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아 Jan 11. 2022

커피를 텀블러가 아닌 머그컵에 담는다는 것.

맛보다 향이 중요할 때 



청소년기에 가족끼리 다 같이 외출할 때면 항상 엄마는 바빴다.

가스불도 꺼야하고 가족의 누군가가 놔둔 물컵도 싱크대에 갖다둬야하고

아아, 빨래 널고 가야해 부랴부랴 뛰어가서 빨래를 하나씩 너는 모습에 

나는 아 그거 좀 나중에 하면 되지. 하면서 뽀루뚱해있었던 것 같다. 

아빠는 진작에 현관앞에 서서 빨리 좀 가자고 다그치고 계시고.


결국 아빠는 먼저 차에 시동걸어둔다고 나가시고 

나도 기다리다 못해 따라 나서서 뒷자리에 앉아있곤 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한손에는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한손에는 음식물쓰레기나 재활용할 것들을 들고 나오셔서 

쓰레기를 버린 후 조수석에 탈때에는 항상 손에 머그잔이 들려있었다. 


차문이 탁 닫히는 순간 커피향이 뒷자석의 나에게까지 화악 퍼졌다. 



엄마의 커피레시피는 맥심 아라비카 100% 원두에 우유살짝. 



왜 많고 많은 텀블러를 놔두고 

굳이 머그컵에 그렇게 담아오는지,

걸어오면서, 차에 타면서, 운전하는 동안에 흘릴수도 있는데

불안하게 뚜껑없는 잔에 커피를 타오는지. 


난 못마땅했다. 




차에 타고 얼마 안되서 다 마시기 때문에 한번도 흘린적은없었지만

차량 내부 컵홀더에 

커피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속이 들여다보이는 컵이 있는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들에게 보이면 안되는 민낯을 까발린 것 같기도 했고 

더러운 빨래를 거실바닥에 내팽겨두었다가 갑자기 방문한 손님에게 들킨 느낌이기도 했다. 



그러다 창문을 열고 가게 된다던지

주유를 하게라도 되면

나혼자 부끄럽고 창피했다.











시간이 지나 내가 엄마의 그 나이와 같은 앞자리수를 갖게 되었다. 








얼마전부터 아침에 일찍 눈 뜨는 날에는 아파트 커뮤니티 헬스장을 가고 있다.

공복에 카페인을 들이키고 싶지는 않아서

디카페인 캡슐을 내리고 뜨거운물을 조금 타고 우유를 약간 탄다. 


그리고 패딩입고 마스크쓰고 출발. 


엘레베이터 안에서 사람을 마주치면 민망하지만

지하1층으로 갈때까지 혼자일때면

그 작은공간에 가득차는 커피향을 마음껏 누릴수 있다. 


헬스장 가는길에 호로록 호로록 마시며 가면 

자유롭고 산뜻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이 든다. 









이제 보니 그때 엄마는 그 기분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가족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아 

엄마 혼자서 집안일을 마무리하고나서 마시는 커피한잔의 여유로움. 


이때는 커피의 맛보다 향기가 중요하다. 

후각으로 들어오는 산뜻한 아지랑이가 머리 속까지 스며드는 기분. 

내 할일을 마치고 앞으로의 일정을 집중해서 잘 즐길수 있겠다는 해방감! 







그 때는 왜 집안일을 엄마의 일로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엄마의 일로만 생각했더라도 그렇게 종종거리며 정리하는 엄마를 도울생각은 안하고 

내 단장에 바빴는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 나는 몰랐지만 나의 집이 생기고나니 알겠다. 

지금은 왜 빨래를 지금 이 바쁘게 나가기 전에라도 들어가서 널어야만 하는지, 

누군가가 내버려둔 물컵, 흘려둔 쓰레기를 지금 이 순간 버리고 정리하고 나가야하는지 이해한다. 

외출후 들어올 때 할일이 쌓인 집이 아니라 말끔한 집에 들어오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텀블러보단 머그컵이 설거지하기가 간편하니까. 


작가의 이전글 오늘은 굴이 좋겠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