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돈은 개도 안 물어간다.
“4인 이상이면 백신 접종자가 두 분이셔야 해서요.” 조심스러운 말투로 손님에게 안내했다.
손님은 삐딱하게 앉은 자세로, 얼굴에는 경멸이, 말투에는 무시가 가득한 채로 나를 올려다봤다. 금방 욕이라도 할 것 같은 남성의 말투에는 짜증과, 거만과, 경시가 가득했다.
오전 10시 30분
시장 안에서 국밥집을 운영하는 엄마로 인해 나는 주말장이 설 때면 몇 년째 어김없이 엄마일을 도와주고 있다.
10월 4일이 개천절 대체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연휴 분위기가 한창인 10월 3일 일요일은 시장에 사람으로 북적였다. 시장 안에 들어서자마자 인파로 한 발을 떼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사람이 뜸했던 시장이 모처럼 활기를 되찾은 것처럼 느껴졌다.
‘오늘 사람 많아서 단단히 각오하고 일해야겠네’ 혼자 생각하며 해가 내려쬐는 늦더위 속에 느린 인파들 사이에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제는 장에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만 보고도 오늘 가게에 손님이 많이 몰리겠다가 대충 예상되니 이 정도면 시장 안에 국밥집 일원으로 아마추어라고 하기 어려울 듯하다.
가게 안에 들어서자마자 주방을 가득 매운 익숙한 열기가 온몸에 느껴졌다. 주방 안은 아궁이와, 뚝배기를 대우는 불길로 밖보다 더 후덥지근했다.
“이모 안녕하세요!”
엄마는 본인에게 인사는 안 해도 일하시는 이모들 에게 인사를 빼먹는 건 질색하신다. 정신없이 서빙하느라 이리저리 바쁜 이모들에게 행여나 들리지 않을까 큰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위생장갑도 끼고, 신발도 갈아 신고 국밥집 둘째 딸의 역할을 제대로 할 시간이 돌아왔다. 늦게 일어나 아침도 안 먹고 급하게 나온 탓에 음식 냄새를 맡으니 배가 고팠지만, 부족한 일손에 장날에는 밥 먹을 여유가 없다.
서빙을 시작한 지 20분 정도가 되었을까 금방 가게 앞 줄이 섰다. 내 역할은 서빙하기, 테이블 치우기, 반찬 준비하기, 주문받기, 계산하기, 필요하면 국도 올리고 설거지도 한다. 원래 엄마는 “계산만 좀 도와줘”라고 카운터 업무를 요구하며 내게 도움을 요청하였지만 일손이 부족하기에 카운터에 우아하게 앉아서 주인 행세하는 여유를 경험하기는 힘들다. 뚝배기를 나르면서도 재빨리 카운터 보는 역할을 동시에 해내야 한다. 바빠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보면 계산이 틀리지 않을까 매번 긴장된다.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어린아이 두 명과 어른 넷으로 구성된 한 그룹이 자리에 앉은 뒤 국밥 네 그릇을 주문하였다. 방역 수칙대로 4인 이상이면 손님에게 백신 여부를 문의해야 한다.
일하는 이모님들은 장날에는 바빠서 수칙을 지킬 여유도, 관심도 없다. 방역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따라오는 벌금이며 불이익은 전적으로 가게 사장인 엄마의 몫이다. 그러니 4인 이상의 손님이 입장할 때마다 나는 애가 쓰인다. 가끔씩 윽박부터 지르는 손님이 있기에 코로나 방역 규정 준주를 요청하는 일이 내게 주어진 가게의 여러 역할 중 가장 하기 싫은 일이다. 국밥집에서 일한 지 오래돼서 그런지 손님 인상만 봐도 협조를 잘해줄 분인지, 고성부터 낼 손님인지 감이 온다.
내 직감대로라면 30대에서 40대로 보이는 손님들의 첫인상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방역 규칙 어겨 불이익당할까 봐, 국밥집 딸로서 애가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으니 손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물었다.
“손님, 혹시 백신 맞으신 분 계신가요?” 조심스럽게 문의했다.
