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 직원 ‘봉구’가 쓴 글입니다.
이전 글에서 현대차 직원이 본 노조 없는 테슬라의 강점에 대해 썼는데 이번엔 조금 더 근본적인 관점에서 기존 레거시 내연기관 자동차 회사들과 테슬라라는 전기차 회사의 차이를 설명해보고자 한다. 이번에는 현대차 직원이 본 내연기관차 제조사가 테슬라를 따라잡기 어려운 이유이다.
꼭, 테슬라가 아니더라도 리비안, 루시드처럼 전기차 전문 기업들이 있고, 이들도 내연기관 제조사들과의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사실상 전기차 중에는 테슬라만이 시장에서 의미 있는 싸움을 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레거시 VS 테슬라] 구도로 봐도 무방한 듯하다.
구매 실무자로서, 전기차로 탈바꿈해나가는 회사를 보며 크게 4가지 정도를 변화의 걸림돌로 꼽는다. 개인적인 의견이므로 정답은 아니겠지만 이 4가지 요인이 내연기관차 제조사들이 테슬라를 따라가기엔 너무나 어렵게 만드는 장벽이라고 느낀다.
1. 필요한 기술과 인력 구성의 차이
2. 업무, 의사결정, 문화의 차이
3. 전기차에 맞지 않는 노조의 발목 잡기
4. 수많은 1차 협력사들과 투자된 설비들
글을 쓰다 보니 너무 길어져서 2부작으로 나누어 쓰려고 한다. 오늘은 첫 번째 '기술과 인력 구성의 차이'만을 다루고 다음 글에서 나머지 3가지에 대해 정리해보겠다. 이해를 돕기 위해 스마트폰 산업과 많이 비교를 해보게 되는데 먼저 양해를 구하고 시작한다.
우리가 어? 마음만 먹으면 어? 마 어?
언론에서는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 메이커와 테슬라를 비교한다. 테슬라가 선두는 맞지만, 곧 대량생산 체계를 갖추고 경험이 많은 레거시 자동차 회사들이 전기차 모델을 내면 극심한 경쟁이 예상되고 테슬라도 주춤할 것이라는 얘기다. 카테고리가 전혀 다른 두 산업을 비교하는 논리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언론을 통해 기존 내연 회사들이 노리는 바는 “테슬라랑 우리는 경쟁하는 회사다"라는 이미지이고 다행히 그러한 인식을 일반인들에게 성공적으로 심어준 듯하다.
그런데 실상은 다르다. 결론만 빠르게 말하자면,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 회사들은 전기차를 개발하기 위한 기술과 인력이 거의 없고 경험도 없다. 당연하다. 그동안 내연기관만 만들었으니까.
아래 두 핸드폰은 2008년 출시한 삼성의 햅틱과 2007년에 출시한 아이폰 1세대이다. 둘 다 터치스크린을 탑재하고 메뉴 기능을 아이콘 형식으로 표현했고 비슷한 시대에 출시되어 그 당시에는 비슷한 핸드폰으로 보였다. 지금에 와서 보면 아이폰은 1세대부터 현재까지 버전만 다를 뿐 동일한 OS를 적용해 업데이트하고 맥북, 아이패드, 아이폰, 애플워치 등 단말기 확장성을 고려한 SW 설계를 해왔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햅틱을 만들던 조직에게 아이폰을 만들어오라고 하면 잘 만들 수 없는 게 당연한데 지금의 자동차 회사들이 이러한 시도를 해야 하니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래는 2009년에 '아이폰' 입성 임박, '햅틱'과 대결 결과는?"이라는 머니투데이 기사에서 발췌한 사진이다. 기사 제목을 누르면 해당 링크를 볼 수 있는데 2022년 지금 보면 정말 꿀잼이다. 아이폰을 스마트폰이 아닌 터치폰이라 표기한 부분이 킬링 포인트다. 우리도 테슬라를 '전기차'가 아닌 '전기로 가는 자동차' 정도로 오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엔진 전문가 집단인데요?
