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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이 Jul 26. 2021

기괴하고 이상한 이야기 - 6. 상공어

겨울 밤, 불청객이 찾아온다.

<상공어>




지독한 눈보라였다.


무릎까지 쌓인 눈에 대중교통은 마비되고, 회사는 이례적으로 야근 없이 사원들을 보내주었다. 나 또한 남편에게서 일찍 온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나는 두꺼운 커튼을 걷고 베란다 밖을 바라보았다. 남편이 일찍 온다고 해도 걱정이었다. 이 눈보라를 헤치고 어찌 집에 돌아온단 말인가. 마을버스는 진즉에 운행을 중단했다. 오르막 끝에 있는 우리집까지 기어올 남편 걱정에 입맛이 씁쓸했다.


나는 주방으로 가 핫초코 한 잔을 탔다. 두꺼운 머그잔을 들고 베란다의 유리문 앞에 서니 유리문이 무섭게 흔들렸다.


휘오오오. 후오오오.


고지대에 위치한 아파트인데다 꼭대기 층이라 그런지 바람 소리가 무시무시했다. 아파트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조금 과장해서 종말이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럼 다음 사연을 소개하겠습니다. 서울시 성북구에 사시는 안지원님의 사연인데요…….


우울하고 착잡한 기분인데, 라디오 소리는 평소와 같이 밝고 경쾌했다. 별로 라디오에 집중할 기분이 아니었다. 나는 라디오를 끄기 위해 협탁 앞으로 갔다. 막 정지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갑자기 라디오 소리가 뚝 끊겼다.


아직 아무것도 누르지 않았는데? 나는 당황해서 버튼을 노려보았다. 너무 타이밍 좋게 소리가 끊기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버튼을 눌렀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라디오를 끄지 않았다. 라디오의 재생 버튼은 여전히 꾹 눌려 있었다.


혹시 고장 났나? 내가 라디오를 노려봄과 동시에 곧바로 라디오에서 지지지직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순한 소음 뿐만은 아니었다. 그 소음 간간히 누군가의 목소리가 섞여 들려오고 있었다.


-…속보입니다. 전국을 뒤덮은 강한 눈보라에 섞여 상공어가 한국에 상륙했습니다. …을 하는 상공어의 특성상……. 특히 아파트 고층에 사는 주민들의 주의를 당부…….


나는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뉴스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너무나도 거슬렸기 때문이었다. 차분하고 매끄러운, 마치 도자기로 빚은 것 같은 아름다운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순간, 나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괴함을 느꼈다.


나는 이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이 목소리는 재작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인기 라디오 DJ의 목소리였다. 분명히 그녀였다.


“뭐야?”


나는 서둘러 라디오를 껐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무리 아름다운 목소리라도, 죽은 사람의 목소리는 내게 두려움과 당황밖에 주지 않았다. 딸칵. 버튼이 눌렸다가 튀어 오르는 소리와 함께 이번엔 라디오가 확실히 꺼졌다.


방안은 순식간에 조용해 졌다. 들리는 건 집 바깥의 바람소리뿐이었다.


어쩔 줄 모르고 숨만 쉬며 몇 십초가 지났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자, 나의 당황과 꺼림칙함도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침착을 되찾자 나는 그 기괴한 목소리를 확인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다시 라디오를 켜고 싶은 기분과 그러고 싶지 않은 기분이 교차했다.


정말 그 DJ의 목소리일까?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닐까? 단순히 목소리가 닮은 사람일수도 있잖아……. 나는 망설이다가 다시 라디오를 켰다.


달칵. 버튼이 튀어 오르는 소리가 났다.


-와하하. 재미있는 사연 감사합니다. 안지원님. 안지원님께는 10만원 구두 상품권…….


하지만 다시 켜진 라디오에서 들린 것은 죽은 DJ의 목소리가 아닌, 살아있는 밝고 경쾌한 DJ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내가 애초부터 뉴스 프로그램이 아닌 시청자 사연 프로그램을 듣고 있었다는 걸 기억해냈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입술을 매만졌다. 뭐지? 내 착각이었나? 분명히 죽은 DJ의 목소리를 들었었는데. 하지만 라디오에선 그런 적 없다는 듯 새로운 사연을 웃음과 함께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의아했지만, 한편으로 마음이 조금 놓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착각이었나 봐. 나도 참. 보약이라도 한 채 지어 먹어야 하나? 나는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베란다 창으로 다가갔다. 커튼을 다시 치려는 순간, 나는 눈보라 속에서 이상한 것을 보았다. 거대한 검은 물고기 같은 것이 무시무시한 바람을 헤치며 느릿느릿 하늘을 날고 있었다.


“…물고기?”


이해 못할 광경에 나는 두 눈을 비볐다. 이상한 일이었다. 거대한 물고기가 하늘을 헤엄치고 있다니. 물고기는 마치 저 눈보라가 그의 물 속인 것처럼 편안하게 하늘을 날고 있었다. 심지어 나는 그 물고기의 옆구리 부분에서 팔락이는 지느러미까지 보았다.


하지만 눈을 비볐다가 다시 뜨니, 아니나 다를까 눈보라 속 물고기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믿기 힘든 기분이었다. 나는 차가운 베란다 창문에 찰싹 달라붙어 계속해서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눈보라 속을 노려봐도 다시 물고기가 보이진 않았다. 어둠 속을 뚫어져라 바라본 탓에 눈만 아파질 뿐이었다.


나는 결국 눈보라를 노려보는 걸 포기하고 베란다 창에 커튼을 쳐버렸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커튼이 쳐지고 나서야 나는 곤두섰던 신경이 좀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이상한 일도 다 있지. 죽은 DJ의 방송이라거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상공어라거나. 다 기가 허해져서 생긴 일일 뿐이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머그잔에 다시 입술을 가져다 댔다. 어느새 미지근해져버린 핫초코가 입 안에 가득 담겼다. 그 미끈거림이 짜증스러웠다. 나는 쩝쩝 소리를 내며 기운 빠진 목소리를 냈다.


“역시 보약을 한 채 지어야…….”


