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 연대
눈을 뜨니 병실에 돌아와 있었다. 복부에 긴 통증이 몰려왔다. 통증은 잘 벼리어진 칼날의 형상처럼 예리하고 분명했다. 진통제 투입기의 버튼을 자주 눌러야 했다. 진통제가 효과가 있기나 한 건지 의심스러웠다. 통증의학과 의사는 진통제가 있어서 이 정도로 아픈 거라고 했다. 지금 상태가 진통제 효과라고 했다. 아무리 통증의학 전문가라고 해도 이 통증을 경험해 보기라도 하고 그런 말을 하는 걸까. 짜증이 올라왔다.
하루가 지나자 통증은 참을 만해졌다. 그제서야 이성적 생각이 조금씩 기지개를 폈다. 의학적 마약류 진통제가 없던 시절의 환자의 고통에 대해 상상했다. 장인어른도 젊은 시절 위수술을 했다. 열 시간이 넘는 대수술이었고 통증을 참기 위해 심하게 이를 악물어 치아가 상했다는 말을 아내에게 들었다. 통증은 오롯이 자기만의 것이구나. 고통은 상대적인 것이구나.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 쪽은 어디를 수술했어요?”
“저는 위 전체를 절제했어요.”
“나는 간 3분의 2를 잘라 냈는데.”
“내 옆에 분은 대장을 잘라 냈대요.”
장기 잘라 냈다는 말을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묻고 대답했다. 일반 암병동은 확실히 생의 활기가 넘쳤다. 죽을 뻔하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안도감과 여분의 삶에 대한 희망이 들끓었다. 수술이 불가능해서 방사선 치료를 힘겹게 이어가고 있는 진행형 암병동과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생의 끝자락에 서 있는 암병동과는 분명히 달랐다.
수술실로 가는 이웃 환우에게 힘내라는 격려의 말을 해 주었다. 법정 스님은 ‘무소유’에서 시골 버스를 함께 탄 선한 눈매의 사람들로부터 연대감을 느꼈다고 했다. 동병상련, 암이 생긴 부위에 따라 각자 다른 장기를 잘라냈지만 우리는 모종의 연대감 같은 것을 느꼈다. 생명에 관한 경험적 성찰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 맞은 편 환자는 고등학생 쯤으로 보였다. 간 수술을 했다고 했다. 아내와 나는 어린 아이도 간암에 걸리나 의아해 했다. 아이의 엄마가 아들이 아버지에게 간을 이식해 주었다고 했다. 우리들은 대견한 일을 했다고 칭찬했다.
내 옆의 환자는 췌장암이었다. 숨어 있는 장기라서 발견하기 어려운 암이 췌장암이다. 췌장암은 발견과 동시에 말기라는 가장 무서운 암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내 또래였고 동네 병원에서 초음파로 운좋게 췌장암을 발견했다고 했다. 수술실로 들어 가는 그에게 병실 사람들과 나는 격려의 말을 건냈다. 그는 여섯 시간이 넘는 긴 수술을 받고 다시 병실로 내려 왔다. 췌장 주변의 조직까지 절제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수술이었다. 수술이 잘 되었다고 그의 아내가 말해 주었다. 그녀는 서글서글한 성격에 영리해 보이는 인상을 가졌다. 아내와 자주 대화를 했고 퇴원한 이후에도 아내와 몇 번의 통화를 했다. 나처럼 운 좋은 정황들이 그가 지금 나처럼 건강해져 직장으로 돌아가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일흔이 넘은 노인 환자가 새로 들어왔다. 노인 암환자는 많은 확률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수술이 가능한 몸상태인가에서 첫번째 확률의 문을 만난다. 수술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회복이 가능할까에서 두번째 확률의 문을 만난다. 수술하다가 급격히 나빠지거나 준비되지 않은 죽음을 만날 수도 있다는 위험 확률의 문도 있다. 일어날 모든 나쁜 일들은 가능성이기도 하면서 닥쳐올 지도 모를 현실이기도 했다. 모든 확률의 문을 통과하더라도 마지막으로 선택의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노인은 수술을 결정했다. 그리고 아주 긴 시간의 수술을 끝내고 병실로 돌아왔다. 노인은 살아있는 한 생명은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경건한 그 무엇이라고 몸소 보여주었다.
건너편 창가에 중년의 남자 환자는 보호자도 없이 혼자 모든 걸 해결했다. 상태도 그리 많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이미 입원과 퇴원을 여러번 반복했다고 했다. 책을 보며 사색을 하는 모습이 나는 그의 직업이 목사일 거라고 생각했다. 확인하거나 물어 보지는 않았지만 나 혼자 그렇게 추측했다. 그는 암은 친구처럼 벗 삼아 함께 달래며 살아가야할 상대하기 까다로운 동반자라고 했다.
몸을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병실 창밖으로 눈 쌓인 한강 변의 경치를 매일 보았다. 잘려나간 내 위장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언젠가 죽어 태워질 내 전체 육신보다 먼저 화장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쯤 물과 공기의 원소로 환원되어 우주 속으로 돌아갔을 거라고. 언젠가 내 육신이 원소로 화해 다시 만날 것이다.
아내가 병원 서점에서 무료함을 달래라며 책을 몇 권 사왔다. 책을 읽다가 위장은 탐욕의 장기라고 메모했었다. 그때까지 나는 ‘쌓아두기’가 위장의 주된 기능이라고 생각했다. 음식을 저장해 두는 것은 자주 먹어야하는 불편함을 덜어주는 효율적인 진화의 산물이란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위가 없이 살아오면서 부재가 주는 불편함을 몸소 겪고 있다. 자주 먹고, 조금씩 먹고, 느리게 먹고, 곱씹으며 먹어야 한다. 허겁지겁 음식을 마구 집어 삼키던 이전 내 식습관이 부끄러웠다. 식욕은 위장이 지은 죄가 아니라 미각에 지배되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