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어떻게 사용하라는고 알려줘야하나? ‘누가 나를 사용할 수 있는가?’
우리가 정해놓은 주제를 가지고 몇 분간 나는 왜 이 주제를 정했던가 다시 되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누가 어떻게 왜 나를 사용하려는것인가? 나는 누군가가 사용할 수 있는것인가? 따뜻한 표현으로 ‘나를 이렇게 대해주세요’ 라고 돌려서 생각해보기엔 나는 날카로운 사람인건가
그러다가 문득 내 곁에 누운 아이들의 엄마 사용설명서를 써보면 좋겠구나 싶었다. 얼마나 엄마가 어려울까 그리고 남편, 아내로서 인생동반자로서 일상의 반복 속 권은선 사용설명서도 좋겠고, 지금 만나고 있는 친구들의 입장에서 변적쟁이 기분파 권은선 사용설명서도 좋겠다 싶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르는 나 사용설명서 주제어 _ < 낯선이편 >
가까운 이들이 나를 사용(?)할 땐 서로간의 감정과 역사와 경험을 바탕으로 나를 대하는 방법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싸움도 일어나고 사랑도 일어나게 만드는 그 방법들은 그들과의 미래보물상자로 두고 (물론 이후 기회가 된다면 그들을 위해서 써보아도 좋겠다. 특별히 연인 사용설명법은 써보고 싶기도 하다.)
오늘은 < 권은선 사용설명법 : 낯선이편 > 이것을 간략하게 써본다.
낯선이들이 누구일지는 나는 알수 없고, 그들이 이 글을 읽고 나를 마주하여 앉아 이 글에 대해 이야기 할 재미난 상황도 주어지면 좋겠다 싶다. 인생 속 즐거움 중 하나가 낯선이가 친밀한 이가 될 때의 그 순간들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래. 나는 그 순간들을 좋아한다.
재미난 책 제목이 떠올라서 다시 그 책을 잠시 잡았다. 접어두었던 여러 책갈피 속에 한 단락을 담아와봤다.
다른 사람들은 온전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건 분명 본받을 만한 행동은 아니다. 만약 우리가 인간 문명이라는 거대한 실험에서 진전을 보고 싶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사고 능력이 부족하다는 인식의 문제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슈뢰더는 이렇게 설명한다. 인식 기능은 “언제나 우리 자신의 관점에 갇히”기 마련이고, “이에 대응하는 방법은 언어를 포함하는 좀 더 의미있는 방식으로, 실제로 상대방과 마주 앉아 관계를 맺는 것이다. 언어가 발달한 건 어느 정도 이런 이유에서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내려는 사회적 목적 말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어야 그 목적에 다가갈 수 있다.
p.52 <낯선사람에게 말을 걸면>
참고로, 강조 부분은 나의 개인의 강조임을 기록한다.
낯선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권은선에게 ‘당신을 이야기 해주세요’라고
권은선 이라는 사람은 거대한 인간 문명이라는 거대한 실험실에서 <행복>을 맛보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행복하기 위해 나 자신이 행복한가를 늘 고민하고 생각해봅니다. 참고로 행복은 보이는 것 40% 보이지 않는 것 60%로 채워져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골몰히 처음 본 당신을 유심히 바라보는 권은선의 눈빛을 읽었다면 권은선이 지금 행복한 당신을 바라보며 그 행복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구나 생각하는 것입니다. 묻기전에 당신의 ‘지금행복’을 이야기 해주세요.
권은선 이라는 사람은 거대한 실험실에서 <따뜻한 연민>을 느끼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길을 가다 쓰레기를 줍고 있거나 조금은 부족한 사회의 한 면에 쓰라린 목소리를 내고 있다면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세요. 권은선은 어쩜 당신만큼만 환경을 생각하고 당신의 얇은 셔츠 만큼만 사회의 부조리를 깨닫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단지, 이 삶을 먼저 살아온 이들이 권은선의 신뢰받는 친구들이기에 그렇게 살고 있지요. 그러니 따뜻한 연민으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권은선 이라는 사람은 거대한 실험실 (거대한 인간문명속에서!) <환대>를 받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늘 주변에 아기가 있던가 가족이 있던가 친구들이 있던가 캠페인문구들이 살아있던가 풀이 살아있던가 바다가 살아있던가 (살아있는 휴대폰이 있던가도 포함하여) 늘 살아있는 무언가로 둘러있는 권은선은 환대를 좋아하고 환대에 많은 시간들을 보냅니다. 오만의 평도 받고 오버의 평도 받는 그 환대들은 사실 이젠 권은선의 자아가 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환대만큼 손해보는 일이 없거든요. 환대는 돌아오는건 없어도 잃는건 없기 때문인데다가 주어도 주어도 더 줄 수 있는 무형의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꼭 황금알 같다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낯선 당신이 나를 환대해준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낯선 당신의 언어로 당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나의 진정성을 이해해주는 환대를 받는다면 나는 행복할 것 같습니다.
글을 쓰고 보니 낯선이를 위한 글이기도 하고 낯선이들을 대하는 나의 글이기도 하네요.
당신을 이야기 해주세요. 당신의 생각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야기해주세요.
귀기울여 듣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