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신과 의사의 일기(5)
정신과를 하면서 가장 많이 입에 담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자살'이다. 우울증이 심한 사람들 중에서는 '자살'이나 '자해'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고 우울증이 아니더라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다양한 정신 질환의 종점에서 생각이 '자살'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이 때문이다. 그래서 자살과 관련된 사회적인 현상들에 평소에도 관심이 많고 흥미가 많은 편이다. 때때로 유명인이 자살을 하게 되면 그 팬들이 따라서 삶을 포기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것을 우리는 '베르테르 효과'라고 한다. 늘 동료들 혹은 선후배들과 이러한 효과에 대해서 얘기를 하지만 정작 이 얘기의 근원이 되는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다. 그래서 서점에서 이 책을 봤을 때 자연스럽게 손이 갔다.
주인공 '베르테르'는 귀족이다. 부족함이 없이 살아온 그는 교양도 풍부하고 감수성도 풍부하다. 그런 그가 약혼을 한 여자 '로테'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게 되고 사랑의 열병을 앓게 되는 내용이 이 책의 전체적인 플롯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남주와 여주가 서로 열렬한 사랑을 하다, 모종의 사고로 인해 헤어지게 된 남자 주인공이 자살을 하는 것인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고 오히려 남자쪽의 일방적인 짝사랑 끝에 자살을 하게 된다는 내용이라 그 부분이 반전이라면 반전이었다.
정신과 의사로서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베르테르'라는 주인공의 심리에 대해서 상상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가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존감보다는 자존심이 센 사람 같아 보이고 허세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귀족 출신으로 어릴 때 부터 많은 제약을 받고 교육을 받으며 이러한 단점들이 많이 가려져 있지 않았을까 한다. 실제로 그는 자신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 한데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그러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우리들 교양인이란 어리석을 정도로 교육을 받은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마침 정말 원하지만 얻지 못하는 대상(로테)이 나타나자 광적인 집착에 휩싸이게 된다. 그래서 나는 ‘과연 이것을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책의 끝까지 하며 보게 됐다. 적어도 우리 모두가 원하는 건강한 사랑의 모습과는 다른 듯 하다. 물론 400년 이상의 시간이 사랑에 대한 관점을 바꾸기에는 충분한 시간이긴 하지만 말이다.
'베르테르'는 결국 이 바뀌지 않는 현실, 사랑하는 사람이 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모든 것을 부정하고 투사 한다. 자신의 마음을 부정해보기도 하고, '로테'의 남편과 말다툼을 하며 괜히 역정을 내보기도 하며, 결국에는 자신의 삶을 부정하며 자살에 이른다. 나는 이 감정이 사랑보다는 분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 그 분노의 총구가 결국에는 자신에게 향했던 것이다.
우리는 대 분노의 시대에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예민한 상태로 있으며 뉴스에 나오는 범죄의 발단은 정말 사소한 다툼인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이 '베르테르'를 닮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주 단편적인 해석이긴 하지만 나를 세상에 맞춰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에게 맞추기를 바라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생기는 분노를 해소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탓은 아닐 것이다. 그 누구의 탓이 아닌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더 '베르테르'처럼 그 총구가 자신을 향하지만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