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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미남편 May 29. 2024

day25 폰페라다-비야프랑카

산티아고 순례길 25일차 (폰페라다-비야프랑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25일동안 단하루 뿐인 어제 동키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배낭을 안 매고 걸었을 뿐인데 24일간 한몸처럼 짊어졌던 배낭이 오늘 아침에는 왜 이렇게 무거운 것 처럼 느껴지는 것인지... 아침부터 몸이 천근 만근 이었다. 게다가 아침부터 밖에는 주륵주륵 비가 참 많이도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알베르게 1층 공용식당 에서 아침을 간단히 때우고 비 오는 날씨에 대비를 했다. 길을 걷는 중간에 비가 오면 배낭 속에 있는 우의를 찾아 입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데 이렇게 아침부터 비가 오면 최대한 비 오는 날씨에 대한 준비를 마치고 출발할 수 있어 차라리 좋았다. 


항상 마을에 도착하면 씻고 빨래를 하고 마을을 한번 돌아봤는데 어제는 도착한 시간이 너무 늦기도 했고 정강이가 너무 아파 마을을 돌아보지 못했다. 덕분에 오늘 아침을 시작하면서 폰페라다를 둘러보며 길을 걷기 시작했다. 폰페라다는 생각했던 것 보다 꽤나 큰 대도시였다. 사전에 공부를 좀 하고 정보가 좀 있었다면 폰페라다도 꽤나 괜찮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도시 였겠지만 우리는 정보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기에 그냥 지나쳐 가는 것이 아쉬움이 남았다.


대도시답게 도시를 빠져나오는데 꽤나 긴 시간이 흘렀고, 폰페라다의 끝자락을 나설 때쯤부터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치는 비가 그친 하늘 저편에는 무지개가 보였다. 까미노 길을 걷다가 무지개를 본건 처음이었다. 생각해보니 한국에서도 어렸을 땐 참 자주 봤던 거 같은데 성인이 되고 나서는 무지개를 본 기억이 없었다. 우리는 무지개를 향해 걸어갔고 무지개 밑에는 우리 목적지가 있었다. 


언젠가부터 발등 쪽에 발 저림은 당연한 듯이 항상 있어 왔기에 이것을 통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리고 발목의 아픔 역시나 그냥 욱신 욱신 하는 듯한 통증이 가끔 왔고 횟수가 많지는 않아 역시나 걷는데 큰 지장을 주는 건 아니었다. 무거운 가방 때문에 늘 있는 어깨 통증이야 배낭을 내려놓으면 금세 괜찮아졌다.


대부분 그냥 참고 걷거나 조금 쉬면 괜찮아지는 통증 들이었는데 어제 있었던 정강이 통증은 다리가 끊어지는 듯한 통증이었고 한걸음 한걸음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그 충격이 더 심했었기 때문에 출발하기 전에 크게 걱정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오늘은 발 저림 말고는 다른 통증의 느낌은 없었다. 비오는 날씨를 한시간 걷다 보니 오히려 몸이 풀렸던 건지 아침에 찌뿌둥 했던 몸이 어느새 괜찮아진 느낌이었고 아내 역시 오늘은 꽤나 컨디션이 괜찮다고 했다. 어쩌면 비오는 날씨가 환경적으로는 안좋을지 몰라도 신체적으로는 걷는 것을 꽤 편하게 해주는게 아닌가 싶다.


분명히 어제 택시를 탈 때 나는 아내에게 택시 탄 구간은 다시 돌아가서 걷겠다고 이야기했었는데 폰페라다를 다 빠져나올 때까지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아 맞다 택시 탄 구간 돌아가서 다시 걸어야 되는데"

"오빠 우리 벌써 두 시간은 걸었는데 그럼 10km를 되돌아가야 하는데?"

"10km가 아니라 몰리나세카까지 17km를 돌아가야지"

"그럼 지금까지 10km 걸었으니깐 돌아가면 27km 오늘 하루 다 걸은 거네"

"응 돌아가자"

"진심이야??"

"아니!"


사실 돌아가서 다시 걸을까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전체 800km 여정중 고작 7km 때문에 하루를 날리는 행동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아내와 나는 언젠가 순례길을 걷는중 환갑여행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에 다시 오자고 했고 이번에 못 걸은 7km는 다음에 산티아고에 다시 돌아오면 꼭 걷자고 다짐을 하고 계속 길을 걸었다. 아내도 나도 좋은 컨디션에는 실없는 농담도 하고 이런저런 얘기도 하면서 잘도 걸어 나갔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보면 그날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10km이던 20km이던 30km이던 항상 도착하기 마지막 5km 지점부터 엄청나게 힘이 드는 것 같았다. 마의 한시간 이다. 목적지가 얼마 안 남았다는 이유로 긴장이 풀려서였는지 늘 마지막 5km 은 발이 아프고 발목이 아프고 무릎이 아파왔다. 그리고 아내와 나는 그 시점이 되면 급격하게 대화가 줄어든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배낭을 내려놓고 샤워를 마치고 나면 정말 몸이 개운해지는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몸상태에는 심리적인 영향이 많이 끼치는 것 같다.


