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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연 Mar 11. 2024

너무 예쁘지 않은 이름 짓기

모리에게 쓰는 두 번째 편지

사랑하는 내 딸, 모리야, 안녕? 오늘도 뱃속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니? 갈수록 요란하게 배가 꿀렁거리는 것을 보니, 네가 엄마보다 더 알차게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아 웃음이 나곤 해. 요즘 매일매일 엄마와 아빠는 네 이름을 뭘로 지어야 할지 고민 중이야. ’ 모리 ‘라는 이름이 있는데 또 무슨 이름이냐고? ’ 모리 ‘는 뱃속에 있을 때의 이름이고, 모리가 이제 엄마 뱃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쓰일 정식 이름이 필요하거든. 모리는 어떤 이름을 갖고 싶어? 예쁘고 특별한 이름? 아니면 평범하고 무난한 이름? 아니면 투박한 이름? 여성적인 이름? 남성적인 이름? 중성적인 이름?


  어렸을 적에 엄마는 너무 흔하고 평범한 지금의 이름이 싫어서 좀 더 특별하고 예쁜 이름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었어. 판타지 소설이나 순정만화에 나올 법한 예쁜 이름들 말이야. 그때 엄마는 특별하고 예쁜 이름을 가진, 특별하게 예쁜 동화 속 공주처럼, 그렇게 예쁘고 특별하게 살고 싶었던 것 같아. 너무 흔하고 평범해서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여기저기서 만날 수 있고 한번 들으면 아무도 쉽게 기억하지 못하는 지금의 이름은 왠지 시시하다고 생각했지. 그런 엄마의 어릴 적 마음을 떠올려보면 어쩌면 모리도 그런 특별하고 예쁜 이름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


  하지만 엄마는 요즘 뭐가 되었든 너무 예쁜 이름은 짓고 싶지 않다고, 오히려 아주 평범하고 흔해서 어찌 보면 투박하게도 느껴지는 이름을 짓고 싶다고 생각 중이야.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냐고? 너에겐 조금 충격적인 소식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야. 그 특별하게 예쁜 이름처럼 그렇게 예쁘게, 마냥 예쁘게만 너를 키우고 싶지 않아서야.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너를 그저 예쁘게만 아껴주고 싶은 마음을 애써 꾹꾹 눌러 삼키고, 엄마는 너를 평범하게, 때론 투박하고 무심하게 키워낼 거야. 엄마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한번 들어봐 줄래?


  예쁘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실 ‘예쁘다’라는 표현엔 아무 죄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의 생각 속엔 여러 가지 사회적 의미들이 덧붙여져 그 덧붙여진 의미들 때문에 그 단어 자체가 부정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어. 요즘은 그런 의미들이 많이 변화하고 있지만, 엄마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꼈던 ‘예쁘다’라는 말이 주는 의미는 그다지 좋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 하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느꼈던 건 아니야. 그 말의 진짜 속내를 알기 전에는 그 말이 너무나 달콤하여서 엄마는 그 안에 갇혀 언제까지나 늘 예쁜 사람이고 싶었던 적도 있었어. 예쁘고 착해서 늘 칭찬받는, 모두의 사랑을 받는 그런 사람. 누군가가 엄마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여도 엄마는 늘 예쁜 사람이고 싶었기에 그 사람을 냉정히 거절하거나 그 부당한 요구에 화를 내는 우악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지. 부당하고 폭력적인 요구를 하는 누군가에게까지도 상냥하고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애쓰는 스스로를 자각하고 난 후, 엄마는 그 ‘예쁘다’라는 말이 싫어졌어. 엄마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던 그 사람이 엄마에게 늘 하던 말이 바로 그 ‘예쁘다’ 였거든.


  누구보다 가장 예쁜 사람이고 싶어서 오직 나 자신만 생각하던 때도 있었어. 가장 예쁘고 좋은 것은 내 것이었으면 좋겠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내가 더 예쁘고 좋은 것을 가져서 다른 이들보다 더 우월해진 그 느낌을 즐기고 싶었지. 하지만 그 우월감 끝엔 결국 허무함만 남았고, 어쩌다 가장 예쁘고 좋은 것을 손에 넣지 못하는 날엔 좌절감과 우울감이 더 짙게 밀려왔단다. 그리고 그렇게 혼자만 예쁜 것을 독차지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채 살다 보니 엄마의 주변엔 진심을 나눌 수 있는 관계들이 다 사라져 버렸지.


   모리야, 엄마는 네가 남들 눈에 예쁜 사람이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를 진심으로 위하는 듯 ‘예쁘다’라는 칭찬으로 너를 들뜨게 하고, 실은 자신의 뜻대로 너를 이용하려 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예쁘고 착한 사람일 필요는 없어. 그 부당한 요구를 당당히 거절하는 순간, 그 사람은 너에게 더 이상 예쁘다고 말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예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야. 그건 그 사람 생각일 뿐이야. 또 다른 누군가는 그런 당당한 네 모습을 보며 예쁘고 멋있다고 생각할 테니까. 가장 중요한 건 너 자신을 속이지 않는 거야.


  때론 남들 눈에 예쁜 모습이고 싶어서 다소 거칠어 보이거나 힘든 일, 실패할 수도 있는 일에 도전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 때가 있을지도 몰라. 왠지 그런 일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남들 눈에 꼴사나워 보이고 예쁘지 않을 것 같다고 느낄 수도 있어. 하지만 그게 네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가 정말 중요할까? 흙먼지가 묻더라도, 생채기가 나더라도, 그을음이 생기거나 물에 폭싹 젖어버릴지라도 그게 네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예쁘다는 말에 발목이 잡혀 그 일에 도전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으면 해.


  혼자만 가장 예쁘고 좋은 것을 차지하려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도 말렴. 너 자신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에게 모조리 양보하라는 말이 아니야. 네 생각, 욕망도 표현하되 때로는 넓게, 길게 보고 양보할 줄도 알아야 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같이 모색해 보는 것도 좋고. 이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그렇게 주변 사람도 잘 챙기는 사람이 되고 나면 알게 될 거야. 가장 예쁘고 좋은 것을 혼자만 차지해야 예쁜 사람이 되는 건 아니구나, 베풀고 나누어서 여럿이 함께 웃고 있는 그 모습들이 진짜 예쁘고 아름다운 것이구나, 하고 말이야.


  모리야, 엄마가 네 이름 하나를 지으며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이런 수많은 생각 끝에 결국 어떤 이름을 짓게 될지 정말 궁금하지 않니? 엄마도 너무 궁금하다. 예쁜 이름 때문에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했지만, 제일 중요한 건 엄마와 아빠 눈엔 네가 어떤 모습이든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는 거야. 다른 건 다 잊더라도 그것 하나는 절대 잊지 마. 사랑한다 모리야. 오늘도 뱃속에서 즐거운 하루 보내렴.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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