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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미남편 Apr 30. 2024

day19 만시아-레온

산티아고 순례길 19일 차 (만시아-레온)


오늘은 레온에 가는 날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레온이라는 도시는 어떤 의미일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동안 가장 큰 도시중 하나인 레온은 도시가 큰만큼 여러 사람들에게 많은 의미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동안 길을 걷는 내내 우리는 레온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오늘을 무척이나 기다려왔다. 첫 번째 이유는 중국식 뷔페가 있어 아시아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정보 때문 이었고, 두번째로는 이전 대도시인 부르고스에서 1박을 더하지 못해 레온에서는 꼭 1박을 더하며 쉬어가자고 아내와 이야기를 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도착한다면 도착한 이후로 온전히 하루를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생각에 레온을 가는 오늘은 너무나 설레이는 날이었다. 


하지만 레온 때문에 분명 마음은 들떴음에도 불구하고 아침에는 알베르게에서 가장 늦게 일어나서 아침을 먹었고, 얼리버드 였던 우리가 알베르게에 묵는 순례자들중 가장 늦은 출발을 하게 되었다. 오늘은 왠지 아내도 나도 뭐가 힘들고 컨디션이 별로였는지 길을 걷는동안에도 거의 대화를 하지 않고 길을 걷게 되었다. 우리는 출발할 때 컨디션이 좋으면 정말 아무리 힘든 코스에서도 쉼없이 떠들고 큰소리로 노래도 부르면서 길을 걸어 왔는데 레온을 코앞에 둔 오늘은 왠지 서로가 아무런 이유 없이 대화도 하지 않으며 묵묵히 길을 걸었다. 


만시아에서 레온까지는 20Km가 채 되지 않는 짧은 구간이다. 그동안 걸었던 거리에 비하면 너무나 쉬운 수준 이었다. 오늘 가는 레온을 기점으로 메세타 평원은 끝이 나고 갈리시아 지방에 들어서게 된다. 돌이켜 보면 메세타 평원에서는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햇볕이 쨍쨍 났던날, 날씨도 변화무쌍했고 그로 인해 경험했던 것 보이는 풍경 들이 참 많이도 달랐다. 날이 추워도 아침 일출은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으며, 우리가 찬양했던 9시의 노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수영장에 빠지기도 했고, 같이 걸었던 동지들을 잃기도 하고 새로운 동지를 만나기도 했다. 


나중에 아내가 이야기 했는데 아내는 마치 레온을 가는길이 순례길을 마치러 들어가는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아마도 그만큼 레온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순례길을 끝마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 이었는지 아내도 나도 무언가 기쁘다기 보다는 아침 나절 내내 축 쳐진 기분으로 길을 걸었다.  

오늘은 드넓은 벌판이 보이지 않고 곳곳에 마을이 보인다.

지금까지의 순례길은 항상 우리에게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보여줬는데 오늘은 대도시가 가까워져 그런가 건물들이 많이도 보였다. 때문에 레온을 가는 길은 그리 아름다운 풍경은 아니었다. 다만 레온 가까이에 다와서 언덕에서 바라보는 레온의 규모는 정말 압도적이었다.  


아내와 나는 왠지 모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길을 걸었지만 언덕을 올라서자 멀리 보이는 레온을 보고 "레온이다"라고 소리를 쳤다. 레온을 본 순간부터는 그래도 둘 다 기분이 좋아졌는지 그제서야 다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동안 길을 걸으면서 우리는 레온에 도착하게 되면 레온에서 1박을 더하며 재충전을 하기로 계획 하고 있었다. 그래서 레온을 보자마자 각종 계획 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오빠 레온에 가면 WOK에 가는 거지?"  (WOK 는 아시안 푸드 뷔페 이다)

"그럼 당연히 가야지"

"우리 마트에서 라면이랑 짜파게티도 사자"

"응 알겠어 이제 돈도 생겼잖아"

"레온에서는 성당에 들어가 볼까?"

"부르고스에서 못 갔던 게 아쉬웠지? 이번에는 성당에 들어가 보자"


만시아부터 레온까지의 거리가 짧기도 짧았고 한동안 말없이 걷다가 갑자기 수다를 떨기 시작하면서 급속도로 빠르게 레온에 도착했다. 

언덕에서 바라보는 레온의 크기는 압도적이었다.

