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생 <악녀를 죽여줘>를 예시로
서론: 악녀물 로맨스판타지 장르의 대중서사적 위상
로맨스는 대중문화, 특히 서사 콘텐츠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대표적인 대중서사 콘텐츠라고 할 법한 장르 소설과 웹소설에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2023년 12월 기준, 네이버 웹소설에선 모든 작품이 다섯 가지 장르로 나뉜다. ‘로맨스, 로맨스판타지(이하 로판), 현대판타지(이하 현판), 무협, 판타지’가 그것이다. 특히 로맨스와 판타지가 결합한 ‘로판’이라는 명칭은 2015년 7월, 무료연재 웹 플랫폼 ‘조아라’가 카테고리를 분리하면서 굳어졌다. 이것이 초점을 주인공의 연애 중심 로맨스에 두느냐, 모혐 중심 판타지에 두느냐는 의견이 분분하다. 로판 중에서도 「테라리움 어드벤쳐」, 「밑 빠진 용병대에 돈 붓기」 등 로맨스가 나오지 않는 작품 역시 다수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 톨킨 중세풍 판타지가 아닌, 남성향 장르인 현판과 동일한 서사 전개를 이루는 작품들 역시 주인공이 여성이라면 로판으로 분류되곤 한다. 이는 「밑 빠진 용병대에 돈 붓기」가 카카오페이지에 런칭하면서 생긴 논란으로 가시화되었다. 해당 작품은 로맨스가 없는데, 로판 장르의 이름 특성상 이성애 로맨스를 기대하고 온 독자들이 불만을 토한 것이다. 반대로, 로판 카테고리에 분류되어 정작 판타지 독자들은 작품을 찾지 못했다는 반응도 있었다. 그들은 ‘카카오페이지 채널이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면 무조건 로판으로 분류하는 것’을 반박했고, 작가 역시 로판 장르로 배정된 걸 몰랐다고 언급했다. 로판 독자 및 작가들은 조아라 등 무료 연재 플랫폼에서 ‘여주인공 판타지’가 설 곳이 확보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로맨스 없는 여주인공 판타지를 판타지 카테고리에서 연재하면 기존 남성 독자들의 힐난이 쏟아지고, 로맨스 탭에서 연재하면 로맨스가 없다는 사실을 지적받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조아라와 네이버 등은 판타지 카테고리 자체에서 여성 주인공 판타지의 위상을 확보하기보다 로맨스판타지라는 분류를 신설하는 것을 택했다. 즉 로판은 장르의 부자연적인 탄생부터, 여주인공은 판타지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젠더 차별적 이데올로기의 결과물이라는 관점이 지배적이다.
웹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물’이라는 용어가 하위 장르나 소재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즉 ‘판타지물’이나 ‘로맨스물’ 등으로 쓰이기보다 ‘재벌물’, ‘전문직물’, ‘악녀물’, ‘기사물’ 등으로 쓰이는 때가 많다는 것이다. 이 중 ‘악녀물’은 로판 장르에서 곧잘 보이는 소재다. 이는 외부 시선에서 ‘악녀’로 정의된 여성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외부 시선은 독자의 시선이 아닌, ‘회귀/빙의/환생’ 클리셰를 뜻한다. 주인공들은 가상의 작품(소위 원작) 속 악당이나 악녀 역할에 빙의하거나 환생한다. 혹은 첫 번째 삶을 거치며 부당하게 악녀로 규정된 주인공이 두 번째 삶에서 주인공으로서 자기 정당성을 확보하는 서사가 보편적이다. 악녀는 ‘선하지도 순결하지도 않지만, 빼어난 미모와’ 선명한 욕망을 가진 여성 인물이다. 그들은 악당이 아닌, 악한 ‘여성’으로, 서사적 주체성보다는 (원작)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의 사랑을 방해하고 답답한 상황을 일으키는 역할에 그쳤다.
