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시서점 Jul 08. 2024

살기 좋은 우리 동네 - 난 이제 도시여자다 (1)

김XX

95년생. 대전 출생.

성인이 된 이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1년, 

금천구 독산동에서 1년을 살았다.

이후 6년 가까이 양천구 신정동에 살고 있다.  


몇 년생이시죠?

저는 1995년생입니다.


어디서 태어나셨어요?

저는 대전광역시에서 태어났어요. 대전인데 어딘지는 저도 정확히 모르겠어요. 


부모님이 원래 대전분이신 거예요?

아빠는 대전 사람이고 엄마는 원래 서울 사람인데 그렇게 이제 점점 내려가다 보니까 대전까지 내려갔어요.

 

대전에는 그럼 몇 년 사신 거예요?
제가 빠른 연생이어서 대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갔거든요. 19년 살고 바로 올라갔어요. 


대학은 천안에서 나왔다고 하셨는데. 천안에서 있다가 서울에 올라오신 건가요?
맞아요. 


대전이랑 천안은 또 많이 다른가요?
비슷한 듯하면서 좀 다른데 아무래도 저도 대학교 가기 전에는 다 충청도 사람이랑 있다 보니까 천안권이어서. 그 1호선이 그 대학교 바로 앞에까지 갔어요. 그래서 서울 사는 친구들도 많았고 경기도 사는 애들도 많았는데 확실히 제가 시골 쥐구나 느꼈어요. 


대전도 광역시잖아요.
그래도 시골 쥐다. 그리고 확실히 경기도나 서울권에 사는 친구들은 확실히 깍쟁이구나. 


어떤 부분이?
보통 충청도 사람은 뭔가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이런 그런 편견이 있거든요. 그 이유가 싫은 소리를 좀 대놓고 잘 못해요. 근데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애들이랑 같이 밥 먹으러 가자 했을 때 저희는 메뉴가 달라도, 내가 생각한 메뉴가 아니어도 그냥 “그래, 같이 가자.” 이렇게 같이 가는 데 의미가 있었는데 확실히 서울 경기도권 친구들은 “아니, 난 오늘 그거 먹고 싶지 않아”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랑 충청도 사는 친구랑 “서울깍쟁이다.” 이랬던 기억이 있어요.


대전은 어떤 동네예요? ‘사람들은 재미없는 도시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맞아요. 하지만 진짜 평화롭다. 정말 평화롭고. 이거는 저만의 약간 좀 점쟁이 같은 이야기긴 한데 대전이 자연재해가 와도 좀 심하게 받질 않아요. 그래서 다른 지역은 물난리가 났다. 막 이랬을 때 대전 그래도 항상 무난하게 넘어가긴 하는데 대신 한 번 이렇게 바이러스나 그런 게 있잖아요. 크게 한 번씩 왔었던 거 그런 게 조금 심하게 올 때가 있었어요. 


어떻게요?
제 기억으로는 사스 막 이런 거 있잖아요. 엄청 옛날에 그랬던 게 좀 대전에 좀 심하게 왔었던 것 같은데 저의 기억 조작일 수도 있어요. 그리고 저는 대전 사람으로서 이야기하고 싶은 건 많은 분이 ‘대전은 성심당의 도시다.’라고 하는 데 아니거든요. 대전은 칼국수의 도시거든요. 서울에는 장칼국수 느낌의 걸쭉하고 매콤한 국물에 칼국수가 거의 없어요. 파는 곳이 항상 맑은 국물의 얼큰이 칼국수인데 대전은 맑은 국물의 얼큰이는 좀 보기 힘들어요. 보편적으로 걸쭉한 칼국수를 좋아하는 분들한테는 대전 칼국수 여행이. 칼국수 축제도 하거든요. 


처음 알았어요!
칼국수 축제도 하고 빵 축제도 하고 다 해요. 그래서 대전은 칼국수의 도시라고 저는 나름 혼자 밀고 있어요. 이쯤 되면 칼국수의 도시. 국밥집보다 칼국숫집이 더 많아요. 


신기하네요. 왜 칼국수가 유명했을까? 서울 칼국수가 마음에 안 드시겠네요?

확실히 그렇죠. 근데 지금까지 봤을 때 바지락은 어딜 가든 다 잘해요. 바지락은 어딜 가든 잘해요. 근데 얼큰히 장칼국수는 하는 데가 진짜 많이 없어요, 


대전 어디 쪽에 사신 거예요?
저는 중구에 사는데, 중구가 효의 도시라고. 마케팅이 효. 그래서 정말 노인분들이 많이 사시고 대전도 구역마다 분위기가 또 달라요. 네 구마다 달라서. 저는 되게 조용하고. 중구에 가장 유명한 거는 ‘오월드’라고 있어요. 


오월드요?

동물원이면서 이제 놀이공원인데 더 밑 지방에 사는 분들은 서울까지 오기 힘드니까 거기로 많이 오신다고 하더라고요. 


