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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하게"라는 건 욕심일까, 아닐까

by Quat


휴, 오늘은 좀 살 것 같다. 왜냐고? 요즘 비가 꽤 많이 내린 덕분에 날씨가 꽤 선선했잖아.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한증막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었는데 갑자기 가을이 된 기분이야. 내가 워낙 더운 걸 싫어하다 보니까 갑자기 비가 내려 옷이 좀 젖어도, 땡볕에 익어가는 것보단 훨씬 낫더라.



그런데 말이지. 인터넷으로 날씨 관련된 뉴스를 봤는데 다들 나처럼 생각한 건 아니었나 봐. '장마가 끝났다고 하더니 도대체 맞추는 게 없네'라며 기상청 욕을 하는 사람도 있고, 폭우가 내린 후의 상황을 걱정하며 이미 스트레스받는 사람들도 많았어. 물론 나도 댓글을 보면서 어느 정도 공감하긴 했어. 비가 오지 않는다는 예보를 보고 우산 없이 외출했다가, 갑자기 내린 비에 급하게 근처 편의점으로 뛰어가 우산을 산 적도 있었지. 날씨가 좋아 가죽 로퍼를 신고 나갔다가 폭우로 홀딱 젖어 신발을 버린 적도 있었어.






내가 겪었던 일들은 물론 좋은 경험은 아니야. 그래도 있잖아. 살다 보면 내 맘처럼 흘러가는 경우보다, 반대인 경우가 훨씬 더 많더라고. 예상과 다르게 결과가 좋지 않은 순간을 마주할 때면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들곤 해. '그냥 적당하게만 흘러가면 뭐가 좀 덧나? 왜 나한테만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 건데!' 그런데 신기한 건 모든 불행한 일들이 '베드 엔딩'으로만 끝나는 건 아니더라고.



너한테 내 첫 번째 직장에 대해 말해준 적 있었나? 음, 지금 떠올려보면 참 좋은 곳이긴 했어. 솔직히 말하면 그 당시 내 스펙과 능력으로 어떻게 합격했는지 아직도 의문이긴 해. 연봉도, 복지도 어느 것 하나 빠질 것 없는 정말 괜찮은 회사였어.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입사한 지 6개월 만에 제 발로 퇴사를 했어. 잦은 술자리, 내 개인 시간이 거의 없었던 게 가장 큰 이유였지. 사실 몸보다 더 힘들고 지친 건 마음이었어. 회사라는 게 이렇게 최악인 건가라는 생각과 동시에, '만약 모든 회사가 이렇다면 나는 사회생활이라는 걸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며 끊임없는 자기 의심과 두려움에 시달렸던 시간이 대략 2년 정도였던 것 같아.



그러다 우연히 구인앱에서 새롭게 뜬 공고 하나를 보게 됐어. 예전부터 관심 있던 분야기도 했고, 관련된 자격증이 없어도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다는 내용에 흥미가 생겨 면접이라도 가보기로 했어. 별 생각이 없다가 막상 면접을 보러 가려니 또다시 두려움이 생겼어. '이미 한 번 실패했는데 또 못하면 어떡하지?' 면접을 보고 나서도 떨어졌을 거란 생각만 했어. 그런데 다음날 연락이 오더라. 합격이라고. 그때부터 일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어. 규칙적인 일상을 보내고, 돈을 벌어 사고 싶은 걸 사고, 새로운 사람들과 친해지며 스스로도 전보다 밝아지고 있음을 느꼈지. 그 후에도 항상 행복했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불행하지도 않았어. 좋은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불규칙적으로 번갈아가며 일어났지.






'적당히 행복한 일'만 가득하면 좋을 거야. 하지만 슬프게도 그건 불가능하지. 물론 개인의 노력으로 위험을 어느 정도 대비할 수는 있어. 건강을 지키기 위해 꾸준히 운동을 한다거나, 월급의 일정 부분을 모아서 자산을 불리는 식으로 말이야. 그렇다고 해도 미처 예상할 수조차 없는 거대한 사건들도 많아. 맨 앞에서 말했던 자연재해도 그렇고, 뉴스에서 접하는 각종 사건사고들이 그렇지.



그래서 요즘은 마음을 다르게 먹고 있어. 적당한 행복이 일어나길 바라기보단,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 무엇이든 '적당하게' 해석하자고. 갑작스레 내리는 비로 신발이 젖으면 기분은 나쁘겠지. 그래도 '왜 나한테만!'이 아니라 '몰랐으니 어쩌겠어'라고 말이야. 정말로 어쩌겠어. 비가 올 줄 알았으면 당연히 우산을 챙겼겠지. 이미 일어난 일인데 곱씹으며 후회한들, 비가 그치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러니까 나는 이제 모든 일이 ‘딱 좋게’ 풀리기만을 바라기보단, 그 일이 나에게 남긴 감정과 생각을 ‘적당히’ 다루며 살아가려고 해.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라도 살아가는 지금도 좋다고 느껴. 너는 어때? 네가 바라는 ‘적당함’은 어떤 모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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