나는 보약 짓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며 방으로 돌아갔다. 방으로 돌아간 나는 보약 값을 벌기 위해 열심히 노트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노트북을 두드리는 사이, 나는 내게 일어난 이상한 일에 대해서 거의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남편은 퇴근 문자를 보내고 3시간 뒤에야 집에 도착했다. 눈보라를 헤치고 온 남편은 눈사람 꼴이 다 되어 있었다. 새빨간 코를 한 남편은 어깨에 쌓인 눈을 털며 퇴근길 하소연을 했다. 교통이 완전히 마비되어서, 회사에서 집까지 걸어왔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집이 있는 오르막을 오르면서는 두 번인가 세 번인가 넘어졌다고 했다.


나는 불쌍한 남편의 엉덩이를 두어 번 토닥여준 뒤, 그에게 따뜻한 율무차를 한 잔 타 주었다. 남편은 율무차를 마치 생명수 마시듯 소중히 마시곤 따뜻한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갔다. 나는 그가 샤워를 하는 동안 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도 피곤하고, 나도 피곤하니 오늘은 조금 일찍 자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가난한 월급쟁이와 가난한 프리랜서 형편에 난방을 펑펑 틀수는 없었다. 지난달 난방비 폭탄을 맞은 우리는 보일러를 떼는 대신 다른 방법으로 겨울을 나기로 했다. 그 방법이란 바로 온수매트와 난방텐트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온수매트를 적당히 떼고 그 위에 난방텐트를 설치하면 적은 돈으로도 따뜻하게 잘 수 있었다.


우리는 거실 한복판에 난방텐트를 설치하고 그 안에 오순도순 들어갔다. 아무리 대형 사이즈라도 다 큰 성인 둘이 들어가면 답답한 감이 있었다. 게다가 남편은 큰 대자로 뻗어 자는 버릇이 있어 더 답답한 듯 했다.


“자기야. 우리 꼭 이렇게 자야 돼? 나 답답한데.”


남편이 내 쪽으로 돌아누우며 속삭였다. 애교어린 그 목소리에 나는 얼굴 먼저 팍 찌그렸다.


“지난 달 관리비가 얼마 나왔는지 알아? 22만원이야, 22만원.”


“그래둥. 난방텐트는 자다보면 숨이 턱 막힌다니까.”


남편은 연하인데다가 애교가 많은 성격이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메마르고 냉정한 성격인 나는 가끔 그의 애교를 받아주는 게 힘들었다. 나는 남편의 혀 짧은 소리에 퉁명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좀 참아. 따뜻하잖아.”


“후웅. 따뜻한 게 아니라 오히려 뜨겁고 답답하니까. 온수매트 오래돼서 더 그래.”


“좀 참아. 뜨거워지면 내가 알아서 온도 조절하잖아. 만날 잘 자면서 그래.”


아무리 칭얼거려도 나는 시베리아 얼음판처럼 차가운 태도를 고수했다. 일부러 눈을 감고 있었지만, 어둠 속에서 남편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일부러 눈에 힘을 더 꽉 주었다. 지금 분명 온갖 불쌍한 척을 다 하며 나를 보고 있을 터였다. 그 눈을 보면 마음이 약해질 테니 눈을 감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결국 힘없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눈빛 공격이 끝났나? 내가 살짝 눈을 떴을 때, 나는 그만 회심의 일격을 받고 말았다.


“그렇긴 그렇지. 사실은 자기랑 이렇게 꼭 붙어 잘 수 있어서 좋기두 해.”


남편은 갑자기 나를 끌어안으며 가볍게 웃었다. 그 예상치 못한 공격에 나는 그만 마음이 풀려 살짝 웃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웃음을 터뜨리자, 남편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건방진 웃음을 지었다. 남편은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서 ‘내가 귀여워 죽겠지?’라고 내게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자존심이 상한 나는 바로 남편에게 으름장을 놨다.


“어허! 어디서 아양이야? 내가 귀여운 척 하지 말랬지! 이 여우같은 남편네 같으니라고!”


“꺄앙!”


나는 남편의 배를 힘껏 꼬집었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게 있다면 남편의 맷집이 너무 좋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꼬집은 게 애정표현인 줄 알고 껄껄 웃으며 좋아했다. 그 모습에 결국 빵 터진 나는 결국 남편의 머리를 끌어안고 이마에 뽀뽀를 쪽 해주고 말았다.




밤중에 목이 말라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힘없이 몸을 일으켜 더듬더듬 발치 쪽으로 기어갔다. 난방텐트의 사방에는 나갈 수 있는 지퍼가 있었지만, 나와 남편이 쓰는 주로 쓰는 통로는 발치 쪽의 출구였다. 지이익. 아무 생각 없이 지퍼를 올렸다. 지퍼는 반원 모양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며 열렸다. 나는 하품을 하며 지퍼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지퍼 밖으로 몸을 내밀기 전에, 나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멈추고 말았다.


이상했다.


지퍼 밖은 완전한 암흑이었다.


지금은 밤이었다. 밤이라면 어두운 게 당연하다. 밤엔 오히려 밝은 것이 이상하지. 그럼에도 나는 이 지퍼 밖의 어둠을 꺼림칙하고 이상하게 여겼다. 왜인지 알 수 없었지만, 너무나도 이상했다. 그리고 몇 초 뒤, 나는 이 두려움의 정체를 정확하게 깨달았다.


텐트 밖이, 텐트 안보다도 더 어두웠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상식적으로, 텐트 밖보단 텐트 안이 더 어두워야하는 것 아닌가?


텐트 안은 그렇게 어둡지 않았다. 새카맣기는커녕 오히려 파랗고 은은한 불빛이 돌고 있었다. 거실에 있는 전자제품들의 불빛이 텐트 안으로 비쳐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텐트 안에서 나는 내 손의 형태까지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텐트 밖은 그렇지 않았다. 텐트 너머엔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물론 두려웠지만, 다행히도 당황하진 않았다. 나는 침착하게, 그러나 빠르게 지퍼를 다시 닫았다. 지이이익. 지퍼가 반원모양으로 다시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지퍼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닫히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스스로를 텐트 안에 가둔 꼴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는 텐트 안에서 찰나의 안도감을 얻었다. 적어도 저 어둠 속으로 걸어나가지는 않았으니까.