경상도 사람들이 경주월드 가는 것처럼
네.


아까 구마다 좀 약간 다르다고 하셨는데 다른 구는 어때요?

일단 제가 사는 구는 노인분들이 많아서 되게 조용하고. 충남대학교 병원처럼 엄청나게 큰 건물들만 있어서 조용한 편이고. 동구 같은 경우가 대전역 있고, 성심당 있고. 그러니까 한마디로 시내예요. 거기가 시내고. 또 이제 다른 곳은 젊은이들의 도시가 있어요. 핫하고 약간 이비자 클럽 클럽이 있고 모두 문화 즐기러 가는. 또 서구 이런 식으로 좀 나뉘어 있는데. 서울도 보면 신림동을 처음에 많이 사는 이유가 거기에 진짜 다 있기 때문이잖아요. 교통편도 괜찮고 근데 조금 대전에서는 서구가 그런 것 같아요. 놀 곳도 많고 각각이 다 있고 자취할 만한 건물도 많아서.


처음 올라오신 곳이 신림이라고 하셨잖아요. 신림 어디 사셨나요?
신림은 집값이 싸지도 않았어요. 양지병원 아세요? 그 역 바로 앞에 포도몰. 포도물 바로 옆에 병원이 있어요. 그 병원 바로 앞이어서 역이랑 거의 한 5분 거리 대로변에 있는 약간 고시원인데 거기를 원룸으로 개조한 느낌의 건물에 살았어요. 


왜 신림에 살게 됐어요?
그게 룰인 줄 알았어요. 서울에 갔는데 ‘돈이 있다’ 이게 아닌 이상 서울 가면 무조건 신림 가야 하는 건 줄 알았고. 제 주변에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바로 서울로 상경한 친구들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런 정보를 얻을 곳이 없었기 때문에 ‘그래, 그러면 신림 가야지’ 하고 관악구로 갔던 것 같아요. 


신림에 도착했을 때 대전이랑 뭐가 다르던가요? 
지하철도 제가 잘 못 탔어요.


서울에 처음 왔을 때.
성인이 되고 왔을 때. 왜냐하면 대전은 노선이 하나거든요. 하나밖에 없는데 서울은 되게 많고, 급행이고 뭐고 많잖아요. 지인이 없으면 못 가겠는 거예요. 진짜 너무 힘들었고 그래서 적응하는 것도 되게 좀 낯선데 재밌었어요. 저한테 가장 큰 차이점은 ‘시끄럽다’ 그리고.


효가 없다.
효가 없고. 뭐가 있냐면 쓰레기가 많다. 보통 동네마다 일주일에 한 3일 정도 내놓잖아요. (그런데 신림은) 쓰레기를 월화수목금토일 다 내놓아요. 사람이 많이 사니까. 저는 거기 살면서 바퀴벌레 잡는 것도 달인이 되었어요. 


신림에 몇 년 사셨어요?
신림에 딱 1년 살았어요. 


왜 1~2년밖에 안 살았어요?
왜냐면 일단 그 동네 자체가 너무 힘들었어요. 사는 게.


어떤 부분이요?
제가 처음 서울 올라가고 이제 딸내미 하나니까 집에서 걱정스러워서. 제가 사는 건물 바로 앞이 지구대였어요. 맨날 너무 시끄러운 거예요.


사건 사고 때문에
맨날 주취자와 경찰이 싸우는 소리가 맨날 들리고. 그래서 ‘진짜 너무 시끄럽다.’이랬는데 심지어 벽간 소음이 엄청 심해서 제 옆방에 사는 사람과 모든 일상 공유를 거의 다 할 지경이어서 여기 도저히 못 살겠다고 해서 이제 독산동으로 넘어가게 된 거죠. 


아까 신림은 교통도 편하고 다 있다고 했잖아요. ‘다 있다’의 ‘다’가 뭐예요?
일단 극장 영화도 포도몰 안에 다 있고, 술집도 다 있고, 그리고 제가 그때 방 탈출에 굉장히 빠져.... 


방 탈출?

방 탈출에 굉장히 빠져 있었는데 거기 주변에 방 탈출이 되게 많았어요. 그게 저에겐 굉장히 메리트였어요. 멀리 안 나가도 된다는 게. 그리고 친구들이 놀러 온다고 하면 주변에 아무것도 없거나 그러지 않아서 그냥 ‘영화 보러 갈래?’ 하면 바로 나가서 영화 보고. 술 먹고 들어와도 되고. 다 거기 안에서 가능해서. 


그 당시에도 음악하고 계실 때예요?

네, 근데 그때는 회사는 있었는데 아직 뭔가 데뷔하지 못하고 많이 연구하고 그랬던 때였어요. 


그때 회사가 지금 회사?
네, 맞아요.


