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저마다의 삶에 대해: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정해진 틀 속의 삶을 깨면 안 되는 걸까?

by 강포도 Oct 22. 2024


네가 너인 게 어떻게 네 약점이 될 수 있어.



일주일 정도 되는 시간, 잘 지내셨나요?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습니다. 이제 겨울의 분위기를 맞이하는 영화들이 우리를 반길 것 같습니다.

내일인 23일이 되면, 한소희 분이 주연으로 출연하시는 영화 <폭설>이 개봉합니다.

날씨와 시기에 적절하게 어울리는 영화를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듯합니다.



제가 이번 주에 다루어 볼 영화는 <대도시의 사랑법>입니다.

꾸준히 관객들의 인기를 얻으며 성장세를 보이며 '흥행 역주행'을 보여주기도 했었죠.

저는 저번 주 일요일에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관람했습니다.

처음 가 본 월드컵 경기장의 무게감에 압도된 기분이었습니다.

하필 당일에 월드컵 경기장에서 축구 경기가 있었던지라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ㅎㅎ


이 작품도 어떻게 보면 영화 <한국이 싫어서>처럼 '정답은 없다'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네 삶에는 정답이 없고, 저마다 각자의 삶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그만인 것이다. 이제는 세상이 정의 내린 정답, 모범 답안이라는 것에 질문을 던지고자 하는 작품들이 많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크게 본다면 이 영화는 자유로운 영혼의 여주인공 재희, 성소수자 남주인공 흥수의 좌충우돌 동거 라이프를 그리는 이야기였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도 있으실 터, 스포일러는 어쩔 수 없지만 최대한 줄여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함께 두 주인공의 이야기 속으로 함께 걸어가 보시죠.



우리의 관계가 '대도시의 사랑'이다


재희는 대학에서 요주의 인물입니다.

"평범"한 대학생들 사이에서 항상 튀고, 자유로우며 어떠한 틀 속에 갇혀지내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대학 MT 가는 날에 스쿠터를 끌고 와 버스 앞을 가로막더니 헬멧을 벗으며 버스에 올라타고, 항상 수업이 끝나면 가장 먼저 달려나가 담배 한 개비를 피우죠. 남자 동급생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이 점해놓은 것처럼 굴며 저급한 농담들을 나누고, 여자 동급생들은 재희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내심 질투합니다.

그리고 존재감 없는 흥수. 흥수는 사실 남자를 좋아하는 동성애자입니다. 소위 '벽장'이라고 불리는 커밍아웃을 꺼리고 지나치게 보수적이어서 "티가 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사람이죠. 학교에서는 조용한 학생1, 밤이 되면 이태원 게이 클럽에서 다른 사람인 것처럼 유흥을 즐깁니다.


둘은 이태원에서 만납니다. 흥수는 남자인 외국인 전공 교수와 키스를 하다 재희에게 들키고, 자신이 지켜오던 '벽장'의 문을 무너뜨리게 됩니다. 단, 재희에게만. 타인에게 자신의 실체를 밝히는 것을 극도로 꺼렸던 흥수는 재희가 가까이 다가오자 날 선 모습으로 응수하죠. 자신의 약점을 알게 돼서 만만해 보이냐면서요. 그치만 재희에게는 그런 흥수의 성지향성은 "1도 신경쓰이지 않는" 것이었어요.


어쩌면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다름'을 스스로 내보이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흥수는 자신의 의지로 밝힌 것도 아닌, 우연히 타인에게 자신의 다름을 공개해버리게 된 셈인 겁니다. 그 덕에 사회가 성소수자에 쏟아붓는 혐오에서 온 피해의식이 흥수를 자극해 날 선 모습으로 만들어버린 것이죠.

다음 날 학교에서는 흥수와 입을 맞췄던 외국인 교수가 '남자와 호텔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퍼집니다. 흥수에게는 칼이 목 앞까지 온 듯한 위기감이 다가옵니다. 심지어, 재희를 보며 질낮은 농담을 해대던 무리 중 한 명이 흥수의 얼굴을 보면서 '같이 호텔에 들어간 남자를 닮았다'라고 합니다. 일촉즉발의 상황입니다. 그 순간, 재희가 뛰어들어와 흥수를 위기에서 구해주죠. 친한 척을 하면서요. 그 남자 무리의 관심사는 재희였기에, 과 교수 아웃팅하기 놀이는 금세 잊혀지고 재희와 흥수의 관계로 이야깃거리가 넘어갑니다. 흥수에겐 천만다행이었습니다.



그렇게 재희와 흥수의 '공생 관계'가 시작됩니다.


