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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미상궁 라하 Apr 27. 2024

옥분이 순희에게 나래를

판타지  단편소설


학생회장이자 반장이자 문학 동아리 회장이자 기타 여러 장이란 장은 다 하는 최나래. 단체 과제만 있다 하면 귀찮은 일은 도맡아 하는 최나래. 다래 고등학교 소문난 호구, 최나래가 돌았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전교로 퍼졌다.


할매는 나래 담임에게 전화로 소식을 듣고 기절할 뻔했다. 글쎄 누구보다 착하고 얌전한 손녀가 죄 없는 남학생 뺨따귀를 다섯 대나 후려갈겼다는 것 아닌가. 그래놓고 사과 한마디 없이 뻔뻔스럽게 수업을 들었단다. 남학생은 뺨이 퉁퉁 부은데다 입술도 좀 터졌다는 얘기였다. 그 남학생 부모가 전화로 노발대발하는 걸 담임이 죽을 각오로 막았다고 했다. 안 봐도 훤히 그려지는 상황에 눈앞이 아찔했다. 털썩 주저앉으니 고관절이 비명을 토했다. 나래는 귀하디귀하게 키워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은 수재였다. 자라면서 작은 문제 한 번 일으킨 적 없었다. 할매는 나래가 탄탄대로를 걸을 것이라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이상하더니, 나래가 결국 사고를 친 것이다.

할매는 나래가 있는 방 문짝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래는 아직 교복을 입은 채 침대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할매가 슬쩍 들어가려는 때, 나래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렇게 난리 치시면 어떡해요. 나래가 나래에게 하는 말이었다. 자칫하면 들킬까, 할매는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을 풀었다. 아니, 그 썩을 놈 면상을 내가 봐줬어야 한다는 말이냐? 나래가 한 말이다. 이번에는 잔뜩 뿔이 난 어투. 누구 하나 잡아 팰 것 같은 어조가 묘하게 친숙했다. 나래가 나래를 혼내고, 나래가 나래에게 변명하는 대화가 수 분간 이어졌다. 어떤 나래는 할매가 아는 나래였고 어떤 나래는 할매가 모르는 나래였다.

이걸 어떡하면 좋나. 할매는 나래가 잠든 밤마다 수없이 고민했다. 생각한 해결책이 쌀알이라면, 할매 머릿속은 쌀이 열 포대 들어있을 터였다. 전전긍긍하다가 잘 다루지도 못하는 스마트폰으로 이중인격이니 뭐니 하는 걸 검색했다. 해리성 인격장애가 어쩌고저쩌고하는 얘기가 나왔다. 정신병이라는 얘기였다. 할매는 그럴 리 없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그 포스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식인이 모여있다는 사이트에서 찾아보니, 우울이 극에 달하면 정신머리가 뛰쳐나간단다. 할매는 당장이라도 나래를 정신병원에 데려가야 하나 싶었다. 미친 연놈이 모여있다는 병원에 나래를 데려가려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나마 괜찮은 병원을 이리저리 찾은 건 일주일이 지나서였다. 보장이 되는지 보려고 보험사에 상담 전화를 걸었는데, 청천벽력 같은 얘기가 돌아왔다. 정신병 환자는 앞으로 실비보험을 들기가 어렵다는 얘기였다. 듣기 좋게 돌려 말했지만, 요지는 이거였다. 잘못해서 제 혼자 죽어버리면 곤란하단다. 딸내미가 나래를 두고 뛰쳐나간 이후 처음으로 눈물이 찍 나올 뻔했다. 참이슬 한 잔을 목구멍 너머로 털어 넘기면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꼭 정신병이 아닐 수도 있다. 웬 한 많은 귀신이 들린 걸지도 모르는 일이다. 할매는 미신을 잘 믿지 않지만, 나래를 위해서라면 믿는 척 못 할 것도 없었다. 생각나는 사람 중 나름 미더운 이도 있었다.     

악독한 집주인 할망구가 3층 창문 너머로 보이는 걸 보고, 소단은 거의 기절할 뻔했다. 집 앞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힐끗힐끗 쳐다봤지만 할매는 눈을 부릅뜬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밀린 집세라도 뜯으러 온 기세다. 빌어먹을. 왜 하필 3층이람? 소단이 사는 원룸도 3층에 있었다. 3층 사는 인간들을 떠올려봤지만, 집세가 밀릴 만한 사람은 소단뿐이었다. 안 그래도 이번 의뢰로 밤을 지새웠는데 편의점에서 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는 도축장 끌려가는 돼지 심정으로 원룸 계단을 올라갔다. 집주인 할매는 꼬장꼬장하게 안경을 치켜세운 채 계단에 앉아 있었다. 소단이 사는 302호 앞이었다.

안녕한가? 안녕하세요. 잠시 애매한 정적. 어쩐 일로……? 젊은 처자가 다 죽어가기는. 들어가서 얘기하지. 주인 할매는 항상 자기 할 만만 띡띡 하고 말았는데, 이번에는 집안에 들어가겠다고 한다. 집 빼라는 얘길까?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나? 월세를 15%나 올린 이유가 적당히 나가라는 뜻이었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와중에 할매는 관절에서 뿌득뿌득 소릴 내면서 일어났다. 문 따라는 얘기였다. 소단은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문을 열었다. 엉망인 집안에 간이책상을 펴서 할매를 앉혔다. 제일 비싼 카누 커피를 제일 비싼 스타벅스 머그컵에 담아 대령하니, 할매가 홀짝홀짝 잘도 마신다.

“자네, 무당 일 좀 해주게. 우리 손녀가 좀 아파.”