그러면 2호선 타고
맞아요. 그리고 그것도 있었어요. 회사가 아무래도 합정 쪽이다 보니까 가까워야 한다. 그래서 신림을 선택한 것도 있었어요.


교통이
네, 2호선이어서.


근데 왜 갑자기 독산동으로?

금천구에 살게 된 거는 사실 제가 이 동네를 가고 싶어서 간 건 아니고 방을 그 집을 알아보다가 앱에서 그 중개사분이랑 만나서 얘기를 했는데 ‘이 매물은 없다. 이 매물 집 나갔다고 해서 저를 차에 태우고 어디로 가셨어요. 그게 독산동 집이었어요. 전에 살던 집이 너무 안 좋다 보니까. 그 집이 반지하였거든요. 거기가 너무 좋아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저 계약할게요” 하고 거기서 살게 됐어요. 


거기서 몇 년 사셨나요?
거기도 1년밖에 안 살았어요.


왜 1년밖에?

일단 그곳은 동네가 위험했어요.


독산동이라는 동네 자체가?

네. 약간 위험 발언이 될 수도 있긴 한데 거기는 아무래도 구로랑 가깝잖아요. 제가 그때 밤늦게 돌아다니고 막 그럴 일은 많이 없긴 했는데 정수기 필터 교체하러 와주시는 아주머니께서 아가씨 혼자 사냐고 아가씨 밤에 여기 돌아다니지 말라고.  


왜요?
대림 이쪽에 조선족분들 많이 사시잖아요. 분포가 넓어져서. 그 동네에도 그냥 중국어 간판으로 된 음식점이 좀 많아요. 내가 이 동네 일하면서 새벽에 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바닥에 막 피 같은 거 많이 봤다. 그러면서 겁을 주시는 거예요. 막 이랬는데 제가 그때 이제 강아지가 생겼어요. 제가 강아지가 생겨서 산책을 이제 하러 돌아다녀야 하는데 지금 딱 이맘때쯤이었던 것 같아요. 날이 더우니까 저녁에 다 집들이 창문을 열어놓잖아요. 다 들리는 말이 중국 말이었어요. 그만큼 여기 많이 사는구나! 그래서. 동네가 또 음침하기도 했어요.


당시에
네, 그 당시에.


어떤 부분이 음침하던가요?
일단은 반지하인 것 자체가 집도 음침했고, 사람이 많이 돌아다니지 않았고요. 역세권이 아니었어요. 한 번에 버스로 가는 것도 많이 없었고. 예를 들어서 버스가 끊기면 좀 되게 오래 걸어서 집에 가야 하고. 교통편도 아주 불편했는데 유흥주점 같은 것도 많아서 집에 가는 길에 아무래도 여기는 조금 음기가 많은 것 같다. ‘음기를 피해야 한다.’ 하면서 이사 갔던 것 같아요.


그다음에 양천구로 가신 건가요?

맞아요.


왜 양천구로 가셨어요?
관악구 금천구 살다가 이렇게 올라온 거예요. 양천구까지.


약간 서쪽으로 핸들을 틀어서 올라온 거네요. 

네. 처음에는 까치산하고 화곡동을 알아봤어요. 거기가 약간 신림 같은 느낌이잖아요. 너무 오르막길인 거예요. 난 더 이상 오르막길에 올라가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약간 눈을 틀어서. 제가 지금 신정4동에 살고 있거든요. 신정4동으로 갔는데 동네가 너무 평화로운 거예요. 그리고 운이 좋게 그때 당시에 좀 되게 좋은 조건으로 집을 얻었었어요. 바로 대로변 근방이어서 모든 게 다 만족스러우니까 여기서 좀 오래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집에서는 몇 년 사셨죠?
이 집에서 올해가 지나면 6년이 되는 거예요.


어때요? 양천구는?
일단은 여기는 제 친구가 와서 했던 얘기가 좀 많이 마음에 남는데. 이사 오고 나서 집들을 했어요. 근데 그 친구가 “너 진짜 좋은 데 집 얻었다.” “이 집이 좋아?” 이렇게 물어봤더니 “여기는 동네 유치원이랑 피아노 학원이 있잖아. 그런 동네는 평화롭다는 거야.” 그러는 거예요.  


피아노 학원이 기준인 거예요?
네. 생각해 보니까 진짜 그런 것 같더라고요. 


전에 살던 동네는 없었어요?
그런 게 없었고. 완전 그 집 근방에는 없었어요. 여기 집 근방에 되게 많고 되게 좋아요.


교통은 편리한가요?
교통도 여기서 강남이나 이쪽 가는 건 조금 힘들긴 한데 그래도 제가 사는 곳이 2호선이랑 신정네거리역이랑 신정역이랑 딱 그 중간. 


더블 역세권.
네, 맞아요. 그래서 그렇게도 다니고. 여기서 한 번에 회사까지 가는 버스도 있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