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것들은 꼬리가 길어서 쉽게 달아나지 못하고 밟아도 쉽게 사라지지 않지
하루 종일 대나무를 흔들어 대는 바람은
밤이라는 풍경을 집으로 끌어오느라 신발이 닳았고
어느 집에 들렀다 오느라 제 시간을 놓쳐 버린 봄비는
한여름 폭우처럼 내렸다 넘겨지는 페이지마다
비가 흘러내려 글자는 부서져 내리는 성처럼 앙상한 뼈만 남기고
꽃들은 흐드러지게 피는 것만 열중하고 지는 것은 남의 일로만 여겨
바람에게 비에게 등을 보이는 허술함으로 기억되는
흐드러지다 라는 말에서
너는 활짝 핀 벚꽃송이처럼 웃는 것과 내일이 없는 것 중에서 하나를 고르면
아마도 나를 지나쳐간 너와 나 사이의 발자국일지도 몰라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밤을 벗어던진 아침에
네가 떠날 것 같아 잠들지 못한 내 얼굴이 세숫대야로 떨어지면
막 피어난 홍매화 꽃잎으로 지는 삼월의 햇살 한 자락은
꼬리를 자르고
지는 것들의 반대편 쪽으로 달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