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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 Mar 05. 2022

간당간당했던 하루가 간당

엎어진채로 남기는 무쟈게 힘들었던 요즘의 기록

요즘은 일한테 속수무책으로 밀리는 중이다(이렇게 말하면 내가 일을 밀어내는게 아니니 죄책감이 덜하다?). 난 '일이랑 밀당한다'는 표현을 즐겨 쓴다. 일을 애정하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사랑하지도 않고 너한테 너무 빠지는 건 싫고 가끔은 밉기도 하니 우리 서로 필요할 때 찾고 관심없을 때 멀리하는 애매하고 적당한 관계가 되자-라는 묘한 표현.


소장 하나, 고소장 하나를 2주 내도록 손에 쥐고 있었다. 마음이 쓰이는 사건이라는 이유로, 좀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이유(핑계)로. 탈고를 못하면 난 무기력해진다. 음 어떤 표현이 좋을까. (난 요리는 못하지만) 상을 차린답시고 여러 음식 준비를 함께 하느라 어느 하나도 접시에 담아내지 못했는데, 이 냄비에 간을 맞추면 저 후라이팬에 간이 안맞고 그렇게 시소처럼 왔다갔다, 하다만 느낌. 이 정도면 적절한 비유일지도.


이 때에 난 불안해진다. 일근육이 녹는 기분 탓이다. 가까웠던 누군가 나에게 '넌 일근육이 참 탄탄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내가 하는 업무에 녹여 표현해본다면, 까다로운 사건들 그리고 많은 양의 사건들을 처리하다보면 일근육이 다부지게 자리잡게 되고 그로 인해 웬만한 강도와 수의 일들은 뚝딱뚝딱 쉽게 처리해낸다는 정도가 되겠지. 내가 갖고 있는 일근육은 유리알처럼 소중하다. 깨져버리면 어쩌지 전전긍긍. 이걸 만들어 내느라 많은 봄들을 창문으로만 맞이해야 했고, 인연들을 지워야 했으며, 양을 천마리쯤 세고도 잠들지 못한 밤들이 있었고, 닭장같은 사무실에서 일출을 (시간으로) 맞이해야 했다. 이런저런 것들 다 갖다붙이지만 제일 중요한건 내 이십대를 끓이고 휘젓고 굳혀서 가까스로 만든 존재라는 거다. 차라리 굳힌 몰드라면 녹을 염려는 없어 덜 불안할텐데 이놈의 일근육은 그런 존재도 아니다. 몸에 생기는 근육도 풀려서 살이 되는 걸 인지할 때도 섬뜩하기 짝이 없는데, 내 이십대를 바쳐 만든 일근육이 녹는다 생각하면 내 이십대가 통째로 무너지는 기분이다. 그냥 울고 싶어진다(실제로 어제 울었음).


근데 요즘들어 일근육이 아주 제대로 녹고 있다. 아주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뭉개지고 흘러내리는 중이시다. 얼굴을 팥죽색을 하고서는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데 까보면 별로 힘들만한 업무량도 아니다. 내 일근육 다 풀렸구나라고 생각. 이게 내가 늘 하는 방식이다. 내 손으로 내 뺨따구를 짝짝짝 때려가며 스스로를 벌하는거. 언제쯤 이런 학대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늘 노력은 하고 있다). 이 문제로 한참을 시달리다가 어제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근육도 붙었다 빠졌다 살도 붙었다 빠졌다 하는걸(그리고 난 이걸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다. 자주 해오다 보니 두려울게 없다. 게다가 살이 붙었을 때-그 오동통한 모습도 아주 가끔은 귀엽다) 일근육이라고 풀리면 안 될게 뭐람. 그러니 일근육이 풀린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걸 언제쯤엔 되돌려 놓겠다는 나만의 계획을 세우고 그때가 되면 되돌려 놓는 연습을 하자. 지금 내 모습은 아가리다이어터 정도로 비참하니 좀 우아해지자.


그리고 오늘 출근했다. 당연히 저런 연습같은게 잘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저리 마음 먹기 전보다는 훨씬 나았다. 소장 하나는 탈고했고 일근육이 일이 몰린 다음주 쯤엔 회복할 수 있도록 오늘은 기록을 쥐고 놓지 않는 연습부터 했다. 이만큼 했으니 장하다. 스스로 듬뿍 칭찬.


내 일터에는 일근육을 단련하느라 여념이 없는 많은 회원님들이 계신다(물론 일근육을 단련하라며 채찍질을 하는 트레이너분들도 계신다..). 각자의 방에서는 어두운 얼굴로 전자파가 뿜뿜 뿜어져 나오는 모니터 2대에 빨려갈 듯 일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래도 복도에서 마주치는 짧은 순간에나마 좋은 하루 보내라는 활기찬 인사를 건네고, 아직 봄 오려면 멀었으니 따뜻하게 입으라며 단도리도 하고, 힘들면 찾아와 넋두리도 하고, 별일도 아닌 일로 까르르 웃어도 본다. 오늘은 유난히 그 작업이 고마웠다. 나조차 미워하는 나를 위해 응원과 사랑의 말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 내 일의 내력벽이다.


혼자가면 빨리가지만 함께가면 멀리간다고 했다. 일과 밀당하며 일근육을 키워가는 이 여정이 멀기는 해도 외롭지는 않겠다. 이렇게 간당간당했던 오늘 하루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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