 들어설 수 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바로 옆에 붙어 잘 수 있는 침대를 배정받았지만 나는 이 알베르게에 들어왔다는 사실 자체가 불만 이어서 아내의 아픔은 신경도 쓰지 않고 계속 뾰루퉁 한채로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몸상태가 좋지 않은 아내를 두고 참 못난 남편이 아니었나 싶다. 라바날에 도착한 건 1시가 조금 넘어선 시간이었지만 우리가 알베르게에 짐을 푼 시간은 2시 반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힘들고 아픈 아내를 길바닥에서 1시간 반이나 서성이게 만들었던 게 참 미안했다. 


그만큼 힘들었으면 그냥 알베르게에서 쉴 법도 한데 몸을 씻고 또 우리는 밖을 나섰다. 아까 만난 신부님이 시간이 괜찮으면 잠시 이야기나 하자고 해서 놀러 오라고 했기에 그곳 으로 향해 보았다. 그리고 신부님은 우리에게 이런저런 얘기들을 많이 해줬다. 이때 산티아고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는 것과 산티아고라는 성인이 야곱이라는 사람과 동일인이라는 것도 알았고 신부님의 까미노 순례기를 들으며 이런저런 정보들을 얻었다. 


신부님과 함께 이야기를 하다보니 다행스럽게도 날카로워졌던 나도 아내도 기분을 누그러 트릴수 있었다. 신부님은 잠깐의 이야기를 마치곤 저녁에 또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니 시간 맞춰 오라고 해서 마을을 구경하고 저녁시간에는 또 미사를 드리러 갔다. 여전히 알 수 없는 말로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는 미사를 드리고 우리는 마음속으로 또 서로 아프지 말라며 기도하고 하루를 반성했다. 


미사를 드리고 나올 때 생장부터 만나 가끔 인사를 하며 지냈던 호주 아저씨를 오랜만에 또 만났다. 생장부터 며칠간 같이 걸었고, 헤어졌다가 부르고스에서 또 한 번 만나 며칠 같이 걷다가 또 헤어졌는데 이곳에서 또 만난 것이다. 벌써 20일이 넘는 기간을 계속해서 만나고 헤어지다 또 만났으니 너무나 반가웠다. 아저씨들은 우리보다 하루 먼저 도착했고 한국인 신부님이 반가워 이곳 라바날에서 하루 더 머물렀다고 했다. 역시나 엄청난 속도의 아저씨들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헤어지면 다시 보기가 참 힘든데 이 아저씨 두 분은 참 질기게도 계속 만났다. 내일부터 또 한동안은 같은 길을 걸을 것 같았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오늘은 저녁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어제의 짜장라면에 이은 또다시 라면이다. 한국이 아닌 타지 에서의 라면은 정말 꿀맛과도 같다. 대식가인 나는 라면만 먹을 수는 없기에 냄비에 밥을 하고 마트에서 샀던 참치를 넣어 참치 볶음밥도 만들어 먹었다. 


식당에서 그간 길을 걸으면서 몇 번 마주쳤던 적 이 있는 시애틀에 사는 애기 아빠와 여자아이를 주방에서 만났다. 얼굴을 본 지는 꾀나 된 것 같다. 가는 곳마다 마주쳤지만 부엔까미노 라는 인삿말 말고는 대화를 해본적이 없는 사람이다. 시애틀 애기 아빠는 유모차를 끌고 순례길을 걷는다. 식당에서 처음으로 대화를 해보니 아이가 한국나이로 5살 이라고 했다. 혼자 걷기도 힘든 산티아고 순례길을 시애틀 애기 아빠는 유모차를 끌고 길을 걸으며 밤에는 아이를 씻기고 저녁을 차려주며 빨래를 한다. 


무슨 연유로 둘이서 이곳까지 왔을까 궁금하지만 물어보진 않기로 했다. 5살 여자 아이는 아직 수줍음이 많아서 우리가 인사를 하면 항상 아빠 뒤로 숨어버리는 모습이 귀여웠다. 아마 이 길을 걷는 내내 친해지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애틀 애기아빠와 부끄럼이 많은 5살 아이에게 우리가 만든 볶음밥을 조금 나눠 주었더니 맛있게 잘도 먹어 주었다. 또한번 인연이 만들어 지게 되었다. 


오늘은 뭔가 묘한 하루 같았다. 아내는 아침부터 몸이 좋지 않아 일정이 틀어졌고 나는 나대로 목적지까지 가지 못해 서로 날카로워져 되는 것 없는 하루라고 생각했는데 그로 인해서 한국인 신부님도 만나고 한동안 못 봤던 호주 아저씨도 만날 수 있었다.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데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시련이 있으면 뭔가 그에 대한 보상을 주는 것 같다. 그 시련과 보상을 함께 받은 하루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들기전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끝내 입밖으로 꺼내지는 못하고 말았다.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그저 다시 내일부터 힘내서 걷는것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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