사월생의 <악녀를 죽여줘>는 여주인공이 ‘원작’ 속 세계의 악녀인 ‘에리스 미제리안’에 빙의하면서 시작한다. 원작은 여주인공 ‘헬레나 앤터블럼’이 용사 ‘이아손’, 고위 성직자 ‘휘브리스’, 황태자 ‘알렉토’와 두루 연애 기류를 형성하면서, 에리스의 방해를 뚫고 알렉토를 선택해 황후가 되는 이야기다. 에리스는 질투에 못 이겨 헬레나를 독살한 죄로 처형당한다. 에리스가 된 주인공은 원작의 이야기 전개를 차근차근 밟아야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걸 알고 마녀 ‘메데이아’, 조력자 ‘아나킨’, ‘킨디아’와 힘을 합쳐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그녀는 이 과정에서 마냥 우유부단하고 대책 없이 선한 줄 알았던 헬레나의 사정과 강인한 선의를 확인하고, 멋있게만 나왔던, 원작 중 세 남주인공들의 밑바닥을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독자에게 전달한다.
본론: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환상
(1) ‘악녀’와 ‘성녀’의 상호 이해
악녀와 대조되는 개념으로는 ‘성녀’를 들 수 있다. 즉 악녀와 성녀라는 두 분류는 본질적으로,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소위 ‘여적여 이데올로기’의 결과물이다. 이는 여성이 여성을 적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유도한 남성 인물들의 악의를 은폐하고 여성의 시련이 단지 타 여성의 질투와 시기로 만들어진다는 논리를 강화한다.
원작 여주인공 헬레나는 반역죄로 몰락한 귀족 가문의 딸이다. 숙청 사건이 출생 이전에 발생해 평민으로 나고 자란 그녀는 허드렛일을 하는 궁궐 하인이면서도 손에 굳은살 하나 없다. 헬레나를 연모하는 황태자, 알렉토와 그의 모친인 황후, ‘멜포메네’가 그녀를 웬만한 일에서 배제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황위 계승자인 알렉토와 친구 관계를 맺고 반말로 대화한다. 반면 원작의 에리스는 고위 귀족 가문의 자제로, 날 때부터 알렉토와 약혼이 결정되어 있었다. 그녀는 응석을 부릴 나이에 황실 예의범절과 귀족 가문 가계도를 외웠고 완벽을 강요받았다. 원작 에리스의 유일한 꿈은 황태자가 자기 능력을 인정해 주는 것이었으나 알렉토가 자기를 배신하고 헬레나를 택하자, 비관에 빠져 ‘이 세상에서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다.’라고 소원을 빈다. 그녀의 소원이 이루어지고, 21세기 한국에서 살던 여주인공의 영혼이 에리스에게 담긴다. 빙의 후에도 에리스와 헬레나는 원작 남주인공들에 의해 끝없이 비교당한다. 에리스는 아무런 노력 없이도 사랑을 독차지하는 헬레나를 아니꼽게 생각하지만, 곧 그녀가 그 사랑을 원해서 받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알렉토는 무도회에 약혼녀인 에리스가 아닌, 이아손의 파트너인 헬레나를 훔쳐서 데려간다. 에리스가 입은 것과 똑같은 옷을 입힌 채 입장한 것이다. 회장에 미리 도착해 있던 에리스를 본 헬레나는 크게 당황해, ‘갈아입고 오게 해주세요!’라고 애원한다. 헬레나가 퇴장하고 알렉토에게 ‘당신에게는 일말의 호감도 없으니 헛수고하지 말라’고 경고한 에리스는 무도회장 밖 정원에서 울고 있는 헬레나를 발견한다. 그녀는 에리스에게 몇 번이고 사과하는데, 에리스는 깊은 피로감을 느끼며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또 너다. 또 네가 사과한다. 너를 데려온 남자도, 네게 내 옷을 입힌 남자도 내게 사과하지 않는데, 가장 힘이 없다는 이유로 사과는 항상 네 몫이 된다.
그러나 내 앞에 선 네가 안간힘을 쓰며 울음을 참는 모습을 보면서, 너를 오해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네게는 아픔 하나 없다고, 너는 마냥 행복할 것이라고. 네 손에는 상처가 없을지언정, 네 가슴에도 상처가 없는 것은 아닐 텐데.
헬레나는 우유부단한 것이 아니라, 신중한 거였다. 그녀는 둔했으나, 다른 이의 기쁨이나 슬픔은 누구보다 빨리 공감했다.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말은 힘겨운 상황에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늘 긍정적으로 나아가려 애쓴다는 뜻이며, 오지랖이 넓다는 것은 선하며 주변에 관심이 많다는 의미도 된다.