할매가 세상 다 산 귀신처럼 말했다. 값싼 스테인리스 물잔에다 맥심커피를 타 마시던 중이라, 소단은 꼴사납게 기침했다. 젠장, 신당도 모바일 월정액으로 쓰는데 어떻게 알았지? 눈동자가 정처 없이 떨렸다. 무당이 살면 집값 내려간다고 쫓아내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소단은 할매가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나가라 소리치지 않기만을 바랐다. 변명거리를 생각해둔 게 없었다. 할매는 소단을 그럭저럭 봐줄 만하다는 눈으로 훑었다. 애매한 믿음이 서린 눈초리였다. 소단은 밀린 집세를 셈하면서, 죄수처럼 최종 판결을 기다렸다. 할매가 마침내 내뱉은 말에 소단이 보인 반응은 제법 멍청했다. 그는 싹싹 비는 자세 그대로 굳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할매가 집세를 깎아주겠다며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든 것이다. 소단이 불안한 목소리로 3할이냐고 묻자 할매가 혀를 쯧쯧 찼다. 소단이 눈물을 머금고 3푼이냐고 다시 물었는데, 할매는 자길 뭐로 보냐고 성을 냈다. 이번 달부터 석 달, 밀린 월세 석 달. 이렇게 해서, 엿 달 월세를 면해주지. 밀린 건 계약금이고 앞으로 낼 건 성공했을 때라고 못을 박는다. 소단은 당장 할매에게 사랑의 뽀뽀를 할 수도 있었다. 그가 할매의 펼친 손가락 세 개를 감싸 쥐었다. 입가에 비실비실 미소가 걸렸다. 할매가 얼씨구, 하면서 눈썹을 들어 올렸다. 자기 할 말 마치고 문을 나서는 할매에게 무당인 걸 어떻게 알았냐고 여쭈었다. 그는 보기 드물게 킬킬 웃으면서 이 동네 사람들한테 소문난 마당발이 누군지 물어보면 알 거라고 했다. 소단은 자기가 이웃 사정에 너무 게을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세상에 무료 변호 인권 변호사가 있으면 무료 퇴치 인권 무당도 있다. 형편 어렵다고 귀신 들린 집에서 살라는 법 없다. 소단이 무당 재능에 눈 뜬 건 5년 전,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이다. 그는 연고대 씹어먹고 서울대 프리패스할 성적을 3년 내내 유지한 우등생이었다. 솔직히 모범생이기도 했다. 전국 연합 모의고사 10등 안에 들었을 때 부모가 했던 말을 소단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했다. 그렇게 할 수 있으면서 왜 1등을 못 해? 더 열심히 해야지. 다 널 위한 말이야. 나중이 되면 감사하게 될 거다. 딱 네 문장으로 사람 마음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 이렇게 적합한 말도 없을 것이다. 어린 소단은 미쳐가고 있었다. 끊임없이 치고 올라오는 경쟁자와 어깨를 짓누르는 기대가 그를 매일같이 패대기쳤다. 무엇도 그의 부모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들은 소단이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더 빼어난 자랑거리가 되길 바랐다. 소단은 그게 순전히 사랑 때문인 줄 알았다. 고등학교 3학년, 수능 석달 전에 신병에 들렀다. 잡다한 신이 다 놀다가는 바람에 죽을 뻔했다. 의사도 도리가 없다고 했다. 와중에 수능을 보겠다고 짐을 싸야 했다. 엄마 아빠가 수능을 안 보면 인생 조진다고 했다. 대충 그런 뉘앙스였다. 수험표 사진을 보는데,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기억이 시작하는 순간부터 갖은 학원에 다니느라 거울 볼 틈도 없었다. 사진 속 김소단 눈깔에선 폐사하는 어패류보다 지독한 냄새가 났다. 수능 당일. 소단은 수능을 째고 바다로 갔다. 가는 동안은 머리가 덜 아팠다. 탁 트인 바다를 보면서 목숨 말고 모든 걸 포기하자고 다짐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모든 두통이 사라졌다. 손발 떨림이나 구역감도 멎었다. 속에 쌓여있던 무언가가 터지는 듯했다. 가슴속에 자리 잡은 신 하나가 다른 잡신을 죄다 몰아내고 깔깔 웃었다. 그가 꿈이 뭐냐고 묻자 없다고 했다. 바라는 삶이 있냐고 묻자 조금 고민하다가 행복해지고 싶다고 했다. 어떻게 행복해지고 싶냐고 신이 물었는데, 소단은 남을 도우면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그 결과 인권 무당이 돼서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고 있다. 가족들은 그를 내놓은 자식 취급한 지 4년 반이다. 소단은 자기가 4살 반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기로 했다. 꼭 형편 안 좋은 집에만 들러붙는 비겁한 원혼 대가리를, 돈 한 푼 안 받고 따면서 지낸 게 4년이다. 소문이 나는 게 마땅하니, 주인 할매가 귀신같이 알고 온 것이다.     

다음날, 소단은 단정한 셔츠에 바지를 입고 주인집에 갔다. 깐깐한 주인 할매한테 책잡히지 않으려 다림질까지 했는데, 할매는 어딘지 미심쩍은 눈초리로 그를 훑었다. 귀신 기선을 제압할 화려한 복장을 기대한 모양이다. 국가 공인 무당 자격증이 없는 게 이래서 문제다. 소단은 인터넷에서 딴 허접한 심리상담 자격증을 내밀까 하다 관뒀다. 괜한 의심하게 할 순 없다. 할매는 손녀가 있는 방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입만 열었다 하면 손녀 자랑을 일삼는 할매다. 주인 할매 손녀 이름은 최나래. 열여덟이면 한창 정신이 밖을 쏘다닐 나이다. 소단은 나래가 정녕 미친 건지, 귀신이 들린 건지 판단하려 신경을 곧추세웠다.

나래는 할매가 얘기한 참하고 얌전한 성격과 거리가 멀었다. 일단 굉장히 활발했다. 할매가 소단을 무당이라고 소개하자 눈을 게슴츠레 뜨고 보더니 이내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다. 나래의 단발머리는 미묘하게 얼룩덜룩한 카키색이었다. 직접 염색하다 제대로 안 된 모양이다. 요즘 고등학교는 두발 자유란다. 벽지 위쪽 반은 아이보리색이고 아래쪽은 진청색이었다. 도배가 깔끔했다. 게다가 주인 할매 방에도 없는 고급 창문형 에어컨이 떡하니 있었다. 최신 인버터 에어컨이다. 지금 보니 채광도 좋다. 천장까지 깔끔한 LED등이었다. 간접조명도 있다. 커다란 독서실 책상 위로 책이며 문제집이며 없는 게 없는데 다소 산만했지만 눈길이 가진 않았다. 방에 있는 책꽂이가 다 비어 있는 탓이었다. 책장에 있어야 할 책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펼쳐진 것만 두 더미다. 책 못 읽어 죽은 귀신이 들렸나? 괴짜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방 전체에 주인 할매의 애정인지 집착인지 모를 감정 덩어리가 듬뿍 묻어 있었다. 소단이 쓰는 공간에 빗대자니 미안할 지경이다.

할매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소단을 쏘아보다가 나갔다. 나래가 바퀴 달린 고급 브랜드 의자를 건넸다. 소리 없이 밀리는 게 진짜 비싼 물건이다. 소단이 자기소개했다. 김소단. 무당이고 네 몸에 붙은 영혼 떼러 왔단다. 나래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정직하게 목적을 밝힐 줄 몰랐다는 눈치다. 순진한 건지 고전적인 건지 모를 반응이다. 나래가 자길 소개했다. 그가 소개하는 사람은 최나래가 아니었다.

