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임신, 출산을 겪으며 느낀 사랑의 진화된 형태에 대한 고찰
한때 나는 설렘이 사라진 오래된 남녀관계에서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생각한 적이 있다. 설렘이 사라진 이후에 ‘지금은 처음의 뜨거운 사랑은 가고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을 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저 지금은 처음만큼 사랑하지 않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이에 이젠 사랑이 없어졌다고 말할 수 없어서 하는 변명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장 관계를 끊을 것이 아니라면 관계 유지를 위한 그럴듯한 변명거리가 필요할 테니까. 아무리 뜨겁게 사랑한 사이이더라도 관계가 오래될수록 서로가 익숙해지고 사랑은 빛바래갔다. 그렇게 빛바랜 관계에서 남는 건 사랑이 아니라 정인 것 같았다. 남녀 간의 사랑이라기보다는 친구사이의 우정에 더 가까운.
결혼이 두려웠던 가장 큰 이유는 그러한 사랑의 유효기간 때문이었다. 결혼은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을 하는 것인데 평생을 사랑할 수 없다면, 사랑 없는 관계는 얼마나 공허할까. 그냥 정으로 산다는, 결혼한 많은 이들의 그 시큰둥한 얼굴이 나는 두려웠다. 하지만 사람은 언젠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오늘을 살 수밖에 없듯이, 나는 사랑이 식을 것을 알면서도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결혼을 했다. 앞으로 있을 부정적인 일들만 생각하면 사실 인생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그런 패기 있는 마음으로 한 선택이었지만 사랑이 식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채 일 년이 되지 않았을 무렵, 나는 임신을 했다. 계획한 건 아니었는데 어느 날 아이가 찾아왔다. 우리가 부모가 된다니.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찾아온 아이여서 우리는 기쁨보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먼저 느꼈지만 아이를 낳을지 말지 고민하고 있던 중이었기에 운명처럼 기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임신 동안 나는 뱃속의 아이를 길러내느라 온통 에너지를 빼앗겨 기운이 없거나 잘 못 먹는 날들이 많았고 남편은 그런 나를 돌보느라 동분서주했다. 그동안 나는 연애 때나 신혼 초, 가끔 감기나 장염 등으로 몸이 아파 남편의 돌봄이 필요한 순간이 있긴 했었지만 특별히 돌봄이 필요할 정도로 심하게 아프다거나 오랜 기간 아팠던 적은 없었었다. 그런데 임신을 하게 되니 오랜 기간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가 되었고 그런 나를 위해서 애쓰는 남편의 모습을 처음 제대로 보게 된 것이다. 남편은 내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찾아오고 내가 미뤄놓은 집안일을 부지런히 처리하고 나에겐 한숨 푹 자라고 다정한 말을 건넸다. 그런 남편을 보며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마음 안에 있는 서늘한 욕조에 따뜻한 물을 틀어놓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은연중에 나는 임신을 하고 나면 우리의 사랑이 어쩌면 더 빠르게 식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자꾸 불어나는 몸, 극심한 피로로 인해 늘어난 짜증, 게으름, 음식을 고르는 데 까다로워진 입맛…. 임신으로 인한 나의 변화는 하나도 사랑스럽지 않았기에 사랑이 식어간대도 전혀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랑이 식는다고 해도 우리의 관계를 위해,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의리를 지키기 위해 조금은 노력해 주겠지,라는 식으로 상처받지 않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내 눈앞에 있는 건 사랑이었고 나는 분명한 사랑 앞에 마음을 녹였던 것이다.
출산예정일이 지났음에도 아이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던 어느 날, 산부인과 검진 중 의사 선생님께서 아이가 힘들어하는 것 같으니 진통을 기다리지 말고 유도분만을 해야 한다고 하여 다음 날 아침 일찍 병원에 입원했다. 살면서 이래저래 잔병치레는 많았지만 병원에 입원해야 될 정도로 아팠던 적은 없었던 터라 입원을 하는 과정은 낯설었고 이제 내 몸이 다른 사람들의 손에 맡겨질 생각을 하니 두려웠다. 또 요즘은 옛날과는 달리 출산을 하면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은 많이 없다지만 그래도 혹시나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나를 더 무섭게 했다. 그런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허둥대는 내 옆에서 남편은 필요한 입원수속을 밟고 가족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내가 다른 것들은 걱정하지 않고 오직 출산을 하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입원 후 분만 촉진제를 맞으며 분만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유도분만을 진행하던 중 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아 제왕절개를 권유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나는 제왕절개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기에 이대로 유도분만을 계속 진행하고 싶다고 고집을 피웠다. 유도분만을 하다 보면 인위적으로 자궁을 수축시키는 것이니 당연히 아이가 힘들어지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제왕절개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기 위해 의료진들과 열심히 이야기하고 내 의견을 지지해 주었다. 하지만 계속 상황은 좋지 않아 마침내 의료진들은 제왕절개를 준비하기에 이르렀고 나는 내 몸인데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괴로워했다. 그러자 남편은 나가서 다시 한번 의료진들에게 이야기해 보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몇 분 후 다시 온 남편은 정말로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 맞고 이제는 어쩔 수 없을 것 같다고 나를 위로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기 위해 마지막까지 애쓴 남편이 이젠 진짜 수술을 해야 되는 상황이 맞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니 억지를 부리고 있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나는 수술실에 들어갔다.
