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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연 Jun 06. 2024

임신을 하니, 자꾸 눈물이 난다

눈물의 의미

  마음에 형태와 질감이 있다면, 지금 내 마음은 아주 부드럽고 촉촉하여 손으로 누르면 푹푹 눌리고 다시 솟아나는 마시멜로우 같을 것이다. 요즘 내 마음은 은은한 온기에도 쉽게 녹아내려 흐물흐물해지곤 한다. 분명 예능 프로그램인데 '가족' 코드가 들어간 포인트에서 뜬금없이 눈물이 고이고, 대놓고 부모님의 사랑을 담고 있는 글을 읽을 땐 흐르는 눈물을 닦느라 젖은 손으로 책장을 넘기기 힘든 지경이 된다. 자고 있는 남편의 얼굴을 보면 사랑스러움과 동시에 먼 훗날 한날한시에 손잡고 죽지 않는 이상 결국은 헤어져야 하는 운명임을 떠올리며 슬프고 애틋한 마음이 든다. 무성한 초록 잎사귀, 노랗게 빨갛게 물든 단풍, 간밤에 조용히 내린 새하얀 눈, 재잘재잘 피어난 개나리와 눈송이처럼 내려앉은 벚꽃. 아이가 뱃속에 있는 동안 맞이한 모든 계절의 변화들이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게 마음에 새겨진다. 어쩌면 내가 아이가 된 것도 같다. 별 것도 아닌 일에 까르르 웃다가도 이내 쉽게 토라져 눈물짓는 아이.


  임신을 하면 눈물이 많아진다더니, 요즘 내가 딱 그렇다. 나는 요즘 시도 때도 없이 울고 있다. 슬퍼서 울고 기뻐서 운다. 원래도 눈물이 많은 편이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내가 봐도 별거 아닌 순간에 이미 눈에 눈물이 가든 찬 나를 발견하면 나 스스로도 황당해지곤 한다. 게다가 그 모습을 남편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상당히 민망해진다. 남편은 내가 왜 우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해 당황해하고 나도 내 울음의 의미를 납득할 만하게 설명해 낼 재간이 없다. 몇 번 그런 일들이 반복되니 임신으로 인한 감정 변화임을 알고 서로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왜 임신을 하면 이런 마음이 되는 걸까? 분명 내 안에서 만들어져 나왔지만 낯선 새 생명체를, 보자마자 안쓰럽고 어여삐 여길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는 걸까? 하긴, 냉철하고 이성적인 마음가짐으로 아이를 바라본다면, 이미 뱃속에서부터 내 몸의 장기들을 이리저리 밀어내 자리를 잡고 내 몸에 들어오는 중요한 영양분들을 모조리 먼저 가져가면서 성장하는 어떤 존재를 열 달 동안이나 키워내고자 하는 마음부터 애초에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생명체가 마침내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못하는 무력한 상태로 내 앞에 나타났을 때, 또다시 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내어주며 돌봐줄 수 있으려면 적어도 아주 부드럽고 촉촉한, 그래서 아주 연약해지기까지 한 마음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과정을 겪고 나를 낳고 키웠을 엄마의 마음에 가 닿는다. 아주 말랑하고 부드러운, 스펀지 같은 마음의 틈새로 그동안 받아왔던 부모님의 사랑이 스며든다. 그 사랑은 잠깐 불타오르고 이내 다 타서 재가 되어버리는 짧은 불꽃이 아닌, 아주 먼 옛날부터 엄마의 엄마, 또 그 엄마의 엄마로부터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아주 끈끈한 것임을 느낀다. 긴 시간이 지나도 그 온기를 이어가는 숯처럼. 너무 뜨거운 불꽃은 어쩌면 내 아이에게 해가 될까 불꽃은 애써 안으로 숨기느라 새까맣게 타버린 마음을 안고 강인하게 아이를 키워낸 수많은 엄마의 사랑. 나는 이제야 그 사랑이 내 안에 스며드는 것을 느끼고 내 아이에게 그 사랑을 줄 준비를 하는 것 같다. 아마도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그렇게 성긴 마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임신으로 인한 몸의 변화가 아이를 성장시키면서 동시에 이미 다 큰 줄 알았던 나 자신도 성장시킨다. 많아진 눈물이 비처럼 내려 수위가 높아진 마음의 강물이 자꾸 범람하며, 오직 나만 담을 수 있었던 황량하고 거친 땅이 비옥해진다. 더 비옥하고 성장한 마음으로 내 아이를 잘 키워내고 싶다. 더 나아가 이 사랑의 마음을 아낌없이 베풀며 살고 싶다. 언젠가 귀여운 아이였을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그들을 사랑으로 키워냈을 부모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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