“이름, 김옥분. 백 살 먹은 할매. 허, 참. 이름 말하는 게 이리 좋을 줄은 몰랐네.”

옥분이 나래 몸을 하고 킬킬 웃었다. 연륜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그가 수면바지를 입은 채 다릴 쩍 벌리곤 코 밑을 슥슥 문질렀다. 나래가 어디 있냐고 물으니 자기 뒤에 쬐끄맣게 숨어 있단다. 숨은 게 나래가 원한 일이냐고 물었더니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한다. 나누는 대화를 가져온 수첩에 빼곡하게 메모했다. 별 내용도 없는데 이것저것 별표를 치고 좍좍 그었다. 태블릿PC를 살 돈이 없었다. 옥분은 다릴 동동당당 흔들면서 그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천천히 살피는 눈빛을 보니 산 같은 노인네를 앞에 둔 느낌이었다. 소단은 옥분을 살살 구슬렸고, 나래와 대화를 시도할 수 있었다. 나래는 자기 이름이랑 학번 정도만 말해주고 도로 숨었다. 소단은 옥분의 경계가 심해지기 전에 나래 방에서 나왔다.

소단과 옥분은 차츰 친해졌다. 소단은 매일 나래를 찾아갔고, 옥분은 천천히 소단에게 마음을 열었다. 나래를 볼 수 있는 날이 늘었다.      

그 자식 거시기를 시원하게 걷어찰 걸 그랬어. 옥분이 사과를 쩝쩝 씹으며 주절댔다. 그가 뺨을 다섯 대나 갈긴 남학생 얘기였다. 나래에게 추잡스럽게 들러붙던 놈이라고 했다. 솔직히, 소단은 옥분이 기선제압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 학생은 나래를 슬슬 피해 다니면서 그를 골탕 먹일 궁리만 짜고 있다고 했다. 옥분 할매는 타고난 것 같은 재치로 그 계략을 하나하나 역으로 돌려주고 있었다. 어쩌면 살아온 시간이 달라서일지도 모른다. 다음에는 좀 더 지능적으로, cctv 없는 곳에서 때리라고 하니 나래가 킥킥 웃었다. 무인 카메라라고 나래가 옥분에게 설명했다. 옥분은 카메라라면 일제 때 선교사들이 갖고 다니던 걸 봤다고 했다. 그들은 제법 소단을 좋아하는 듯했다. 나래 몸을 빌린 옥분이 입을 꾹 다물었다가 혀를 쯧 찼다.

“내가 말이야, 살아있을 적에 어머니 아버지 무덤에 가본 적이 없어. 남편이 허락을 안 했으니까. 그놈 집 나간 이후로는 애 키우느라 바빠서 못 갔지. 찾으려고 해도 글자를 알아야지. 귀신 되고 글자 익혀서 어디 있는지 찾으려고 했는데,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또, 딸내미가 귀신 돼서 이승 떠도는 게 무슨 자랑이라고……. 불효도 이런 불효가 어디 있겠어.”

옥분이 처음 내보인 속사정이었다. 그간 옥분은 내일이라곤 없는 사람처럼 대담하고 시원시원하게 굴었다. 귀신한테 내일이 있을 리도 없다. 그가 한숨을 폭폭 내쉬었다. 귀천을 떠돈 지 수십 년 만에 대화상대를 찾아 말꼬가 터진 모양이다. 나래가 옥분을 도닥도닥 위로했다. 자기 몸을 끌어안고 있는 장면이 우스워 보일 법도 한데, 애틋한 느낌이 났다. 소단이 나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그는 카메라가 하나뿐인 보급형 스마트폰을 나래 얼굴에 들이댔다. 새빨간 점이 수없이 찍힌 GPS 위성지도였다.

“이런 게 집단지성이라는 거죠. 저 같은 한풀이 전문 무당들이 공유문서로 전국 무덤 주소를 싹 다 입력한 거예요. 무당들 관리하는 공기업 같은 게 있거든요. 할머니 가족들 이름이나 생일, 큰 특징을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범위를 좁혀줘요. 시간이 좀 걸리긴 해요. 이게 영업 비밀이긴 한데, 기밀 수준은 아니거든요. 일반인한테 말해봤자 뻥이라고 하고, 영능력 없는 사람한테는 그냥 일반적인 지도로 보이니까요.”

옥분이 무슨 소리냐면서 미간을 찡그렸다. 나래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기웃거렸다. 그가 차근차근 설명하자 옥분이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소단의 손 위에 자기 손을 올렸다. 시원시원한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북한이면 못 가는데. 옥분의 기대를 꺾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검색은 사흘이 걸렸고 옥분의 가족무덤은 DMZ에서 아슬아슬하게 떨어진 강원도 산골에 있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딸의 무덤도 근처였다. 소단이 이 소식을 전하자 옥분은 혼란스러운 듯했다. 그는 손을 꼼지락거리기만 했다. 그에게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라 소단은 그저 가만히 있었다. 침묵을 깬 이는 나래였다.

“옥분 할머니, 가요. 강원도는 고속버스 타면 얼마 안 걸려요. 얼마 안 걸리니까 주말에 다녀오면 돼요.”

옥분이 몸에 깃든 이후, 나래는 천천히 자기 욕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소단이 보기엔 멀었지만, 어느 정도 바람직한 변화였다. 나래는 말을 꺼내놓고 다시 살금살금 눈치를 봤다. 자기가 나선 게 괜히 옥분의 기분을 상하게 한 건 아닌지 걱정하는 눈치였다. 걱정이 많아도 너무 많다. 소단은 나래에게 인생 선배로 충고하려다 말았다. 옥분이 눈을 빛내면서 고갤 끄덕인 탓이다.      

