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분노(2)
"내가 자식 때는 쌩까놓고 왜 나한테만 지랄이야. 이씨."
"근데, 이꼴 보고 자란 걔 인생도 뭐... 별볼 일 있겠어요?"
- 영화 <미쓰백> '일곤' 대사
생의 분노는 되물림 된다.
그런 것들은 저절로 사라지거나 없어지지 않고, 끝없이 누군가에게 옮아가고 번지며, 마침내 세대를 건너 대물림되고 또 대물림될 거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 이혜진 <불과 나의 자서전> 중에서
이혜진의 소설 제목에 '나의 자서전'은 알겠는데, 왜 '불'이 들어갔을까 의아해 했다.
이곳이 절대 바뀌지 않는다. 어떻게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나는 드럼통을 발로 퉁퉁 차며 불씨를 살리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것들의 형체를 빨아들이며 빨갛게 번지는 불꽃을 보고 있는 동안에는 숨이 차도록 걷지 않고는 견딜 수 없던 답답함 같은 것들이 조금은 가시는 것도 같았습니다.
불은 금방 되살아났습니다.
아니, 차라리 그 불이 여기 이 남일동 전체를 휩쓸어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점점 커지고 더 커지고 누구도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해져서 저 남일동 모두 집어삼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밤 나는 정말 없애고 싶었습니다.
한 사람 안에 한번 똬리를 틀면 이쪽과 저쪽, 안과 밖의 경계를 세우고, 악착같이 그 경계를 넘어서게 만들었던 불안을. 못 본 척하고, 물러서게 하고, 어쩔 수 없다고 여기게 하는 두려움을. 오래전 남일동이 내 부모의 가슴속에 드리우고 나에게까지 이어져왔던 그 깊고 어두운 그늘을 정말이지 지워버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 이혜진 <불과 나의 자서전> 중에서
내 부모의 불행이 어디서부터 연유한 것인지 늘 궁금했다.
할머니의 부모와 외할아버지의 부모가 궁금했다.
그렇다면,
내 자식에게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 할 것인가.
내 아내에게 어떤 남편이 되어야만 할 것인가.
'되물림'의 저주를 나는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
나는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처럼,
나는 그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내가 불한당이나 배은망덕한 인간이 되더라도,
여기서 불행의 고리를 끊어내고야 말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다가 끝내는 것은 이미 실패했다.
모든 원죄를 내 대에서 끝내기로 했다.
순결하게,
저주의 피를 여기서 그만 씻김굿하기로.
아직 끝나지 않는 저주이므로.
내 부모가 살아 있으므로.
내가 아직 살아 있으므로.
완전무결하게 여기서 덮어야만 하므로.
내 자식은 아무것도 몰라야 하므로.
이렇게까지,
내 부모와 형제로부터 도망쳐야 하는 이유를 내 자식들은 몰라야 하므로.
어둠은 여기서 끝내야 하므로.
순백은 내 자식부터 깨끗하게 순수해야 하므로.
나는 내 부모로부터 나로부터,
내 자식은 나를 저주하는 것으로 끝내야 하므로.
그래야 하므로.
나는 내 저주를 내 대에서 끝내고 싶다.
적어도 불행의 대물림은 마지막이 되어야만 하므로.
나는 기꺼이 미친놈이 되기로 했다.
그러기로 했다.
이만하기로 했다.
그만 끝내기로.
피와 폭력과 저주와 혐오로부터.
끝.
끄.
ㅌ.
나는 나를 닮은 사람들로부터.
나와 비슷한 그 어떤 것들로부터.
탈주를 감행할 것이다.
이별을 고할 것이다.
나의 죽음으로
불살라 버릴 것이다.
나는 '홍이'가 피운 불꽃이 될 것이다.
모두 태우고 재마저도 없는 세상을 꿈꿀 것이다.
완전한 무.
무.
ㅁ.
ㅜ.
이것은 글이 아니다.
이것은 쓰레기다.
이것은 수치다.
나는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