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신과 의사 Dr MCT Mar 06. 2024

삶은 채워야하는가, 비워야하는가

정신과의사가 진료실에서 못한 말 (23)

우리는 상실이나 결핍에서 불행을 느낀다. 결핍의 종류는 다양하다. 경제적, 사회적, 심리적 결핍 등 다양한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현대인이 결핍을 가장 강하게 느끼는 부분은 경제적 결핍이다. 실제로 형편이 어려워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힘든 사람도 있고, 끝없는 욕심으로 인한 결핍 혹은 상대적 박탈에 의한 경제적 결핍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가 이를 더 촉진하였고 SNS가 거기에 방점을 찍었다. 이런 종류의 결핍은 아무리 물을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밑빠진 독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은 이 독을 채워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떤 사람들은 비움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 같은 책이나 ‘리틀 포레스트’ 같은 수많은 영화의 줄거리도 비움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인생은 결국 채움으로써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비움으로써 완성된다고 한다. 때때로 경제적 부를 이룬 부자들이 결국에는 비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들의 얘기는 역설적으로 들린다. 더 이상 비울 것도 없는데 자꾸 비우라고 하면 약 올리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채움과 비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가 비움과 채움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유는 무엇을 채우고, 무엇을 비워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삶의 철학으로 ‘비움’을 택했다. 비움이 미덕이고, 많이 비울수록 존경받았다. 하지만 세계화로 ‘채움’의 철학을 지닌 자본주의가 들어오며 상황이 달라졌다. 그때부터 우리는 서양의 ‘채움의 철학’과 동양의 ‘비움의 철학’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싫으나 좋으나 자본주의가 한순간에 무너질 것 같지는 않다. 어느 정도 채우지 않으면 살기 힘든 세상이 지속될 것이다. 따라서 무작정 비움을 실천하자는 말은 개인의 행복에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하다.


비움을 수행하는 많은 사람이 선택하는 방법의 하나는 명상이다. 불교를 기반으로 한 마음 챙김 명상의 대가 존카밧진은 명상의 목적이 모든 욕구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또 우리는 절대로 마더 테레사나 달라이 라마 같은 삶을 살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한다. 그는 명상을 통해 오히려 에너지를 얻어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한다. 즉 비움이란 삶에서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것이지 삶에서 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는 것이 아니다. 대체로 인간의 욕심은 커지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으니 채움은 자연스럽게 될 때가 많다. 반대로 비움은 노력하지 않으면 저절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무엇을, 얼마나 비울지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


그렇다면 채울 것과, 비울 것은 어떻게 구분할까? 무책임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이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삶과 웰빙에 대한 여러 연구를 통해 힌트를 얻을 수는 있다. 행복에 관한 하버드의 유명한 연구에서 행복은 주로 7가지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성숙한 방어기제, 평생 배우는 자세, 안정적인 결혼(파트너), 금연, 알코올 중독에 빠지지 않는 것, 규칙적인 운동, 적당한 체중 유지가 중요하다고 한다. 소득도 웰빙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정 이상(한국 기준으로 약 600만 원/월, 미국 기준으로 약 1,000만 원/월) 이 되면 웰빙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든다고 알려져 있다. 이 기준을 못 넘긴다고 불행한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그 시점까지는 소득과 행복이 대체로 연관있다는 뜻이다. 오히려 필요 이상의 욕심은 불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남과 비교하는 습관도 삶의 만족도에 악영향을 준다. 과거에 대한 반추, 미래에 대한 걱정도 비우는 것이 좋다. 술, 담배, 핸드폰 등 중독될 수 있는 것들의 지나친 사용도 지양하는 것이 좋다.




무엇으로 삶을 채우고 무엇을 비워야 할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가장 중요한 점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다. 나의 가치에 따라 적당히 채움과 비움이 필요하다. 이는 나이에 따라 달라지고,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니 이에 대한 끝없는 고민이 필요하다. 채워도 없어지지 않는 공허함은 비워야 비로소 없어질 때도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부디 채움과 비움의 적절한 비율 속에 충만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IQ를 맹신하는 사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