자동차에서 최고의 기술분야는 어디일까? 당연히 엔진이다. 각 자동차 회사들이 모델의 성능을 뽑고 연비를 절감하고 차량의 체급을 결정하는 메인 경쟁력이 엔진 개발 능력이다. 엔진을 직접 개발하지 못하면 자동차 회사라고 할 수 없고 흔히 들어본 6기통, 8기통 등 엔진 성능을 자랑하는 이유도 엔진개발 능력이 곧 기술력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엔진 개발 조직은 그동안 각 회사의 최고의 연구원들이 포진한 실무팀이었고 파워도 막강했다. 문제는 전기차 시장에서는 더 이상 엔진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대신에 모터, 배터리, SW 능력이 메인 기술력으로 바뀌었는데 기존 내연기관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분야이기 때문에 전문인력도 기술도 전혀 없다.
HEV나 PHEV에도 모터나 배터리는 들어가지만 모터는 사실상 엔진 보조 정도고 배터리도 연비 개선을 위해 내연차에 작은 사이즈를 구겨 넣은 정도여서 메인 인력이 적고 경험도 부족하다. 한 마디로 모터, 배터리 전문가가 없다. 그렇다고 입사부터 짧게는 5년, 길게는 20년 엔진 개발을 해오던 연구원들에게 모터를 만들라고 할 수 있을까? HEV 용 보조배터리를 만들던 연구원들에게 배터리 모듈을 만들라고 할 수 있을까?
연합뉴스 기사를 보면 현대자동차도 이제야 관련 인력을 뽑아가고 있다. 테슬라는 2003년 설립되어 그 분야에 꿈을 담았던 엔지니어들을 시작으로 맨땅에서 경험을 쌓아 올린 회사다. 무려 20년 정도의 차이를 인력을 뽑는다고 해서 메울 수 있을까? 더욱이 하버드, MIT 공대를 나온 인재들이 과연 어느 회사에 지원할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소프트웨어도 해야 합니까
SW는 더 답이 없는 상황이다. 테슬라에서 제공하는 원격 제어나 OTA, FSD와 같은 기능을 구현하기에는 갈 길이 멀다. 폭스바겐, 현대, GM 등 내연기관차에도 크루즈 등 비슷한 기능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연기관차들도 다양한 전장 기능이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대답은 NO다. 이는 겉으로 보이는 기능이 비슷할지언정 뼈대는 다르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먼저 자동차 산업의 기초 지식인 승인도와 협력사와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엔진과는 다르게 일반적인 부품들은 1차 협력사가 자동차 요구에 맞춰 개발하고, 도면을 그려오면 승인하는 방식으로 개발하는데 이걸 '승인도'라고 한다. 한마디로 Full 외주다. 브레이크, 타이어, 도어, 클러스터, 공조와 같은 기술을 내재화하는 대신, 해당 기술을 갖춘 전문 1차 협력사에게 외주로 맡기고 여러 업체들을 경쟁시키는 방법을 택한다. 모든 레거시 OEM들의 공통 전략이다. 그러다 보니 전기차를 개발할 때 필요한 전장, SW 기술을 갖춘 연구진이 OEM에는 없고 1차 협력사들에게 있다.
처음부터 바퀴 달린 컴퓨터라는 개념으로 접근한 테슬라는 컴퓨터라는 단말기에 바퀴를 달아 기능이 늘어갈 때마다 컴퓨터의 OS를 업데이트하면 된다. 반면에 레거시 제조사들은 엔진차라는 단말기에 하이패스, 서라운드뷰, 크루즈, 오토 트렁크 등 전자 기능이 늘어날 때마다 1차 협력사가 납품하는 모듈 제품에 작은 컴퓨터를 달아 덕지덕지 붙여왔다.
그래서 테슬라는 통합 관리가 쉽다. 반대로 내연차는 기능에 따라 작은 컴퓨터들을 추가하고 추가하는 방식이라 중앙 통제가 어렵다. 더욱이 그 덕지덕지 컴퓨터가 각기 다른 1차 협력사에서 개발해오는 데다가 기술도 영업비밀인 바람에 관리는 더욱 어려워진다.
