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고맙습니다-
대학교 1학년 3월 어느 날.
낯설었던 대학 생활, 풍물패에 가입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느라 바쁜 하루를 보냈을 평범한 어느 낮으로 기억한다.
시골에서 농사짓던 아빠가 학교 앞으로 찾아왔다.
화창한 날씨. 그리고 학교 후문 미니스톱 편의점.
아빠와의 대화는 그때까지 어색했고, 둘의 만남은 길지 않았다.
아빠는 망치가방에 옷가지들을 가득 넣어왔고,
어디 가냐는 내 질문에 일하러 간다고 하셨다.
예나 지금이나 농사일은 1년 365일 뼈 빠지게 일을 해도, 남는 게 없다.
농사일로는 가족 생계를 책임지기 어려웠고, 아빠는 농사일이 바쁘지 않을 때 ‘노가다’를 가셨다.
어쩌면 농촌의 흔한 일상일지도 모른다.
아빠는 쉼을 모르셨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면서 6남매의 둘째로 어렸을 때부터 학교 공부를 할 기회는 거의 없이
할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함께 하시면서 일평생 땅과 함께 살아오셨다.
서운한 맘 왜 없겠냐만 아빠는 일생동안 공부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것에 대해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으셨다.
오히려 자기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지은 건물이 얼마며, 철탑은 또 얼마인지
술기운을 빌려 자랑삼아 말씀하시기도 했다.
어린 나이 난 그게 대단하단 생각보단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왜 우리는 남들처럼 풍요롭지 못한 지
다른 친구들의 부모님들과 비교하며 보냈었다.
학교 후문 앞에서 만난 아빠와의 만남도
아빠가 학교를 찾아왔다는 반가움보다는 아빠의 그런 모습을 친구들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컸던 거 같다.
아빠와의 만남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는 길,
망치가방을 메고 또 일을 하러 가시는 아빠의 뒷모습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머릿속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아빠의 망치가방엔
가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이 가득 담겨있지 않았을까?
망치가방을 메고 현장으로 가시는 아빠의 발걸음은 무겁고, 서럽고, 힘겹기보단
큰 사랑으로 성큼 걷는 발걸음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지금 내 어깨엔
아빠의 망치가방과 같은 망치가방이 있다.
망치가방을 메고 보니 그때 아빠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가방에도
삶의 애환과 힘겨움보다는 내가 책임져야 할 것들에 대한 묵직한 것으로 가득 채워지길 바라며
오늘도 가방을 메고 일터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