아내와 나는 레온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에 짐을 풀었다. 거리가 짧았기에 좀 더 시내 안쪽으로 들어가도 알베르게는 많이 있었고 다시 걸을 다음날을 위해서는 조금 더 멀리까지 가는 게 좋았을 테지만 최근 계속 발이 저려왔던 것이 어제는 괜찮았지만, 오늘은 왠지 다시 발저림과 통증이 재발해서 걷는 게 힘들기도 했었다. 레온 초입을 지나가다 보인 알베르게가 이전부터 몇 번 검색했을 때 꽤나 깨끗하고 괜찮은 알베르게라고 알고 있었기에 주저 없이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를 선택했다. 


알베르게에서 길을 하나 건너면 KFC가 있었고 KFC 옆에는 버거킹이 있었으며 대형 마트인 까르푸가 있었다. 이 얼마 만에 보는 문명 이며 패스트푸드 인지 우리는 알베르게에 짐을 풀자마자 햄버거를 먹으러 밖으로 나갔다. 12시 30분쯤 KFC에 도착했더니 하필 오픈시간이 1시 라고 한다. 그래도 바로옆에 버거킹이 있으니 버거킹을 갔더니 우리보다 먼저온 주먹밥 커플이 눈앞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오늘은 서로 만나자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만날 인연은 또 만나게 되어 있었나 보다. 우리보다 먼저 햄버거를 먹고 있던 주먹밥 커플 덕분에 그들의 쟁반 밑에 깔려있던 햄버거 할인 쿠폰을 이용해서 조금 더 저렴하게 햄버거를 사먹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패스트푸드의 자극적인 맛은 정말이지 황홀한 기분 마저 들게 해주었다. 


아마 한국에서 햄버거를 먹었다면 와퍼 두개는 먹어야 배가 어느정도 차는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특히나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에 마음껏 먹지 못했던 몇일간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위가 줄었는지 하나만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꽤 배가 불러 왔다. 


우리는 이미 짐을 모두 풀고 점심을 해결 하기 위해 밖으로 나온 상태였지만 주먹밥 커플은 아직 일정이 진행중 인것으로 보였기에 기왕이면 같은 알베르게에서 묵는것이 좋을것 같아 오늘의 숙소를 물어봤다.


"알베르게는 잡았어요?"

"우린 오늘 에어비엔비로 숙소를 잡아서 조금더 걸어가야해요"

"와우 좋은 생각인데요?"

"이따 저녁에 우리 숙소에서 저녁 같이할까요?"

"좋아요!"


순례객 모두가 다 같이 이용하는 알베르게보다는 에어비엔비를 통해 다른사람의 터치 없이 이용 할 수 있는 곳 에서는 조금더 눈치 보지 않고, 격식을 따지지 않으면서 저녁식사를 해결 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주먹밥 커플의 숙소에서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다. 


그동안 삼겹살이 그렇게 먹고 싶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알베르게의 취사시설에서는 다른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먹을 수 없었는데 오늘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으니 삼겹살로 저녁 메뉴를 정했다. 햄버거를 이미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저녁시간이 기다려 졌다. 아내와 나 그리고 주먹밥 커플은 바로 앞에 있는 까르푸에서 함께 장을 보았다. 샐러드, 삼겹살, 등심, 과일, 야채, 그리고 고기를 구워 먹기 위한 가스 버너까지 사는 사치를 부려가며 눈앞에 보이는 문명을 마음껏 만끽 해보았다. 고기를 구워 먹겠다는 열정이 참 대단했던 것 같다.    


주먹밥 커플이 잡은 숙소는 상대적으로 도시 안쪽에 있는 숙소이고, 아직 배낭을 메고 있는 그들을 위해 우리가 장 본 것을 모두 우리가 묵는 알베르게에 있는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저녁에 가져가기로 하고 주먹밥 커플과는 잠시간 헤어졌다. 

동키서비스 의 동키가 보인다. 

알베르게에 돌아와서는 한동안 계속 저리고 아프던 발을 어떻게던 좋아지게 만들고 싶어서 알베르게에 있는 대야에 찬물과 뜨거운 물을 받아 번갈아 가며 냉찜질을 온찜질을 해보았다. 나 같은 사람이 많은 건지 알베르게에 있는 대야는 발 모양을 한 족욕용 대야였다. 아내에게도 찜질 좀 해보라고 했더니 자기는 발은 괜찮다며 오랜만에 낮잠을 잤다. 일찍 도착한 만큼 여유로운 오후 시간이었으며 저녁이 벌써 해결된 상태였고, 내일은 휴식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걸어도 되지 않는다는 여유로움이 가득한 오후 시간이 되었다. 