나래는 수학여행 한 번 가본 적 없었다. 나래의 할머니는 걱정과 불안으로 첨탑을 쌓을 수준에 다다랐는데, 나래는 그가 걱정하는 걸 걱정해서 수학여행이든 체험학습이든 가지 않았다. 할머니가 반대하는 까닭이 더 컸다. 옥분이 할머니를 설득하는 걸 도와줄까, 하고 묻자 나래는 망설이다 고개를 저었다. 소단의 도움도 사양했다. 그는 마왕을 무찌르러 가는 용사처럼, 희귀하게 용맹한 태도로 방문을 나섰다. 용사든 마왕이든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지만, 소단은 이제 용사가 마왕으로부터 독립할 때라고 생각했다. 큰 소리 한 번 오가지 않았다. 나래는 한참 만에 봉투에 담긴 30만 원을 들고 돌아왔다. 눈가가 붉었다. 할머니가 줬단다. 심경이 복잡한 것 같았다. 이렇게 쉽게 될 일을 그간 두려워한 걸 후회하는 건지, 할머니가 걱정되어 발이 떨어지지 않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주말. 주인 할매는 소단과 떠나는 나래 손을 꼭 잡고 현관에서 30분 내내 안전 수칙을 나열했다. 나래가 털끝 하나 다쳐오면 보증금이고 뭐고 쫓겨날 것 같아서 등골이 서늘해졌다. 둘 같은 셋은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우동을 한 사발 들이키고 버스를 탔다. 나래가 유독 신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가족이랑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애들이 내심 부러웠다고 한다. 주인 할매는 왼쪽 다리를 절뚝거렸는데, 그마저도 무릎이 시원찮아 진 이후 외출이 크게 줄었다. 그렇다고 나래가 철없이 칭얼대는 어린애도 아니다. 나래는 자기가 집안에 고인 채 죽어가는 연못 같았다고 표현했다. 소단은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언니, 저는요. 엄마랑 아빠 얼굴도 몰라요. 사실 그다지 보고 싶지도 않아요. 나래를 낳은 이들은 그를 키우길 포기했다. 소위 말하는 ‘어쩌다 엄마’, ‘어쩌다 아빠’인 것이다. 입양 갈 처지인 나래를 나래 친모의 친모인 주인 할매가 금이야 옥이야 키웠다고 했다. 나래는 그 사실이 사무치게 고마운 동시에, 뼈가 아프도록 미안했다.

“우리 할머니는 절 돌보느라 포기한 게 많아요. 제가 어떻게 그 기대를 저버릴 수 있겠어요. 전 할머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사실 제가 뭘 바라는지도 모르겠어요. 선생님들이 꿈을 찾으라고 할 때마다 전 할 말이 없어요. 할머니 꿈이 곧 제 꿈이잖아요. 제 꿈을 찾는다고 해도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요. 저는 할머니 기대를 배신할 수 없는데. 보세요, 이렇게 여행 가는 것도 얘기하는 게 어려워서 앞에서 울기나 했어요. 할머니는 제가 판검사 하길 바라세요. 철밥통이니까요. 제가 공부는 잘하니까 그나마 다행이죠.”

나래의 어조는 해가 동쪽에서 뜬다고 말하듯 단조로웠다. 그는 생긋 웃으면서 좀 더 재잘댔다. 소단은 그의 새까만 눈동자를 응시하다가 시선을 돌렸다. 어린 소단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쑤셨다. 나는 말이여. 옥분이 나래 입을 빌려 터놓듯 말했다. 그는 선팅된 버스 창 너머를 응시하고 있었다. 살아생전을 떠올리는 듯했다.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내가 바라는 걸 해본 적이 읎어. 뭐, 그 시절이야 여자들이 다 그랬지. 옥분은 조선이 막 독립한 시기에 열 살이 조금 넘었다고 했다. 쓸쓸한 어투였다. 후회감이 약간 섞여 있었다. 남동생 하나 둔 장녀였지. 다른 애들은 살림 밑천 취급이나 받았는데 난 제법 사랑받고 컸단 말이여. 뼈 빠지게 가난하고 지랄맞게 서러웠어도 원망스럽진 않어. 그냥 그리워 미치겠어. 사랑둥이 딸은 일찍이 철들어, 뭐 하나 바란다는 얘기 한 번 하지 않았다. 순순하고 착한데다 참을성도 좋았다.

“죽고 나니 서럽더라고. 난 세상 사람 모두를 이해했는데, 정작 날 이해하지 않았다는 게 말이여. 남이 허락하는 대로만 보고 말하면서 살았는데, 그것이 이렇게 귀신으로 남을 만큼 억울한가 봐. 나래 할미도 나는 이해가 가네. 하나밖에 없는 귀한 손녀 아니야. 편한 길만 걷게 하고 싶지. 나도 그랬어. 그런데 말이여, 나래야. 이 할미는 네 삶이 나보다 편하다 이 말을 하는 게 아녀. 자기를 더 이해하고 살아야 한다는 얘기지. 이 노친네는 네가 꼭 딸 같다. 이 할미를 봐라. 한이 남아 이승 땅이나 맴돌고 있지 않어. 내 꼴 나기 싫으면 네가 바라는 걸 해야 혀. 네 할미가 바라는 것도 좋은데, 네가 진짜로 원하는 걸 해야만 하는 것이야. 엉망진창인 길이라도 네가 골라야만 한다.”

나래는 대답하지 않았다. 옥분이 한 말에 고민에 잠긴 듯했다. 그는 한참 만에야 제 나름대로 발랄하게 화제를 돌렸다. 옥분 할매와 소단은 그가 말을 돌리는 걸 모른 척해주기로 했다. 몇 번 버스를 갈아탔다. 고속버스가 영월 시외 버스터미널에 다다랐을 때는 이른 오후였다. 하루에 몇 대 다니지 않는 동네 버스 시간표 맞추겠다고 새벽같이 나온 보람이 있었다. 노랗고 조그만, 털털거리는 버스를 타고 옥분이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다. 옥분 할매는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사람 같았다.

“내가 딸 하나밖에 못 낳아서, 남편 놈이 집을 나가부렀지. 그 놈이 뭐라고 지랄하든, 나한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이었다 이 말이여. 쬐끄만 게 커서 웬 사내자식 손을 붙들고 왔을 때는 눈에 쌍심지를 켰어. 죽어라 반대했더니 아주 집을 나가버렸지 뭐야. 그 길로 연락이 끊어졌으니 어쩌겠어. 잘 살았기를 바라야지. 나이 먹으면 그 애가 잊힐 줄 알았어. 그런데 한 육십 년 지나도 안 잊혀. 얼굴이 바로 떠올라. 곱게 순순한 길만 걸으라고 순희라고 지어줬단 말이야. 내가 지은 이름이야. 김순희. 지금 보니 나래가 그 애를 많이 닮았네. 그 애가 행복하게 살다 갔으면 나는 이제 한이 없어. 세상 불행이 다 나한테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 젊었을 적 소식이 끊겼으니 알 수가 없지. 어릴 적에 소아마비를 앓아서 왼 다리를 좀 저는데, 이것 때문에 고생할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나래가 생각에 잠겼는데, 그가 조용한 건 하루 이틀이 아니라 소단은 그냥 넘어갔다. 작고 색 바랜 버스가 종착역에 멈췄다. 소단이 위성지도로 길을 찾고 나래가 뒤따랐다. 해가 느긋하게 남쪽에서 미적대고 있었다. 옥분 할매는 전쟁 전에 살던 곳이라면서 기억을 더듬다가 그대로 남은 게 산밖에 없다면서 탄식했다.