성정체성은 다르지만, 서로 함께 유흥을 즐기고 추억을 공유합니다. 때론 아픔을 나누면서 함께 겪고 성장해나가기도 하죠. 한 번은 재희의 집에 변태 스토커가 찾아들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남자인 흥수가 있으면 좀 더 안전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마음을 전제로 둘의 룸메이트 동거 일기가 시작하기도 합니다.


둘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것을 당연함과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쉽게 말하면 '진정한 남사친과 여사친'의 관계가 맺어집니다.



뭐가 맞고, 뭐가 틀린 건데?


재희와 흥수는 말 그대로 '오답의 표본들'입니다.

재희는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중요하게 여기는 정조와는 거리가 멉니다.

유흥이 좋고, 사람을 만나고 사귀는 게 즐거운 '도파민 좋아' 유형입니다.

남자도 여럿 만나고 헤어지고, 어쩔 땐 클럽에서 만난 남자와 사고도 치죠.

그로 인해 대학에서는 재희를 배척하고 따돌리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악소문을 퍼뜨리기도 모자라 성적 모욕감을 주는 욕설을 입에 담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재희는 그냥 재희의 삶을 즐겁게 살았을 뿐인데,

대학 사람들은 재희를 더럽고 문란하고 생각 없는 사람으로 여기죠.

손가락질하고 뒤에서 함부로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내뱉는 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요.

적어도 재희는 그들에게 욕하고 해코지하지는 않았으니까요. '가만히' 자신의 삶을 살았을 뿐.


그리고 흥수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 어려운 부류 중 하나인 성소수자입니다.

어렸을 때 집 근처에서 같은 학교를 다니던 아는 형과 입을 맞추다가 엄마에게 들켰고,

그 뒤로 엄마는 교회의 독실한 신자가 되어 흥수에게 성정체성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죠.

가족에게서부터 존재를 부정당한 흥수는 대학에서 존재감을 지우며 살기 급급합니다.

남자친구가 밖에서 스킨십을 하려 하거나, 남자친구 자신의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한 일로 무지하게 분노하고 심지어는 이별 통보까지 할 정도의 인물입니다. 그만큼 자신이라는 존재가 밝혀지고 드러나는 것이 두려운 인물입니다.

어쩌면 흥수는 대한민국에서 자신이라는 존재가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흥수는 자신을 가리고 숨겨야 할 '오답같은 존재'로 여기죠.



하지만 재희는 그런 흥수를 이해합니다. 심지어는 '너답게 살라'라고 합니다. 사회가 보낼 시선이 두려운 흥수에게 "네가 너인 게 어떻게 약점이 될 수 있느냐"라고도 합니다. 재희만큼은 흥수를 믿고, 흥수의 믿을 구석이 되어주는 사람이죠. 그래서 그 둘의 관계가 '공생 관계'라고 일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뭐가 맞고 뭐가 틀린 걸까요?

대한민국에서 사회가 정한 틀 속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오답같은 존재' 취급을 받습니다.

가까이하지 않으려 하고, '이래서 함께 갈 수 없는 거다'라며 어떻게서든 그들의 취약점을 찾아내고자 합니다.

사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가 다 오답 투성이인데 말입니다.

재희는 정조를 지키지 않는 소위 '아메리칸 마인드'를 지녔고, 흥수는 성소수자입니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그들에게 손가락질하고 욕하는 존재는 대다수의 대한민국 사회 구성원들입니다.

재희는 좋아하고 재밌어하는 걸 즐겼고, 흥수는 좋아하는 사람이 남자였을 뿐입니다.

근데 사람들은 갑자기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의미없는 혐오를 내뱉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상황 속에서 오답과도 같은 존재는 가만히 있는 사람들에게 욕이나 해대며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그 수많은 사람들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그렇습니다.

어쩌면 공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재희와 흥수는 공존하는데, 사회 구성원은 그들과 공존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재희와 흥수도 몇몇 부분에서 대립하는 존재들인데 말입니다.

재희와 흥수의 관계가 오히려 아름답고 평범한 것처럼 느껴지고, 그들에게 지나치게 위험한 잣대를 내밀고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이상해 보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대한민국의 다양성 문제, 지금은 어떨까?


우리나라는 지금 어떤 상황일까요?


다문화


2020년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한국 인구의 약 3.3%를 차지하며, 이 중 46%가 중국인입니다.


또한 국제 결혼 비율도 급격히 증가해 2021년에는 7.2%에 달했습니다.


그 결과, 국적이나 인종이 다른 다문화 가정에 거주하는 인구가 109만 명을 넘어서게 됐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에서 다문화 현상은 충분히 융화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SNL에서는 국감에서 증인으로 출석했던 뉴진스 하니의 억양과 말투, 당시 행동을 따라했습니다.


이에 관해 여러 네티즌이 'SNL이 하니를 조롱했다!', '인종차별을 행하고 있다'라는 의견을 드러냈습니다.