헬레나 역시 에리스를 특별한 존재로 여긴다. 모든 사람이 그녀를 사랑하는 중 에리스만은 헬레나를 더없이 증오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받았다고 착각하고 사실을 깨달으면 돌아서서 욕하는 사람들보다, 일관적인 태도로 자길 지적하고 미워하는 에리스가 그녀에게는 훨씬 좋은 사람이었다. 그녀 역시 빙의 전, 원작의 에리스가 몰래 숨어 우는 걸 발견한 때를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저토록 어린아이가, 그토록 무거운 옷차림과 화장을 하고서, 그토록 힘겨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기괴하게 느껴졌다.
만약 내가 귀족이었다면 그녀와 같은 미래를 밟아 나가고 있었을까?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무리 멸시받아도 그렇게는 살 수 없다고.
우리는 서로를 결코 이해하지 못하리라. 하지만 햇볕이 찬연하던 그 초여름 날, 나는 그 애가 내게 무슨 짓을 하든 용서하겠노라고 마음먹었다.
에리스와 헬레나는 악녀와 성녀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두 여성으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직시한다. 알렉토와 이아손, 휘브리스가 그들을 무언가의 대상이자 객체로 바라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헬레나에게 향하는 호감과 에리스를 향한 증오가 결국 남성 인물들의 ‘허락’으로 탄생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2) <악녀를 죽여줘> 중 남성 인물의 역할
작중 이름을 갖고 등장하는 남성 인물은 총 5명으로, 빙의한 에리스가 임명한 기사인 ‘아나킨’, 에리스의 친부인 ‘카니발 미제리안’, 이아손, 알렉토, 휘브리스다. 에리스와의 관계를 기준으로 그들을 적대자인 카니발과 주요 적대자인 원작 남주인공 세 명, 조력자인 아나킨으로 분류해 각각을 분석하려 한다.
카니발 미제리안은 에리스 미제리안의 친부다. 그는 삶에 모든 의욕이 없던 여성, ‘퀴에스 미제리안’과 결혼해 데릴사위로서 미제리안 백작이 된다. 그는 퀴에스에게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는 매사에 무기력하다. 백작과 결혼하고 에리스를 낳은 것조차 굳이 거절할 이유를 느끼지 못해서였다. 카니발은 그녀의 마음을 어떻게든 붙잡으려 하지만 모두 실패한다. 에리스가 태어나면 가정에 마음을 붙일 거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병에 걸린 퀴에스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카니발에게 자기 시체를 박제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를 카니발은 아래처럼 왜곡해 받아들인다.
“그녀는… 아름다운 채로 죽고 싶어 했다.” … “산후우울증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원래 이 세상에 미련이 없었어. 나도, 우리의 딸도 그녀를 붙잡긴 역부족이었던 게지.”
그러나 퀴에스의 하녀였던 ‘엠마’는 그의 인식이 틀렸다고 지적한다. 그녀의 회상에 따르면 퀴에스는 아름다운 죽음은커녕 그 무엇도 바라지 않았다. 작중 그녀는 에리스에 빙의한 여주인공과 마찬가지라 ‘이방인’이었다는 암시가 나오는데, 박제를 부탁한 것은 자기가 떠난 이후 ‘퀴에스 미제리안’의 영혼이 몸으로 들어와 삶을 살기를 바랐던 것으로 보인다. 카니발은 ‘최고의 자리에 앉으면 행복할 것이다.’라는 믿음을 갖고 에리스를 황후 자리에 앉히려 애쓴다. 그러나 이는 에리스를 자식으로 사랑해서가 아닌, 그것이 그가 퀴에스에게 주지 못한 유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산후우울증이라고 믿은 것 역시, 퀴에스가 자기에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에게 일말의 관심도 없었다는 걸 믿고 싶지 않았’던 까닭이라고 에리스는 지적한다.