 둘 같은 셋은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여전히 소단이 길을 찾고 나래가 따랐다. 그들은 마침내 작은 마을 논밭 사이에 끼어 버린 무덤가를 찾아냈다. 비석마저 잡초에 덮인 초라한 무덤이었다. 합장을 지냈다고 했다. 나래 몸을 빌린 옥분 할매가 망설이는가 싶더니, 다가가 잡초를 헤쳤다. 비석이 보였다. 김철현, 이선옥, 김철진, 김옥분. 옥분이 하염없이 비석을 쓰다듬을 동안, 소단은 야무진 손길로 벌초를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차린 옥분이 다가와 손을 거들었다. 그의 손동작이 훨씬 빨랐다. 가장자리에 풀 무덤이 생기고, 봉분은 어설프게 제모습을 되찾았다. 소단이 일회용 제사 키트를 꺼냈다. 작은 제기 몇 개, 향과 쌀, 과일 말린 것 약간, 성냥이 하나, 비닐 팩에 든 청주. 한풀이 무당이면 누구나 들고 다닌다. 조용한 옥분의 어깨를 짚어 일으키고 제사를 지내자고 했다. 챙겨온 돗자리가 얇아서 자갈이 배겼다. 나래 몸을 한 옥분이 잡초더미 앞에 절했다. 소단이 뒤이어 절했다. 제사를 마치고, 좁다란 돗자리에 등을 맞대고 옹기종기 앉았다. 그토록 바랐던 염원이 너무 쉽게 이뤄진 것 같아 허무한 모양이다. 옥분은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흙바닥에 난 들꽃을 이리저리 뜯었다. 꽃반지는 습관적으로 만든 것 같았다. 소단은 그게, 딸한테 만들어주던 버릇이 몸에 남은 게 아닐까 추측했다.

햇살에 붉은 기가 돌았다. 나래가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가 옥분의 딸인 ‘순희’의 인상착의를 물었다. 호기심인가 싶어서 소단은 그를 가만히 뒀다. 옥분은 덤덤하게 답했다. 어디에 화상 자국이 있다든가 왼쪽 새끼발가락이 약간 틀어져 있다든가, 왼손잡이라든가 하는 것들. 소단은 나래가 하려는 말이 무슨 내용인지 알 것 같았다. 그건 퍼즐처럼 짜 맞춰진 채 문장 하나를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할머니 성함이랑 우리 할머니 성함이 똑같아요. 우리 할머니 이름도 증조할머니가 지어주신 거고, 할아버지랑 도망친 것도 같아요. 외동딸이고, 소아마비로 왼 다리가 불편하다는 것까지 맞아요. 54년생이라 올해 예순여덟인데, 증조할아버지가 금방 죽을 여자애라고 해서 55년에 겨우 호적에 넣었대요. 할머니는 항상 할머니 엄마 얘길 하셨어요. 어릴 적 치기에 깊게 상처 주고 뛰쳐나온 일을 후회한다고 몇 번이고 말씀하셨거든요. 옥분 할머니는 눈에 안 보이니까 모르겠는데, 할머니는 할머니의 엄마를 빼닮았다고 들었어요. 동네 어른들이 판박이라고 놀려서 화냈는데, 엄마가 꽃반지를 주면서 달랬다고도 했고……. 할머니 어릴 적에, 엄마한테 받은 사랑을 저한테도 주고 싶다고 항상 말씀하셨어요. 제 증조할머니 성함은, 김옥분이에요.”

나래의 입으로 거친 숨이 토해져 나왔다. 옥분의 숨결이었다. 옥분은 나래 몸으로 우는 추태를 보이지 않으려 부단히 애쓰는 것 같았다. 노력이 무색하게, 나래의 눈가가 붉었다. 나래의 것인지 옥분의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옥분은 이제 기대를 부정하지 않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그는 여태 방어적인 태도로 살아왔고 귀신이 되어서도 그 버릇은 어디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기대가 생기면 어떻게 굴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만에 하나 나래의 할머니가 그 순희가 아니라면, 더더욱 실망하면서 괴로워지지 않을까.

옥분이 손을 벌벌 떨자 나래와 소단이 남는 손으로 그의 손을 붙들어주었다. 네 할미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 뭐데? 볼품없이 떨리는 목소리였다. 나래가 오른손으로 떨리는 왼손을 굳건히 힘주어 잡았다. 민들레요. 옥분이 아, 하고 탄식했다. 있지도 않은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모든 사실이 맞아떨어진다. 소단은 나래의 왼손이자 옥분의 왼손을 붙잡은 채 곁에 앉아 있었다. 옥분이 숨을 할딱거렸다. 할머니, 울어도 돼요. 속 시원하게 울어보세요. 저도 그러고 싶었어요. 나래가 옥분에게 몸의 통제권을 완전히 넘겨주었다. 옥분이 자길 차지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에서 나온 행동이지만 무모하고 위험했다. 소단이 바짝 긴장했다. 이 상태에서 옥분이 나래의 영혼을 밀어내면 답이 없다. 집세는 둘째치고 무당 된 도리로 주인 할매를 볼 면목이 없어진다. 나래 몸에서 손을 뗀 그가 손을 뒤로 감춘 채 비상용 부적을 만지작댔다.