“저 한 명 맞았는데요” 남자 한 분이 어쩔 거냐라는 듯한 말투로 나를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아, 첫 말투로 내 직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느꼈다.
“4인 이상이면 백신 접종자가 두 분이셔야 해서요.” 다시 부드럽게 응대했다.
무리 중 한 명의 여성이 올려다보며 따지듯이 물었다. "저희 나머지 모두 1차 접종 다 맞았어요. 그리고 두 명은 아기들인데 무슨 상관인데요?”
“36개월 이하면 상관없잖습니까?”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남성이 째려보며 항의했다. 나머지 일행도 남성의 말을 거들었다.
나는 마치 4대 1의 싸움에 말려든 느낌이 들었다.
“손님, 개월 수는 상관이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최대한 침착하게 부드러운 말투로 대답했지만 속에서는 이미 화가 올라왔고, 마크스 속 내 표정도 점점 더 무표정으로 굳어져 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누가 그러던데요? ” 짙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남성이 어이가 없다는 듯한 말투로 따졌다. 금방 욕이라도 할 것 같은 말투에는 짜증과, 거만과, 경시가 가득했다. 식당 종사자는 방역 규칙도 제대로 모를까 봐 묻는 것인가? 그들의 태도에는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는 손톱만큼도 느낄 수 없었고 오만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 손님들을 상대한 후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발걸음이 천근 만금처럼 느껴졌다. 몸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뜨거운 국이 가득 찬 무거운 뚝배기 그릇을 네 개씩 쟁반에 들고 서빙하러 다니기에 더 정신을 차려야 한다. 잊어버리자, 신경 끄자, 적어도 100번은 스스로 주문을 외운듯하다.
뚝배기에서 펄펄 끓는 빨간 국이 뜨거운 김을 모락모락 내며 내 얼굴에 약 올리듯 닿았다. 내 볼도 함께 화끈거렸다.
가게 입구에 구구절절 방역수칙을 설명하고 동참을 부탁드린다고 대문짝만 하게 붙여놓은걸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도 못마땅했지만, 방역 수칙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대려 큰소리치는 모습에 치가 떨렸다. 감정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 스스로 다독여도 화가 오랜 시간 제어되지 않았다.
코로나 방역 수칙은 내가 만드는 게 아니지 않은가? 화가 나서 누구에게라도 화풀이를 하고 싶었지만 혼잣말은 머릿속에 빙빙 맴돌 뿐이었다.
식당 종사자들은 손님에게 인격무시를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로 발생한다. 오늘 같은 일이 처음은 아니다. 무례한 손님을 만나면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겁다. 그들의 경멸하듯 올려다보는 표정을, 무시하는 말투를, 무례하고 안하무인 한 태도를 경험하면 그날은 온몸에 힘이 쑥 빠진다. 나를 잡아먹는 괴물이라도 된 듯 그들의 표정이 머릿속에, 목소리가 귓속에 며칠을 맴돈다. 국밥집 딸로서 밥장사를 도우며, 셀 수 없이 많은 손님을 상대하였기에 웬만한 일에는 이제 굳은살이 배겼다고 자부하지만, 무례의 정도가 지나칠 때는 여전히 마음에 상처로 남는다.
식당 돈은 개도 안 물어간다는 말이 있다. 나는 식당 노동은 감정노동자와 신체적 중노동이 섞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감정노동자의 보호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져가지만 식당 종사자를 보호하는 시선이 부족하다. 국밥집 딸로 살아가는 년수가 길어질수록 식당 돈은 왜 개도 안 물어간다는 말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지를 뼛속까지 체험한다.
나는 한 끼의 힘을 믿는다. 밥 한 끼는 보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밥이란 것은 “대접하는 감사한 마음”이 함께 전달되어야 한다. 엄마의 국밥집을 찾아준 손님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렇기에 감사한 손님들에게 뜨끈한 국밥을 웃으며 대접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타인에게 기본 예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따뜻한 국밥 한 끼를 보약으로 볼 지 모르는 불행한 사람일 것이다. 무례한 사람에게 대한 화가 한차례 지나가면 나는 그들에 대한 연민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