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븐니의 키워드로 영화 읽기> l 좀비딸이 주는 작품의 의미.
■키워드- 수아의 상태.
나는 기본적으로, '좀비'영화/스릴러영화/공포영화 등을 보고 나면 그날 새벽에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안 좋아한다. 그래서 비교적 제대로 된 인간이 나오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좀비가 된 나의 딸>이라는 애니메이션을 조금 감동적으로 본 기억이 있어서, 주제가 '좀비'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관람하게 되었다. 최초의 관람은, EBS에서 일요일마다 좀비딸을 방영해 주는 것을 보고, "교육방송에서 좀비가 나오네, 조금, 특이하다"라고 생각하면서 관심 있게 관람한 적이 있다. 그러다가 넷플릭스에 올라오면서 조금 더 심층적으로 관람하기도 했다. 최종적으로는 영화화된 <좀비딸>을 보면서 이 작품을 세 번 이상은 넘게 감상해 본 것 같다. 영화 <좀비딸>에서 아빠 '정환'의 역할은, 조정석 배우가 밤순 할머니 역할은, 이정은 배우가 딸의 역할은 최유리 배우가 맡아 극 중 재미를 한층 더 높여준다.
간단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서울에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서 도시의 사람들 중에서는 꽤나 움직임이 기괴하고, 말을 잘하지 못하며, 파킨슨 환자에게서 보일 법한 종종걸음이나, 부자연스러운 걸음의 좀비들이 도시를 점령하게 된다. 이로 인해 수아네집의 이웃들도 점차 좀비화된다. 이 중에서, 다행히 시골로 이동을 하게 된 아빠와 수아는 큰 피해는 없었지만, 딸 수아가 '어린아이 좀비'에게 물리우는 바람에 공격성이 어른 좀비만큼이나 심하지는 않지만 어찌 되었든 좀비화된 딸과의 생활을 하게 되는 모습을 그린게 이 작품의 주된 줄거리다.
처음에 이 <좀비딸>을 작품으로 접했을 때에는, 좀비의 상태가 되어버린 딸 수아를 끝까지 지키고 교육하고, 사회에 적응시키려고 하는 아빠, '정환'의 모습에 집중해서 작품을 감상한 적이 있었다. 애니메이션에서도, 영화에서도 아빠, '정환'이 실제로는 자기 딸이 아니고, 누나의 딸인 '수아'를 잘 돌보는 모습이 큰 감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런데 영화를 조금 더 자세하게 관찰해 보니, 좀비에게 물린 마당에 정신도 없는 수아가, 아빠와 할머니의 말을 들으면서 자신이, '인간'임을 인지하는 듯한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기에, 어느 정도 언어를 담당하는 전두엽 쪽의 뇌혈관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좀비에게 물려 정신이 없을 텐데 말이다. 놀이공원에 가서도, '추로스'를 인식하고, "사람들을 물지 마."라고 하는 명령에도 잘 순응하는 것을 보면 신기할 정도로 절제를 잘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나가며, 개인적인 느낌으로, 세계 최고의 IT 강국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전산 시스템들이 해커나, 화재에 전대미문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서버의 이중화나 개인정보 안전의 보안성에 대한 심사숙고가 없었던 것 같은 모습처럼, 더 나아가서는 물질문명이 최고도로 발달되어 이제는, 어느 정도의 재력만 있으면 그다지 큰 불편 없는 현대사회에 사는 우리가 되려, 정신적으로는 피폐해지고, 불안장애, 불면증, 우울감을 달고 사는 흔한 우리네의 모습에서 처럼, 정상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안을 들여다보면 좀비처럼, 허점도 맹점도 너무 많은 모습은 아니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전산도, 사람도, 시대도 좀비처럼 제 기능을 못하는 것 같은 모습. 이 시대의 좀비영화가 주는 단상이란, 좀비에 물린 어떤 이의 모습처럼 정상적인 모습으로 보이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정작 중요한 것은 잘 작동하지 못하는 우리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며, 이러한 시대에 필요한, 효력 있는 '백신'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영화, <좀비딸>을 관람하며.
*<송븐니의 키워드로 영화읽기>, <좀비딸>과 수아의 상태편은 송븐니 작가의 시각으로 작성된 리뷰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