목적지인 비야프랑카를 도착하기 5km 정도 남았을 때 또다시 발목이 아파오기 시작했고 조금 더 걷자 어제 느꼈던 정강이 통증이 다시 생겨 왔다. 정강이 통증은 발목의 통증과는 차원이 달랐다. 어제부터 갑자기 생긴 통증이 아침을 걷는 내내 아무렇지 않더니 마의 한시간을 남겨두고는 너무나도 나를 힘들게 했다. 또다시 다리를 절뚝절뚝 거리며 길을 걸었지만 다행히 비야프랑카까지의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꾹 참고 걸어 결국 비야프랑카에 도착을 했다. 


오늘도 우리는 얼리버드답게 일찍 출발했고 아침에 길을 걸을 때도 컨디션이 꽤나 좋아 걸음속도도 빨랐기에 우리 앞을 지나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마지막 1시간 정도는 정강이 통증 때문에 걷는 속도가 줄어들었지만 그럼에도 비야프랑카에 도착한 시간이 우리가 예상한 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 이었다.


마을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를 지나쳐 내일 조금이나마 덜 걷기 위해 정강이가 꽤나 아팠음에도 불구하고 아픈 다리를 이끌고 마을 끝쪽에 위치한 알베르게를 찾아 갔다. 평소같았으면 30분 정도면 마을 끝까지 이동 할수 있었을법한 거리였는데 정강이 통증 때문에 걷는 속도가 줄어들고 걷다 서다를 반복했던 탓에 마을 초입에서 마을 끝까지도 한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이 들었다.  


긴거리를 걸었을때는 마을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에만 도착해도 좋지만 다음날 마을을 빠져나가는데도 꽤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오늘같이 일찍 도착하는 경우나 컨디션이 좋을때는 가급적이면 마을 중간쯤이나 끝쪽에 위치한 알베르게에 주로 머물렀었다. 게다가 사전에 검색 했을때 마을 끝쪽에 있는 알베르게가 컨디션이 더 좋은것 같았기에 그곳으로 향했다.

 

목적지로 정했던 마을끝 알베르게에 도착할 때쯤엔 정강이가 너무 아파 더 이상 걷기가 힘든 상황이 다시 왔었다. 어제 몰리나세카에서 택시를 탔을 때만큼 정강이가 아파왔다.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알베르게 호스트에게 인사를 했다. 그런데 알베르게 호스트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건넨다.


"올라! 도장만 찍어줄까?"

"아니 우리 오늘 여기서 묵을 예정이야 2명이야"

"혹시 예약을 했어?"

"아니 우리 예약 안 했어"

"미안한데 우리 알베르게 오늘 베드가 풀이야"

"우리 앞으로 지나가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벌써 마감됐어?"

"응 우리 알베르게는 미리 예약하고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른 시간에 마감됐어"


망연자실! 알베르게는 30인 정원의 알베르게였고 알베르게가 마감됐다고 했다. 정말 하루도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마을 초입에서 끝까지 아픈 다리를 끌고 일부러 걸어왔는데 다시 돌아가야 한다니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만 같았다. 이미 걸어온 길을 뒤돌아 가기도 싫었거니와 정강이가 아파서 다음 마을까지 걸어갈 수도 없었다.


마감된 알베르게에 주저앉아 망연자실 한 표정으로 앉아있자 알베르게 주인이 우리에게 매우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본인들이 차로 알베르게까지 차로 데려다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을 끝에 있는 알베르게를 갈 건지 혹은 마을 중간에 있는 알베르게를 갈 건지 물어봤다.  


사실 지나쳐 오면서 마을 중간에 있는 알베르게는 통증 때문에 시야가 좁아졌던 탓이었는지 보지 못했었다. 마을 초입에 있는 알베르게는 한시간 전에 봤던 공립 알베르게였다. 나는 내일 걷는 거리를 단 몇 분이라도 줄이기 위해 마을 중간에 위치한 알베르게에 간다고 했고 알베르게의 주인이 우리를 마을 중간에 있는 알베르게로 태워줬다. 


사실 본인이 주인인 알베르게가 정원이 다했다고 우리를 굳이 다른 알베르게 까지 태워다 줄 의무 같은 건 없는데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의 배려는 정말 너무나 다른 여행지와 서는 달랐다. 정강이가 너무나 아파서 더 걷기가 힘들었는데 정말 너무나 고마운 사람 이었다. 