에리스가 본인에게 무관심하다는 사실을 못 받아들이는 인물은 세 사람이 더 나온다. 알렉토, 이아손, 휘브리스다. 작가는 각각에게 한 챕터씩 분량을 할애해 헬레나의 용기와 그들의 비겁을 대조시킨다. 알렉토는 소멸한 에리스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영구할 것이라고 믿고 오만하게 군다. 그는 헬레나를 선택할 때마다 보인 에리스의 절망을 기꺼워했다. 양친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그녀의 헌신으로 대체한 것이다. 이아손은 미친 용을 죽이리라는 예언을 타고나 어릴 때부터 무술을 갈고닦았다. 양친은 그의 생존을 위해 엄하게 훈련 시켰으나 아들이 용을 죽이지 못하고 도망칠 상황을 대비해 은신처를 마련해준다. 용을 죽이고 돌아온 그는 자기를 필요로 한다고 ‘보이는’ 헬레나에게 마음을 주고 계속 구애한다. 그는 자기에게 무관심함을 받아들이지 않는 에리스로 표적을 바꾸어 ‘한 마디도 지지 않는다’며 반복적으로 ‘패배시키려’ 노력한다. 에리스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할 것이라는 이아손의 전제를 지적한다. 휘브리스는 외상을 치료하는 초능력이 있는 대신관인 동시에 에리스의 이복 남매다. 그는 카니발 미제리안에게서 도망쳐 자길 낳은 어머니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지만 모친은 그를 거부하고 자살한다. 에리스 역시 그의 애정을 내치고 죽음으로써 원래 세계로 돌아가려 한다. 그들의 공통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원작에서 헬레나를 사랑하고 에리스를 증오했다는 것, 둘째는 빙의한 에리스의 여러 기행은 전혀 의심하지 않다가 그녀가 알렉토를 사랑하지 않음에 에리스라는 존재가 전혀 다른 타인임을 억지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그들은 에리스를 한 인간으로 인식하지 않고 ‘알렉토를 사랑하는 무언가’로 객체로써 인식했고 그러한 인식이 틀렸음을 거부하며, 헬레나를 칼로 찌르고 처형당한 에리스의 시신을 되살리려 한다. 이는 헬레나가 에리스가 전혀 다른 영혼임을 알고 그녀를 잘 알고 있었다는 오만과 무관심을 반성하면서 에리스에게 조력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아나킨은 에리스가 세계의 이방인으로서 선택한, 평민 출신 호위 기사다. 원작에서는 에리스를 사랑해 그녀에게 헌신하는 역할로 나온다. 에리스는 이름의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던 그에게 아나킨이라는 이름을 주고 가까이 둔다. 그가 에리스를 둘러싼 다른 남성 인물들과 다른 점은 그녀를 최우선시하면서도 그 대가를 바라지 않고 복종한다는 사실이다. 다른 남성 인물들이 에리스를 멋대로 의심하거나 그녀에게 일방적으로 구애하는 것과 달리, 그는 그녀에게 품은 자기의 사랑을 끝없이 의심하고 경계한다. 그는 에리스가 마녀든 아니든 신경 쓰지 않으며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헬레나를 찌르고 처형당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그렇군요, 하고 받아들인다. 작중 에리스가 원작의 흐름에 맞춰, 황후가 된 헬레나를 찌르고 처형당한 이후도 마찬가지다. 초능력이 있는 휘브리스가 에리스의 몸을 되살리면 이방인인 여주인공의 혼이 그 세계에 매이게 된다. 에리스는 아나킨에게 자기 시신을 난도질해달라고 부탁하고 그는 괴로워하면서도 흔적 없이 불태우겠다고 맹세한다.
이아손: (에리스가 선택한 사람이) 왜 너였을까. 어디 하나 잘난 구석이 있는 사내였다면 이렇게 분하지는 않았을 텐데.
아나킨: 주인님의 선택 하나 존중하지 않으면서, 정말… 이유를 모르시는 겁니까?
이아손: 닥쳐라! 그녀는 마음을 바꿀 수도 있었어! 다만 기회가 없었던 것일 뿐이다.
아나킨: 기회요? 설마 본인이 그 기회라고 말하고 싶으신 겁니까? 누군가의 마음을, 의지를, 생각을! 바꾸겠다는 것부터 크나큰 오만이요, 오판입니다!