막상 수술실에 들어가 빠르게 하반신 마취를 하고 나니 그동안 계속되던 진통도 느껴지지 않고 수술이 두려웠던 마음도 편안해졌다. 하반신이 마비된 동안 제왕절개는 엄청나게 빠르게 이루어졌다. 아이는 무사히 나왔고 탯줄을 세 번이나 감고 있었다.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던 엄마 때문에 고생하며 나온 아이를 보며, 탄생의 기쁨과 함께 미안함의 눈물이 나왔다.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 수술실 밖으로 나가고 나니, 나는 마음이 더욱 편안해졌다. 그리고 하반신이 마비되어 있으니 아무런 고통도 없어 그렇게 무섭다고 난리 쳤던 게 무색하게 제왕절개가 생각보다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수술이 마무리되는 과정을 기다리며 나는 그저 빨리 병실에 가서 남편에게 이 모든 것들을 얘기해주고 싶었다. 제왕절개라는 게 생각보다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수술실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그렇게 난리를 치던 내가 너무 민망할 정도였다고, 걱정시켜서 미안하다고.
수술 후 침대에 실려 병실에 돌아오니, 허둥대며 나를 맞이하는 남편의 얼굴이 너무나 울상이었다. 아이는 건강하다고 소식을 전하며 나는 괜찮은지 연신 물어보는 남편에게 나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고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수술이란 게 생각보다 괜찮더라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남편은 내가 수술실에 들어간 사이에 병실을 1인실로 옮기고 가족들이랑 연락을 하고 갓 태어난 아이를 만나 건강한 모습을 확인하고 사진을 찍는 등 본인이 했던 일들을 열심히 이야기했다. 그리고 내 양말을 보여줬다. 내가 수술실에 양말을 신고 들어갔었는데 수술을 준비하며 의료진들이 양말을 벗기고 그 양말을 남편에게 가져다준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양말이 하필 구멍이 난 양말이었던 것이다. 죽을상을 하고 애처롭게 수술실에 끌려가는 나를 보내고 마음이 너무 좋지 않은 채 있었는데 양말을 받았다고, 그런데 양말이 너무 해져있어서 좋은 양말 하나 사줄걸 하는 마음이 들어 눈물이 났다고. 처음에 웃으며 말하다 점점 감정이 북받쳐올라 아이처럼 우는 남편을 보았다. 나도 웃으며 ‘나 양말 많아, 버릴 타이밍을 놓쳐서 계속 신다가 그렇게 된 거야’라고 말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남편의 눈물을 보며, 내가 수술하러 들어간 사이 남편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짐작이 갔다. 나는 막상 수술실에 들어가고 나니 아무렇지도 않아서 그전에 심각했던 상황들을 잊었는데 밖에서 그는 그런 상황을 모른 채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발을 동동 굴렀을 생각을 하니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런 게 사랑인 건가 하고. 수술 후 퉁퉁 부은 얼굴, 헝클어지고 기름진 머리, 피와 분비물이 묻은 환자복 차림의 나를 보며 평소에 더 좋은 걸 많이 사줄걸 하면서 눈물 흘리는 남편. 평소에 좋은 거 많이 사줬으면서 뭘 더 사줄걸 하면서 후회를 했던 건지, 양말은 그저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사느라 해진 양말을 잘 살펴보지 않아 신은 것일 뿐인데…. 구멍 난 양말을 손에 들고 웃다가 울다가 나는 마침내 온기로 가득한 욕조에 온몸을 푹 담근 사람처럼 온몸이 따뜻하다 못해 흐물해져버렸다.
어쩌면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사랑이 진짜 사랑이 아니었던 걸까. 둘 중 하나에만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나는 오히려 지금의 사랑이 진짜 사랑인 것 같다. 지금의 사랑은 처음의 설레는 사랑이 사라진 것에 대한 변명 같은 것이 아니다. 그저 변화된 다른 형태일 뿐인 것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지금 우리의 사랑은 그 이전보다 더 높은 단계의 사랑이다. 단단한 허물을 깨고 나와야만 도달할 수 있는, 수없이 많은 담금질을 견뎌야만 만들어질 수 있는, 사랑 그 이상의 사랑. 어쩌면 그냥 정으로 산다는 많은 부부들도 사실은 이런 사랑을 표현하기 낯간지러워 그렇게 시큰둥한 얼굴로 가장했던 것이 아닐까. 오랜 세월, 온갖 고난과 기쁨을 겪으며 그 속에서 이러저러해도 결국 서로의 곁에 남아 모든 것을 함께한 한 사람. 기쁠 때나 슬플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결국은 내 곁에 있어주는 단 한 사람 존재이지 않나. 오랜 세월 그 모든 걸 함께한 그 사람을 향한 마음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일까. 우리 부부는 이제야, 진짜 사랑을 향한 문에 들어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