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퀴엠

... 말기 암환자는 두번 다시 보지 않을 거야

by 무위




말기 암환자와 대면한 적이 있었다. 내가 대학생 때니까 벌써 오래 전 일이다. 이종사촌 형은 위암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이름은 기본. 성은 모른다. 그는 아버지가 없었다. 이모와 둘이 살고 있었다. 형은 태권도 선수생활을 오래했고 건강했고 몸이 날렵했다. 직업군인 하사관이었고 태권도 교관을 했다. 그는 젊었고 결혼은 하지 않았다.


형의 존재를 나도 성인이 된 후에야 알았다. 어머니는 왜 이제 와서 형의 존재를 내게 알려줬을까 의아해했다. 어머니도 언니 아들의 존재를 얼마전에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후 형은 우리집에 군용 건빵을 들고 가끔씩 찾아왔다. 대학생이 되도록 당구장에 한번 가 본 적 없는 내게 당구를 가르쳐 주었다. 둘 다 성인이 되어서 만난 사이라 어색했지만 피로 연결된 관계라는 믿음으로 우리는 빠르게 가까워졌다.


그렇게 가까워질 때쯤 형은 경기도로 근무지를 옮겼다. 근무지를 옮긴 지 얼마지나지 않아 형의 위암 발병 소식을 어머니를 통해서 들었다. 수술을 했고 회복 중이고 괜찮을 거라고 했다. 어머니는 혼자 사는 젊은 남자가 자기 몸관리를 어떻게 하겠느냐며 걱정을 했다. 이모는 아들의 삶에 거의 관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들만이 아는 복잡한 가족이야기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형은 내게 가족 얘기를 하지 않았다.


형의 소식이 궁금해질 때 쯤 어머니의 불길한 느낌은 빗겨가지 않았다. 암은 잘라낸 좁은 위 공간 속에서 다시 재발했다. 재발 소식을 처음 듣고 일주일에 한번씩 들려오는 소식은 절망적이었다. 암은 빠르게 젊은 사내의 몸속을 구석구석을 옮겨다니며 자리를 잡았다.

얼마지나지 않아 퇴원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픈 사람이 병원을 나왔다고? 이해가 되지 않아 어머니에게 재차 물었다. 어머니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퇴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보는 게… 하고 나는 말끝을 흐렸다. 퇴원해서 이모가 있는 영덕 집으로 갔다고 했다.




어머니와 함께 형의 집으로 갔다. 햇볕이 좋은 주말 오후였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더 슬픈 날이었다. 이모는 부엌 벽에 등을 기대고 넋놓고 앉아 있었다. 집안을 훅 끼얹은 무거운 침묵이 그대로 무덤 같았다. 아들 옆에 잘 가지도 않는다고 했다. 말기 암환자의 방에선 역한 죽음의 냄새가 났다. 형은 혼자 침대방에 누워 있다가 우리가 들어가자 일어나려고 했다. 형은 어깨를 들어올리려고 힘을 썼지만 곧바로 움직임을 포기했다. 눈물 많은 어머니는 울기만 했다.


“형, 뭘 먹을 수는 있어요?”

형은 대답 대신 고개만 가로 저었다.

“통증은 어때요?” “의사는 뭐래요?” “이렇게 집에 온 게 얼마나 됐죠?"

형은 눈만 끔뻑거리다가 곧바로 얼굴을 찡그렸다. 나는 무거운 침묵이 무서워 아픈 사람에게 이것저것 쓸데없는 질문만을 계속했다. 형은 고통으로 일그러뜨린 얼굴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는 혼자 묻고 알아들은 척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이모는 암덩이가 식도를 가득 메우고 있어 음식을 삼일 동안 삼키지 못했다고 했다. 복수가 찼고 이전에 건강했던 형의 얼굴은 찾아볼 수 없었다. 건강하던 젊은 군인의 모습을 본 지 불과 이 개월 전이었는데 말기 암환자의 모습은 처참했다. 나는 애써 덤덤한 척했다. 눈물도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다. 천정만을 응시하던 형의 눈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도저히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젊은 사내의 절망 어린 눈빛을… 그때 나는 군대도 가지 않은 어린 나이였다. 무서웠다. 형의 임종을 보게 될까봐.


무거운 침묵과 죽음의 역한 냄새를 견디며 몇 시간을 앉아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형과의 함께 한 시간이 얼마되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인사의 말은 ‘잘 있어’라고도 ‘잘 가’라고도 할 수 없었다. 침묵과 죽음의 냄새를 견딜 수 없었다. 계속 있겠다는 어머니를 두고 혼자 일어났다. 나는 집을 나오면서 다짐했다. 말기암 환자와는 두번 다시 대면하지 않을 거라고.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그러고 이삼 일 후 형의 부음 소식을 어머니로부터 들었다. 장례식장에도 가지 않았다. 그리고 곧바로 후회했다. 우리가 만났던 시간이 짧았던 만큼 형을 잊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나는 1학년을 마치자마자 일찍 군대에 입대를 했다. 군대에서 태권도를 처음 배웠다. 처음 배우는 태권도는 쉽지 않았다. 뻗뻗하게 굳은 다리 찢기가 제일 괴로웠고 태권도 교관이 징그럽게 미웠다. 태권도 앞차기 한번하고 연병장 선착순을 했고 옆차기를 한번하고 연병장을 계속해서 돌았다. 형은 군인 태권도 교관이었으니까 죽기전까지 저런 모습을 하며 살고 있었겠구나 생각했다. 태권도 교관을 마음속으로 용서했다. 형은 내게 잘못한 게 없으니까. 그리고 형 미안해, 마지막까지 함께 있어주지 못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