나는 텐트 안에 주저앉은 채 숨을 골랐다. 고개를 숙인 채 숨을 고르고 있으려니 자고 있는 남편의 얼굴이 가장 먼저 보였다. 그러나 나는 일부러 남편을 깨우진 않았다. 나는 이 상황에서도 조심스러웠고 이성적이었다. 분명 상식 밖의 일이 일어났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 이상한 상황은 나의 착각일 가능성이 높았다. 나의 착각 때문에 남편을 깨워 소란을 피우고 싶진 않았다. 게다가 만약 좋지 않은 상황이라도 남편을 깨우고 싶진 않았다. 남편이 일어나 큰 소리를 내거나, 이 이상한 상황에 정면으로 대응하면 어떡한단 말인가. 지금 이 상황에서 남편은 통제할 수 없는 미지의 변수였다. 나는 어느 정도 상황이 파악될 때까지 나는 남편을 깨우지 않기로 했다.


나는 외계인도, 괴현상도, 귀신도 믿지 않았다. 무언가 텐트 밖이 어두울 이유가 있을 터였다. 별로 그럴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 모든 것이 나의 꿈일 가능성도 있었다. 어쩌면 내게 정신질환이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무엇이 되었든, 나는 가능한 한 이 상황을 이성적으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나는 천천히 텐트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텐트 안은 밝았다. 그러나 나는 곧 텐트의 모든 부분이 밝지는 않다는 것을 눈치 챘다. 방금 전 내가 열었던 지퍼 부분, 즉 발치 쪽의 지퍼 부분은 온통 새까맸다. 그러니까, 텐트의 한 면 만이 온통 새까만 것이었다.


그 모습에서 나는 하나의 가능성을 깨달았다. 어쩌면 남편이 무언가를 세워뒀을지도 몰라. 모르긴 몰라도, 커다란 나무판 같은 걸. 그걸 너무 가까이 세워뒀고, 그래서 그 그림자 때문에 그 쪽이 새카맣게 보이는 거지.


가능성이 높은 가설이었다. 가장 이성적이었고, 가장 말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확신할 수는 없었다. 나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켰다가, 결국 내 눈으로 직접 바깥 상황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나는 반대편의 지퍼를 열었다. 밝은 쪽의 지퍼. 아니나 다를까. 지익 열린 지퍼의 너머에 암흑 따위는 없었다. 흔들거리는 커튼과 파란빛이 도는 베란다 창이 살짝 보였다. 나는 몸을 낮춘 채 조심스레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발걸음 소리도 숨소리도 들리지 않게 조심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렇게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던 나는 드디어 텐트 반대편에 있던 암흑의 정체의 마주했다.




거대한 물고기가 텐트를 향해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칙칙한 회색 비늘 사이사이에 물이끼 같은 게 슬어 있었다. 얼핏보기에 마치 초롱아귀 같이 생겼는데, 빛이 나는 더듬이 같은 건 없었다. 아니, 어떻게 생겼냐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물고기가 있었다. 거대한 물고기가 텐트의 입구 쪽으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마치 먹이를 기다리고 있는 거대한 덫처럼. 그게 중요했다. 즉, 내가 본 건 바로 물고기의 입 안이었던 것이다.


한없이 새까맣고, 새까맣던 그 암흑이, 물고기의 입 안이었다는 것만이, 오로지 그것만이 중요했다.


“으…….”


나는 황급히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러지 않으면 비명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나는 비틀거리며 몸을 틀었다. 어서 텐트 안에 있는 남편을 깨워야했다. 깨워서 도망가야만 했다. 하지만 너무 서두른 나머지 나는 발을 잘못 내딛고 말았다. 내뻗는 오른발에 왼발이 걸리면서 나는 쾅 소리를 내며 바닥에 넘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물고기가 내 쪽으로 눈을 굴렸다. 마치 화석처럼 굳어있는 것처럼 보이던 눈동자가 내 쪽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그 눈동자가 나를 마주하는 순간, 물고기가 갑자기 지느러미를 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으, 으, 으, 으아아아!”


결국 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자리에 넘어진 채 뒤로 기기 시작했다. 일어나야하는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몸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죽을힘을 다해도 그 자리에서 바르작거리는 게 고작이었다.


눈앞의 괴물에 경악하던 그 때, 갑자기 텐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기야!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텐트가 흔들거리고, 지이익 지퍼가 올라가는 소리가 나자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남편은 늘 하던 습관대로 발치의 지퍼를 열려고 하고 있었다. 거대한 상공어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바로 그 쪽의 지퍼를.


“안돼! 나오지 마!”


나는 텐트를 향해 절규했다. 당장 일어나 텐트로 달려가야만 했다. 그러나 나는 바들바들 거리며 그 자리에 넘어지기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나오지 말라고 필사적으로 외쳤지만, 남편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지퍼를 여는 소리가 더 빨라졌다.


“기다려! 내가 갈게!”


그리고 마침내, 지퍼가 완전히 열리고 말았다. 텐트의 흔들림이, 물고기 쪽으로 이어지는 것은 순간이었다. 물고기의 입 쪽이 울룩불룩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고기 또한 입을 움썩움썩 움직였다. 물고기의 몸이 크게 흔들리더니, 어느 순간 고요해졌다. 나는 남편이 물고기의 입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안돼, 안돼, 안돼!”


나는 비로소 그 자리에서 일어나 물고기 쪽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물고기는 내가 그 비늘을 붙잡기 바로 전에 그 커다란 입을 다물어버리고 말았다. 뒤늦게 물고기의 얼굴 쪽을 잡은 나는, 물고기의 머리통이 흔들거리는 것을 느꼈다.


-꿀꺽.


“안돼!”


나는 겁나는 것도 잊어버리고 물고기의 머리통을 때리기 시작했다. 주먹을 쥐고 있는 힘껏 물고기의 머리통을 때렸다. 그러나 물고기는 전혀 타격을 받지 않은 듯 했다. 오히려 그 거친 비늘에 휩쓸려 내 손에 상처가 날 뿐이었다.


“뱉어! 뱉어! 뱉으란 말이야아악!”


