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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Feb 18. 2024

어느 글쓰기 성애자의 고백




쓰는 사람은 쓰지 못한 이야기 안을 헤매며 산다. 세상에는 모르고 싶은 일과 모르면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았다. '덜' 중요한 것을 쓰고 싶다는 야심은 자주 실패했다. 직업을 잘못 택했다는 생각이 들어 뒤를 돌아보면, 어느새 너무 멀리 와 있었다. '인정받고 싶다'와 '도망가고 싶다' 사이에서 나는 자주 사라졌다.

언젠가 책을 내긴 할 거라고 짐작했다. 이런 모양의 책은 아니었다. 탐사 보도나 르포, 아마도 그런 종류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럴 만한 좋은 기사를 아직 쓰지 못해서, 대신 읽었다. 욕심과 허기가 나를 책 앞으로 데려다 놓았다. 읽는 사람은 자유로웠다. 재능 없음을 탓하지 않아도 좋았다... 무엇인가를 기어코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곧 사랑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읽으면 읽을수록 모르겠는 일이 많아지는 게 좋았다. 경합하는 진실을 따라 나는 기꺼이 변하고, 물들고, 이동하고, 옮겨 갔다.
- 장일호, <슬픔의 방문> 중에서




모든 것을 잃을까 봐 겁나서 배팅하지 못하고 자기 패만 만지작거리는 초짜 겜블러 같다. 5년이 넘게 머릿속에서 굴리기만 하는 생각이 있다. 쓰지 못한 글이 있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 것은 아니다. 써야만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조급함에 쫓긴다.


매일 뭔가를 쓰기는 한다. 매일 쓰는 문장들은 딱히 목적지가 없다. 대충 영감을 받으면 무작정 쓰기 시작한다. 쓰기 시작한 문장들은 앞 문장의 꼬리를 물고 딸려 나올 뿐이다. 딸려나오는 생각의 꼬리가 끊기면 거기서 급하게 마무리한다. 어차피 목적지가 없었으니 과정은 부담스럽지 않다. 부담스럽지 않으니 가볍게 널뛰고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글쓰기가 습관을 넘어 거의 자기관습화 되어 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문장을 쓰고 바꾸어 보고, 쓰고 바꾸어 보고를 반복한다.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함이 아니라, 마음이 하는 말을 제대로 뱉어내고 있는지 확인한다.


누구를 향한 글이 아니다. 이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완결된 책 한 권을 쓰지 못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쉽게 쓰여진 글은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는 타조와 같다. 자아로 그득 들어차 있어서 너무 무겁다. 존재의 무거움으로는 그 누구향해서 날아갈 수 없다. 이제서야 한계가 조금씩 느껴진다. 내 글쓰기는 왜 이다지도 지지부진할까?


그말이 그말 같고, 이게 말인지 글인지 도무지 모르는 상황에 빠지기 일쑤다. 반복되는 말투가 있듯이 반복해서 사용하는 단어가 있다. 그 단어를 대체할 다른 단어를 찾아 보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문장이 엉키니 생각도 널뛴다. 한참 써놓고 나면 내가 하려던 말이 이것이었나, 의심하게 된다.




언젠가는 책을 낼 거라는 확신은 갖고 있다. 읽지 않으면 쓰는 것마저 멈출 것 같아서 닥치는 대로 읽었다. 물고 있던 걸 놓으면 공격을 받을 게 두려운 개 마냥 아무 생각없이 물고 늘어지고만 있다. 좀 지쳤다는 느낌. 그래도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해하고 싶어하는 그것들에 대한 마음이 기어코 사랑이란 건 알게 되었다. 나는 내 직업을 사랑한다. 그러면서 내 직업을 매일 미워한다. 정확히 말해서 내 직업을 사랑하는 나를 미워한다. 너무 사랑해서 스스로를 파괴했다. 어리석은 선택이었지만 후회는 없다. 아둔한 사랑에 대해서 쓸 것 같기는 하다.


사랑하면 할수록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읽었다. 모르는 게 많다는 사실을 알아서 즐거웠다. 깨지고 상처받을수록 내가 더 사랑스러워진 마조히스트가 되어갔다. 상처와 사랑의 힘으로 나는 조금씩 다른 세계로 옮겨갈 준비하고 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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