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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돌핀 Jul 17. 2024

손가락이 안 펴진다

아침이 오는 게 두렵다.

새벽 4시 30분.

모닝콜이 울린다. 아침잠이 많은 나에겐 모닝콜은 필수다. 5분 간격으로 4개를 맞춰 늦잠이라는 비상사태도 방지하고, 최근에는 ‘반야심경’ 벨소리를 구해 모닝콜 알람음으로 설정을 했다. 뭔가 아침에 번쩍 정신이 들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별의별 수를 다 쓴다. 이렇게 한 달 정도 수면 패턴을 바꿨더니 이제는 새벽 4시 정도면 눈이 저절로 떠진다. 그리고 ’ 음~좀 더 자도 되겠군 ‘ 하는 여유를 부리며 눈을 더 감고 있는다. 원래는 현장 일을 하더라도 아침을 좀 부지런히 보내야겠다는 계획도 있었다. 4시 정도에 일어나서 아내의 아침 식사도 미리 준비를 해놓고, 나도 원두를 갈아 드립커피를 내려 마시며 하루를 시작해야지 하는 로망 아닌 로망이 있었으나 지금까지 한 번도 실행에 옮긴 적은 없다. 과일 한번 깎아둔 정도.


현장일 시작하고 초반 일주일정도는 아침에 눈뜨고 옷가지들 챙겨 나오기 바빴다. 지하철 첫차를 타야 6시 20분까지 도착을 해서 아침을 먹고 현장에 출근할 수 있다. 현장일 전까진 아침은 보통 먹지 않았다. 아침은 간헐적 단식이랄까. 하지만 일을 하면서부터는 아침은 무조건 먹는다. 몸을 쓰는 일이라는 것은 결국 몸의 에너지를 원천으로 힘을 쓰는 건데 연료가 들어가 줘야 오전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하루 2만 걸음 가까이 걷지만 그만큼 먹기 때문에 살은 빠지지 않고 오히려 찌는 날도 있다. 분명 현장 일 하면 살이 쪽쪽 빠진다고 했는데, 아직 그런 날은 나에게 오진 않았다. 아마 영영 안 올지도…


일이 익숙해지고 생활리듬도 바뀌니 전날 준비물도 다 챙겨놓고, 아침도 부산스럽진 않아 졌다. 물론 지하철 타곤 바로 기절 이긴 하지만. 이 또한 애초 계획은 지하철에서 책도 읽고, 그날 뉴스도 챙겨봐야지 했는데 좀 보다 보면 눈꺼풀이 감겨있다. 눈꺼풀이 현장의 유로폼(거푸집) 보다 더 무거운 거 같다.


생활은 이렇게 차츰 익숙해지고 적응하고 있는데

나를 괴롭히는 가장 큰 복병은 바로 손가락이다.



어느 날 아침 모닝콜 소리에 깨 일어났는데 손가락이 안 펴졌다. 어? 뭐지? 이거 내손이 아닌 거 같은데? 주먹을 쥐려고 하니 주먹이 쥐어지지 않았다. 다른 손의 힘을 빌려 손가락을 오므렸다. 아~~ 하는 통증이 세게 왔다. 양치질을 하려고 하는데 칫솔을 쥘 수가 없었다. 충격 그 자체였다. 일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노가다 직업병인가.


형틀목수들이 모여있는 오픈카톡방에 증상을 말하고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10년 차 이상인 숙련기능공분들은 하나같이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된다고, 걱정 말라고 했다. 그래도 너무 아프면 손가락방아쇠증후군일 수 있으니 병원을 가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각자의 초보시절 추억을 이야기해 줬다. 동병상련이란 이런 건가.


신기한 게 아침에 그렇게 아프던 손이 현장에 도착하면 어느 정도 괜찮아진다. 몸이 각성한 건가. 지금은 현장이니 일해야 한다고.

어느 날은 가운데 손마디랑 둘째 손마디가 너무 아파 현장에서 폼을 나르는데도 지장이 있어 병원에 갔다.

손을 많이 쓰냐고 해서 그렇다고 했더니, 한쪽 손은 방아쇠증후군이라고 하고, 다른 손은 과잉 사용을 해서 염증이 생겼다고 했다.

주사치료를 하고 물리치료를 했더니 좀 나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아침마다 손가락과의 전쟁은 진행형이다. 많은 숙련기능공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위안을 하며 버텨보고 있지만 이게 괜찮아지는 건지, 아님 몸이 그냥 ‘이놈의 주인양반은 이렇게 신호를 줬는데도 답이 없구먼. 그냥 버텨야지’ 생각하며 통증마저도 무뎌져 버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지만. 아마 후자이지 않을 듯싶다.


형틀목수 그중에서도 초봉의 주되는 일은 필요한 자재를 찾아 사수 반장님께 날라다 주는 것이다.

예전에는 거푸집을 합판을 잘라서 직접 제작을 했지만 지금은 유로폼을 주되게 쓴다. 유로폼의 종류는 다양하다. 6012(가로 600mm X 세로 1200mm)부터 2012, 6090, 6060 등등 치수도 다양하고 무게도 다양하다. 유로폼 6012 무게는 약 20킬로 정도 된다. 현장에선 유로폼을 통상 ‘폼’이라고 부르는데 폼을 나를 땐 2개씩 나른다. 6012 폼을 2개씩 나르면 40kg 정도를 나르는데 이거는 그래도 내가 나르다 중간에 힘들면 쉬었다 나르면서 조절이 가능한데 문제는 받아치기다.

무수히 많은 폼들.


받아치기는 작업에 필요한 폼을 미리 한 곳에 정리하거나 대량으로 옮길 때 목수들이 총동원되어 한 줄로 서서 옆으로 계속 옮겨 나를 때 주로 한다.

이때는 폼이 계속 오기 때문에 쉴 수가 없다. 옆에 있는 분들은 거뜬히 받아 옮기는데 내가 받아칠 땐 폼이 왜 그렇게 무거운지. 말이 20kg이지 폼에는 굳어진 콘크리트 잔여물도 같이 있다 보니 무게는 더 나간다고 할 수 있다. 그걸 30분 가까이하다 보면 손가락이 엄청 아프다. 그래서 난 지금도 받아치기한다하면 너무 싫다.

내 손가락 통증의 장본인이다. 미안해 손가락아~ 스트레칭 많이 해줄게~ㅠ


그래도 작업 취소 안되고 출근할 수 있음에 감사해하며 손가락과의 전쟁을 하며 아침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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