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이 오류를 일으켜 뇌 시스템을 종료합니다
"눈 떠 보세요. 눈 좀 떠 보세요.”
"여보 눈 떠 봐. 일어나. 병원 가야 해.”
꿈속에서 누군가 나를 깨웠다. 남자의 목소리도 들렸고 아내의 목소리도 들렸다. 간신히 눈은 떴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이 밤에 병원은 왜 가자는 거지? 난 안 아픈데. 자던 잠 계속 자겠다고 병원은 안 가겠다고 했다. 야심한 시간 오렌지색 상의와 검은색 하의를 입은 낯선 남자의 모습은 현실감이 없었다. 꿈 속인가? 이 야심한 밤에 구급대원이 우리 집엔 왜 왔지? 혹시 나를 데리러 온 저승사자는 아니겠지. 나는 꿈과 현실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병원을 가지 않겠다고 계속 자겠다는 나와 병원 가야 한다는 구급대원과의 실랑이는 한참 계속되었다.
“아빠 병원 가자.”
“엄마, 아빠 옷 갈아 입어야지.”
딸과 아들의 목소리가 차례로 들렸다. 그제야 제 정신이 돌아왔다. 나는 아들이 주는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무슨 상황인지 모르지만 병원을 가야하는 상황은 맞는 거 같았다. 정신이 돌아오니 이성이 깨어났고 상황 파악이 되었다. 아들이 준 외출복을 입고 아내의 부축을 받으며 아파트 계단을 터덜터덜 걸어 내려갔다. 집 앞에 엠뷸런스 불빛이 깜빡깜빡 돌아가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빨간 경광등이 성가셨다. 어지러웠다. 구급대원은 나를 침대에 눕혔고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2020년 6월 25일이었다. 70년 전, 전쟁이 일어났던 그날처럼. 총에 맞은 통증이 문제가 아니었다. 첫 전투를 경험해서 넋이 반쯤 나간 군인이 된 것 같았다.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 정신이 조금 차려졌을 때 아내에게 상황 설명을 들었다. 잠결에 내 숨소리가 이상했고 흔들어 깨웠지만 반응이 없었다고 했다. 혀가 말려 들어가는 것 같았고 사지가 경직되더라고. 놀라서 아내는 딸을 깨웠고 딸이 119에 신고를 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쇼크가 찾아왔다.
다음날 오전 내내 뇌CT, 뇌초음파, 뇌MRI검사를 했다. 의사는 특별한 이상 소견이 없다고 했다. 병명을 모르는 병이 제일 무섭다. 증세는 있는데 적절한 처치를 하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이상이 없다니 안도했다. 하루 쉬고 다음 날 퇴원하라는 의사의 말에 찜찜한 마음으로 퇴원했다.
데쟈뷰. 그리고 2개월이 흐른 새벽.
“일어나세요. 눈 떠 보세요.”
“여보 또 병원가야 할 같아.”
남자와 아내의 목소리가 교대로 들렸다. 이번에는 고집을 부리지 말아야지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잠은 계속 왔고 누워 있고만 싶었다. 구급대원이 환자분은 고집이 세신 거 같아요라고 했다. 이전 첫 발작 때 출동 나온 그 구급대원이었다. 그 구급 대원은 멀직이 서서 아내가 나를 깨우는 다급한 목소리에도 한 발작 물러나 서 있었다.
이 사람아, 고집이 센 게 아니라 뇌 회로가 잠깐 셧다운 된 상태라서 내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나도 인지하지 못하는 거야. 당신은 그 상태 경험 안 해봐서 모르잖아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못했다.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질병과 죽음은 모두 개별적인 것이어서 오로지 당사자만 아는 철저히 소외된 길이지. 당신은 몸이 건강하니까 이 느낌 모르지?
또 응급실에 실려 갔고 다음날 똑같은 검사를 받았다. 이번에는 초음파에서 뾰족뾰족한 뇌파가 잡혔다. 간질발작, 고상한 병명 뇌전증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뇌전증 약을 3년은 꾸준히 먹어야 한다고 했다. 증세가 사라지면 그 다음은 약을 줄이던지 끊던지 결정한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 인터넷 검색을 했다. 주로 소아기 때 많이 나타나며 유전적 요인이 크며 성인에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게 종양 같은 질병 때문에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암이 다시 재발했는지 걱정이 되었다. 검사 결과 종양은 없다고 했으니 일단 안심했다. 성인이 되어서 나타났고 약한 뇌전증은 대부분 약물로 쉽게 잡힌다고 했다. 인터넷 정보대로 약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더 이상 증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약국에서 준 약 정보지를 꼼꼼히 읽었다. 뇌전증 치료약은 우울증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우울한 느낌이 많이 사라진 것도 같았다. 나는 약의 효과를 잘 믿지 않았다. 현대의학은 진단 장비와 약의 발전에 힘입었다는 점을 몸소 체험했다. 이젠 약을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장마가 시작되었는지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뚫고 필라테스를 간다. 비가 와서 그런지 4명 수강생 중 나 혼자다. 일대일 수업. 살다보면 예상치 않는 곳, 예상치 않은 사람에게서 위안을 얻기도 한다. 스트레칭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강사가 진지하게 묻는다. 요가와 필라테스를 길고 꾸준하게 하게 된 이유가 있느냐고… 위암 수술받은 것과 건강할 때 웨이트 트레이닝과 축구를 즐겨했던 운동 이력을 말한다.