실제로 외국에서도 같은 반응이 이어지면서 이 문제가 여전히 공론화되고 있죠.


또, SNS에서는 다양한 인종을 가진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찍힌 사진을 보고서 '우리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 같은지 예측이 된다'라며 묘하게 인종차별적이고 배척하는 듯한 뉘앙스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다문화, 다인종에 관해 적응하지 못하고 떠도는 모습이 여럿 느껴지는 상황이라고 느껴집니다.




LGBTQ+


최근 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이 동성 부부에게도 가능하게 되면서, 우리나라도 변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여론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최근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관련 이슈에 관해 반대 입장을 펴내면서 이를 가능케 한 대법원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당연하게도 여전히 LGBTQ+에 관한 인식도 매우 낮은 것은 사실이죠.


지금 당장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에만 들어가봐도 특정 커뮤니티에서 사용하던 말투를 따라하면서 자신들과 다르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성소수자냐며, 더럽다, 불쾌하다는 등 의미 없는 혐오 발언을 내뱉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왜 게이같이 웃느냐'라고 혐오 섞인 농담을 하는 재희의 직장 상사처럼요.


그러한 자극적인 말을 내뱉으면 거기에 동조하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더욱 많은 관심을 받기 위해 더 자극적인 코멘트를 남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도 현실입니다.


또 차별금지법이 여전히 특정 종교계가 강한 반발 등으로 정치적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어 진전되지 못하는 점도 한계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임신 중절, 그리고 가족의 형태


다문화와도 이어지는 맥락이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는 가족의 형태와 여성이 임신을 중단할 권리에 대해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가족의 형태 면에서는 사회가 정해놓은 틀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 가족은 이상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한부모나 혼외출산을 한 가족, 중혼 가정, 국제결혼 가정 등... 엄청나게 많은 형태로 분화하고 있는 가족의 모습에 여전히 적응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임신 중절 및 중단도 마찬가지죠.


2021년 이후 낙태죄 관련 형법 조항(제269조, 제270조)의 효력이 상실되어 낙태가 비범죄화됐습니다.


그러나 낙태 허용 요건 등에 대한 구체적인 대체 입법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아 법적 공백 상태인 상황입니다.


계속해서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마땅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이에 관해 목소리 또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임신 중단을 처벌할 근거는 사라졌지만,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근거도 없는 상황이기에 빠른 개선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결국, 대도시의 사랑법이 던지는 메시지



<대도시의 사랑법>은 우리의 삶은 어떤 형태로 존재해야 하는가에 관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렇게 살아도, 저렇게 살아도 어쨌든 저마다의 삶이니까요.

단순히 삶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오냐 잘됐다'라는 식으로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혐오를 내뱉는 사람들이 너무한 것도 사실입니다.


앞에서도 얘기했다시피, 이제는 '공존'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이지 않을까요.

그들을 인정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와 함께 살고 있고, 지금 당장 근처에 있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저 당신의 앞에서만 평범한, 사회가 정한 틀 속에 있는 사람인 척을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절대 알 수 없겠죠. 우리 사회가 그것을 용인하고 자연스럽게 여기지 않는 이상은요.


그들이 그들의 정체성과 그들의 삶을 드러내고 살 수 있다면, 그들의 삶은 작은 부분에서부터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바로 '존재를 인정받는다'라는 점입니다.

평범하게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부분적인 인간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이것은 또한 사회적 소수자뿐 아니라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모든 '별종'들에게 해당하는 말일 겁니다.


많은 것은 필요 없습니다. 무언갈 내 줄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그럴 수 있구나'라는 생각 하나만 있으면 되는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간단한 생각 한 줄이 우리의 세상을 더 많은 사람이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게 될 지도 모릅니다.


어떠셨나요?


이번 글에서는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과,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사회적 논의들에 관해 이야기해봤습니다.

요즘 사회가 점점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삭막해져가고 있다는 사실에 많은 분들이 공감할 거라 생각합니다.

저 또한 그렇게 느끼기도 하고요.


대한민국에서 사회가 정해놓은 틀 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저마다 삶에서 힘듦을 느끼다보니, 사회적 소수자들이 설 자리도 점점 사라지는 기분도 듭니다.


여러 문제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 속에 혼재하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여러분들이 소수자와 소수자는 아니더라도 '평범하지 않은 누군가'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셨는지, 그들을 앞으로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지에 관해 조금 더 빛을 비춰보았다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모두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 둘씩 깨져가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해 볼 시간인 듯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다음 영화와 함께 재미있는 이야기 들고 찾아오겠습니다.

그 때까지 건강하시고, 많이 기대해주세요!


내가 나인 채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려준 내 20대의 외장하드, 안녕.


작가의 이전글 영화 <한국이 싫어서> : 행복과 보상의 관계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