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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미남편 May 08. 2024

day21 레온-산마틴

산티아고 순례길 21일차 (레온 - 산마틴)


꿀 같은 휴식을 마치고 또다시 걷는 일정이 시작됐다. 어제 하루 쉬었다고 꾀가 생겨버린건지 오늘도 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 왔다. 레온에서 하루를 더 쉬면서 몸의 컨디션은 괜찮아진 듯했지만 정신적으로는 마치 모든 일정을 마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 왜 몸의 힘듦을 이겨내면서 까지 이 길을 걸어야 하는지 본질적인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남들이 가본 것이 부러워 선택한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다. 조금 더 편안하고 볼거리 많은 여행지도 많이 있었는데 왜 이렇게 힘든 길을 걸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오늘도 여느때와 다르지 않게 길을 걷기 시작을 하긴 했지만 알 수 없는 생각이 가득해진 탓에 아내에게 '우리 그냥 버스를 타고 산티아고까지 가고 그만큼 남는 시간은 포르투갈 이나 다른 스페인을 여행하다 돌아가는 게 어떨까?' 라고 넌지시 이야기해봤다. 물론 정말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런 말을 꺼냈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레온을 지나면서 부터 느끼는 감정들은 그간에 항상 생각했던 오늘도 힘차게 걸어야지 내일도 힘차게 걸어야지 의 느낌이 아니었다. 내가 느낀 감정을 아내도 마찬가지로 느꼈던 건지 아내도 나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아내는 레온에 도착한 순간 산티아고에 도착한 것 마냥 순례길이 다 끝난 느낌이었고, 오늘 다시 걷는 순간 새로운 순례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런데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몸과 체력 때문에 새로이 걷는 순례길이 다시 하고 싶지는 않은 순례길 이라고 말을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들어선 길을 걷기 시작한지 어느덧 20일이 지났고, 그동안 왜 걸어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이 언제 어떻게 생길지 몰라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길이었다. 몸도 많이 피곤했고, 도착하면 어떤 감정일지 알지도 못한 채 그저 당장의 힘듦이 머릿속을 지배하면서 무엇이 즐겁고 행복한건지 그리고 어떤게 하고싶고 느끼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쓸대없는 생각들을 하며 그저 기계처럼 길을 걷게 되었다.


우리는 레온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 에서 숙박을 했기 때문에 레온을 벗어나는 데만 해도 한참이 걸렸다. 새벽시간이라 그런지 낮과 밤에 붐비던 길에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바닥을 청소하는 청소차만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해가 뜰 무렵에 어제도 그제도 보았던 레온 성당에 도착했는데 성당 뒤로 해가 뜨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낮에 본 성당의 느낌과는 또 다르게 신비한 느낌도 들고 성스러운 느낌도 들었다. 이 포즈 저 포즈 취하며 여러 장의 기념사진을 남기고 또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내와 나는 1월에 만나 10월에 결혼을 했다. 다른사람들과 비교하면 비교적 짧은 시간을 연애하고 결혼을 한샘이다. 심지어 연애하는 기간 아내는 나름 수험생 이었기에 만난 횟수가 많지 않았다. 게다가 결혼을 준비하기 시작한 7월 즈음부터는 데이트 라기보다는 결혼 준비를 줄곧 해왔기에 우리는 서로가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추억을 많이 남긴 상태에서 결혼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간의 데이트가 없었음을 하늘이 알고 있었는지 산티아고 순례길은 아내와 나에게 그동안 못한 연애를 하라는 것처럼 24시간을 붙어있게 했다. 길을 걸을 때도, 잠을 잘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옆칸에 앉아 볼일을 보게 됐다. 그래서 이 길을 걷는다는 것 자체가 데이트로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물론 함께한 시간이 짧아 공감대가 많이 있지 않아서 같이 대화할 거리가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했던 얘기를 하고 또 하고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매번 새로 하는 것처럼 마냥 즐겁기만 했다. 



데이트를 하는 기분이었지만 머릿속은 이제 그만 걸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 오늘도 오늘의 목적지인 산마틴 에 도착을 하긴 했다. 얼리 버드 답게 여느 때처럼 일찍 출발한 탓에 산 마틴 알베르게에도 꽤나 빠른 시간에 도착 있었다. 알베르게는 지금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라벤더 향기가 나던 알베르게였다. 게다가 8명 정원인 방에 5명이 묵게 되어 조금은 쾌적하게 알베르게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레온에서 2박을 하며 빨래며 기타 필요한 것들을 최대한 많이 미리 해뒀기 때문에 꽤나 여유로운 오후 시간이 되었다. 지평선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이 마을은 레온과 다르게 규모가 크지도 않아 마을 전체를 도는데 30분도 안 걸리는 작은 마을이었고 잠깐의 휴식을 마친 우리는 그동안의 사치는 잊고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기로 하며 저녁을 만들어 먹을 생각을 했다.