아나킨은 마녀 메데이아의 조력을 받아 에리스의 시신을 불태우지만, 본인은 이아손의 칼에 찔려 사망한다. 그는 죽어가면서도, 주인(여주인공)이 자기가 그녀의 세계로 따라가는 것을 허락해서 기뻤다고 고백한다. 그는 여주인공의 세계로 넘어가는 데 실패한 것이 아니라 그녀가 자기를 기다리느라 마음고생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슬퍼한다. 메데이아는 그의 순애를 맹목적이라고 ‘평가’하며, 세계의 법칙을 뒤틀어 아나킨의 영혼을 현대 한국으로 보낸다. 결국 여주인공과 만나 사랑을 이루는 그는 에리스를 잃고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사는 원작 남주인공 세 명의 최후와 명확한 차이를 드러낸다. 아나킨은 여성을 대하는 남성이 보여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독자에게 제안하는 역할로 쓰였다고 하겠다. 작가는 헬레나와 아나킨을 원작 남주인공들과 대비시키면서 여성 억압의 진정한 핵심은 타 여성이 아닌, 그녀를 조종하는 남성 권력이라는 사실을 되짚는다.
(3) 견고한 법칙을 파훼하는 마녀들
에리스에게 가장 도움이 된 조력자는 아나킨이 아닌 마녀들, 그중에서도 메데이아다. 그녀는 에리스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려주고 은근히 돕는다. 작중에서 마녀는 본인 세계의 법칙을 무시할 만큼 강력한 의지를 느끼면 ‘진화’하는 종족으로, 자연의 어머니인 용과 대적할 만큼 강력한 존재다. 이 사실은 다음 대화에서 드러난다.
마녀는 차가운 눈으로 이 방의 유일한 남자인 아나킨을 바라본다.
“그런 원념을 갖기에 남자는 너무도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들은 감정적이고, 쉽게 납득하며, 포기가 빨라서 힘듭니다. 아니, 나아가서 뭐랄까…. 절박함을 가질 만큼 고통받아 본 적도 없다고 해야 할까요. 대부분의 문명에서 남자는 보통 ‘규칙을 만드는 존재’니까요. 억압된 자들도 규칙을 부수기보단 자신이 새로운 규칙이 되길 꿈꾸죠.”
“너희가 그토록 대단한 존재라면, 어째서 사람들은 마녀의 존재를 모르는 거지?”
“마녀의 존재를 사람들이 눈치채면 곤란해질 이들이 많거든요. 주로 권력자들이죠. 마녀가 높은 신분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니, 귀한 신분과 힘은 하늘이 내려 주시는 거라는 정당화, 즉 권력의 근간조차 흔들리게 됩니다.”
마녀의 유일한 한계는 다른 세계로 이동할 수 없다는 점이다. 작가가 정한, 세계의 용도(줄거리)가 끝나면 세계는 차츰 힘을 잃고 죽어가는데, 이를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고통이다. 작중 등장하는 복선 대부분은 ‘여자’와 관련이 있다. 원작의 에리스가 소멸하는 데는 ‘그녀(육체)가 가장 증오한 여자의 이해’와 ‘그녀(육체)를 가장 사랑한 여자의 이해’가 필요했다. 각각은 아나킨이 아닌, 그녀를 키워온 하녀, 엠마와 헬레나였다. 아나킨이 세계를 넘을 때도 세계에서 ‘가장 강했던 여자’와 ‘가장 강한 여자’, ‘가장 강해질 여자’의 호의가 필요했다. 각각은 에리스, 메데이아, 아나킨의 동생인 킨디아가 맡았다. 메데이아를 비롯한 마녀들은 선의로 에리스를 이해하고 조력하는 헬레나와 달리 보상을 요구하면서 에리스를 돕는다. 이는 여성과 여성의 연대가 그저 무조건적 호의와 선의에 기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메데이아와 무미랑, 키르케 등 마녀들은 작가(신)을 잃고 무너져 가는 세계의 새로운 신을 찾기 위해 움직이고, 최초의 마녀의 환생인 킨디아를 찾아냄으로써 목표를 이룬다. 그들은 등장 자체로 원작의 남성 주인공들보다 월등히 강력한 여성이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메데이아는 자기에게 칼을 겨누는 이아손에게 ‘용을 벤 너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겠지만, 그게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과 동의어는 아니잖아?’라고 짚으며 그를 제압한다.