옥분은 한동안 울었다. 정말 온몸의 물을 전부 쓸 것처럼 울었다. 나래도 같이 울었다. 각자 우는 이유는 달라도 울음소리는 같았다. 언젠가 말하길, 나래든 옥분이든 소리 내어 울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옥분은 사느라 바빠서, 나래는 주인 할매가 걱정할까 봐. 주변 환경, 특히 자기 자신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고집이기도 했다. 정말이지 꼴사나운 울음이었다. 눈물 콧물이 구분 없이 얼굴을 덮었다. 소단이 쥐여준 손수건은 이미 얼룩덜룩해진 채 제 기능을 잃었다. 얇은 돗자리를 움켜쥔 손아귀에 핏줄이 불거졌다. 그들은 정말 우는 방법도 모르는 사람처럼 울었다. 우리 순희, 우리 순희 하면서 꺽꺽대는 게 차라리 갓난쟁이가 더 잘 울겠다 싶었다. 소단은 그들의 미운 울음을 보면서 눈시울이 붉어져 손톱으로 손바닥을 강하게 눌렀다. 이해하지 말자. 이해하지 말자. 벽을 두르자. 경계를 지키자. 공감은 한풀이의 기본이지만 귀신의 감정에 깊게 동화해서 좋을 게 없다. 그들은 어색하게 훌쩍이다가 흐느끼다가 오열하다가 꺽꺽대기를 반복했다. 마침 마을 변두리에 나무가 무성한 구석이라 울음소릴 듣고 사람들이 달려올 일도 없었다. 몸의 통제를 완전히 넘긴 건 끔찍하게 위험한 짓이지만, 한풀이에 도움이 되는 방법인 사실은 확실했다. 한이 풀려야 나래 몸이 해방된다. 한 번 깃든 귀신은 몸 원래 주인과 귀신이 완벽한 합의를 봐야 분리할 수 있다. 옥분과 나래는 족히 한 시간을 울었고 제법 그럴듯한 울음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될 무렵, 흐느낌을 그쳤다. 약 20분이 지나고, 나래는 퉁퉁 부은 눈을 한 채 히끅히끅 딸꾹질을 했다. 소단이 옆에서 물을 챙겨주었다. 후련한 한숨이 나래의 입술 사이로 샜다. 몸 주인과 귀신이 친해지면 곤란하다. 몸을 같이 쓰는 게 단기적으론 그럴듯할지 몰라도, 귀신이든 사람이든 마음이 언제 변할지 모르는 일이다. 둘과 대화가 되기까지 10분 정도 더 걸렸다. 소단은 긴장을 놓지 않은 채 뒷주머니에 찔러넣은 부적의 안전장치를 풀 지를 무수히 고민했다.

“나래야, 우리 순희가 어떻게 살았는지 말해주어. 거짓 없이, 참말로만. 그 애가 누구랑 어떻게 살았는지, 행복한지, 건강은 괜찮은지, 괴롭히는 사람은 없는지……. 네가 아는 대로 말해주면 고맙겠구나. 나는 말이여, 못난 어미라서 내 딸인데 내 딸을 몰랐어. 우리 순희 편하게 순순하게 고운 길만 가라고 그 애를 옭아맨 게 얼마나 후회되던지. 오죽하면 어미를 뒤로하고 사내놈이랑 도망쳤겠어. 그래, 정말 도망이었지. 어미가 어미가 아니라 도망쳐야 할 괴물이었던 거지. 이제야 이해가 돼. 그때, 한때만이라도 우리 순희가 하는 말을 들어줄 걸 왜 그랬나 싶구나. 내가 왜 그랬을까. 우리 순희가 울 때 다그치지 말 것을. 강하고 억센 게 나는 정답인 줄로만 알았어. 꺾이지 않고 자라서 이 빌어먹을 세상에 지지 않길 바랐지. 이제는 알겠어. 세상을 살아가는 건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야. 이건 그냥 길이지. 이기고 지는 게 아니라 돌아가거나 바로 가거나 이 문제인 거지. 나는 바보같이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문득 소단은 기묘한 불안을 느꼈다. 직감적으로 일이 잘못될 가능성을 알아차린 것이다. 이건 정말 애매하고 말로 설명하기 모호한 감각이라 논리적으로 가림 할 수 없는 개념이었다. 육감이라고들 하지 않던가. 그의 육감이 날카로운 경고음을 울렸다. 귀신과 몸 주인의 감정이 격한 상황에서 불씨가 튀면 걷잡을 수 없다. 둘의 감정을 잘 통제했어야 하는데, 괜히 이해나 하고 앉았으니 위험지수를 키운 꼴이다. 가뜩이나 어둑한 시점에 무덤가라 음기가 장난이 아니다.

제 할머니는 대단한 사람이에요. 나래가 훌쩍이면서 말을 틔었다. 이제 늦었으니까 돌아가자. 가면서 얘기해. 일단 무덤가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다. 소단이 자연스럽게 권했지만, 몸의 통제권을 쥔 옥분은 그럴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는 땅에 붙박인 것처럼 서 있었다. 나래야, 가자. 옥분 할머니도 이제 가요. 나래를 불러도 대답이 없다. 옥분이 나래를 안으로 숨기고 그에게 닿는 길을 모두 차단했나? 소단이 뒷주머니에 찔러둔 부적 안전장치를 은밀하게 풀었다. 제압할까? 아니다. 자극해서 좋을 게 없다. 자기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나래가 말을 이었다.

그의 할아버지, 즉 순희의 남편은 인간쓰레기의 상징 같은 사람이었다. 반반한 얼굴로 어린 순희를 꾀어놓고 몸종 부리듯 했는데, 숨겨놓은 아들이 이미 둘이었다. 결혼하고 일주일 지나 시어머니가 한 명을 가져다 놓고, 보름 지나자 한 명을 더 가져다 놓았단다. 시아비는 그를 어미 아비 없는 자식이라며 무시했다. 딸을 낳자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친척들 등쌀도 무시할 수 없었다. 겨가 섞인 밥을 십수 년간 먹은 탓에, 순희는 지금도 깨끗한 쌀밥을 남긴 적이 없었다. 순희는 그건 어떻게든 견딜 수 있었다며, 가장 못 견딘 건 어떻게든 키워놓은 남의 자식이 친딸을 괴롭히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그들은 순희가 낳은 딸을 걸핏하면 때리고 부려먹고 모욕했다. 순희는 지금도 종종 악몽을 꾼다. 아주 벌떡벌떡 일어날 때도 많다. 유일하게 서로 의지해 키운 친딸은 웬 놈팽이를 만나더니, 갓난쟁이 나래를 떠맡기고 아주 떠나버렸다. 순희는 그를 찾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이해한다는 얘기였다. 나래는 할머니인 순희를 대신해 자기 어머니를 미워하고 있었다. 많은 시련이 순희를 거쳤다. 무엇 하나 만만한 게 없었다. 그는 수없이 쓰러졌고 수없이 일어나려 했다. 나래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나래는 그 점에도 죄의식을 느꼈다. 그는 자기가 없었더라면 할머니가 더 자유를 누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무의미한 상상에 빠져 있었다.

