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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미남편 May 14. 2024

day22 산마틴-아스토르가

산티아고 순례길 22일차 (산마틴-아스토르가)


부르고스에 도착하기 이전 언젠가 부터 발등이 아파온 적이 있었는데 이날 이후로 발등의 통증은 발저림으로 변했었고 그 이후로 나는 걷는동안 여전히 왼쪽 발이 저려 왔다. 걷는 내내 계속해서 발 저림을 느끼며 걸어야 했고 때로는 그 발 저림이 통증으로 변하기도 했다. 그래서 언제부터 인가 여건이 된다면 일정을 마치고 대부분의 알베르게에서 대야에 찬물을 받아 발을 담그고 냉찜질을 하며 통증을 식히고 다음날은 또다시 저림과 통증을 느끼면서 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지금까지 중에 정점을 찍은 날이었다. 산 마틴에서 아스토르가 까지 가는 길은 23km 밖에 안 되는 짧은 거리 임에도 불구하고 발저림이 통증으로 변해 계속 발바닥과 발등이 아파 왔다. 정해놓은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휴식을 취하지 않고 계속해서 참고 걸어야 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 점점 내 발목과 발등을 악화시켰던 것 같다. 어느날부터 통증은 계속해서 정점을 찍는 것 같았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사실 매일 쉬지 않고 걸었던 탓에 매일 정점을 계속해서 갱신했던 것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한국인이 흥의 민족인 것인지 아니면 아내와 내가 음악을 좋아했던 것인지 우리는 한국에서도 노래를 듣는 것을 좋아 했고 틈만 나면 코인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는 것도 자주 했었다. 그리고 이곳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때 에도 우리는 대화를 하지 않는 시간에는 대부분 노래를 듣거나 부르면서 길을 걸어왔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이곳 스페인에서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이용하기 위해 30일 유효기간의 유심칩을 두장 준비해 왔다. 순례길을 22일째 걷고 있었고 순례길을 시작하기 전 파리 여행에서부터 유심침을 사용했기에 첫 번째 유심칩의 유효기간이 만료일에 가까워 진데 반해 허용된 데이터용량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서 오랜만에 음악을 스트리밍하고 아침을 시작했다. 원래는 데이터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우리가 좋아하는 노래 몇 곡을 다운로드하여 왔었는데 매번 같은 음악을 듣는 것이 지겨워서 스트리밍 해서 노래를 들으니 매일 듣던 노래가 아닌 새로운 노래에 서로가 신이 났다.


새로운 노래에 흥에겨운 나머지 아내는 아침부터 엄청난 속도로 길을 걸어갔다. 거의 1Km를 10분 만에 걸어갔고 8Km 뒤에 있던 마을을 1시간 10분 만에 도착했다. 평소 우리는 평지는 한시간에 4.5~5km 정도를 걸었고 오르막길이 많을때는 3Km 정도를 걸었는데 오늘은 아무리 평지만 있었다고 해도 1시간 만에 거의 8km 를 걸었으니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길을 걸었던 것이다. 


"여보 오늘 컨디션이 좋은가 보네?"

"응 노래도 신나고 몸 상태도 너무 좋아"

"그래도 천천히가 오늘 너무 빨리 걷는다 우리 평소보다 1.5배는 빨리 걷고 있어"

"그래? 난 괜찮은데 빨리 걷는 거 모르겠어"


아내는 신이 나서 속도를 높여 길을 걸었고 오늘 걷는 길은 폭이 좁아 양옆으로 나란히 서서 걷기가 어려워 앞뒤로 서서 길을 걸어야 했는데 사실 오늘 걸음의 속도는 우리 라기 보다는 아내 혼자만의 페이스 였던 것 같다. 나는 몸의 무리가 가는지도 모르고 컨디션이 좋아 빠른 걸음으로 앞서 가는 아내를 따라가기에 급급해 하며 길을 걸어 나갔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8km를 걸어 나타난 첫 번째 마을에 있는 bar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커피와 간단한 요기를 하려 했다. 헌데 여기서 파는 빵이 그동안 먹었던 음식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맛이 좋았다. 결국 간단한 요기를 하고 다시 걷고자 했던 생각과는 다르게 아침부터 배부른 식사를 하게 되어 버렸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충분한 휴식을 했다고 생각 하고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는데 오전부터 빠른 속도로 걸은 것이 아무래도 몸에 무리를 준것 같았다. 첫번째 마을을 나서자마자 나의 발목은 점점 아파왔고 결국은 주저앉아 버렸다.  


