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시서점 Jul 30. 2024

왜 이런 사업을 신청했을까

정부는 올해 지역서점 활성화 지원 예산 11억원을 삭감했다. 이 예산으로 전국 지역서점이 진행한 문화 프로그램은 750여개.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 예산 약 60억원, 문학나눔 도서보급 약 56억원도 삭감되었지만 이들 사업 모두 당장 가시적인 정량적 성과를 바라는 건 무리다. 시민을 대상으로 한 문화 프로그램의 성과로 1년 만에 해외 문학상 수상자가 나올 수도 없을 뿐더러 시민 개인의 삶을 하나하나 파헤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책에 관심있는 시민들이라면 서점과 도서관이 운영한 많은 문화 프로그램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여전히 기관과 단체는 문화 프로그램 지원과 지역서점 지원 등을 사업장의 수혜로 보며, 효과를 모르겠다고 말한다. 사실일까. 그간 지원사업은 이름만 지원사업일뿐 서점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프로그램을 운영해도 증빙해야할 서류와 해야할 일은 늘어나지만, 참가자가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지 못하거나 임대료, 기획비, 운영비 등은 예산에 책정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작가 섭외료와 디자인비를 내고 나면 오히려 손해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왜 하느냐'라고 물으면 답하기 어렵다.



연기자에게 "연기를 왜 하느냐", 장관에게 "장관을 왜 하느냐"라고 묻지 않듯이, 동네 마트나 정육점에 가서 "이런 장사 왜 하느냐" 묻지 않듯이. 산업에 관한 분석과 비평이 아닌, 무례에 답할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짧게 답하자면 '시민, 독자와 함께 공동체와 지식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단순 판매를 넘어 경험의 공간으로 진화하려는 욕구는 비단 서점만이 갖고 있는 성질이 아니지만, 최근까지 가장 두드러지게, 그리고 다채롭게 드러났다.



현장은 어떨까. 서점 지원사업이 사라지자 많은 서점이 발 빠르게 운영할 수 있는 문화 프로그램 지원사업을 찾아 움직였다. 출판 관련 단체가 운영하던 사업이 다른 단체에서 운영된다는 걸 안 서점들은 부리나케 사업신청을 하기 시작했다. 패착이었을까. 선정 결과가 공고된 이후 사업계획서를 승인 받기까지 시간이 오래걸린 것은 그나마 이해할 수 있었지만, 승인 전에 '참가자 모객과 진행 확정을 하지말라는 담당자의 말'에 늦게 진행된 프로그램은 당연하게도 저조한 참가자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새로 만들었다는 시스템의 불안정도 한몫했다.



담당자마다 다른 이야기와 기준 탓에 서점들은 단톡방을 만들어 정보를 공유한다. 사업 관련 매뉴얼을 부탁했지만, 몇 달째 받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 통화로 이전에도 들었던 "홈페이지에 안내되어 있는 매뉴얼을 확인해 달라."는 말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서점들이 계속 문의하는 부분은 홈페이지에 안내되지 않은 것이지만, 똑같은 대답만 듣게 된다. 또 문의하는 내용에 따라 "이건 000에 문의하세요."라는 답변을 듣게 되고, 000에 문의하면 "거기서 그렇게 말해요?"라는 답변을 듣게 된다. 이렇게 기운을 빼고 나면 남는 건 후회뿐이다. '이걸 왜 신청했을까.'



정부는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사업을 매해 이어간다.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디지털 교육을 진행하고 있지만, 정작 디지털 기기를 다루기 어려워하는 시니어 층이 많이 참가하는 문화 프로그램들은 디지털 포용과 거리가 멀다. 회원가입부터 매번 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참가를 주저하게 만든다. 참가자들은 기기 다루기를 어려워하고 시간은 흐른다. 많은 서점이 디지털 수강신청과 출결관리를 포기했다. 말로만 떠드는 것보다 현실적으로 활용하기 어렵다. '노쇼 방지를 위한 참가보증금 받지 마라.', '홍보는 각 서점이 알아서 하셔야할 일이다.'라는 말을 듣는다. 서점과 도서관은 환경과 상황이 다른데, 이럴 것이었다면 처음부터 도서관만 하는 사업이었어야 하지 않을까.



증빙은 철저하게 해야한다. 모두 동의한다. 하지만 이 사업을 통해 사업비를 뒤로 돌리는 사람들을 적발하려면 기관이 더 관심있게 사업을 들여다볼 일이지 사업 진행을 원활치 못하게 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필수'라던 프로그램 누적인원 수가 과연 가능할까. 오리엔테이션에서 200명이라던 누적인원도 240명으로 늘었다. 불가능하다. 애초에 사업 신청할 때에도 필수인원은 고지되지 않았다. '변조할 수 있어 파일 양식을 모두 PDF로 올린 것'이라는 말에 "PDF도 수정이 가능하다."라고 말했지만, 시원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똑같은 답이 돌아온다. 이 사업을 수행할 능력은 서점도, 기관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사업을 한다고 서점에 무슨 도움이 되냐'라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당연히 서점에는 도움이 안 되지. 강사는 강사대로 사업에 관하여 물어보고, 참가자는 참가자대로 프로그램에 관하여 물어보고, 운영 기관은 똑같은 말만 되풀이 하고. 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운영비가 나오나, 임대료가 나오나. 그래, 그런데 왜 하냐고. 서점이 지역에서 문화프로그램을 하는 이유에 관하여서는 누누이 말해왔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사업이 '노동자의 권리'와 '참가자, 보조인력의 안전', '효율적인 운영과 책 문화 발전'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가"이다. "책 읽지 말란 얘기"라는 기사 제목은 그저 기우이길 빈다.



몇 주 동안 화도 나고 속상하고 심장이 두근거려서 '왜 이런 사업을 신청했을까', '왜 서점을 할까', '왜 살까' 같은 오만 자책을 했다. 쉬는 날마다 전화를 하는 담당자 전화도 받지 않았다. 이메일도 읽지 않았다. 덕분에 삶이 즐겁지 않다. '이메일로 말씀하신 내용 부탁드린다'라고 하니 "보낸 이메일 읽지도 않으시잖아요."라며 웃는다. 맞다. 그건 내 잘못이다. "통화내용이 기록되는데 상대방을 조롱하는 것 같은 대화같다."라고 말하니 "오랜만에 반가워서 웃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느끼셨다면 죄송하다'라면서. 담당자가 정말 반가워서 웃었기를 바란다. 그래, 사업이 끝날 때까지 모두 웃으며 끝날 수 있기를.




참고


정부 지역서점 예산 삭감에 '책방의 섬' 제주도 흔들린다

https://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305508


책 하는 곳 아닌 '동네 지식공동체', 독자와의 친밀성으로 다시 살아난 책방

https://dbr.donga.com/article/view/1206/article_no/8433/ac/magazine


“책 읽지 말란 얘기”...정부 예산 줄삭감에 출판·서점계 비명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132183.html


다시서점 스테디오

https://link.steadio.co/bfEdM6loELb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