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전환기

“올해 생애전환기 위내시경이 있네요.”

by 무위




엘리베이터가 빨리 도착했다면 나는 죽었을지도 모른다. 간호사가 출입문을 열고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간호사의 부름에 건강검진실 문을 다시 열었다. 동시에 띵동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벨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올해 생애전환기 위내시경이 있네요.”

“아, 그래요.”

“연말에 오면 복잡하니 오늘 내시경 예약해 놓고 가시면 작년에 못한 건강검진 오늘 처리해 드릴게요.”


2013년 새해. 지난해 12월에 했어야 할 공무원 건강검진을 깜빡하고 해를 넘겨 버렸다. 무작정 병원으로 달려갔다. 가서 얘기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내 건강이 걱정되어서라기보다 건강검진을 안 하면 벌금을 문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담당 간호사는 해 넘긴 건 어쩔 수 없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나는 거절을 당했을 때 두 번 세 번 제차 매달리는 성격이 아니었다. 내 성격 그대로 바로 돌아섰다. 쿨한 게 멋있다고 여겨서일까, 자존심이 강해서일까. 그땐 내가 젊었으니까. 건강했으니까. 자신감이 있었으니까.

집에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서 있었는데 다시 부른 것이었다. 지금은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한 간호사가 불쌍하게 무너져가는 한 인간을 불러 세웠다. 아니다. 아직 이승에서 할 일이 더 남았다는 운명이 나를 불러 세웠다.

실수로 해를 넘긴 덕분에 그해 건강검진은 보통 때와는 다르게 1월로 당겨서 하게 되었다. 나이가 젊을수록 암 전이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다는 걸 나는 눈으로 보았었다. 젊은 날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나의 외사촌형과 아내의 외사촌 여동생이 그랬었다. 만약 여느 때처럼 12월까지 검진을 미루었다면 지금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특별한 자각 증세도 없었다. ’ 생애전환기’라는 명칭에 이끌려 마흔 살이 되도록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위내시경을 예약했다. 그것도 비수면을 택했다. 나는 육체의 고통보다 의식이 없는 상태가 싫었다. 처음이라 겁이 없었다. 건강에도 자신이 있었다. 신은 꼿꼿한 내 삶의 태도가 꼴사나웠을지도 모른다.




위내시경 받는 날은 처음이라 긴장이 돼서 일찍 병원에 도착했다. 케이블 끝에 달린 플래시 불빛이 식도를 타고 들어갔다. 구역질을 몇 번 했을 뿐 비수면 상태는 견딜만했다. 의사는 카메라가 고장 난 거 같으니 빼고 다른 카메라를 넣겠다고 했다. 검사 시간은 길어졌다. 불안이 엄습했다. 복부 깊은 곳에서 뭔가가 꼬집는 짧은 통증을 느꼈다. 조직을 떼내었다. 그래도 작은 위궤양 정도 발견했겠거니 생각했다.

결과를 보기 위해 아내와 함께 의사 앞에 앉았다. 의사는 위벽이라며 보여준 곳에 화면을 멈췄다. 작은 혹 같은 돌기가 톡 튀어나와 있었다. 카메라 성능은 왜 이렇게 좋은 것인지 화면은 적나라했다. 나는 화면을 주시하고 있는 여의사의 당찬 눈빛과 아내의 걱정 어린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미 여의사의 눈빛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나는 돌려 말하지 않았다.


“선생님, 암이 의심되는가요?”

“조직검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큰 병원으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생긴 위치가 좋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아래쪽에 생기지만 위쪽에 생긴 드문 케이스라서 만약 암이라면 위 전체를 절제해야 합니다.”


조직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는 암을 전제로 설명하고 있었다. 의사는 같은 소화기관인 대장도 자세히 검사해야 한다고 했다. CT를 찍고 대장내시경을 예약해놓고 집으로 왔다. 아픈 부위는 배인데 약한 두통이 밀려왔다. 하루 종일 정신은 멍하고 머리는 띵했다.

무중력의 우주공간처럼 느리게 흘러가던 시간이 블랙홀을 만난 밀도 속으로 빠르게 빨려 들어갔다. 어차피 큰 병원을 가야 한다면 거기서 다시 검사하는 시간이 더 걸리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서울 큰 병원으로 바로 가는 게 낫지 않을까. 큰 일에 더 대범 해지는 아내가 나를 진정시켰다. 여기서 조직검사 결과와 대장내시경 결과까지 보고 올라가는 게 더 나을 거라고 했다. 아내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생애전환기에 위암은 느닷없이 교통사고처럼 들이닥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