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의 일기
저의 몇 안 되는 취미 중 하나는 NBA 농구를 보는 일입니다. 비록 생중계로 경기를 보지는 못하지만, 점심시간에 잠깐 보거나 퇴근하고 나서 유튜브로 하이라이트를 챙겨봅니다. 좋아하는 팀의 승패에 따라 저의 기분도 오르락내리락합니다.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신체적, 정신적 재능을 가진 선수들의 경기를 보면 저의 미흡한 몸뚱아리에 겸손해지기도 합니다. 농구 경기가 끝나고 나면 선수들이 인터뷰를 하는데, 이때 그들의 이야기는 저에게 많은 영감을 줍니다. 오늘도 제가 응원하는 팀인 댈러스 매버릭스가 경기를 이겼는데, 경기 후 그들의 스타 선수인 카이리 어빙이 인터뷰에서 한 말이 매우 감명 깊었습니다.
한 기자가 어빙에게 "오늘 경기를 승리했는데 어떤 기분인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어빙은 "지금은 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집에 가서 아이들을 재우고, 다음 경기를 준비할 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오늘의 승리는 결승전으로 갈 수 있는 중요한 초석이 될 수 있기에 기뻐할 만한 상황임에도 그렇게 대답하는 것에 저는 놀랐습니다. 특히 "집에 가서 아이들을 재운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연봉을 거의 3백억이나 받는 그가 대단한 승리를 하고도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의 역할로 바로 복귀하다니. 그것은 아버지의 놀라운 부성애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한 인간의 대단히 겸손한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대단한 일을 한다고 착각하며 정작 중요한 일들을 미뤄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능 공부를 위해 집에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수험생, 퇴근 후에 아이를 전혀 보지 않는 회사원, 성공을 위해 가족들을 내팽개치는 사업가 등, 갖은 핑계를 대고 인간으로서의 삶을 지탱해주는 요소들을 가꾸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필요에 따라 중요한 일에 올인해야 하는 경우와 순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이 오래 지속된다면, 역설적이게도 삶은 안에서부터 무너집니다.
우리는 어릴 때 "대통령", "유명한 축구 선수", "억만장자" 등이 될 수 있다는 과대 자아를 표현합니다. 이는 성장할 때 삶의 좋은 동력원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도 과대 자아에 너무 심취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컨셉에 잡아먹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인간의 굴레를 벗어나 사람다운 행동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무지에서 오는 자의식 과잉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도 결국 23쌍의 염색체의 조정을 받는 평범한 생물입니다. 마치 수백억을 받는 슈퍼 스타 농구선수 카이리 어빙도 그저 한 아이의 아버지일 뿐이듯 말입니다.
명심보감에는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식이 효도하면 부모님이 기뻐하고,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가족 간의 효와 사랑을 나타내는 말일 수도 있지만, 저는 모든 큰일은 가장 기본적인 일을 다스리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밖에서 보면 대단한 업적에 가려 사소한 것이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단한 사람은 사소한 일에서 출발합니다. 큰 업적을 이룬다고 작은 사명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옆으로 치워놓은 수많은 일과 인연들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 대단한 승리 후 집에 가서 아이들을 먼저 재우는 어빙과 같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