비야프랑카 마을 중간에 있는 알베르게는 수도원을 개조하여 만든 알베르게였다. 이곳은 몇 해 전 방송된 god의 같이 걸을까에 나와 god가 묵었던 숙소 이기도 했고, 또 몇해전 전 방송된 유혜진, 차승원, 배정남이 나왔던 스페인 하숙을 촬영했던 곳이기도 한 곳이기도 하다.


마감된 알베르게 호스트의 도움을 받아 수도원 알베르게 호스트에게 우리가 인계 되었다. 호스트는 도미토리실과 2인실의 가격차이가 2인 합계 3유로 밖에 안되는데 어느 곳에서 잘껀지 우리에게 물어왔고, 우리는 당연스럽게 3유로를 더 내고 2인실을 선택했다. 사실 3유로를 더 내더라도 방금 전 도착했던 마감된 알베르게의 가격과 동일한 가격이었기에 부담이 되지 않았던 것도 선택하는데 도움을 줬다. 


그렇게 맞이 한 2인실은 정말 호텔과 같았다. 그동안 늘 2층 침대에서 자던 우리였는데 객실에는 싱글베드만 두 개 놓아져 있었고 한쪽편에는 우리 둘만의 화장실도 있었다. 게다가 화장실에는 무려 욕조까지 딸려 있었다. 순례길 초반 나헤라에서 호텔에 묵었던 날 이후로 처음으로 둘만 허락된 공간에 머무를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게다가 원래 가려던 곳도 아닌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곳이었기에 행운이 참 따랐던 것 같다. 역시 인간만사가 새옹지마다. 


비야프랑카 에서도 저녁은 만들어 먹기로 했다. 알베르게에서 샤워를 하고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아픈 정강이를 찜질하고 낮잠을 한숨 자고 마트에 가니 얼마 전 레온의 알베르게 에서 봤던 라면을 나누어 먹고 싶지 않아서 그들과의 저녁을 피했었던 한국인 4인 가족이 마트 앞에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뭐하고 계셔요? 밖에서"

"저녁거리 사러 마트 왔는데 씨에스타네요"

"지금 4시 50분 이니깐 10분만 지나면 문을 열 것 같아요"


우리도 같이 그들과 함께 마트 앞에 걸터앉았다. 레온, 산 마틴에서 보고 오랜만에 만나는 이들이었기에 잠깐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금세 10분이 지났고 정확히 5시가 되자 마트가 문을 열었다. 


스페인에서는 소고기가 상당히 저렴하다. 나와 아내는 평소 둘이서 삼겹살 2근을 먹고 밥도 한 공기씩 먹는다. 치킨도 두 마리 시켜서 한조각도 남김없이 다 먹는다. 그런 우리가 배 터지게 먹을 정도로 소고기를 사도 5유로 정도면 된다. 쌀은 둘이서 5번은 해 먹을 수 있는 정도의 양이 1유로 정도, 와인도 1병에 1유로, 콜라도 1.5리터에 1유로다. 저녁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둘이 지출하는 돈은 10유로 정도이다. 물론 상당수는 그 날 다 못 먹고 남길 때도 많았다. 


처음에는 몰라서 순례자 메뉴를 먹고 다녔었는데 한 번 두 번 저녁을 해 먹다 보니 음식을 사먹는것 보다는 만들어 먹는 쪽이 가격도 싸고 맛있고, 입맛에도 맞았다. 취사가 되지 않는 알베르게가 아닌 이상은 굳이 사 먹을 필요가 없었다. 메뉴는 항상 소고기와 밥 혹은 소고기와 파스타인 것 같다. 그리고 장의 편안함을 위해 요플레와 과일도 빼먹지 않고 사먹었다. 그리고 와인과 콜라도 말이다. 이곳에서 콜라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아마도 30일 넘게 걸으면서 살이 빠지지 않은 건 와인과 콜라가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저녁을 만들어 먹고 나서 부터는 아침에 내리다 그쳤던 비가 또다시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비는 장대비가 되었고 날씨를 검색해보니 오늘부터 내일까지 엄청난 폭우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아내와 나는 항상 자기 전에는 내일 어디까지 걸어갈지를 결정하고 잠을 청한다. 


아내와 나는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만약에 비가 그치면 28km을 걷고 혹시나 비가 많이 오면 16km을 걷기로 의견을 모았다. 만약 16km 를 걷는다면 그간 걸었던 거리중 가장 짧은 거리를 걷게 되는 날이다. 정강이가 이틀 연속으로 후반부에 많이 아팠었기 때문에 내심 비가 많이 왔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고, 16km 의 거리는 정강이 통증 없이 버틸수 있는지 테스트도 해보고 싶었다. 


수도원 알베르게는 아내와 나 둘만 있는 방이었기에 누가 먼저 일어나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내서 아침을 깨울 일도 없었으니 한편으로는 내심 조금만 걷기를 바라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씩 꽤가 늘어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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