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날이야 한참 전에 잡아두었다만, 아무런 정리도 못한 채로 이삿날을 맞이하고 말았다. 정리를 ‘못’했다기 보다는 ‘안’했다가 맞겠다.
그 집에, 집이 주인의 취향을 반영한다는 흔한 표현을 갖다붙이면 잔뜩 서운해 할게 뻔하다. 집이 나를 닮아갔다는 표현은 너무 일방적이다. 우리는 함께 우리만의 취향과 습관을 만들었다. 집 베란다에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내고 싶어서, 화분을 들였고 자라나는 뿌리를 담아내느라 손에 흙을 묻혀가며 분갈이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꼬박 2년이 지났다. 한때는 스킨답서스라는 이름이 어려워 스킨다버스라고 잘못 부르곤 했는데, 어느새 아침밥은 못 먹어도 내새꾸들 물은 주고 나서야 출근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분갈이를 하다 흙내음에 취하고, 몬스테라가 임신했다가 새이파리를 낳는 모습에 꺄- 환호성을 지른다. 그 집을 만나 평생을 함께할 친구를 얻었다.
집에 있기를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났어도 자취방은 애정의 범주 속에 들어오지 못한 채 그저 씻고 자는 공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 집을 만나, 비로소 혼자 집에서 보내는 고요한 시간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 시간을 앙 깨물고 싶은 새빨간 석류처럼 만들고 싶었고 그러려면 사랑스러운 것들이 필요했다. 그런데 내게 사랑스러운게 뭔지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나 정말 나한테 무심했구나- 또 한 번 자백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오늘의 집에 소개된 집들을 따라하고 싶지는 않았다. 흥, 나도 내 취향대로 해볼테야라고 외치면서 일단 땡기는 걸로 마구 사들였다. 개중에는 카드 값만 늘려버린 실패작도 많았고 이불은 반품만 무려 4번을 했다. 무혈입성을 하지는 못했지만 꽤 선방했다. 그렇게 이름 모를 별 회사들의 개업을 기념하는 문구가 노란색 실로 새겨진 수건들은 모조리 버리고 40수 수건으로 욕실 찬장을 빼곡하게 채웠고, 바디제품을 머스크향으로 통일했고, 꿀잠을 도맡아줄 인형들을 사 모았고, 티포트로 각종 차를 끓여대느라 빈 삼다수 통이 창고에 수북이 쌓였고, 겨우 폼롤러를 하겠다면서 운동은 장비빨을 외치며 쇄골이 드러나는 필라테스복을 마련했고 (보는 사람도 없는데) 그걸 입고서 매일 온몸을 굴려댔다. 이러니 나는 그 집에서 내 취향을 선물받은 것과 다름없다.
물론 그 집에서 힘든 일들도 있었다. 그래도 그 집의 잘못은 아니었다. 따갑고 아픈 일들은 언제나 그렇듯 별다른 예고도 없이 불쑥 날 찾아왔고 하필이면 그 때에 내가 이 집에 살고 있었을 뿐이다. 그래도 어렵기는 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으로 견디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니까. 방황이 길지는 않았다.
셀 수도 무게지을 수도 없는 감정들이 스며들어 있는 그 집을 떠나는 일은 도무지 하고 싶지 않았다. 싫다고 떼써봤자 될 일이 아니었으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일이었다. 새 집도 계약했고 이삿날도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아무런 준비도 하기 싫었다. 며칠 밤을 거실에 노란 등을 켜두고 차를 마시며 감성팔이를 했고 이삿날 전날에는 집의 마지막 모습을 사진으로나마 담았다. 윤종신의 ‘내일 할 일’정도의 감성이었다. 무슨 집 떠나는데 이런 청승을 떨어대는지 나 스스로도 풉 웃음이 났지만 내 마음이그랬다.
결국 이삿날 아침은 밝았고 이사업체에서 뚝딱뚝딱 내 짐을 싸더니 그 집을 싹 비워버렸다. 그동안이 집 못떠나겠다며 징징대던 시간들이 참으로 무색하도록, 내 마지막 짐이 그 집을 나오는 순간에그 집과의 인연은 종료 당했다.
이사를 와서 하룻밤을 보냈다. 새 집에도 예전 집만큼이나 햇살이 쏟아지고 사랑하는 내새꾸들이 온몸으로 햇살을 받아내고 있다. 튤립구근이 새 집에 와서야 딸기같은 꽃을 피워냈다. 예전 집에서 매일 살펴주었는데도 꽃잎을 열지 않더니 이삿날에 맞추어 입술을 열었다. 그동안 꽁꽁 모아온 에너지로 꽃잎을 열어내는 모습을 가벼운 우연정도로 지나쳐버리기 싫어서 노트북을 열고 내 마음을 글로 새긴다.
이 곳에서 지금까지 내가 품어온 것들이 더 짙어지고, 이곳과 더불어 나를 정의할만한 또 하나의 취향이 찾아오기를. 피어난 튤립의 생명이 길지 않음을 알면서도 이아이만큼은 오래도록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