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술방 가는 길
서울 큰 병원 안에 몸 누일 공간을 확보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내와 나는 서로를 쳐다보며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 생애 첫 입원이 위암이라니, 그것도 위 전체를 들어내는 수술이라니. 수술에 필요한 검사와 절차가 많았다. 모든 준비 절차는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다.
아산병원은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컨베이어벨트를 연상시켰다. 혈액검사실 간호사는 하루 종일 사람의 피만 뽑았다. 피만 뽑는 간호사는 하루에 몇 명의 피를 뽑을까. 하루 종일 살아있는 생명체에서 붉은 혈액을 뽑아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수술 전문의도 정해져 있고 한 가지 수술만 하는 것 같았다. 나를 수술할 위장관 전문의는 지금까지 똑같은 수술을 몇 번이나 했을까.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고귀한 일을 공장의 컨베이어벨트에 비유하는 것이 불손하다고 해도 사실은 사실이었다. 이 커다란 병원이 시스템화 되어 있지 않으면 어떻게 사람 생명 하나를 제대로 살려낼 수 있을까 생각하니 이해할 수 있었다. 설사 공장의 생산 라인에 올려진 물건 취급을 받는다 하더라도 나는 살고 싶었다. 나는 내가 살아날 수 있는 가장 과학적 방법에 기대고 있다고 믿었다.
수술하는 날이 밝았다. 수술 전날 살 수 있다는 안도의 마음과 혹시 잘못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하는 마음에 잠을 설쳤다. 그날 수술 일정의 첫 번째가 나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수술 집도의가 피로하지 않는 상태에서 수술하면 더 안전할 거라는 근거 없는 추측을 했다.
잠에서 완전히 깨지 않은 상태로 이동용 침대에 옮겨져 수술실로 내려갔다. 집도의인 자신이 얼굴도 보지 않은 채 환자를 수술실로 내려 보냈다고 간호사를 호되게 야단쳤다는 얘기를 나중에 아내로부터 전해 들었다. 첫 진료 날 간절하게 쳐다보는 나와 눈 한 번 맞추지 않던 그였다. 그래도 의사가 나름 인간적인 원칙을 내비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얼굴을 본 건 첫 진료가 전부였다. 퇴원할 때까지 인턴이 회진을 돌았고 그를 통해 주치의의 의견을 전달받았다.
환자의 목숨줄을 잡고 있는 전문의의 권위는 그 어떤 권력보다 견고한 성역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내 목숨을 구해준 신과도 같은 권위를 가진 절대자였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권력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 권력에 감사했다.
“드르륵 덜컹, 드르륵 덜컹…”
‘깜빡, 깜빡, 깜빡, 깜빡…’
이동침대의 바퀴 구르는 소리가 들렸고 복도 천장 형광등 불빛이 주기적으로 깜빡거리며 지나갔다. 수술실까지 가는 복도는 낯선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 같았다. 이 길로 들어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까 봐 무서웠다. 그날의 떨림은 둔중하고 무거운 청각과 밝고 가벼운 시각 이미지의 대비로 무의식 깊은 곳에 각인되었다. “띵동”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또 한 번 “띵”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 안은 적막 했다. 병원 내에서 환자를 이동시키는 역할을 하는 사람도 헤모글로빈 처럼 작동했다. 침대 이동 도우미가 말을 걸어줬으면 좋겠다고 잠시 생각했다. 고요한 적막이 싫었다. 침대를 끌고 오던 도우미도 떠났다. 수술실 들어가기 전 대기하는 공간에 혼자 덩그러니 놓였다. 암 치료, 앞으로 혼자 내던져진 긴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는 생각에 몸서리쳤다.
수술, 환부 도려내기. 아직까지 의학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암 치료 방법이다. 내 위암은 마음의 병이 몸으로 터져 나온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마음의 병도 메스로 도려낼 수 있을까? 마음에 새살이 돋아나게 하는 시간은 또 얼마나 걸릴까?
수술방의 모습은 드라마에서 보던 것과는 달랐다. 아직 형광등 불빛이 밝았고 환부를 비추는 서치라이트 조명은 꺼진 채 내 머리 위에 옹골지게 매달려 있었다. 내 생명은 아직 이승에 옹골지게 매달려 있었다. 팔에 주사 바늘이 꽂혔고 마스크가 씌워졌다. 아직 마취하는 것은 아니라는 마취과 의사의 거짓말이 내 수술실 기억의 끝이었다.
“자, 시작합시다. 메쓰”
하는 집도의의 경쾌한 목소리를 꿈속에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