잠깐의 휴식을 마치고는 다시 레온을 돌아 보았다. 도시가 커서 한번에 다 볼 수 없었지만 오랜만에 보는 으리으리한 큰건물들을 보니 지금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는건지 유럽 배낭여행을 하고 있는 건지 착각을 할정도로 도시가 살아 숨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어 저녁을 먹기로 한 주먹밥 커플의 숙소까지 구글맵을 통해 확인해보니 '거리 5km 도보 1시간, 버스 5분' 이라는 안내가 나온다. 그동안 걷는 것이 너무 당연해진 탓일까 버스를 타고 갈 만한 거리인데 어떻게 하자는 의논도 없이 아내와 나는 너무나 당연 스럽게 1시간을 걷는 선택을 하고 길을 걸었다. 


배낭이 아닌 비닐봉지를 손에 들고 걸어가는 길은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이미 아침에 20km 정도를 걸었고 저녁을 먹기위해 또 길을 걷다보니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고기를 실컷 먹겠다는 일념하에 묵묵히 길을 걸어가면서 조금만 가면 나오겠지 하면서 걸었는데 너무 힘이 들기도 했고 생각보다 먹을것을 많이 산것 때문인지 음식재료들이 꽤나 무거웠다. 이럴줄 알았으면 버스타고 움직을껄 그랬나 하는 후회도 들었다. 


주먹밥 커플의 숙소에 도착했을때는 고기고 뭐고 그냥 누워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들이 재료를 준비하는데 나몰라라 할수가 없어서 함께 몸을 움직였다. 야심차게 준비한 버너에다가 고기를 굽기 시작했고 스테이크, 삼겹살, 흰쌀밥, 샐러드, 그리고 와인까지 참 맛있게도 많이 먹었다. 힘들게 가져간 것을 보상이라도 받듯이 우리는 열심히도 먹었다. 

 

"그나저나 내일도 걸어요?"

"우린 내일 레온에서 1박 더하고 하루 쉬고 가려고요"

"아 정말요 우리도 그럴 건데"

"그래요? 내일은 어디 가려고요?"

"wok에 가보려고요 까미노들에겐 성지와 같은 곳이잖아요"

"와 시간 맞으면 같이 가요"


주먹밥 커플과 와인을 마시며 고기를 먹고는 다음 일정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우리도 그들도 레온에서는 1박을 더하며 쉬었다 간다고 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주먹밥 커플과 저녁을 마치고 알베르게로 돌아갈 때는 또다시 5km 걸어야 했다. 과식을 한탓에 소화도 시킬겸 평소 같았으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걸어갔을법 했지만 이미 몸이 지쳐 있는 상태라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이번만큼은 버스를 타야할 때 인 것 같았다. 


어떻게 가는지 얼마를 내는지도 모르고 우리는 말도 안 되는 단어를 섞어가며 몸짓 발짓으로 버스를 타는 데 성공했고 단 10분도 안되어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새삼 느끼지만 문명의 힘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목적지 까지 편안히 데려다 주는데 이리도 편한 현대문명을 두고 우린 왜 아까 걸어 갔을까 하며 허탈하게 웃었다. 


스페인에서 버스 타는 법은 간단하다. 원하는 버스번호가 오면 그냥 타서 기사님께 동전을 잔뜩 쌓은 손을 내밀면 기사님이 필요한 만큼 집어가신다. 그리곤 구글맵을 통해 우리가 내리기로 했던 버스정류장을 외워두고 온갖 신경을 곤두세운다음에 그곳에 도착하면 그냥 내리면 되었다. 

 

내일은 19일만에 맞이하는 꿀맛 같은 달콤한 휴식의 날 이다. 19일 동안 일하고 하루 쉬는 느낌에 잠자리에 들면서도 웃음이 가시지 않는다. 내일만큼은 순례자가 아닌 여행자의 마음으로 마음 편히 레온에서 먹고 즐기자는 생각을 하며 행복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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