"여보 우리 조금만 쉬었다 가자"

"오빠 어디 아파?"

"응 발목이 조금 아픈 것 같아"


잠시간 길을 걷다 나타난 버스정류장에서 쉬기로 했던 우리는 그 상태 그대로 30분을 넘게 앉아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음에도 발목은 계속해서 욱신 욱신 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오늘은 그만 걷고 아무 알베르게나 들어가 쉬고 싶었지만 얼리버드 답게 아침을 워낙 일찍 시작했고, 빨리 걸었던 탓에 아직 시간은 10시밖에 안되어 일정을 마무리 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둘이 함께 걷는 길이기에 둘 모두의 상황을 고려 하며 길을 걸으며 몸을 챙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게 화근이 되버렸다.


발목이 계속 욱신 거리며 아파왔음에도 결국 길은 계속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길을 걸으면서 목적지 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 일정을 종료 했던 적이 없었다. 그건 내 발목이 문제가 아니라 아내가 힘들어 했을때도 마찬가지 였다. 일정을 조정하는 것을 왜 그렇게 두려워 했는지 잘 모르겠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자신의 컨디션을 봐가며 무리를 하지 않게 걷는 것이 훨씬 더 즐거운 까미노의 추억을 남겨주는 것 이라고 알 수 있지만 당시에는 반드시 가야만 한다는 목표 의식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억지로 아픈 몸을 끌고 걷다보니 결국엔 목적지인 아스토르가 에 도착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도착한 그 아스토르가는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보았던 까미노 길에 있던 마을 중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아내는 과거 산토도밍고 라는 마을을 가장 아름답다 했었고 나는 여정이 끝난 지금도 아스토르가 가 가장 예뻤던 마을로 기억에 자리 잡고 있다. 


알베르게에 도착해 보니 우리가 머무르려고 했던 알베르게는 스페인에서는 보기 힘든 나름은 5층 높이나 되는 고층 건물이었다. 게다가 지하 느낌의 공간과 옥탑 느낌의 공간도 있었기에 토탈 7층은 되는 건물이 아니었나 싶다. 알베르게 호스트는 우리에게 선심을 쓰는듯 이야기를 했다. 


"너 혹시 코 고니?"

"아니 난 코 안 골아 대신 우리 아내가 조금 골아"

"코를 안고는 사람들만 위한 특별한 방이 있어"

"아무 곳이나 좋으니깐 빨리 쉬고 싶어"


코안고는 사람들 에게만 배정해준다는 방은 그 고층 건물에서 가장 높은 층이었다. 심지어 그냥 가장 높은 층에서 하나 더 올라간 다락방 같은 곳으로 우리를 배정해 주었다. 알고 보니 젊고 힘이 있는 건강한 사람들은 높은 층에 배정을 해주고 조금은 늙고 힘어 없는 사람들은 아래층에 배정을 해주는 것 이었는데 코를 안고는 방이라는 핑계를 대며 우리를 꼭대기층에 배정한 것이었다. 


아무리 중간에 오랜 시간을 쉬었어도 우리는 얼리버드 답게 아주 이른 시간에 출발을 했었고, 처음 시작할 때 엄청난 속도로 길을 걸어왔기에 알베르게에 도착한 시간이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아주 이른 시간이었고, 또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젊은 축에 속하는 우리 였기에 호스트가 우리를 아주 신체 건강한 젊은 사람이라고 판단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발목이 너무 아파서 그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다. 


누가 심통을 부려 우리를 더 힘들게 하려고 했던 것인지 하필 알베르게의 주방, 빨래터는 지하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5층건물에 옥탑방이라 실제로는 6층에 있는 우리가 지하층을 왔다갔다 해야 했었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이곳에서 지하부터 6층까지 우리는 계속 해서 계단으로 오르락 내리락 해야만 했었다. 가뜩이나 발목이 아픈 나는 걸어 다니기가 정말 너무나 힘이 들어 호스트에게 방을 바꿀 수 있는지 물어봤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NO" 였다. 