그러나 어느 순간 물고기를 때리던 손이 허공을 때리기 시작했다. 남편을 삼킨 상공어는 점점 흐릿해지더니, 곧 형태조차 없어지기 시작했다. 상공어는 곧 증강현실 속의 환상처럼, 보이지만 만질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아악! 아악! 아아악!”


나는 이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피 흘리는 손으로 잡히지 않는 물고기를 잡으려고 공중을 긁기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남편이 먹히고 말았다. 저 물고기의 새카만 입속으로,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먹혀버리고 말았다.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고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소리치고 발악을 해도, 저 상공어의 입 속에서 남편을 빼낼 방법이 없었다.


투명해진 상공어는 내가 공중을 때리던 말든 전혀 신경쓰지 않고 천천히 지느러미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상공어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앞으로 전진하던 상공어는 곧 베란다를 통과해 집 밖으로 나갔다. 나는 울면서 상공어를 쫓아갔다. 베란다의 난간을 붙잡고 서서 상공어가 눈보라 속으로 헤엄쳐 가는 것을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상공어는 나의 절망과 고통은 아랑곳 않고, 유유히 눈보라 속을 헤엄치다가 곧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상공어에게 잡아 먹혔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도, 결국은 이 나라의 아주 극소한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경찰은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신고했기에 수사에는 들어갔지만, 경찰은 상공어에 의한 납치가 아닌 집단 가출 사건으로 사건을 조사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상공어에 의한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은 미친 사람처럼 취급되었다. 언론은 그들을 집단 히스테리 증상의 피해자라고 낙인찍었다. 그게 아니면 무슨 사이비 종교의 대량 살인 사건이나 약품에 의한 환각 증상일 거라고 멋대로 짐작했다.


집단 히스테리라고? 사이비 종교의 살인 사건? 약품에 의한 환각 증상?


절대 아니었다. 나는 내 남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내 남편은 상공어에게 잡아먹혔다. 내 남편은 상공어의 뱃속에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분노하고 절망했다. 경찰을 증오했다. 내 남편은 통째로 잡아먹혔다. 어쩌면 아직 살아있을 수도 있는데, 아직 소화되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왜 경찰은 상공어를 잡지 않고 시간만 끌고 있단 말인가? 나와 다른 피해자들은 경찰과 언론에 찾아가 발악하며 당장 상공어를 잡을 것을 요구했지만, 그들은 우리를 돕는 대신 강제로 해산시키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또 흘렀다.




나는 습관처럼 인터넷 카페에 접속했다. 피해자들이 모여 만든 <상공어 피해자 모임> 카페였다. 카페는 오늘도 아수라장이었다. 누군가는 분노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카페에 유입된 악플러들과 싸우고 있었다. 평소와 같았지만, 그와 동시에 카페엔 평소와 다른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일주일이 지남과 동시에, 사람들에게서 희망이 사라지고 있었다.


살아있을 리가 없다. 일주일이 지났는데. 벌써 위액에 녹았거나, 산소가 부족해서 사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 또한……. 나 또한 내 가슴 속 희망이 점점 사그라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씁쓸한 마음을 애써 외면하며 카페 전체글 목록을 훑어보았다. 무언가 희망적인 게시글이 찾아보려는 목적이었지만, 늘 그렇듯 오늘도 별다른 소득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마우스의 휠을 굴리던 나는 게시글 중에 무언가 특이한 글을 발견했다.




「상공어 방송을 들은 분 찾습니다! (52)」




댓글이 쉰 두 개나 달려있었다. 하지만 쉰 두 개의 댓글보다도 더 인상적인 것은 ‘상공어 방송’이라는 말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었다. 상공어 방송. 그저 나의 착각이나 환상이려니 생각했다. 왜냐면 사건 직후 상공어 방송에 대해 검색해봤을 때 아무런 검색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라디오 방송국에 문의까지 했지만, 그 시간에 속보 같은 것을 낸 적 없다는 대답만 들었을 뿐이었다.


그랬었는데.


지금 사람들이 나의 환상인줄만 알았던 상공어 방송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저의 착각인줄만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얼마 전 다른 피해자분과 얘기를 나누다가, 그 분 또한 해당 방송을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들은 방송의 내용이 다르기에 혹 다른 분들도 그 방송을 들었나 여쭤보고 싶습니다.


만약 방송을 들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본인이 들으신 내용을 댓글로 적어주시길 바랍니다.」




나는 놀람과 경악으로 본문과 댓글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상공어 방송을 들은 것은 생각보다도 훨씬 더 많았다.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모두 같은 DJ의 이름을 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공어 방송을 들었다는 이들 모두, 나와 같이 죽은 DJ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하고 있었다.


다만 다른 것은, 본문의 말대로 모두가 들은 방송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방송을 들은 장치도 달랐다. 누군가는 나와 같이 라디오로, 누군가는 TV로, 누군가는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섞여 들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무튼 중요한 건 그들이 모두 상공어 방송을 들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댓글 속 뉴스의 내용을 종합해보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에서 상공어 피해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먼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상공어로 인해 피해를 보신 분들께 알려드립니다. 상공어는 사냥에 성공한 지역을 다시 찾는 습성이 있습니다. 2차 피해를 주의하십시오.


-상공어는 눈보라를 타고 이동합니다. 상공어는 먹이를 잡을 때만 실체화합니다. 먹이를 잡은 뒤에는 잔상으로 변해 벽이나 물체를 통과할 수 있습니다.


-눈보라 바깥의 상공어는 몹시 느리게 이동합니다. 그렇기에 상공어는 인간이 무심코 지나는 문 너머 등에 입을 벌리고 기다리는 식으로 사냥을 합니다. 만약 상공어를 본다면 지체 말고 뛰어 도망가십시오. 그렇게 하면 성공적으로 도망칠 수 있습니다.


-상공어는 열에 약할 거라는 추측이 있지만, 확인 된 바는 없습니다.


-상공어를 잡을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가족 분들에 대해 잊어버리십시오. 그들을 구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 누구도 그들을 구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 아픔을 위로할 것입니다.




