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감정에 관한 이야기
꿈 제목 - 버스 안 죽음 연설
꿈 이미지 - 관광버스, 마이크, 연설, 죽음, 많은 사람들, 박수
꿈 감정 - 죽음, 질문, 깨달음, 공포, 경쾌함, 완성
관광버스 안. 마이크를 잡고 일장 연설을 하고 있다. 긴 연설이 이어지고 마치려다가 뭔가가 생각나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인다.
"내일 네가 죽는다면 너는 지금 뭐 할래? 가끔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현대인의 죽음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죽는 순간에 후회없이 아름답게 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죽음에 대해 한번쯤 생각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상!"
마이크를 놓자 박수가 터져 나온다.
메멘토 모리
잠들기 전 죽음에 관한 책을 읽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나,도 잠시. 새벽 꿈결 같이 또렷하게 무의식의 속삭임을 듣는다. 내가 10년 후에 죽는다면 삶이 조급해질까, 여유로워질까. 10년 동안 이루어야 할 일을 생각하며 조바심치지는 않을 것이다. 죽음 앞에서 무언가를 '이룬다'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조바심은 시간을 빠르게 흐르게 해서 갉아먹을 뿐이라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순간순간 덮쳐오는 무의미와 싸워야할 것이다.
현재의 순간을 사랑과 행복으로 채우려 노력할 것이다. 그것만이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테니까. 사랑과 행복은 시간을 느리게 흐르게 해야 성취될 수 있다. 천천히 걷고, 사유하고, 타인을 관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하루에 열번 이상은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 미래를 계획하지 않을 것이고, 헛된 희망은 품지 않을 것이다. 미래보다 지나온 내 과거의 길 중에서 전정한 나를 발견하고 미소 지을 것이다.
삶의 완성으로서의 죽음
우리는 언젠가는 죽는다는 건 아는데 언제 죽는지 모른다. 죽음의 날을 미리 정확하게 안다면 우리는 지옥을 살게 될까, 천국을 살게 될까. 우주가 미래를 알 수 없게 설계되었다는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생의 길이가 각자 다르게 결정되어 있다는 걸 안다면 우리는 그 운명의 불공정함에 저주를 퍼부을 것이다. 인간은 그 불공정함을 스스로 설득할 이유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보다 긴 타인의 운명을 파괴하려 들지도 모른다. 내 운명의 길이를 질투하는 자에 의해 희생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부러 그 죽음을 스스로 앞당기려는 노력은 하지 않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확실한 전망을 통해 모든 삶에도 맛있고 향기로운 경쾌함이 한 방울 섞일 수 있다."
- 장제형 <마흔에 읽는 니체> 중에서
반드시 오고야 말 죽음이지만 그게 언제인지 모른다는 법칙은 오묘하게 아름답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생을 설계할 수 있다. 자유로운 죽음을 선택할 수 있고, 적극적으로 생을 사랑하고 그 의미를 찾고 끌어안을 수 있다. 나는 죽음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삶에 한없이 허용적이고 용감해진다. 시간은 여여하고 유유하다. 현재 딛고 있는 길을 선명하게 감각한다. 죽음은 삶이라는 칠흙같이 어두운 바다를 항해할 때 길 없는 길을 열어 줄 한 줄기 등대의 불빛이다. 죽음은 삶이라는 항해의 끝이 아니라 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