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아 Jan 11. 2022

오늘은 굴이 좋겠어,

1월의 굴 



맛을 잘 모른다.

뭐가 맛있고 뭐가 맛없는지도 모르겠다.

라면이 차갑게 퉁퉁 불어도 그냥 먹고 

떡국의 떡이 좀 딱딱하게 느껴져도 그냥 먹는다.


아침마다 캡슐커피를 내려 우유를 약간 타는데

우유가 상해도 모르고 후루룩 마실만큼 미각에 둔감하다. 



그렇지만, 

요리를 즐긴다. 

이쁘게 차려놓고 먹는걸 좋아한다. 

SNS 남보여주기 식은 아니다. 

사진찍을때도 있고 안찍을 때도 있지만

찍어두고 올리는 경우는 

뭔가 글을 남기고 싶은데 같이 올릴만한 사진이 없을 때다. 



그리고 제철마다, 날씨마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먹어야하고 먹고 싶은 음식이 딱 떠오른다. 

그리고 그걸 먹게 되었을 때 

아 - 세상 살만하구나. 나 잘 살고 있네. 그런생각이 들곤한다. 



그래서 남겨보는 먹고 마시는 이야기. 








굴철이 돌아왔단다. 


어릴 적 할머니께서 김장을 하시면, 

한두포기에만 쏙쏙 박혀있던 생굴.


김장한지 얼마 안되는 기간동안에는

하얀 쌀밥에 그 굴을 하나 올리고 덜익은 아삭한 하얀 줄기부분을 올려 먹는걸 참 좋아했다. 

따뜻하고 고소한 쌀밥에 시원하고 아삭거리는 김치 그리고 미끄덩거리는 굴이 섞이는 그 이질감이 좋았다. 

생김치에 들어간 굴의 수명은 참 짧아서

누가 벗어놓은 스타킹처럼 질기고 얇아지면 더이상 맛이 없었다. 

김장한지 몇달이 지나 새해가 밝고 어느 날 꺼낸 김장김치 사이에 묵은 굴이나 오징어를 볼때면

잘놀다가 버려둔 찢어진 인형같이 느껴져서 마음이 참 착잡했다. 




어른이 되고 

여행도 다니고 ....음 

여행가서 한번도 먹어본적 없으니 이건 여행의 영향이 아닐거다.


아마도 SNS 

소셜미디어에서 접한 

얼음산위에 굴껍질안에 쏙 박힌 매끈한 굴덩어리, 그리고 옆에 레몬조각들, 루비처럼 반짝이는 석류알갱이들. 



그 비쥬얼의 식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평소에 김장김치에 먹던 생굴이 아닌, 

하프쉘을 수산시장에 전날 미리 주문해두고

퀵으로 당일배송을 받았다. 

같이 먹겠다고 마트 와인행사에서 샤블리도 한병 사두었다. 






예상치 못하게 너무 많은 양이 왔다. 


둘이서 먹으려고

나는 딱 한접시의 하프쉘이 필요했는데 

3단의 하프쉘이 왔다.

분명 1단에 20미씩 있다고 했는데 30미씩 있다... 





둘이 먹을 굴이 90미가 생겼다...! 






우선 노로바이러스에 걸리지 않기 위해

굴 하나하나 굴알 주변의 검은 부분을 닦아본다. 

아이스박스에 줄맞춰 세워서 물을 빼본다. 




석류를 까본다. 

유투브에서는 뚜껑을 따고 흰줄기부분에 칼집을 낸뒤 

뒤집어서 숟가락으로 툭툭 치면 후두둑후두둑 석류알이 떨어진다고 했는데 

아무것도 떨어지지 않는다. 


구관이 명관이다.

손가락으로 알알이 따본다. 




어릴 적 엄마가 맛있는거야, 하며 석류를 하나 갖고오셔서

마주앉아 빨간 방울을 튀기며 한알씩 한알씩 까먹은 기억이 있다.