옥분은 가만히 서 있었다. 그 몸은 더는 나래의 것이 아니었다. 옥분의 주변을 둘러싼 새까맣고 오염된 연기가 소단의 눈에는 보였다. 옥분의 기세였다. 소단이 혀를 차며 부적을 두 쪽으로 찢었다. 신묘한 기운이 파도처럼 흘러나와 검은 기운을 몰아내려 했지만 시도로 그쳤다. 악귀를 제압하는 부적이 한낱 종잇조각으로 전락했다. 옥분이 새까만 눈물을 흘렸다. 나래의 목소리가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귀신이 구체적인 살의를 품으면 물리력을 쓸 수 있는 악귀가 된다. 옥분은 순희의 불행에 누군가의 죽음으로 분풀이할 생각이었다. 가뜩이나 한이 깊은 와중에 나래의 몸까지 얻었으니 더는 가망이 없다. 옥분을 나래 몸에서 뜯어내는 것도 무식한 짓이다. 나래의 영혼은 물론 몸까지 상할 게 뻔하다. 순조롭게 풀리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복병을 만나다니. 소단이 이러지 말라고 소리 질렀지만, 옥분은 격노에 물들어 악귀가 된 지 오래였다. 안 그래도 흐릿한 나래의 영혼이 짓눌려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몰아치는 새까만 분노는 이내 늪으로 질척하게 가라앉아 그 주변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영계를 느낄 수 있다면 이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을 터다. 이대로 죄까지 지으면 옥분은 환생은커녕 지옥 불에 영원히 불타리라. 소단은 두 사람이 불행하길 바라지 않았다. 오히려 행복하길 바랐다. 노란 부적 종이에 이리저리 붉은 글자를 써 내렸지만, 검은 기운에 타들어가듯 잿가루만 날린다. 소단이 머릴 쥐어뜯다가 갑자기 드러누웠다. 김소단, 김소단, 김소단. 자기 이름을 세 번 부르고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안에 입숨을 불어넣었다. 혼이 서서히 신체에서 빠져나갔다. 빈 몸이 축 늘어졌다. 악귀와 얘기하려면 귀신이어야 한다. 몸을 잠깐 비우는 건 무당이 부릴 수 있는 가장 빼어난 주술이다. 영혼 상태가 된 채, 옥분이 만들어낸 기억 늪에 뛰어들었다. 풍덩, 소리와 함께 꼬르르륵 숨이 막히고 시야가 새까맣게 물들었다.

어느새 소단은 어느 동산에 서 있었다. 시원한 봄바람이 불어왔다. 하늘이 바다만큼 파랗고 발목을 스치는 들풀이 간지러웠다. 동산 위에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있었다. 모녀는 돗자리 위에 앉아 있었다. 딸은 어머니의 무릎에 누워, 종알종알 떠들고 어머니는 그의 귀밑머리를 넘겨주면서 콧노래를 흥얼댔다. 욕망의 공간이었다. 옥분이 죽음을 맞을 때 눈앞을 스쳐 간 마지막 장면. 그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딸을 그렸다. 젋은 어머니, 옥분이 흥얼대는 노래는 자장가였다. 어린 딸은 까르르 웃으면서 오늘 있었던 행복한 일을 전했다. 소단은 그들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옥분의 얼굴이 없었다. 달걀귀신처럼 보이기도 했다. 소녀 나이대인 순희의 얼굴도 없었다. 달걀귀신이 고개를 들어 소단을 바라봤다. 말없이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소단이 그에게 손을 가져다 대는 순간, 장면이 뭉그러지고 모녀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다시 새까만 어둠. 누군가가 소단의 뺨을 후려갈겼다. 사실 옥분의 뺨이었다. 소단이 재빠르게 기억의 동화에서 빠져나왔다. 사위가 밝게 물들고, 옥분과 소단은 웬 허름한 집 안에 있었다. 얼굴 없는 남자가 여자를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세 살은 됐을까 싶은 어린 여자애가 앵앵 울었다. 주마등. 욕망의 공간 다음은 주마등이다. 맞는 여자는 옥분이고 때리는 남자는 그의 남편이었다. 어린 여자애는 순희인 듯했다. 빌어먹을 애새끼 때문에 술맛이 다 떨어지네. 남자가 다 엎어진 반찬 그릇을 옥분에게 집어 던졌다. 그는 어린 딸에게도 해코지하려 했는데, 옥분이 눈을 부라리면서 막았다. 순희에게 향할 매가 옥분에게 향했다. 저만치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이를 이해해. 옥분의 독백이었다. 담담하되 처연한 말씨였다. 오대 독자가 아들이 없으니 얼마나 초조했겠어. 가족들이 옆에서 떠드는 소리를 괴로워하는 사람이었지. 내가 아들을 낳아주지 못했으니 성질이 있는 대로 난 거야. 그 시절에는 흔한 일이니, 화가 나지도 않어. 그놈이 내 순희를 해치지 않은 걸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해. 당시엔 그게 최선이었어. 나는 그를 이해하네.

소단이 목소리를 따라 걸었다. 사방이 급하게 어두워졌다. 검고 좁다란 가시밭길이었다. 목소리는 저만치 앞서가는데, 가시는 갈수록 날을 세우는 데다 피할 곳도 없었다. 복도처럼 길쭉한 길 주변에 액자가 가득 붙어 있었다. 액자라고 볼 수도 없는 초라한 그림도 있었다. 하나하나가 기억이었다. 삶에서 깊은 인상을 준 기억은 사진과 그림, 액자로 박제되어 각인된다. 무방비한 맨발이 가시에 베여 따끔거렸다. 더는 걷고 싶지 않은 험한 길이었다. 소단은 종종 아픔으로 얼굴을 찌푸리면서 참을성 있게 걸었다. 끄트머리에 다다르자 허름하고 작은 문이 있었다. 악귀는 자기의 약한 핵심을 가장 깊은 곳에 숨겨놓는다. 인내심을 갖고 앞으로 나가는 노력이 없으면 무당도 그 기억에 휘말리기에 십상이다. 문을 열고 몸을 구겨 넣어 들어갔다.

