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무물 | 17번째 이야기
운전을 처음 하던 때를 기억해요. 로봇처럼 굳은 팔로 미친 듯이 정면, 사이드 미러와 백미러를 쳐다보고 있었어요. 자동차 속 bmg은 사치였어요. 동승자의 유쾌한 농담은 소음이었고, 앞을 보기도 힘든데, 내비게이션도 따라가려니 죽을 맛이었어요. 오직 제가 기댈 수 있는 건 차 뒤에 붙은 ‘초보 운전입니다' 스티커였죠. 그렇게 도착지에 무사히 주차를 하면 온몸에 식은땀이 나는 듯했어요.
저는 새로운 걸 배울 때면 마냥 즐겁고 기대되기보다 겁부터 나요. 잘할 수 있을까, 내 실수가 누군가에게 위협이나 궂은일이 될까 무서웠어요. 누군가에게 민폐가 되는 걸 즐기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이렇듯 새로운 걸 배울 때면 항상 몸이 불편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확대경 마냥 커져 보여요. 나의 행동 하나하나를 누군가 주목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숨이 가빠와요.
그러던 중 이하늬 영상을 하나 보게 되었어요. ‘이 나이에도 새롭게 배울 게 있다니, 너무 좋아!‘라며 밝게 웃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었어요. 이 영상을 보며 제 반대편에 서 있는 이하늬가 무척 새롭게 느껴지더라고요. 나에겐 이 부담스럽고 불편한 상황을 누군가는 즐길 수 있구나. 왜 저는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요? 누구나 처음은 있다는 위로보다 아직도 나에게 처음인 게 있다는 즐거움이 더 마음에 들었어요.
그다지 오랜 시간을 살아 본 것도 아니고 이것저것 다 해봤다 자신할 수 없어요.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다 해볼 수 있는 나이도 아니었고, 다양한 경험을 해본 것도 아니죠. 그렇다면 당연히 새로운 게 많을 수밖에 없고 그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걸 스스로 인정해야겠더라고요.
올해는 더욱 새로운 걸 시도하고 있어요. 일에 있어서는 ’ 실수하면 안 돼!‘라는 부담감이 컸다면 내 삶에서는 조금 더 편하게 ’ 실수하고 실패해도 되니 새로운 걸 해보자!‘라는 마음가짐이랄까요? 이제 막 시작한 뜨개질은 꽤나 매력이 있어요. 뭔가에 몰입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요즘, 하나에 시간을 후딱 보낼 수 있는 취미가 있다는 사실이 좋더라고요. 잡생각을 달고 달리던 아침 러닝도 조금씩 몰입도가 높아지고 있어요. 나의 시도가 다른 습관들에도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니, 신기할 뿐이에요.
운전을 배우고 있는 키티언니가, 그다음 배우고 싶은 게 무엇일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운전할 때마다 혼이 나는 초보운전자 키티입니다. 어렵지만, 매번 조금씩 늘고 있어서 재미있어요. 이렇게 무언가 배우고 조금씩 늘어가는 실력에 신나 하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네요. 회사에서 주니어를 넘어선 이후로는 세상 다 산 늙은이 같았는데 말이죠. 테니스도 그렇고, 운전도 그렇고 시작한 이후 다시 어려진 기분이 듭니다. 모르고 살았던 새로운 세상이 열렸어요. 좁디좁았던 제 세상이 한 뼘 넓어졌습니다. 배움이란 그런 것 같아요. 내가 사는 세상에 균열이 생기고 넓어지는 일.
그러면서 또 배우고 싶은 것이 생겼습니다. 좀 생뚱맞지만, 메이크업이에요. 한동안 옷도 안 사고 좋게 말해 내추럴하게 살았습니다. 원래도 옷을 많이 사거나 화장을 빡세게 하며 꾸미는 스타일도 아니었지만, 근래에는 정말로 외모에 신경을 안 썼습니다.
내면과 일에 집중하기 위함이냐고 물으신다면, 전혀요! 코로나 기간 동안 재택근무를 한 탓도 한몫하겠으나, 솔직히 방치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휘뚜루마뚜루 손에 잡히는 대로 입고 메이크업도 하는 둥 마는 둥하며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았던 적도 많아요.
거울을 가만히 보다가 문득 ‘내가 이렇게 생겼나’ 싶었어요. 분명 매일 보아온 얼굴인데, 이목구비를 제대로 살펴본 일은 없었던 거죠. 작년에는 제 생각과 감정에 대해 알아보았으니 올해는 제 외모와 친해지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내 얼굴의 장점도 알아보고, 피부도 챙기고 컨디션도 돌보며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려고요.
운전을 배워 활동 반경을 넓히고, 메이크업을 배워 제 외모를 가꾸는 일련의 노력들이 일상에 만족하고 시야를 넓히는 인생력을 키운다는 생각이 듭니다.
추신) 사실, 한번 새로운 세상을 맞이했습니다. 스스로 확신의 가을 웜톤이라 자부했는데, 자격증만 따지 않았지 퍼스널 컬러 전문가급으로 탐구한 지인이 절 ‘겨울 쿨톤’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립스틱이며 옷이며 겨울 쿨톤에 맞춰 매치해 주는데 가을 웜톤보다 훨씬 낫더라고요..! 세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