아내와 함께 휴식을 하다가 저녁을 만들어 먹기 위해 마을을 돌아다녀 봤는데 생각보다 작은 마을이었기 때문인지 산마틴에는 마트가 없었다. 게다가 조금 알아보니 우리가 묵는 알베르게는 주방시설을 이용할 수 없는 알베르게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처음 시작했던 생장부터 부르고스 까지는 매일 저녁을 만들어 먹는데 있어 부족함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 부터는 여러가지 여건 때문에 저녁을 만들어 먹는다 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마트와 쿠킹 시설이 없었던 것 때문 이었는지 알베르게에서는 순례자들에게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면 따로 저녁을 제공해 주었는데 가격이 10유로였다. 오늘은 조금 저렴하게 저녁을 해결하려 했는데 10유로 라는 금액이 왠지 부담스러운 느낌이 들어서 근처에 다른 bar 같은 곳을 찾아봤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어쩔 수없이 저녁을 만들어 먹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가는 길에 레온에서 같은 알베르게에 묵었던 한국인 4인 가족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마을이 작아서 볼 것도 없는데 어딜 갔다 왔어요"

"저녁을 조금 저렴하게 먹으려고 마트랑 bar를 찾아봤는데 안 나오네요. 게다가 우리가 묵는 알베르게는 주방을 이용할 수가 없데요"

"우리가 묵는 알베르게는 주방 이용 가능한데 여기서 먹어요"


아내와 나는 고민했다. 만들어 먹을 저녁거리가 없었지만 우리에겐 레온에서 구입한 라면이 있었기에 기왕 저녁을 저렴하게 먹으려면 라면을 끓여먹으면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왠지 우리가 라면을 끓여 먹으면 4인 가족에게도 조금씩은 나눠줘야만 할 것만 같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눠줬을 법도 한데 고작 라면 하나가 뭐가 그리 아까웠는지 그들과 함께하는 저녁 자리가 왠지 모르게 꺼려졌다. 아마 조금 오래전부터 같이 길을 걷던 사이 였다면 반가운 마음에서라도 선뜻 저녁을 함께 했겠지만 레온에서 처음 본 그들이었기에 저녁을 함께하기가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또 한 번 저녁을 해결해야 하는데 순례자 메뉴로 저녁을 먹으면 10유로 이상을 내야 하는 게 싫어서 마을을 계속 돌아다녔던 게 아까워서 결국 bar에서 파는 1조각에 3유로 가격의 피자를 주문해 먹었다. 그리고 그건 정말 3유로만큼의 배부름만 줬다. 하지만 아내에게는 아주 배부르다고 거짓말을 했다. 


대충 저녁을 때우곤 알베르게 방안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우리와 같은 방에는 일본인 미카가 있었다. 미카는 레온에서 산 마틴을 걸어오는 내내 계속 마주쳤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기에 부엔 까미노 말고 다른 말은 하지 않았고 나는 이 동양인이 중국이나 대만 쪽에서 여행 온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일본인이었다. 그리고 이날 미카는 너무나 괴로운 표정으로 침대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하루에 적게는 20km 많게는 30km를 쉬지 않고 걸으니 몸상태가 정상인 사람이 없는것 같았다. 나 역시 아직까지 발이 계속 저린 상태에서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니 말이다.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미카에게 말을 건냈다.


"미카 왜 그래 저녁은 먹었어?"

"난 지금 저녁을 먹을 수가 없어 다리가 너무 아파"

"다리가 어떻게 아프길래?"

"다리가 끊어질 것만 같아"


미카는 정말 괴로운 표정으로 지금 말하는 것조차 힘들다는 뉘앙스로 자신이 입고 있던 바지를 걷어 다리를 보여줬다. 미카의 정강이 쪽은 새빨갛게 부어 올라 있었다. 어떻게 걸었길래 정강이가 부어올랐는지 모르겠지만 육안으로도 너무 심각해 보이는 미카를 보면서 아내가 먼저 파스를 발라 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조금 호들갑을 떨며 소란스럽자 옆방에서 한 독일 사람이 자신의 독일에서의 직업은 의사라며 도와줄 것이 있는지 우리에게 물어봤다. 다리의 상태를 보던 독일인은 걷는 행위를 잠시 멈추고 쉬었다 가는 것을 미카에게 추천해줬지만 미카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독일인 의사는 먼저 진통제 같은것이 있는지 미카에게 물었으나 미카는 없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에겐 진통제가 있었다. 독일인 의사는 두번째로 근육이완제가 있냐고 미카에게 물었으나 미카는 없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에겐 근육이완제가 있었다. 독일인 의사는 붕대가 있냐고 미카에게 물었으나 미카는 없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에겐 압박붕대가 있었다. 독일인 의사는 우리에게 병원이냐며 우리를 보고 웃었다. 우리도 이상황이 웃겼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다리가 아프거나 몸이 안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좀 취하라 얘기하고 혹은 천천히 가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아픈 사람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정말 다리가 부러진게 아니라면 고통을 참아가며 본인의 갈길을 걸어 나간다. 이유가 뭐가 됐던 산티아고라는 목적지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은 모두가 간절할 마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역시도 발저림과 발목 통증이 계속 되었지만 쉬었다 가라는 다른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그저 길을 걸어 나갔다.  


사실 진통제는 내가 발 저림이 심하면서 발목이 아플 때 하나씩 먹고 있었고, 압박붕대도 두 개를 챙겨 왔는데 하나는 내 다리에 감겨 있었다. 다른 하나는 아내가 아프거나 내가 감고있는 붕대를 빨거나 분실했을때 쓰려고 남겨둔 것이었는데 아픈 미카를 보고 그냥 모른척 할 수가 없었다.  


우리의 파스, 우리의 진통제, 우리의 붕대를 미카에게 제공했지만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저 오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선한 일을 했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 만이 있었을 뿐 이었다. 당연히 내가 아플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걱정해줬으며 도움을 줬을 것이다. 이 길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힘내라고 응원해주고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다.


피자 한조각으로 저녁을 때워 허기진 상태였는데 미카 덕분에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나니 배고픔을 잊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이제 그만 걸음을 멈추고 산티아고 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다른 여행을 하고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했었는데, 일상처럼 길을 걷고 알베르게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다 보니 왠지 모르게 다시 끝까지 걸어가고 싶은 생각이 다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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