마녀는 남성을 비롯한 기득권 압력을 상징하는 ‘법칙’을 비트는 존재다. 그로써 세계의 신(작가)이 만들어 낸 창조물이 아니라 창조주로서 어디에도 기대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게 된다. 작중 마녀라는 설정은, 남이 만든 법칙으로 규정당해 살던 여성을 전제한다. 태어날 때부터 마녀인 여성은 없으나 모든 여성이 마녀가 될 가능성을 지닌다는 암시는 남성 권력이라는 법칙과 규정이 여성의 잠재력을 얼마나 억압하려 애쓰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결론: ‘여적여’에서 ‘여돕여’로 나아가기
악녀 소재를 사용하는 기존 서사는 대체로 그 대적자로 성녀를 등장시키곤 했다. 이 경우 전개 방식이 ‘악녀는 사실 성녀처럼 착했고 성녀는 사실 악녀처럼 나빴으므로 악녀는 성녀 취급을 받아야 하고 성녀는 악녀 취급을 받아야 마땅하다.’라는 전복 구조가 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전개가 악녀 캐릭터의 ‘악녀성’이 부당하게 규정당하고 손가락질 받아왔음을 지적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독자가 단편적으로만 독해할 경우 ‘겉으로는 성녀인 척하면서 악녀보다 더 악녀 같은 진짜 악녀’를 찾아 단죄하는 서사로 읽힐 가능성이 높다. 정작 그 두 여성을 부조리하게 갈등하도록 내몬 ‘진짜’ 뒷배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악녀와 성녀의 대립은 ‘악녀성’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키지만, 악녀와 성녀를 가르고 평가하는 시선을 전제한다는 한계가 있다. 이는 ‘나쁜 년은 벌을 받아야지’라는 심리의 심화 버전에 지나지 않는다. 이 ‘나쁜 년’이라는 기준이 사실상 ‘선하지도 순결하지도 않으면서 빼어난 미모만 가진 여성 인물’을 의미한다는 것 역시 눈여겨봄 직하다.
‘여적여 프레임은 여성들을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게 하는 가부장제 시스템 아래에서 유효했다. 미묘한 기 싸움, 혹은 질투로 발화된 무언가를 떠올리며 으레 사람들은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고 강조했다. 즉, 감정적이고 질투하는 여성의 이미지는 지극히 남성의 시선이다. 노혜경 시인은 ‘여적여’는 ‘여자는 여자하고만 경쟁하라’는 뜻이 잠재적으로 내포되어 있으며, 남자에게 종속하는 여자들이 담합하는 지배구도라고 말한다.‘ 무수한 남성과 남성 사이의 다툼에는 붙지 않은 기 싸움, 사소한 질투, 감정적인 충동 등 소위 ’cat fight’ 프레임이 여성 간 다툼에만 붙는 맥락 역시 재고해야 마땅하다.
‘여적여’의 대항마로 여자를 돕는 여자, ‘여돕여’가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국제 신용 평가 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가 1,500개 기업을 20년간 연구한 결과, 여성이 CEO일 때 여성 직원이 고위직으로 승진할 가능성이 더 컸다. 남성 CEO의 존재가 여성의 유리천장을 강화한다는 결과다. 그러나 ‘여돕여’ 역시, ‘여적여’를 비판하면서도 여성을 어느 특정한 단일 프레임에 넣어 획일적인 존재로 규정한다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그것이 여성이 자기를 포함한 여성에게 품은 적대감과 경계, 두려움을 덜어내 연대하는 삶으로 나아가게 하므로 ‘여돕여’ 구도는 최소한 그간의 ‘여적여’ 구도가 차지한 위상만큼은 주목받아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1차 문헌>
- 사월생, 「악녀를 죽여줘」, 디앤씨북스, 카카오페이지, 2019, 1~3권
<2차 문헌>
- 김나은, 노효진, 「여적여를 말하는 당신께」, SAIB-SAID, 2023.12.24.
- 김준현, 「웹소설 장에서 사용되는 장르 연관 개념 연구」, 『현대소설 연구 74』, 2019
- 류수연, 「여성 인물의 커리어 포부와 웹 로맨스 서사의 변화 – 로맨스판타지의 ‘악녀’ 주인공 소설을 중심으로」, 『한국문학과 예술 제39집』
- 정혜원, 양윤호, 「메에이아 신화의 스릴러적 변용을 활용한 현대 여성 서사 캐릭터 연구: <더 글로리>와 <헤어질 결심>을 중심으로」,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