댓글을 읽던 나는 어느 순간 맥이 탈 풀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유야 뻔했다. 누군가가 쓴 방송의 내용이 너무나도 가슴 아팠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구할 방법은 없습니다.-


댓글 중 한 문장이 마치 홀로 볼드체로 튀어나온 듯 내 눈에 박혀 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고개를 젓고 또 저었다. 구할 방법이 없다니. 그렇게 단정 지어 말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나 또한 이제와 남편의 생환에 그다지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주 작은 가능성이 있는 한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누군가가 그런 내게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도 큰 상처였다.


나는 두 주먹을 꽉 쥔 채 이를 악물었다.


인터넷 게시글 덕분에 내게 약간의 희망이나마 생겼다. 상공어가 다시 내게 찾아올 가능성이 있는 이상, 나는 내 남편에 대한 희망을 절대로 버릴 수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상공어를 기다렸다. 모든 것을 잡아먹힌 밤과 똑같이 해두었다. 적당히 온도를 올린 온수매트 그리고 그 위에 설치한 난방텐트. 달라진 것은 내 옆 자리엔 남편 대신 내 팔뚝 길이만한 회칼과 골프채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눈보라가 찾아온 어느 날 밤, 뚠 눈으로 밤을 새우던 나는 내 발치에 짙은 어둠이 찾아온 것을 목격했다.




나는 나흘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상태였다. 밤이면 밤새 텐트 안에서 상공어를 기다렸고, 낮이면 하루 종일 경찰이나 언론을 쫓아다니거나 피해자 모임에 가곤 했다. 잠을 자는 것은 해가 밝은 뒤의 몇 시간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금 찾아온 암흑에 가슴이 조이는 듯 떨리면서도, 혹시 이 상황이 나의 환상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나는 그날 밤처럼 천천히 내 발치의 텐트 지퍼를 열기 시작했다. 지이이익-, 지퍼가 마찰되는 나지막한 소리와 함께 빛 하나 없는 무거운 어둠이 내 앞에 펼쳐졌다. 밝은 텐트 안과 어두운 텐트 밖. 일전에 느꼈던 기묘한 두려움이 다시 찾아왔다. 다만 이번엔 두려움뿐만이 아니었다. 내 심장 아래에서부터 뜨거운 분노가 목구멍 아래까지 치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회칼을 오른 손에 들고, 골프채는 겨드랑이에 낀 채로 반대편 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왔다. 잊지 못할 광경이 내 눈 앞에 다시금 펼쳐져 있었다.


파랗고 은은한 빛이 도는 거실과 텐트 입구에 입을 벌리고 버티고 있는 상공어.


마치 내가 그 날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내 남편을 잡아먹은 상공어가 틀림없었다. 물이끼 슬어있는 칙칙한 회색 비늘. 얼핏 보기에 마치 초롱아귀 같은 생김새. 그날의 상공어와 완전히 같았다.


상공어는 내가 나온 것을 눈치 채지 못한 듯 여전히 입을 쩍 벌린 채 끈기 있게 그 입에 먹이가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 끈덕지고 징그러운 모습을 본 내 가슴이 쿵쿵쿵쿵 시끄럽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오래 시간을 끌지 않았다. 서두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느리적 댄 것도 아니었다. 나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골프채를 바닥에 내려놓고, 회칼을 고쳐 잡았다. 조심, 조심. 나는 소리 없이 상공어의 옆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상공에의 옆에 바짝 다가선 나는 두 발에 힘을 실은 채 단단히 섰다.


후욱-. 후욱-. 후욱-.


그리고 세 번의 숨을 몰아쉰 뒤, 나는 회칼을 들은 손을 번쩍 쳐들어 상공어를 향해 내리찍었다.


-카각!


쇠가 비늘에 긁히는 소리가 날카롭게 귀를 긁었다. 내 손은 아래를 향해 힘껏 내려갔다가, 잠깐 멈췄다가, 다시 아래를 향해 미끄러졌다. 나는 순간 당황으로 주춤거렸다. 설마 칼이 박히지 않고 미끄러질 줄은 몰랐다. 상공어의 비늘은 마치 강철처럼 단단했다.


그러나 칼이 박히지 않았어도, 충격은 전해진 모양인지 상공어가 몸을 흔들며 지느러미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해서 다시 칼을 치켜들어 내리찍기 시작했다.


“죽어! 죽어! 죽어어어!”


-칵! 칵! 카가각!


그러나 한 번 박히지 않았던 칼이 두 번, 세 번 찌른다고 박힐 리가 없었다. 미끄러지는 칼날은 상공어를 상처 입히기는 커녕 내 허벅지만 두 번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결국 회칼을 바닥에 내던져 버렸다. 상공어가 크게 몸을 흔들며 몸을 뒤로 빼려고 하고 있었다.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나는 두 팔로 상공어의 몸통을 끌어안은 채 발버둥치는 상공어를 난방텐트 안으로 밀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나는 내가 지금 뭘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내 머릿속엔 그저 상공어가 도망가지 못하게 잡아둬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할 뿐이었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상공어를 난방텐트 안에 쳐넣었다. 결국, 난방텐트의 입구가 찢어지면서 상공어가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대로 계속 계속 상공어를 밀어 넣었다. 결국 상공어의 몸통은 텐트에 그대로 끼어버리고 말았다. 혹 아무렇지도 않게 빠져나가면 어쩌나 싶었지만, 좁은 텐트에 상공어의 거대한 몸통을 억지로 끼워 넣은 것이기 때문에 생각외로 상공어는 버둥대며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상공어가 움직이지 못하는 틈을 타 골프채를 내려놓은 곳으로 달려갔다. 바닥도 보지 않고 달려가는 바람에 온수매트의 온수통을 걷어차 삐하는 기계음이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골프채를 집어들고 그대로 상공어를 향해 휘두르기 시작했다.