다른 사람보다 나의 호흡이 깊고 훈련이 잘 되어 있다며 칭찬한다. 칭찬의 말에 누워 건성으로 대답하다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항암 치료 중 혼자 터득한 호흡에 대한 내 경험을 말했더니 그녀는 무시하지 않고 진지하게 들어준다. 그리고 담담하게 그녀의 얘기를 들려준다.
“대학생 때 절친했던 친구가 자살한 현장을 보았어요.”
그 충격에 헤어나지 못해 긴 시간을 방황했다고 한다. 그리고 무기력하고 우울한 나날이 길게 지속되었고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찾은 것이 요가였다고. 요가가 자기를 구했고 지금 요가 강사의 길을 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내 우울의 시간에 대해 얘기한다. 고통의 시간을 관통해 온 사람은 비슷한 아픔을 경험한 사람을 본능적으로 알아보는 것 같다. 운동보다 유익한 시간?
-2020.6.24. 수 ‘무위록’ 중에서
또 죽음이구나, 죽음이야. 아무에게도 쉽게 풀어놓지 못하는 얘기를 왜 내게 하는 걸까? 그날 나는 수업을 전폐하고 강사와 죽음에 관해 얘기를 나눴었다. 매번 돌아가면서 강사가 바뀌는 수업이었고 나는 이 강사와 세 번째 만남이었다. 나는 그녀를 알지 못했고 그녀도 나를 잘 알지 못했다. 무엇이 우리를 무장해제하게 만들었을까.
죽음 의식이 적립되고 단단히 굳어서 밀도를 못 이기면 기어이 터져나오고 마는구나. 추가된 내 질병의 원인을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그날 필라테스 운동을 가지 말았어야 했다. 그날 이후로 1년 넘게 해오던 필라테스를 코로나를 핑계 삼아 나가지 않았다.
두 번째 발작에는 병명을 찾아내서 다행이었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의사는 단정 지을 수 없다고 했다. 한 마디로 의학적으로 원인을 모르는 병이다. 그런 점에서 암과 똑같았다. 암은 돌연변이 세포가 이상 증식하는 현상이고 뇌전증은 뇌의 셧다운 현상이다. 두 병의 원인을 대충 퉁치자면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겠지. 내가 그렇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 내가 이토록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인가? 인정할 수 없었다. ‘무위록’을 읽으며 원인을 추적해 갔다.
먹을 거 잔뜩 사들고 아내가 제주도에서 돌아왔다. 아들과 김해공항으로 마중 나간다. 배려와 의무감으로 자신은 뒤로 밀려난 가족 여행이 아니라 오롯이 자기를 중심에 세워놓고 내면에 집중하는 여행의 참맛을 느꼈길 바란다. 낯선 사람들을 만나서 재미있었고 자신을 돌아본 좋은 시간이었다고 했다. 아내는 즐겁고 좋은 여행이었다며 만족해했다. 아내가 좋았다니 나도 좋다. 아내는 여독으로 피곤한지 잠에 곯아떨어진다. 나는 내일 출근한다.
-2020.8.11.화 ‘무위록’ 중에서
오늘 출근은 못했다. 잠 자다가 두번 째 쇼크. 아내가 여행에서 돌아온 날이니 얼마나 다행이냐. 아니, 아내가 돌아와서 긴장이 풀려서일 거다. 결국 새벽 응급실행. 육체의 몰락이 끝이 없다. 어디까지 몰락할까 걱정이다. 결국 몸이란 몰락을 하다가 죽음에 이르는 걸까. 몰락의 방식과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단지 내가 바라는 몰락은 서서히 연착륙하다가 땅과 물, 공기 속으로 스르륵 스며드는 것.
“당신은 나만 없으면 이래서 내가 자리를 비울 수가 없어.”
병실에서 아내가 장난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나는 그냥 흘려버릴 수 없다.
- 2020.8.12.수 ‘무위록’ 중에서
일면식도 없는 이의 죽음 이야기와 아내의 귀환이 무슨 연관이 있을까?
어렸을 때 장면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다. 아버지가 사우디 건설노동자로 나갔을 때 엄마는 생활비가 없어 돈을 빌리러 자주 집을 비웠다. 엄마마저 우리 옆을 영영 떠나버릴까 봐 무서웠다. 어둠이 내린 밤, 창문을 열고 엄마를 부르며 울었고 누나는 나를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엄마가 돌아오면 품에 안겨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아마 초등학교 1학년이나 취학 직전 쯤의 기억이었다.
누구에겐가 늘 기대온 삶이었다. 아내가 농담 삼아 던진 말이었지만 폐부가 찔린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나약하게 덜 자란 어른이었다는 사실을 무의식이 기어이 일깨워 놓았다. 위암, 버림 받음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기댐, 어른 아이, 마음의 오류, 뇌 셧다운… 퍼즐 조각이 맞춰졌다. 죽음을 회피할수록 산 자에게 공포는 더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죽음은 언제나 내게 말한다. 피하지 말고 똑바로 쳐다보라고. 그리고 이젠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내면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 줄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