사랑하는 할머니. 나래의 목소리였다. 나래가 죽음 앞에서 겪게 될 주마등이 펼쳐졌다. 나래의 방이었다. 현실과 똑같은 장면이라 소단은 정신을 단단히 잡아야 했다. 나래는 책상에서 공부하면서 울었고 책을 보면서 울었고 잠이 들면서도 울었다. 수학여행 신청서를 제출하기 전날이었다. 그는 양가감정 사이에서 갈팡질팡 길을 잃은 상태였다. 또래와 어울리고 싶은 마음과, 할머니에게 걱정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동시에 그를 괴롭혔다. 그는 자기보다 할머니가 중요했다. 그래서 나래가 내린 결론은 일관적이었다. 할머니한테서 벗어나려 하다니, 할머니한테 거역하려 하다니, 나는 정말 나쁜 애야. 나래가 내는 목소리는 차츰 잦아들었다. 나쁜 애는 소리 낼 자격이 없다. 마침내 그는 소리 내는 방법조차 잊어버렸다. 나래는 목소리 크기처럼 줄어들었다. 그의 시선에서 세상은 점점 커졌고 자기는 점점 작아졌다. 도저히 크고 위험한 세상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소단은 나래의 두려움이 고스란히 느꼈다. 마침내 손바닥에 올려놓을 크기만큼 작아진 나래를, 그가 안아 들었다. 최나래는 세상을 이해했지만 자기를 이해하지는 못했다. 이 사실이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아붙였다. 왜 널 이해하려 하지 않니? 소단이 손바닥 안에 든 사람에게 물었다. 그럴 필요 없으니까. 방법도 모르겠어. 날 그냥 내버려 둬. 나래 목소리에 옥분의 기운이 섞여 있었다. 이 새까만 기억 공간에서 그들은 하나이자 둘이고 둘이자 하나였다. 짙은 무력감과 두려움이 이 그들을 옥죄어 옴짝달싹 못 하게 했다.

혼령을 악귀로 만드는 건 분노가 아니다. 분노가 뿌리내린 두려움이다. 악귀가 진정으로 죽이고 싶은 존재는 남이 아니다. 사랑하는 이의 불행을 막지 못한 자기 자신이다. 무당이 할 수 있는 건, 악귀의 기억에 뛰어들어 그가 길을 찾을 용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피투성이 발을 한 채, 절망에 젖은 목소리를 따라 걸었다. 걸음이 저만치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작은 나래는 옥분에게 향하는 열쇠였다. 울음의 주인인 옥분은 기억이 박제된 액자에 둘러싸여 흐느끼고 있었다. 그는 옥분의 한이자 두려움이고, 그가 가장 부정하고 싶은 자기 자신이었다. 가까이 갈수록 그는 천천히 쪼그라들어, 마침내 나래와 같은 크기가 되었다. 악귀를 강하게 만드는 두려움은 이다지도 작다.

나도 한때 그럴 때가 있었어. 다른 사람이 내게 투영하는 욕구, 욕망, 기대. 그 모든 게 진실인 줄 알았지. 모든 목소리가 진실하니, 내 목소리는 거짓말일 게 분명하잖아. 썩어가는 연못에 든 붕어처럼,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어. 김소단을 되살린 건 오직 한 사람, 김소단이야.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써 내려갔지. 내가 정말 이해받을 자격 없는 나쁜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한 거야. 생각해보니까 그건,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었어. 부정할 여지가 없지.

소단이 하는 말이 이어질수록 나래와 옥분에게 금이 갔다. 틈이 생긴 사이로 노랗고 따스한 빛이 번쩍이며 새어 나왔다. 벽을 거두고, 세상이 당신을 이해할 기회를 줘. 마지막 한 마디에 나래와 옥분은 완전히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그들의 껍질이 가리고 있던 빛이 시야를 완전히 장악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푸른 언덕 위에 있었다. 두 사람은 씨앗이었다. 연리지로 이어진 두 그루 느티나무 아래, 옥분과 나래가 서 있었다. 영혼의 뿌리가 바로 서자, 비로소 그들에게 표정이 생겼다. 그들 뒤로 아담하고 정감 가는 작은 문이 있었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끌어안았다. 산들바람을 맞으며, 세 사람이 문을 나섰다. 정신을 잃기 직전, 옥분이 입을 벙긋거렸다. 소단은 그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소단이 진정으로 눈을 떴을 때는 서늘한 한밤중이었다. 나래가 그에게 무릎을 빌려주고 있었다. 한참 누워 있었더니 몸에서 풀 냄새가 났다. 옥분 할머니는? 소단이 묻자 나래가 답했다. 가셨어요. 저한테 똑바로 살라고 하고 가셨어요. 소단 언니한테는, 많이 미안하대요. 일어나 앉은 소단이 한숨을 돌렸다. 나래에게서 옥분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옥분이 완전히 떠난 것이다. 악귀가 된 자는 저승차사가 마중 오지 않는다. 홀로 먼 저승길을 견뎌야 한다. 소단은 옥분이라면 그 길 마지막에 놓인 두 번째 기회를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셋으로 출발해 둘이 된 일행은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나래는 종일 자기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고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떠들었다. 소단은 지친 기색 없이, 나래가 자기 자신을 터놓고 얘기하는 바를 들어주었다. 그의 눈은 더는 죽어있지 않았다. 나래는 까르르 웃기도 하고 훌쩍이기도 하고 뒷담화를 하기도 하면서, 그간 꿍쳐둔 나래를 뿜어냈다. 나래는 우리말로 날개. 비로소 이름값을 하는 걸 보고 소단도 같이 웃었다.

서울 고속 터미널에 도착하자 순희 할매가 그들을 마중 나와 있었다. 나래가 폴짝 뛰더니 순희에게 달려가 그를 기운차게 끌어안았다. 할머니, 저한테 깃든 영혼이 누구였는지 아세요? 나래가 잔뜩 어리광부리며 물었다. 순희가 누군데, 하고 묻자 나래는 까르르 웃으며 답했다. 증조할머니요. 할머니의 엄마였어요. 그분이 저한테 날개를 달아주셨어요. 소단이 개운하게 미소 지은 채 고갤 끄덕였다. 순희는 직감적으로 나래가 하는 말이 진실이라는 걸 알았다. 나래가 주름 자글자글한 손을 힘주어 잡았다. 전해지는 체온이 따스했다. 나래가 목을 큼큼 고르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누구보다 사랑하는 내 아기. 두려워 말아라. 내가 네 날개가 되어주마. 나래가 전한 말에 순희가 고개를 푹 떨궜다. 어린애처럼 눈물을 떨구는 할머니를 나래가 힘주어 끌어안았다.      

누구나 자기는 이해받을 자격이 없다고 괴로울 때가 있다. 거대한 세상 앞에 홀로 남겨져 끝도 없는 두려움에 잠길 때가 있다. 그러나 언젠가 때가 올 것이다. 이해받을 ‘자격’도, 누구도 공감해주지 않으리라는 ‘확신’도 전부 두려움이 만든 허상이라는 사실을 알 때가 온다. 그런 깨달음이 올 때, 누구나 명심해야 한다. 옥분이 순희에게 나래를 달아준 것처럼, 당신도 누군가에게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하여, 세상 모든 옥분이 세상 모든 순희에게 자유라는 나래를 달아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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