-퍽! 퍽! 퍽!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손바닥이 찢어질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팔이며 목이며 등이며, 회칼로 찌른 허벅지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상공어를 놓치지 않고 죽여 둬야만 했다. 만약 이대로 놓친다면 두 번 다시 남편을 볼 수 없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상공어를 죽이고, 이 놈의 배를 갈라 남편을 꺼낼 생각이었다. 설사 이미 시간이 지나, 남편의 일부만을 얻는다 하더라도, 그렇다하더라도 나는 상공어의 배를 가르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를 지배하는 분노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 상공어를 공격하는 동안엔 아픔마저도 희미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상공어를 공격했을까? 숨이 가빠지고, 목구멍이 헐듯이 아파지고, 입안에 단침이 새어나오기 시작했을 때 나는 상공어가 무언가 달라졌음을 눈치 챘다. 상공어에게서 뜨거운 김이 나오고 있었다. 상공어에게서 김이 나옴과 동시에 아무리 때려도 꿈쩍도 하지 않던 상공어의 몸통이 마치 잘 익은 조기 조각처럼 때릴 때마다 바스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해서 텐트의 천위로 상공어의 몸통을 만져보았다. 몸통에 뜨끈뜨끈, 열이 올라 있었다.


나는 상공어가 갑자기 뜨거워진 이유를 생각해보다가, 상공어가 지금 온수매트 위에 올라가 있음을 상기해냈다. 하지만 온수매트는 저온으로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열이 받아도 이정도로 받을 리는 없었다. 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 보니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심하게 펄떡이던 상공어는 이제 더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나는 상공어가 움직이지 않는 사이에 온수매트의 온수통을 확인해보았다. 아니나다를까, 온수통에 달려있는 난방조절기가 완전히 부서져 있었다. 아마도 조절기가 고장나면서 초고온으로 바뀌어 계속 유지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니, 잠깐만. 이러면…….”


멍하니 조절기를 바라보던 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공어에게서 김이 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안에 있을 내 남편도 무사하지 못할 터였다. 나는 허겁지겁 바닥에서 회칼을 집어 들어 텐트를 찢기 시작했다. 텐트의 천을 찢어내자 그 안에 있던 상공어의 몸통이 드러났다. 익고 나서 때린 부분은 비늘도 몸통도 으스러져 검은 속살이 보이고 있었다.


“정욱아! 안에 있어? 안에 있는 거 맞아?”나는 다시금 상공어의 몸통에 회칼을 찔러 넣었다. 익은 다음이라 그런지 처음과 다르게 별다른 저항없이 칼이 상공어의 속살에 푹 들어갔다. 나는 칼날을 천천히 아래쪽으로 내리며 상공어의 몸통을 천천히 가르기 시작했다. 칼날의 움직임에 따라 상공어의 몸통이 김을 내며 벌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벌어진 부분의 검은 살을 손바닥으로 밀어내며 남편을 찾았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뜨거웠지만, 빨리 남편을 찾아야겠다는 마음에 상공어의 뱃속을 뒤지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상공어의 뱃속을 뒤져도 남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질척거리던 내장을 뒤지고 뒤지다가, 혹시 남편이 이미 다 소화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기 시작했을 때, 나는 상공어의 뱃속 깊은 곳에서 새빨간 막으로 둘러싸인 덩어리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막 안에서 사람의 손가락을 보았다.


“정욱아!”


나는 막 근처에 있는 내장들을 전부 해쳐 꺼냈다. 상공어의 살들을 어느 정도 다 떼어내자 붉은 막의 전체적인 형상이 드러났다. 그건 타원형의 막이었는데, 성인 남자가 최대한으로 몸을 웅크리고 있다면 딱 그 정도의 크기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막의 얇은 부분에 사람 신체의 일부분이 보이고 있었다. 특히 손가락만은 정확히 보이고 있었는데, 그 하얗고 긴 손가락이 꼭 내 남편의 손가락처럼 보였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내 남편!


분명 내 남편이 이 안에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다시 회칼을 들었다. 하지만 곧 다시 내려놓고, 주방으로 달려가 가위를 가져왔다. 그리고 커다란 주방가위로 조심스레 막을 자르기 시작했다. 막을 자르자마자 안에서 불투명한 점액 같은 것이 밖으로 줄줄줄 쏟아져 나왔다. 나는 가위질 속도를 높였고, 마침내 막 안 사람의 얼굴 부분까지 가위질을 끝냈다.


누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단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막 안에 있던 사람의 얼굴 위에 점액질 같은 것이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 점액질을 사람의 얼굴에서 치워냈다.


“아…….”


남편의 얼굴이었다. 상공어의 뱃속에, 내 남편이 이리도 멀쩡한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정욱아! 정욱아! 눈 좀 떠 봐, 정욱아!”


나는 남편의 어깨를 붙잡아 흔들기 시작했다. 남편은 일주일이나 물고기 뱃속에 갇혀있던 사람치고 너무나도 멀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남편을 깨우다가, 뒤늦게 이성을 되찾고 주머니 안쪽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나는 급하게 119를 누른 다음, 전화를 받은 구급대원에게 횡설수설 소리치기 시작했다.


“남편이 돌아왔어요! 남편을 찾았다고요!”


주소를 묻는 구급대원의 말이 돌아올 때까지, 나는 그렇게 정신을 놓은 채 남편이 돌아왔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남편은 살아있었다.


아직 의식을 되찾진 않았지만, 살아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남편의 생환 덕분에 상공어 사건이 진지하게 다뤄지기 시작했다. 과학수사팀이 상공어의 잔해를 가져갔고, 경찰은 상공어의 포획을 위해 피해 가정마다 특수부대원들을 배치하기로 약속했다. 사람들은 남편의 사건을 보고, 가족의 생환에 대한 희망을 되찾았다. 나 또한 피곤하고 지친 몸이었으나, 다른 피해자 가족들을 위해 뉴스 인터뷰에 응해 어떻게 상공어를 죽이고 남편을 구했는지 세세하게 설명했다.


나의 증언과 특수부대원들 덕분에 많은 피해자가 돌아왔다. 물론 개중엔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상공어의 배를 갈라도 아무것도 없는 경우도 있었고, 상공어가 다시 돌아오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가족이 돌아온 사람들은 운이 좋지 않은 경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우리는 우리의 일에 더 신경을 써야만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단지 가족들이 돌아온 것만으로 끝이 아님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상공어의 뱃속에서 나온 사람들이 의식을 찾았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뜬 채 고요히 누워만 있을 뿐이었다. 가족이 돌아온 것은 여전히 기뻤지만, 그래도 우리들은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영영 예전과 같아지지 않으면 어떡하지?


