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의 일기(7)
최근 축구 대표팀 내에서의 갈등이 화제다. 혈기 왕성한 젊은 운동선수들의 의견 대립과 무력 충돌이 있었다고 한다. 당사자들이 직접 이 사안에 대해서 밝히지 않아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온갖 추측성 글부터 시작해서 누가 잘못했는지 시비를 가리는 기사들이 올라온다. 신체적 폭력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잘못한 부분을 떠나서 몇몇 사람들은 선수들의 과거 행동과 말까지 찾아내며 범인 색출하듯 부관참시를 하고 있다. 대중과 미디어에서 유명인의 성격을 문제 삼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유명할수록 약간의 실수만 해도 인격의 문제를 근거로 인생 전체를 불량품으로 간주한다. 인격에도 정답과 오답을 부여하는 우리 사회는 과연 건강한 것일까?
사람이면 누구나 다 자기만의 틀 안에 갇혀 산다. 이것은 인간의 종특이다. 극한의 정신 수양과 공부를 통해 틀에서 벗어나는 소수의 성인이 있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못하다. 이 종특 때문에 편향이 생기고 편향이 이어지면 흑백논리가 된다. 내 편은 좋고 남의 편은 나쁜, 내 말이 옳고 네 말은 틀린, 정답과 오답만 존재하는 세상이 된다. 일부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이 문제가 더 심하다. 어려서부터 정답과 오답을 강요받고 틀리면 처벌받는 교육의 영향으로 보인다. 성인이 되면 정답과 오답이 있는 문제는 오히려 거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정답 찾기' 밖에 할 줄 몰라 자꾸 편 가르기를 한다. 내가 속해 있는 집단이 정답이기를 바라며.
요즘 세대는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세상을 흑백논리로 보는 흔히 ‘꼰대’라 부르는 사람들은 나이를 막론하고 존재한다. 윗세대를 향해 본인들 시대의 정답을 강요한다고 반발하지만 같은 세대 내의 반목도 심상치 않다. 남과 여, 보수와 진보, 심지어는 핸드폰 기종으로 서로 배척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오답을 말하면 처벌하던 기존 세대의 전철을 그대로 밟으며 자신이 생각한 정답 이외의 보기들은 오답 처리한다. 하지만 안타깝게 인생은 어릴 때 통하던 흑백논리의 공식으로 정답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렇다고 우리가 정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한 노력이 있어야만 개인적, 사회적 발전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찾은 정답만큼 남이 제시하는 답도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우리는 무엇이든 성급하게 좋다, 나쁘다로 평가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평가를 하면 쉽게 감정에 휩쓸리고, 감정은 흑백논리의 먹이이기 때문이다.
남녀노소 불구하고 갈수록 이런 노력이 우리 사회에도 조금씩은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회사에서는 나이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려고 ‘씨’를 붙여 얘기한다. 소수만 즐기는 취향이라고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다. 또 겉모습만으로 판단을 하지 않는 제도적인 방법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래도 아직은 갈 길이 멀다. 하나의 정답 같은 성격만 칭찬받는 사회가 아닌 다양한 색채의 성격이 모여서 조화로운 그림을 만들어 내는 사회가 되길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