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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의사 Dr MCT Jul 25. 2023

정신과의사에게 최고의 칭찬

정신과 의사의 일기(6)

“선생님 고등학교 3학년 진료가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아이 엄마가 워낙 여기서 진료를 받고 싶어 하셔서요…”


우리 병원에서 소아청소년 진료를 잘 보지는 않지만 이제 거의 성인이 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을 그렇다고 다른 병원을 권유하기도 힘들었다. 레지던트 때 소아청소년 진료를 꽤 보긴 했지만 세부전문의 과정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아청소년 환자는 아직도 나를 긴장하게 한다. 


“근처에  소아 정신과 병원이 예약이 많이 찼다고 들어서…어쩔 수 없죠. 제가 진료를 볼게요.”




작은 체구에 다소 수축되어 있는 눈빛, 교복을 입고 A양이 들어왔다.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이 된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버지는 늘 술에 찌들어 살았고 거의 일을 하지 않아 경제적으로 힘들었으며 어머니가 가장으로서 일을 해서 조모의 손에 컸다. 부모님이 부부 싸움을 늘 했으며 아버지가 A양에게 폭언, 폭행을 하는 일이 잦았으며 이럴 때는 어머니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초, 중, 고등학교를 모두 위축되어 지냈으나 그래도 그녀는 꾸준히 학업을 이어나가고 친구들과 어느 정도 친하게는 지냈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들어서 친한 친구와 사소한 다툼을 하게 되며 친했던 친구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외톨이가 됐다. 그녀는 더 이상 학교도 다니기 싫고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싶어졌다. 


나이 든 남자 아저씨 정신과 의사가 3학년 여고생의 마음을 열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진료를 봤으며 처음에는 ‘네’, ‘아니오’만 하던 그녀가 30분 남짓의 진료 끝에는 세 단어 이상의 문장으로 얘기하며 살짝살짝 미소를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최악의 진료를 아니었나 싶었던 나는 다음에도 그녀가 병원에 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물어봤다.


“처음 정신과 진료를 봤는데 어땠어?생각했던 것보다 안 좋지는 않았지?”


이렇게 직접적으로 내가 물어볼 줄은 몰랐는지 A양은 조금 당황했다.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았어요.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 얘기하는 느낌이었어요.”


오후에 진료를 보느라 지쳤지만 그녀의 이런 얘기에 그래도 행복한 마음으로 퇴근할 수 있었다. ‘사람 대 사람’으로 얘기를 했다는 건 내 기준으로는 정신과 의사가 처음 본 환자에게 듣는 최고의 찬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전문가들은 이 질문과 대답이 내 진료를 평가 받고 싶어하는 나의 무의식이기도 하고 권위자인 의사에게 잘 보이고 싶은 여고생의 무의식에서 나온 대답이라고 할 순 있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내가 최악의 의사는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그녀가 다음에도 또 병원에 올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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