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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랑 Feb 24. 2022

이 정도로 오래 쉬면 브런치 작가 박탈당하는 거 아닌가




바이러스로부터 이젠 정말 물러날 곳이 없는 겨울 끝자락이다. 장장 4개월 남짓 불어대는 칼바람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이리도 낭만 없는 컴퓨터 화면 속 새 학기 맞이는 벌써 올해로 세 번째나 반복되고 있다. 드디어 역병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아니냐는 설렘을 쌓아 올리며 유럽으로, 하와이로 비행기를 예약했던 사람들의 작은 소망을 무참히 지르밟으며 나타난 이번 오 씨 변이는 대한민국에서만 하루에 15만 명씩 터뜨리는 룰렛 게임을 즐기는 중이다. 5천 만의 이름을 전부 선택한 후에야 이 잔인한 짓을 멈추겠다는 듯한 기세다.



한참 하루 확진자 기록이 서울에서 1,500명 정도를 웃돌며 새로운 변이가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기 시작할 때에 나는 미국에서 돌아왔고, 운 좋게 자가격리도 오래 하지 않았었다. 이제 그 기록이 100배로 솟은 지금에 와서야 다시 브런치를 잡고 글을 쓴다. 그저 게을러서 글을 오래 쉰 것과, 의료진을 고통받게 할 뿐인 확진자 수 증가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 왠지 숫자로 엮어보면 개연성이 생길까 싶어 한 문단을 적어봤다. 역시나 헛소리다. 너무 오랜만에 글을 쓰게 되어 멋쩍은 기분이 드는 바람에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지 몰라 대충 아무 말이나 끄적이고 있는 것이다.



글을 쉰 동안 별 일은 없었지만 생활 패턴이 많이 정갈해졌다. 낮밤이 바뀐 채 새벽 세 시 반에 이력서를 제출하고, 밤새 넷플릭스 드라마 정주행을 끝내고 비몽사몽 한 상태로 면접을 보러 가고, 합격 전화마저도 오전 11시에 기적처럼 일어나 받았던 회사에서 고정된 9 to 6 업무를 시작한 지 벌써 두 달째가 됐다. 한국을 떠날 용기도 없고, 새롭게 공부를 시작할 힘도 없고, 스스로를 아껴줄 믿음조차 없어 잠들지 못한 채 끝없이 본인을 저주하던 불과 한 달 전 과거가 어디 갔느냐는 듯 기계적으로 오전 여섯 시 반에 기상해 오후 11시 반에 기절하듯 잠드는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다. 부장님과 사수님에게 칭찬을 듬뿍 듣는 날엔 하루 종일 어깨를 으쓱거리고, 세미나와 콘퍼런스 콜 준비로 자잘한 야근들에 허우적대면서도 동시에 점심에는 팀원들이 무엇을 먹자고 할지 매일 소소하게 기대하는, 그런 직장인이 됐다.



돌려 돌려 돌림판에 꽂히는 순서대로 확진이 되고 있는 요즈음, 혹시라도 병균을 옮겨 와서 회사 사람들을 출근하자마자  방에 퇴근시켜버리는 청기백기의 주범이 되고 싶지 않아 각별히 주의하고 있으니 친구들 얼굴을  틈도 없다.  대신 주말에 혼자서 도자기를  개나 빚었다.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인데 직장 다니게  기념으로 월급도 받기 전에 수업료부터 내버렸다. 평일엔 하루 종일 일만 하고, 주말엔 도자기 굽고 하다 보니 어느덧 봄이 성큼 다가와 버린 느낌이다.


3년만에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르고, H 의 임용고시 합격을 축하하며 샴페인을 구입하고, 입사와 동시에 탈출을 꿈꾸며 영어 스피킹 시험도 다시 봤다. 분명 어젯밤 잠들기 전에는 더 많은 문장을 술술 머릿속으로 써 내려갔던 것 같은데, 방금 업무 지시가 또 내려와서 이젠 또 급하게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라는 생각에 - 회사에서 딴짓하며 글 쓰는 하루란.. 어제까지 세미나 준비하느라 일주일 밤샜으니 괜찮을 거라는 생각도 한다 -  쉽사리 단정한 맺음말을 뱉을 수가 없다. 이 외에 입 안에서만 맴도는 단어들을 지면에 옮기지 못하는 것은 단지 게으름 탓을 할 수 있으려나, 아니면 흘려 떠나보낸 과거의 문장들을 스스로 넘지 못할 것이라는 압박에 애써 부정하는 것이려나 모르겠다. 내 글은 내가 옮겨 적는 순간 그 숨이 죽어버리곤 하는 것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역시 무엇인가 적으니 힘이 나는 오후다. 

오늘 글을 올릴 수 있게 해 준 친구 S에게 감사를 표한다. 오늘 무슨 내용이 되었든 일단 글을 올리겠다고 약속했는데, 지킬 수 있어 다행이다. 다만, 문제는 무슨 내용인지 나도 정말 모르겠다는 것.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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