방의 위치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오늘 묵는 알베르게는 취사가 되는 알베르게 였다. 알베르게에 도착하자마자 취사가 되는 걸 확인하고 오늘은 저녁을 만들어 먹기로 하고 장을 보러 나갔다. 어제 산마틴에서 3유로짜리 피자를 먹고 배고파하며 잠들었던 탓에 오늘은 무언가 거하게 잘 차려 먹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주방도 이용할 수 있고 생각보다 큰 마트가 있는 마을이었기에 내일 아침도 준비할 겸 몸을 씻고 빨래를 마친 뒤 장을 보러 나갔다. 보통 알베르게에 도착해 씻고 장을 보러 나갈 때는 배낭이 없이 나가니 걸을 때 왔던 통증들이 없어지고 걷기 수월해 졌었는데 오늘은 아침에 무리를 한 탓인지 높은 계단을 오르 내렸던 것 때문인지 무거운 배낭을 벗어두고 왔는데도 저리던 발이 너무 아파왔다. 


급기야는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 오는 길에 통증이 심해서 고작 10분도 안되는 거리를 이동하는데도 다시 한번 주저 앉고 말았다. 그런 나를 아내는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봤고 나는 아내에게 아픈 모습을 보이기 싫었기에 많이 아프지 않아 괜찮아 라는 말을 하면서 몸을 일으킬 수 밖에 없었다.


장을 보고 돌아온 알베르게에서 어제 만났던 미카를 또다시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며 오늘은 어떤지 물어 보았더니 다행인지 오늘은 어제처럼 통증이 심하지 않고 걷기도 너무 수월해졌다고 했다. 하지만 같은 동양인이 싫은 건지 아니면 한국인이 싫었던 건지 미카는 우리에게 나름 도움을 받아놓고도 서양인 들과만 어울리려 했고, 우리와는 가까이 지내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도 아쉬울 것이 없어 그냥 그러려니 했지만 미카의 그런 행동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 유일하게 우리에게 좋지 않았던 기억을 남겨준 사람 이기도 했다.    


한동안 매번 돈을 아낀다는 명목하에 제대로 된 음식을 사먹지 않았고, 또 취사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거나 마트가 없었던 탓에 부실한 저녁을 먹기만 하다가 오랜만에 취사가 되는 알베르게 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기에 배부른 저녁을 만들어 보았다. 사실 어제 제대로 먹지 못해 배고팠던 서러움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레온에서 구매해서 짊어지고 왔던 짜장라면을 끓였고, 마트에서 쌀을 사서 흰 쌀밥도 지었으며 계란 프라이까지 했다. 저녁 식사를 만들어 먹으며 사먹는 것 보다 돈을 아꼈으니 손빨래가 아닌 세탁기를 돌리는 사치도 부려가며 아스트로가의 알베르게에서는 오랜만에 행복한 오후 시간을 보냈다. 


식사를 마치고는 알베르게에 있는 정원에 앉았다. 아직까지도 너무나 발이 아팠던 나는 대야를 하나 구해와서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을 받아 발을 담그고 있었는데 나 말고 무려 3명이나 찬물에 발을 담그고 정원에 앉아 있는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아내와 나 둘다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찬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 해 가지는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시간이 정말 너무나 여유롭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다양한 국적과 나이를 가진 사람들이 오는데 한국, 독일, 브라질 사람들이 가장 많은 것 같았다. 그 외에 호주, 미국, 영국, 이탈리아, 가끔 일본,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눈에 보였다. 외국인들은 우리를 만날때 마다 같은 질문을 했다. 한국인들이 이곳에 왜 이렇게 많이 오는지. 특별히 뭐라고 답해야 될지 모르겠다. 이곳에 오는 이유는 너무 다양하니깐. 우리처럼 이유 없이 그냥 오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이 길을 걷는 데 꼭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니까. 어쩌면 이 길을 걷기 위해 이유를 만들어 오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많다. 우린 정말 영하고 영한 두 명이었다. 영한 나이에 이 길을 걸어볼 수 있다는 것에 우월감 아닌 우월감이 드는것 같기도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전체 일정을 펼쳐놓고 보면 이제는 후반부로 접어드는 시기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왠지모르게 시간이 더욱더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원에 앉아 아내와 도란 도란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 가면 분명 이 시간들이 그립고 기억이 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상상하며 하루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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