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며칠 몸이 많이 안좋았다. 오늘은 침대에서 내려와 땅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에고고 소리를 일정한 간격으로 연사했다. 내 일시적 동거인(여자)은 '니가 언제는 몸이 좋았냐'고 하더니 '내가 가까이서 보니 너는 죽을거같다는 말을 매일 한 번은 꼭 한다'고 했다. 엥, 생각해보니 정말이었다. 난 죽을거같단 말을 맨날 하는데 아직도 안죽고 잘 살아있다니 이건 내가 꾀병이 심하거나 의외로 몸이 튼튼하다는거 아닐까 전자는 아니라고 믿고 싶으니 나 몸 건강한가봐!!!라는 결론에 이르렀는데 이걸 말하면 등짝 맞을 거 같아서 참았다(잘했다).
세상은 쌀쌀맞아서 내 컨디션 따위는 안중에 없다. 예전엔 아프면 다 미웠다 누가 미운지도 몰라서 그냥 혼자 엉엉 울었다 아파서는 울지도 않으면서 미워서 울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미웠던 것 같다 세상은 쌀쌀맞아 날 살펴봐주지도 않는데 그 세상 살아내겠다고 나조차 날 살피지 않았으니 내가 야속했다. 그래도 이젠 나름 적응이 된 건지 시들파들하면서도 출근은 했고 정해진 업무는 마치고 가야겠다고 계획하고 얼른 준비서면을 하나 써냈다. 오 나 어른이 다 됐다 꺄룩.
늘 가던 병원에 (기어)갔다. 문진을 하길래, '4개월 전에 수액맞았어요. 이번도 과로에요. 흑마늘 수액 놔주세요'라고, 거의 의사 책상에 몸을 뉘인채로 헐떡거리며 답했다. 선생님은 지난 번과 똑같은 말을 했다. 스물아홉이면 몇 밤을 새고도 건강할 나이다, 어쩌려고 그러냐, 일을 줄여라, 피검사를 해서 영양상태를 봐야한다... 제발..! 제발 빨리 제 팔에 바늘을 꽂아주세요, 저는 스물아홉이기를 포기한지 오래랍니다, 라는 말을 속으로 열번도 넘게 외쳤다.
혹시나 몰라 신속항원검사를 했는데, 오모나 양성이었다. 낯선 상황은 아니었으니 차근차근 절차대로 따라서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같이 시간을 보냈던 사랑하는 사람들이 문제일 뿐이었다.
난 엄마한테 비밀이 없는 편인데, 딱 두개가 비밀이다. 아픈거랑 사랑하는거. 한때엔 엄마가 왜 내가 사랑하는걸 그토록 염려(싫어)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 때 사랑은 내게 재밌는 유희거리 정도였지만 엄마는 그때부터 내가 맞이할 수밖에 없는 불우한 미래를 아셨던거다. 즐겁게 달릴 줄만 알았는데, 돌부리에 걸리기도하고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기도 하고 여름이 와서 앓기도하고 주저 앉아 멈추기도 했다 그걸 겪고보니 엄마가 이해됐다 내가 사랑하는건 결국 내가 아픈거랑 다를바 없는 거구나. 어쨌든 아픈건 엄마한테 비밀이지만 코로나를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내가 엄마의 방문을 피할 길이 없으니).
이실직고를 한 지 4시간 만에 구호물품이 도착했다. 야무지게 포장한 박스 속에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가득했다 물론 무시무시한 홍삼도 가득했다. 아직 식지도 않은 소고기국을 냄비에 덜어 다시 데웠고 다른 반찬 하나 없이 밥이랑 국만 먹었다. 국그릇에 담긴 소고기국을 보는데 무당벌레만한 눈물이 쏙 올라왔다. 먹고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음식이었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이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서, 엄마 아빠의 건강 문제로 집에 가지 못한지 너무 오래였다. 그렇게 먹기 힘들던 너를 결국 아파서야 먹는구나. 사랑을 미루지 말아야지. 소고기국에서 이상한 결론이 내려졌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