우리도 전기차 플랫폼이 있는데...
그러면 내연기관이 아닌 전기차 전용 플랫폼은 어떨까? 폭스바겐, 현대자동차도 E-GMP 같은 플랫폼을 만들면서 처음부터 중앙통제형으로 만들어 테슬라처럼 할 수 있지 않을까?
전기차 플랫폼: 배터리를 차량 하부에 설치하고 모터를 전륜과 후륜에 배치하는 등 전기차의 특성에 맞게 설계한 자동차의 뼈대.
당연히 안 된다. 그렇게 하려면 자체 개발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내연기관 제조사들은 그 능력을 전부 외주로 돌려왔기 때문이다. 단순히 차에다가 개별 전장 기능을 더할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전기차라는 새로운 플랫폼에 모두 담아 통합 관리하려고 하니 정작 OEM은 기술이 없고 기술을 가진 1차 협력사가 주도권을 쉽사리 내줄 리도 없다.
테슬라의 모델Y와 현대차의 아이오닉5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바로 차이를 알 수 있다. 아이오닉 5는 현재 OTA 무선 업데이트가 안 되는데 빠른 전기차 출시를 위해 OTA를 적용할 만한 시간과 기술이 부족했던 탓이다. 여러 기능을 업데이트하려면 외주로 사 온 컴퓨터 여러 대를 일일이 조율해야 하는데 협력사마다 납품하는 전자기기가 한두 개도 아니고 쉬운 일이 아니다. 추후 모델부터는 OTA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지만 여전히 개별 기능의 업데이트를 1차 협력사들에게 맡겨야 하는 상황일 테고 레거시 OEM에게 전장 기능에 대한 주도권이 없다.
이렇듯 내연기관 자동차 회사들에게 전기차는 겉만 비슷하게 생겼을 뿐 너무나도 다른 영역이다. 기계공학에서 전자공학으로 바뀌는 영역이고 폴더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이다.
폭스바겐, 현대자동차, GM, 도요타 모두 25년에는 전기차 xx 종을 출시하겠다는 등 언론을 통해 당찬 포부를 밝히고 있어서일까. 아니면 햅틱과 아이폰 1세대처럼 외형이 비슷해서일까. 사람들은 기존 대기업들이 마음만 먹으면 쉽사리 테슬라와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듯하다.
나는 2011년 제대 후 첫 스마트폰을 구매하려고 당시 최신 모델이었던 삼성 갤럭시 S2와 모토로라의 아트릭스, HTC의 디자이어 HD, 블랙베리 토치를 놓고 어지간히도 비교하다가 결국 모토로라로 첫 스마트폰을 구매했다. 지금 모토로라와 HTC, 블랙베리는 어디로 가버렸나. LG조차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스마트폰 사업을 접었고 한 때 세계 1위의 핸드폰 기업인 노키아는 이제 패배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
처음엔 기존 핸드폰 회사들이 그럴듯해 보이는 스마트폰을 만들었다고 홍보했지만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 기존 핸드폰 강자들은 스마트폰 회사로 변신하지 못하고 실패로 돌아갔다. 이 작은 스마트폰도 거대했던 기업들이 안간힘을 썼지만 사업 전환에 실패했다. 심지어 전자기기에 강점이 있는 IT기업들이었는데도 말이다.
자동차 산업은 스마트폰보다 더 높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기술을 요함에도 왜 사람들은 내연기관 업체들이 손쉽게 전기차로의 전환에 성공할 것이라 믿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런 실패 사례를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노키아가 아닌 삼성 갤럭시처럼 Fast follower가 되려고 다들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짧게 쓰려고 했는데 글 쓰는 재주가 없어 너무 길어져버렸다. '내연기관 제조사가 테슬라를 따라가기 어려운 이유 2부'도 기대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