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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방 Oct 19. 2022

잃어버린다는 것은 나도 모르게 사라지는 것이다.

지갑을 잃어버린 사람의 심정

2022년 10월 12일, 나는 지갑을 잃어버렸다. 기억의 테이프를 되감아보자.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오랜만에 하는 농구에 신이 났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 얼마 전에 산 망치 가방에 트레이닝 복을 챙기고, 누가 봐도 농구하러 가는 사람처럼 입고 집을 나섰다. 택시를 타고 싶었지만 어색한 사람과 같이 가기 때문에 분명 버스를 탈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지갑을 챙겼다. 그래 분명히 챙겼다. 신발 신을 때 익숙하게 보이는 거대한 김치 냉장고 위에서 분명히 지갑을 챙겼다. 농구에 맞는 음악을 고른 후 나름의 리듬에 맞춰 건들거리며 걸었다. 원래 농구 하기 전 나만의 리듬을 찾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게 5분이 지났을까, 다시 학교 정문에서 어색한 사이의 팀원과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학교가 마치는 시간이라 버스에 사람도 많고, 시간도 부족해 택시를 타자는 결론을 냈다. 더 늦기 전에 카카오 택시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핸드폰을 꺼내 목적지를 입력했다. 그렇게 택시를 타고 한참을 달렸다. 퇴근 길이라 두배는 느리게 갔다. 그래도 좋았다. 새로 사귄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눈 덕분에 친한 사람 없는 농구부에 내 편이 생긴 기분이었다. 그렇게 떠들다보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쉬운 실력이지만 재밌게 농구했고 모든게 평범했다.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올 때는 택시로 편한 낭비를 했으니 갈 때는 버스를 타 값진 고생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이었다. 모두 같이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고 나는 지갑을 잃어버렸음을 깨달았다. 아니 그 때까지만 해도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칠칠 맞은 성격이었지만 물건을 잘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늘 어딘가에는 있었고 늘 찾았다. 그렇게 주머니를 뒤지고 가방을 뒤졌다. 그 때 갑자기 내 친한 대학 동기의 말이 떠올랐다.


 '잃어버렸을 때 뭣 된 것 같으면 진짜 잃어버린거야.' 


가방을 제대로 뒤지려 안에 든 짐을 꺼낼 때 딱 뭣 된 것 같았다. 애써 부정하고 싶어 불이 꺼진 체육관에 들어가 한참을 찾았다. 그럴리가 없었다. 애초에 지갑을 꺼낸 적도 없는데 잃어버리는 것은 모순적이지 않은가? 내가 초등학생 실내화 가방처럼 흔들며 다닌 것도 아닌데 이런 일이 생길리가 없었다. 지갑에는 카드, 현금, 신분증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잃어버렸다는 것을 애써 인정한 후 다시 집 가는 택시를 불렀다. 평소에 택시를 자주 이용하지 않는데 지갑 잃어버린 덕분에 하루에 두번이나 택시를 탔다. 그래도 편하게 간다는 생각에 쓴 웃음을 지어봤다. 억지 웃음은 얼마 못가 우울함으로 바뀌었고 자기합리화를 시도했다. 내가 잃어버린 것은 지갑이 아니라 내 안에 허세였다면서. 지갑을 샀을 때로 돌아갔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였다. 아버지는 갓 성인이 된 내게 사고 싶은 것을 사라며 백화점 상품권을 주셨다. 오래전부터 사고 싶었던 아이패드를 살 수 있을 정도의 액수였기에 기쁜 마음으로 서울 잠실의 롯데 백화점으로 향했다. 필요한 모든 것을 사고 나가려는 찰나에 1층에 명품관들이 보였다. 아이패드를 사고 난 후에도 어느 정도 액수가 남아있었고, 지금 아니면 언제 또 구경해보겠냐라는 생각에 무작정 평소 좋아하던 몽블랑 매장에 들어갔다. 몽블랑 직원은 너무나 친절했고 내 눈길이 향하는 물건마다 꺼내서 보여줬다. 정신을 차려보니 6개 정도 지갑이 내 앞에 펼쳐져 있었고, 홀린 듯이 그 중 하나를 골랐다. 우아한 친절은 내 돈을 조용히 데리고 갔다. 심지어 남은 상품권 금액을 넘어 추가 결제도 했다. 평생 써본 적 없는 돈을 지갑에 태웠다. 내가 부자라도 된 듯한 기분에 묘한 희열감을 느꼈다. 그것도 잠시 정확히 1시간 후에 후회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한걸까. 그렇게 내 인생 첫 사치다운 사치를 부려봤다. 허세에 대한 죄책감은 생각보다 오래갔고 평생 쓰면 된다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다시 택시 안으로 돌아와보니 늘 보던 풍경이 보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 앞에 도착했다. 혹시 내가 집에서 아예 들고오지 않은게 아닐까라는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으며 한참을 찾아봤지만 역시 없었다. 샤워를 하며 혼란스러운 머릿 속을 씻고 싶었지만 몸이 깨끗해질수록 생각은 더러워져갔다. 택시 기사 아저씨가 주웠는데 안돌려주는게 아닐까, 길에서 주운 사람이 당근 마켓에 올리진 않을까, 농구장 경비 아저씨가 주워서 안돌려주지 않을까 괜히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을 의심해본다. 이런다고 내 마음이 편해질까? 전혀 아니다, 애꿎은 화만 늘어나고 결론 없는 생각에 힘이 빠진다. 모든게 끝났다. 더 이상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기도도 하기 싫다. 괜한 기대는 큰 실망만 가져올 뿐이다.

 

 모든 기대를 접어두고 고등학교 때 쓰던 짝퉁 몽블랑을 꺼냈다. 사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갑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것 같다. 당시 비싼 지갑을 쓰는 친구들이 멋있었고, 나도 갖고 싶었다. 그러나 부모님도 쓰지 않는 명품 지갑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짝퉁이라도 사서 진짜인 척 하는게 최선이었다. 그렇게 혼자만의 컴플렉스를 키웠다. 친절한 직원은 다 핑계였다. 그냥 원했다. 나는 성인이 된 나는 가짜가 아니라 진짜라고 무리하더라도 증명하고 싶었다. 지갑을 산 뒤로는 지갑을 꺼낼 때 늘 당당했다. 나는 명품티 나는 명품들은 별로라며 몽블랑의 담백함을 자랑하고 다녔다. 명품을 갖고 다니지만 티내지 않는 멋도 허세였다. 지갑이 진짜이든 가짜이든 내 안에 허세는 지울 수 없었다.


 나는 가끔 지갑을 볼 때마다 허세에 찌든 내가 생각이 났다. 지갑을 잃어버리니 이제는 그럴 일이 없겠다는 생각에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지갑이 아깝다는 생각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저 다시 신분증과 카드를 발급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심란해졌다. 할 일도 많은데 은행과 동사무소를 왔다갔다하며 시간을 버릴 생각에 한 숨을 쉬었다.


 잃어버린다는 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지는 것이다. 내 안에 두려움, 힘듬, 우울함을 잃어버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리 버리고 싶어도 없어지지 않는 기분들은 거머리보다 더 끈질기게 붙어있다. 반면에 추억, 소중함, 사람들은 잘 잃어버린다. 아무리 주머니에 꼭꼭 숨겨두고 사진을 남겨도 어느새 사라진다. 잃어버리지 않는 방법은 자주 생각하는 것이다. 10분에 한번씩 지갑이 있는지 확인 했더라면 잃어버렸어도 쉽게 찾았을 것이다. 내게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버리지 않게 자주 생각하고 연락해야겠다. 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지갑을 잃어버렸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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