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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Dr MCT May 16. 2024

정신과 의사가 본 드라마 [비밀은 없어]

거짓말은 껐다 켤 수 있을까?


최근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비밀은 없어'를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고경표 배우님을 좋아해서 작품을 하면 가끔 보는데 이번 드라마에서도 색다른 역할을 맡았는데 연기가 일품입니다. 드라마를 안 보신 분들을 위해 줄거리를 약간 설명을 하자면 이 드라마는 주인공이자 아나운서인 송기백(고경표)이 불의의 사고(감전)로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이 되어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그동안 성공과 꿈을 위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거짓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거짓말을 못 하게 되자 진실이 드러나며 삶이 송두리째 바뀌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게 됩니다. 

'비밀은 없어' 1화 중 주인공이 감전 사고로 거짓말하는 능력을 잃는 모습.


드라마는 가족과 사랑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로서 감전 사고로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이 된다는 설정이 가장 흥미를 끌었습니다. '거짓말의 발명'이라는 해외 영화도 이와 비슷한 설정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반대로 주인공을 제외한 사람들이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반대의 경우인데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말들을 모두 하며 살면 어떨지를 보여줍니다. 주인공 송기백이 자신의 상사와 갑질하는 클라이언트에게 시원하게 한소리 하는 모습이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도 합니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며 과연 실제로 사고로 거짓말을 못하는 일이 가능한지,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뇌가 어디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거짓말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요? 거짓말의 정의에 대해서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부터 논쟁을 해왔습니다. 다양한 정의들이 있는데 최근에는 Aldert Vrij 라는 영국의 심리학 교수의 정의를 가장 대중적으로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는 거짓말을

사전 경고 없이 전달자가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믿음을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심어 주려는 성공하거나 실패한  시도

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전달자가 거짓임을 안다는 점, 의도적으로 속인다는 점,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하루에 거짓말을 평균 1-2번은 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또 4번 중에 한번은 남을 위해 거짓말을 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선의의 거짓말'이죠. 또 가까운 관계일수록 남을 위해, 먼 관계일수록 나를 위해 거짓말을 합니다.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도 거짓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다른 종에 비해 압도적으로 거짓말을 잘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인간이 지닌 축복일까요 아니면 저주일까요?


거짓말을 하기 위해 필수적인 능력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능력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음 이론(theory of mind)'입니다. '마음 이론'은 우리에게는 '역지사지'라는 사자성어로 더 익숙할 듯합니다. '마음 이론'이란 남의 시선에서 생각을 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는 공감과 연민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능력이며 인간 이외의 동물에서 이러한 능력은 매우 드뭅니다. 




거짓말은 이런 복잡한 능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위해서는 더 많은 인지 과정이 필요합니다. '똑똑한 사람이 거짓말을 더 잘한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듯합니다. 복잡한 거짓말의 과정은 간단하게는 3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진실 혹은 거짓말을 순간적으로 기억하는 작업 기억            

              진실과 반대되는 거짓을 표출하지 않도록 억제하고 자신의 반응을 피드백하는 능력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반응을 반복적으로 바꿀 수 있는 작업 전환 능력             

'비밀은 없어'에서 거짓말을 못 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의사. 탈억제라는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위 거짓말의 3단계는 각각 다른 부위의 뇌 활성화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 영역은 연구마다 차이가 있지만 주로 전두정엽(fronto parietal cortex), 내측전전두엽(medial prefrontal cortex), 복내측전전두엽(ventromedial prefrontal cortex), 배외측 전전두엽(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 전측대상회 피질(anteror cingulate), 뇌섬엽(insual cortex), 아래마루소엽(inferior parietal lobule), 모서리위이랑(supramarginal gyrus) 등이 거짓말과 연관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영역이 포함되는 만큼 이 영역들은 거짓말에만 특별히 활성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영역들은 주로 사람이 논리적으로 말을 전개할 때 활성화되는 영역들이기도 합니다. 즉 거짓말과 논리적인 말은 한 끗 차이라는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거짓말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들.


하지만 아래마루소엽(inferior parietal lobule), 모서리위이랑(supramarginal gyrus)은 거짓말에 특별히 활성화되는 영역입니다. 아래마루소엽은 주로 자기 참조의 영역, 도덕적 사고의 영역이고 모서리위이랑은 감정적인 반응과 언어 표현의 영역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개인적으로 해석해 보자면 이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것은 거짓말을 할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진다는 결과로도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거짓말을 할 때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되뇌는 것으로도 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아직은 거짓말을 할 때 어떤 뇌가 활성화되는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거짓말은 굉장히 복잡한 과정을 통해 일어나는 고도의 인지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드라마 '비밀은 없어'의 주인공 송기백처럼 감전 사고로 거짓말하는 능력만 잃어버리는 현상은 일어나기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할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를 보면 거짓말을 할 때 마치 '자기'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이 드라마의 주인공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쌓이는 거짓말 속에서 양심과 자신을 잃어버려 결국에는 거짓말을 하는 능력까지도 잃어버린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드라마 '비밀은 없어'는 한 사람이 거짓말을 못 하게 되며 진실한 자신을 마주하고 양심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드라마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참고문헌

'비밀은 없어'. 넷플릭스. (2024)

Meibauer, Jörg (ed.) (2018). The Oxford Handbook of Lying. Oxford, United Kingdom: Oxford Handbooks.

Weber, J.T. (2016). Deception: neurological foundations, cognitive processes, and practical forensic applic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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