나는 병원에서 짐을 싸고 있었다.


내일 오전 병원에서 퇴원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남편은 예전과 같지는 않았지만, 신체적으론 아무런 이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남편을 퇴원시키고 집에서 돌볼 생각이었다. 내가 남편의 짐을 싸는 동안, 남편은 평소처럼 침대 위에 가만히 누워 천장을 보고 있었다.


“정욱아.”


나는 남편을 보고 가볍게 미소 지었다. 그리곤 남편의 상체를 일으켜 세워 베개에 기대게 했다.


“너무 누워있으면 안돼. 좀만 앉아있자.”남편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나는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울지 않고 가만히 남편의 머리칼을 매만졌다. 남편의 부들부들한 곱슬머리를 매만지고 있자니 옛날 생각이 났다. 내 남편. 나랑 밥 한번 먹고 싶어서 좋아하지도 않는 테니스부에서 한 달이나 공을 주웠던 남자.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직접 기타를 배워 쳐주던 남자. 나를 위해 요리 블로그를 탐독하고, 오로지 나만을 찍은 사진을 앨범으로 만들던 남자.


나는 남편이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남편은 나와 평생 함께 하기로 약속했으니까. 절대로 거짓말을 할 남자는 아니니까. 나를 진심으로 사랑했으니까. 그냥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었다. 남편은 분명 내게 돌아올 터였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띠리릭. 띠리리릭.


내가 남편과의 추억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내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미니냉장고 위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엄마의 전화였다.


“응. 엄마.”


나는 전화를 받았다. 엄마와 나는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는 단조로웠으며 우리들의 목소리는 기운이 없고 우울했다. 그렇게 몇 분 정도 이야기를 나눴을 때였다. 갑자기 불쾌한 기계음과 함께 엄마의 목소리가 끊겼다.


-삐이이이익.


잠깐일 줄만 알았던 기계음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나는 당황하며 휴대폰을 귀에서 뗐다. 전화를 끌까 생각하던 중, 나는 문득 기계음 사이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묘한 기분이 나를 엄습했다. 나는 급하게 휴대폰을 다시 얼굴에 가져다 댔다. 삐이익. 기계음이 한 번 더 짧게 이어진 뒤, 금세 언제 그랬냐는 듯 음질이 깨끗해졌다.


그리고 나는 다시금 죽은 DJ의 목소리를 들었다.


-…올해 마지막 눈보라입니다. 상공어는 이 눈보라를 타고 한국을 떠날 것입니다. 집에 상공어가 있으신 분들, 상공어가 있을지도 모르는 분들, 집의 모든 문을 열고 바람이 집 전체를 지나가게 하십시오. 그래야만 상공어가 눈보라를 타고 날아갈 수 있습니다.


설마 상공어 방송을 다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등줄기를 타고 전율이 흘렀다. 나는 삐걱거리는 움직임으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방송대로 밖에는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바람이 가장 강한 시간은 10시. 5분 뒤인 오후 10시입니다. 10시경엔 꼭 집의 모든 문을 열어주십시오.


DJ의 방송에 나는 나도 모르게 두 눈을 크게 떴다. 병실의 벽시계를 바라보았다. 오후 9시 55분. DJ의 말대로 10시까진 5분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병실의 창을 바라보았다. 병실밖엔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어, 어떡하지? 어떡하면 좋지?”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창문을 열어야할지, 아니면 이대로 두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이 병원에 상공어가 있을까? 있다면 창문을 열어 쫓아야할 것이고, 없다면 아무래도 닫아두는 것이 좋을 터였다.


나는 어쩔 줄 몰라 두리번거리다가, 남편을 한 번 쳐다보았다. 남편은 내 혼란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요히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고 그냥 창문을 닫아두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혹시 창문을 열었다가 새로운 상공어가 병원에 들어올까봐 불안했다. 그냥 모든 문을 닫고 병실에 남편과 같이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 같았다.


“정욱아. 괜찮아. 이제는 괜찮아. 상공어들이 우리나라를 떠난대.”


나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남편의 옆에 붙어 앉았다. 남편의 팔에 팔짱을 끼고 침대에 앉아있자니, 건물 바깥의 바람이 점점 거세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휘오오오. 휘오오오.


거대한 병원은 물론, 병원 안에 있는 우리마저 같이 흔들리는 듯한 소리였다. 나는 그 눈보라 소리를 견디며 벽시계를 바라보았다. 얇은 바늘이 움직이고, 긴 바늘이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 움직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째깍, 째깍, 재깍…….


탁.


그리고 마침내, 시곗바늘이 10시를 가리켰다.


시곗바늘이 10시를 가리켰는데, 나는 창밖이 아닌 내 손을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손등 위로 거칠고 단단한 촉감이 느껴졌다. 따스하면서도 메마른 온기. 나는 놀람에 눈을 크게 뜬 채 고개를 들었다. 내 남편이 내 손을 붙잡고 있었다. 시곗바늘이 10시를 가리킴과 동시에, 작은 기적이 일어난 것이었다.


“정욱아.”나는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남편 또한 나를 보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남편은 나를 바라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이전처럼 허공만을 보는 것도 아니었다. 남편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창밖을. 그의 눈에는 전에 볼 수 없었던 비릿한 물기가 돌고 있었다.


“정욱아, 왜 그래?”나는 남편의 이상한 태도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남편은 내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나를 붙잡은 손에 더 힘을 주었다. 어느 순간, 그는 팔짱을 낀 내 손을 강하게 떼어내 버렸다. 갑작스럽게 밀어내는 그 행동에 나는 하마터면 침대에서 굴러 떨어질 뻔했다.


“악!”


나는 붙잡혔던 손이 아파 비명을 질렀다. 나는 아픈 손을 가슴 안으로 감쌌지만, 그마저도 오래 하지 못했다. 남편이 침대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어디 가는 거야?”남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창가로 가 닫힌 창을 열었다. 창이 완전히 열린 건 아니었다. 병원의 창은 혹시 모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아주 조금밖에 열리지 않았다. 열린 창으로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쳐 들어왔다. 그는 열린 창의 크기를 가늠하듯 매만져보더니, 곧 미련 없이 창에서 돌아섰다. 나는 그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급하게 남편의 팔을 붙잡았다. 남편은 다시금 나를 밀쳤다. 그러고는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쾅, 병실의 문이 열리더니 다시 닫혔다. 나는 비틀거리다가 바로 남편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어디 가는 건데? 대체 왜 그러는 건데?”