그때

참 맛있고 상큼하다고 그 순간을 기억하면서도

이렇게 효율적이지 않은 과일은 왜태어난거야 라고 생각했다. 

과육이 씨앗보다 결코 많지 않다. 

너무 귀찮아서 한입에 몇십알을 넣어서 오로로록 입안에 굴려 씨앗만 도로록 뱉어본다. 

과육이 듬성듬성 남아있는 게 또 그리아깝다.


그 날 이후 석류는 자고로 캔에 들어있는 석류주스나 사먹는것. 이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뽀얀 진주같은 굴위에서 빨간 루비처럼 빛나던 석류는 생략할수가 없었다. 





옆에서 굴을 씻고

나는 석류를 알알이 까고

한시간이 걸렸다. 








후-

퇴각퇴각. 

힘드니까 낮잠을 자고 오기로 한다. 


빨간물로 잔뜩 쭈글거리는 손을 씻고 

부드러운 핸드크림을 바른뒤 

침대속으로 들어간다. 



고되었는지 금방 잠들어버렸다. 










자 이제 정말 시작해볼까, 


적양파보다 샬롯이 있다면 샬롯을 사라고 해서 

조카주먹같은 아이들을 거금을 주고 구매했는데

막상 맛은 양파와 뭐가 다른지...모르겠다...?


다진 샬롯에 설탕 레드와인식초을 섞어서 잠시 재워두고

생굴만 먹으면 물릴수 있기 때문에 

익힌 굴을 준비해본다. 


굴위에 버터를 작게 올려서 

오븐 180도에 20분! 

곁들일 소스 마요네즈+말랑한 치즈+ 레몬즙을 섞어놓기. 












타라~ 



샬롯소스가 숙성될 틈을 못참고 

레몬즙과 핫소스를 뿌리고 딜을 올려서 석류를 곁들여 먹어봄. 


굴에 딜은 필수!

해산물에 딜은 필수! 



딜을 좀 사다두면 쓸만큼 쓰고 남은 아이들은 금방 시드는게 아쉬워서

딜 화분을 구매해보았다. 

딜 화분이 마트에서 사는 딜한통과 가격이 맞먹어서

화분에 있는 딜만 다 먹어도 성공이라며 샀는데

이미 줄기만 남아버린 딜화분... 


해가 잘 들지 않는 집이라, 

허브들이 잘 자라지 못하는게 아쉽지만

한줌의 딜을 말리지 않고 오롯하게 다 잘 해먹었다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상큼하고 입맛을 돋구는데 

샬롯소스에 석류를 겻들어 먹는 생굴은 그야말로 

감칠맛이 엄청났다. 


샤블리와도 잘 어울려서

굴한입 털어넣고

와인 한입딱 넣으면 꽃향기가 비강안으로 후우우욱 가득차는 걸 느낄수 있다. 



그래도 

에피타이저같은 상콤상콤한 굴로 배를 채울수 없기에

오븐에 굴을 구운 것을 먹어보자.









옛-날에 감자스프한다고 구워둔 크루통이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줄이야. 

굴껍질안에 녹은 버터에 크루통을 살짝 적시고 치즈마요네즈소스를 살짝 얹어먹으면

이것은 그야말로 버터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굴봉다리가 된 느낌이다. 

버터의 풍미와 굴의 감칠맛에 파삭한 식감까지 완벽해. 


개인적으로 생굴보다는 버터구이가 더 입맛에 맞아서 잘먹었지만

버터향때문인지 샤블리와 겻들이기엔 훅 비린내가 나서 아쉬웠다. 








어디서 본게 있어서 이리저리 형용해보지만

사실 오늘 하루 굴을 해먹은 과정중 가장 만족스러운건

눈앞에 이쁘고 정성스럽게 차려진 식탁을 마주한 그 순간. 


정성스럽고 취향이 깃들어있는 공간과 사물앞에

나를 놓이는 그 순간이 좋다. 


오늘도 참 잘 살았네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