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암 진단
불면의 밤이 찾아왔다. 아니야, 오진이었을 거야. 내가 본 건 위궤양 정도의 가벼운 염증이나 상처일 거야. 그럴수록 그날 본 영상은 머릿속에서 더 선명하게 재생되었다. 내 마음은 이미 위암을 확정적으로 굳혀가고 있었다. 내 생애 시간이 가장 느리게 흐르던 일주일이었다.
대장내시경 예약증을 내밀었을 때 간호사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맞았다. 그 순간 조직 검사 결과를 이미 예감했다. 쓸데없이 예민한 촉수가 원망스러웠다. 불행하게도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위암이 맞았다. 그래도 대장은 깨끗하다고 했다. 수면마취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않아 정신은 몽롱했다. 의사는 위암 판정을 담담하고 단호하게 내렸다. 마치 꿈속을 헤매고 있는 것 같았다. 꿈이길 바랐다. 세상 어떤 말도 나를 위로할 수 없었다.
내 위암을 발견해 준 여의사는 서울아산병원 위장관 수술의 최고 의사에게서 인턴생활을 했다며 그 자리에서 긴급하게 연결해주었다. 진료실을 나오자마자 아내에게 아산병원에서 예약접수 전화가 걸려왔다. 이것도 인연일까. 신기했다. 생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 첫 번째 계기였다. 일 주일 후에 진료 날짜가 잡혔다. 그나마 천운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종양 덩어리가 커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내 생명을 잠식하고 있을 암덩이를 한시바삐 몸 밖으로 끄집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조바심쳤다. 아내는 조급해하는 나를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평소에 말이 많던 부부는 함께 있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아내는 집에서 가까운 절로 나를 데리고 갔다. 나는 유물론자다. 종교를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따라나섰다. 어딘가에 기대야만 했다. 평일 낮 대웅전은 조용했다. 아내를 따라 불상 앞에서 자세를 낮추었다. 그리고 석가모니 불상을 한번 올려다 보고 바닥으로 고개를 떨구자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어떻게 잘못 산 걸까? 한두 방울 이유 없이 떨어지던 눈물은 폭포수처럼 속절없이 쏟아져 내렸다.
‘죄를 짓지 않고도 참회의 눈물을 흘릴 수 있구나.'
이해할 수 없는 희한한 감정이 당황스러웠다.
가보지 않은 길이라 두려움이 몰려왔다. 힘들지만 누군가는 가 본 길. 길이란 게 사람이 지나다녀야 만들어진다. 앞으로 내가 걸어가야 할 암 치료도 누군가는 걸어가 본 길일 것이다. 누군가는 이겨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겨낸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 믿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위암 수술과 항암 치료는 나에게 거대한 공포는 아니었다. 누군가는 가 본 사람이 있는 길이라는 사실은 내게 희미한 희망이었다. 내가 걸은 적 있는 고통의 길을 다시 걸으라면 두려울 것이다. 나는 초행이라 오히려 무섭지 않았다. 암 치료는 내겐 바로 그런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