나는 남편의 뒤를 쫓으며 악을 썼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행동에 당황스럽고 무서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나는 주변에 뛰고 있는 것이 우리뿐만이 아닌 걸 깨달았다. 몇 몇의 환자들이 남편처럼 복도를 뛰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들 또한 상공어 사건의 피해자였다.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 명확해지는 순간, 나는 절망과 공포에 휩싸였다. 이들은 어디로 가는가. 하필 눈보라가 치는 이 날, 상공어들이 떠나는 이 날, 왜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는가.


불길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리고 그 불길한 생각은, 지금 현실로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려고 하고 있었다. 남편을 쫓아 온 병원을 뛰어 도착한 곳은, 병원의 옥상정원이었다.




지금은 옥상정원의 개방시간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가 도착했을 때 옥상정원의 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깨진 유리조각과 핏방울이 사방에 번져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먼저 온 환자들이 문을 부숴버린 듯 했다. 옥상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본 것은 난간을 기어오르고 있는 환자들이었다.


그리고 내 남편 또한 난간을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나는 몸을 던져 남편의 다리를 잡았다. 나와 남편은 같이 바닥을 굴렀다. 콘크리트 바닥의 거친 표면이 내 다리와 팔을 긁었다. 그러나 나는 멈출 수 없었다. 남편이 발버둥을 쳤기에 나는 떨어지지 않도록 더 필사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들은 한참 동안 바닥에서 씨름을 했다. 그러는 동안 눈보라는 더욱더 거세졌다. 우리의 얼굴 옆으로 눈이 수북하게 쌓이기 시작했고, 우리마저 바람에 날려갈 것 같았다. 남편은 눈보라치는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나를 향해 입을 뻐금거리기 시작했다. 고장 난 것처럼 아무 말도 나지 않던 남편의 입에서, 갑작스레 쉰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준서야. 나 가야돼. 제발, 나 가야돼.”


나는 내 볼 위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뜨거운 눈물이 얼굴에 붙은 눈송이를 녹이면서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울었다. 지난 며칠 동안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닫혀 있던 남편의 입술이 열리고, 나를 향해 그 다정한 목소리를 다시 들려주는 순간.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나는 이런 순간을 상상한 적이 없었다.


“안돼! 그러지 마!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어딜 가겠다는 거냐고!”


나는 남편을 향해 소리쳤다. 목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더 늦기 전에, 제발…….”


“안돼. 가면 안돼. 나랑 약속했잖아. 영원히 내 곁에 있겠다고, 영원히 나를 지켜주겠다고. 그러겠다고 약속했잖아.”


나는 눈물 젖은 눈으로 남편을 올려다보았다. 남편의 새빨간 눈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보며 흐느꼈다. 소리 내 울지도 못하고, 이를 악문채로 흐느꼈다. 그렇게 고갯짓을 하며 얼마나 울었을까. 나는 어느 순간 남편의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준서야.”


남편이 내 이름을 불렀다. 흔들리는 목소리였지만, 조금 전과 달리 애정과 다정함이 담겨 있었다. 남편은 손을 뻗어 내 볼을 매만졌다. 그의 거친 손가락이 내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그 거친 촉감에 따라 내 영혼에 상처가 나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너를 사랑해. 영원히…….”


그의 눈을 마주보는 순간, 우리의 모든 시간이 머릿속에서 스쳐지나갔다. 우리의 모든 시간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고 싸우고 행복해하고 즐거워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가슴 아파서,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붙잡은 그의 다리가 꿀렁이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그의 몸이 커다란 가죽 주머니로 변해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가죽 안에서 무언가가 발버둥치고 있었다.


“헉, 허억, 헉!”


남편이 목을 잡고 괴로워했다. 나는 남편의 다리를 놓고 그의 얼굴을 향해 기어갔다. 그의 얼굴이 새빨갛다 못해 새까맣게 변해있었다.


“왜 그래? 왜 그러냐고!”


바람이 불었다. 눈보라가 내리쳤다. 눈보라가 우리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나는 남편의 어깨를 잡은 채 오열했다.


“왜 그러냐고!”


“끄아아아악!”


남편은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 비명과 함께 남편의 입이 아래로 찢어지기 시작했다. 아래로 찢어진 남편의 입에서 무언가가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닷, 타다다닷!


지느러미를 치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은빛 치어들이 남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 치어들은 그대로 눈보라를 타고 하늘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크게 뜬 채 그 치어들을 바라보았다. 눈보라 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얗고 새카만 눈보라 속에서 상공어들이 날고 있었다. 검고 흰 상공어들이, 세상 모든 빛으로 빛나며 날고 있었다.


나는 잠깐 넋을 놓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눈보라 속에서 하늘을 유영하는 상공어. 그건 그 순간, 두려움과 공포를 넘어선 무엇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것들을 본 건 단지 몇 초뿐이었다. 그러나 그 몇 초 후, 나는 내 손 안의 남편이 푹 꺼져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남편을 내려다보았다.


껍질만 남은 남편이 내 품안에서 녹아내려가고 있었다.


“어? 어……. 어?”


나는 바보 같은 소리를 내며 녹아내려가는 남편을 붙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남편은 내 손안에서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바람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여러분 보이십니까? 상공어 떼가 하늘을 지나고 있습니다. 평생에 한 번 보기 힘든 희귀한 광경입니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청아한 DJ의 목소리는 온 하늘에, 땅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녹아서 사라지는 남편만을 보고 있었다. 나의 남편은 녹고, 녹아서 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아. 아아…….”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그 눈보라 속을 상공어 수천마리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지상에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환희와 경탄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무수한 타인의 행복 속에서 나는 오롯이 혼자였다. 그 무엇도 나의 눈물을, 괴로움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빈 품을 끌어안은 채 홀로 울고 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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